'오케이 고'의 새 뮤직비디오와 <워싱턴 포스트> 칼럼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9월 말에 내 놓은 오케이 고(OK Go)의 새 뮤직 비디오 'White Knuckles". 매번 기발하고도 경이로운 아이디어를 비디오에 적용시키는데,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눈이 그림을 쫓다 보면 3분 30초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개들을 끌고 왔다. 사람이 하기도 어려운 일사불란한 동작을 개들이 밴드 멤버와 호흡을 맞춰가며 척척 해 낸다. 훈련된 개들이라고는 하지만, 한두 마리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개들이 각본대로 착착 따라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고생하며 찍었을까 짐작이 된다.

비디오를 찍을 때 편집을 하지 않고 원 테이크만 고집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개들과 사람의 실수를 보여주는 제작 과정 동영상(아래)을 보면, 124번까지 찍은 기록이 나온다. 의지의 인간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결국 성공한 비디오에는 멤버들이 즐기기보다는 계속 긴장한 모습으로 나온다. '실수하면 안 돼! 실수하면 안 돼!' 하고 속으로 열심히 다짐하는 듯한 모습이다. 기계 장치를 여유롭게 따라가며 호흡만 맞춰 주었던 전작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밴드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 음악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비디오 탓일 것이다. 하긴 비디오에 그렇게 공을 들였으니, 거기에 눈을 빼앗겨 음악을 잘 듣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기분 나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8월 말에 오케이 고의 싱어 다미안 쿨라쉬가 쓴 칼럼을 실었다. 여기서 쿨라쉬는 '넷 중립성(Net neutrality, 인터넷 서비스업자나 정부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 흐름에서 그 내용이나 플랫폼, 연결 장치 등을 이유로 하여 접근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환기시키며, 외견상 이러한 원칙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글-버라이존의 새 제안에 들어 있는 헛점을 지적했다. 빅 플레이어들이 교묘하게 네트워크의 중립성을 해치며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주장이다. 이 이슈는 나중에 기회 있을 때 보기로 하고,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이 눈에 띈다:

"이 문제를 왜 이렇게 심각하고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가.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음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산업에서 일해 왔다. 이 음악 산업은 덩치 큰 자들이 다른 모두를 배제하는 시장이다. 창의력이나 혁신은 자본에 밀려 뒷전 신세를 면치 못하며, 결국 덩치 큰 자들까지 포함해 모두가 패배하는 꼴이 나는 게 이 바닥이다. 변화를 기피하면서 스스로 무덤을 파 온 셈이다.

음악을 하고 음악 팬이기도 한 나는 항상, 가장 탁월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최고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나 음악 시장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음악적 성공은 성취된다기보다 구매된다. 자본은 위험을 피하고 안전한 데에만 투자하려고 하며, 그 결과 당장 듣기 좋은 안전빵에만 돈이 몰린다. 창의력 넘치고 혁신적인 음악인들은 외면 당한 채 고군분투해야 한다. 대중에게는 쓰레기 같은 음악만 공급되며, 그 덕분에 음악 산업은 목돈을 거머쥘 수 있다.

물론 음악이란 주관적인 것이므로, 당신은 내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이란 귀보다는 좀더 덜 주관적인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음악 시장은, 아이디어의 깊이가 아니라 호주머니의 깊이가 성공을 좌우하는 곳에서 어떤 꼴이 벌어지는지 보여 주는 아주 좋은 예가 되어 왔다. 거대 음반 회사는 스스로를 퇴물로 만들고 있으므로, 어떤 음악인들, 이를테면 오케이 고와 같은 밴드는 차라리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편이 더 낫다. 교훈은 분명하다. 끼리끼리 노는 곳에서는 최선의 아이디어가 자랄 수 없다. 시장이란 모두가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이 "요즘 음악은 대체 무슨 지경인가, 음악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한탄한다. 쿨라쉬의 글을 읽자니 그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그저 트레드밀 위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이나 추고, 무의미한 기계 장치나 돌리고, 말 안 듣는 개들 데리고 편집증적인 원 테이크 비디오나 찍는 너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다면 무엇보다 <워싱턴 포스트>가 그의 칼럼을 싣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의 글 밑에 댓글이 2,935개나 달려 있지도 않을 것이다.

쿨라쉬의 글을 읽고 나서 그들의 음악을 다시 들으니 좀 다르게 들리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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