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하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퀴즈노스 코리아가 저한테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벌어진 것도 아니고,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글루스를 비롯한 우리나라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은 도대체 자신들이 하는 사업에 아무런 사명감도 소명의식도 자부심도 없는 듯하다. 그저 블로그 공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모이면 돈 좀 벌고, 문제나 생기지 않고 하루하루 지나갔으면 하는 자세로 운영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좌판 벌여 장사하면서 단속반 그림자만 비쳐도 후닥닥 놀라 싸들고 도망치는 길거리 행상 마인드와 차이를 못 찾겠다.

철학도 없고 비전도 없고 기개도 없고 줏대도 없고 비상식적인 세상에 대응하는 의기도 패기도 없다. 하다 못해 구글의 '나쁜 놈이 되지 말자'는 설득력 있는 표어처럼 자신들의 사업 철학을 집약해 표현하는 문구 하나 없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홍보용 광고 문구 빼면 말이다.

철학, 비전, 기개, 줏대, 의기, 패기. 이 모든 것은 눈치 보며 장사하는 길거리 행상이 아니라, 웹이라는 젊은 인프라와 젊은 세대에 기대어 사업하는 젊은 기업들이 가져야 하는 덕목이 아닌가. 그런 기업들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이 아닌가. 더구나 블로그 서비스며 SNS 사업은 '말 하는 사람들' '표현하는 시민들'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닌가. 사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어떤 사기업보다 민감해야 하는 게 이런 웹 사업자들이 아닌가. 그렇게 살아 남고 그렇게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개인의 생각을 표현한 게시물에 대해, 이해 당사자가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삼았다고 바로 삭제나 다름없는 비공개 처리를 해버리는 처리 방식은, 소신도 없고 철학도 없이 그저 개인 블로거들을 희생시키면서 안전빵을 택하려는 우리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의 운영 마인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법규야 원래 규제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정해져 있다. 문제는 이글루스를 비롯한 웹 사업자들이 안 해도 될 규제를 안일하고도 무신경하게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 해도 될 규제를 말이다.

서비스 사업자들이 비공개 처리를 하면서 내세우는 말은 "개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서비스 제공자는 권리 침해로 인한 삭제 요청을 받았을 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 임시 조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임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아니다. 좀더 풀어서 말하면 '권리 침해로 인한 삭제 요청을 받았을 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 임시 조처를 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임시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끽 소리만 나면 화들짝 놀라 무조건 비공개 처리부터 해야 한다는 조항이 아니다.

물론 서비스 제공자가 직접 '침해 여부를 판단'해서 조처를 취할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방식이 최선이겠지만, 이글루스를 비롯한 웹 사업자들이 그런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고 현실적으로 그럴 여력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니 그저 무신경 안전빵으로 무조건 비공개 처리부터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강제 조항이다시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놈이 문제를 입증해야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당한 놈이 문제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 뒤집힌 burden of proof 제도가 세상 어느 천지에 있단 말이냐. 검찰 경찰이 지나가는 범죄형 얼굴 아무나 불러세워서 '너 수상한데, 죄 없다는 걸 네가 증명해봐, 아님 구속 ㄳ "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예컨대 이글루스 최근 공지 포스팅인 '부당거래 시사회 당첨자 발표'에 대해, 어떤 사용자가 '당첨되지 못하였으니 내 권리를 침해하였으며, 당첨자와 이글루스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허황된 주장을 하며 권리 침해 신고를 하면 어찌할 텐가. 공지 포스팅을 비공개 처리할 것인가.

또다시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콜드님이 이글루스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이메일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서 퀴즈노스로 보내졌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이글루스 운영자입니다.

2010년 10월11일 이글루스는 귀사 '퀴즈노스'로부터, 콜드님께서 작성하신 http://coldice.eglo
os.com/000000 글에 대해 브랜드 이미지 훼손의 사유로 권리 침해 신고를 접수 받았습니다.

2007년 7월27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서비스 제공자는 권리 침해로 인한 삭제 요청을 받았을 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 임시 조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임시 조처는 서비스 제공자인 이글루스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법률적 강제 조항은 아닙니다. 이글루스는 무분별한 포스팅으로 인한 개인과 기업의 권리 침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동시에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 역시 소중한 가치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콜드님께서 작성하신 포스트는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였습니다.

만일 귀사 '퀴즈노스'가 권리 침해를 당했다고 생각하시면 권리 침해 소명을 하실 수 있습니다.

단, 이 연락을 받으신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소명서를 보내 주셔야 하며 소명서와 함께 권리 침해가 이루어졌다는 증명 서류를 첨부해 주셔야 합니다. 30일 이내에 소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게시물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영구 기각됩니다.

이렇게 나가는 게 상식 아니겠나.

그래. 무분별한 음해성 포스팅은 규제되어야 할 것이다. 규제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피해자가 포스팅을 쓴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이나 사업 방해로 소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소를 제기한다고 다 재판 가는 것은 아니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 간에 다양한 처리 방식이 나올 것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잘못을 좀더 정련된(legitimate) 방식으로 규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좋은 제도를 놔 두고, 그저 하기 편하게 메일이나 전화 한 통화 하면 제꺼덕 글을 감춰버리는 것은 대체 누구 좋으라고 있는 제도며 운영이냐. 소비자의 정당한 비판, 합리적인 문제 제기조차 관련 기업의 메일 한 통으로 완벽하게 잠재울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이해 당사자의 입막음용 신고에 대해 이글루스가 무시로 대처하는 것은 약간의 부담이 있을 것이다. 법률적인 부담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 실질적으로 서비스 제공자가 문제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지만, 어쨌든 그냥 가볍게 포스팅을 막아버리는 것보다는 한두 번 더 생각하는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경영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글루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와 타성적인 권리 침해 주장에 의연할 수 있다면, 설령 그래서 혹여나 문제가 된다면, 이글루스의 거의 모든 사용자들, 좌빨과 수꼴과 쿨게이와 입진보와 꼴페미와 개마초와 오덕과 찌질이를 비롯한 모든 사용자가 한 마음으로 이글루스를 지원하는 싸움에 나서 줄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이 사용자들은 무엇보다 우선 말을 하고 싶어서 미치는 사람들이고,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입막음을 당하면 더 미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저 편해서' '조용하니까' '오래 해 와서' 같은 이유가 아니라, '이글루스 너무 좋아서' '오직 여기뿐' '사랑해요 자랑스러운 이글루스!' 같은 열렬한 충성심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

 

덧글

  • 더카니지 2010/10/21 10:08 # 답글

    근데 저 개인적으로는 이글루스가 대체 뭘 가지고 돈을 버는건지 모르겠습니다.
    SK 측에서 "이 돈도 안 돼는거 머임? 당장 폐쇄시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 네코무라 2010/10/21 11:27 # 삭제

    편의점에서 구색맞추기 위해 담배파는거랑 비슷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손님들이 찾는데. 그게 무지 박하게 남는다고 하더라구요.
  • 네? 2010/11/24 17:12 # 삭제

    네?그럴리가요. 편의점에서 담배 안팔면 돈 안남아요. 담배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데...
  • 우갸 2010/10/21 10:10 # 답글

    아.... 정말 좋은 말씀이네요.
    이게 당연해야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거 같아요..
  • shaind 2010/10/21 10:34 # 답글

    빨간 색으로 써두신 것 같은 메일이 퀴즈노스로 갔다면 퀴즈노스는 뭐, 그냥 소송 걸겠죠. 권리침해 신고를 했더니 비협조적인(것 같아 보이는) 메일이나 보내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한테 뭣하러 권리침해 사항을 일일히 힘들여 증명하고 앉았습니까. 그냥 소송 걸고, 증명은 법원에서 하면 되죠. 퀴즈노스는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법원이 판결을 어떻게 하든 간에, 이글루스는 소송 걸리는 것 자체가 손해죠.


    이런 보신주의적 정책이 철회되려면, 글을 블라인드당한 유저들의 불만으로 인한 손해가 이를 상계할 만큼 커져야 할 겁니다. 유저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집단적으로 움직인다던가 해야겠죠.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네요.
  • tuton5 2010/10/21 12:36 #

    퀴즈노스가 법원에서 입증할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서비스 제공업체 쪽에서 숙려끝에 내린 결론에 불복하고, 자신들이 법정다툼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말이죠.

    shind는 마치 '블로그 서비스에 자사 비판적인 글이 게재되고 서비스 업체에 의한 후속조치가 없다면 모든 당해사는 법정다툼으로 나아갈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 현실성이 없죠. 법정다툼으로 나아가서 부담이 되는 것은 이글루스 뿐만 아니라 퀴즈노스와 같은 해당 회사에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형사로 가든 민사로 가든 deulpul의 말대로 비용부담 등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소송의 준비단계나 전단계에서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하는 쪽이 오히려 인지상정이고 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문제는 이글루스는 아예 블로그 이용자측의 입장은 완벽하게 무시하고 어떠한 판단이나 자사의 책임도 방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법원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어떤 그럴듯한 변호사가 등장해서 교수 찜쪄먹는 법리를 들이대도, 적어도 이번 콜드의 사례를 놓고 봤을 때 퀴즈노스 일방의 뜻대로 결론이 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게다가 그 상대방이 콜드 자신이 아닌 서비스업체인 이글루스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deulpul 말대로 이런 문제는 그야말로 표현의 자유(요즘은 남용되다 보니 이 말 자체에 반발심을 갖는 바보들도 많긴 하더라만)의 본질적인 부분까지도 침해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판단은 더욱 신중해지죠.

    도대체 이 문제에서 이용자의 책임론을 언급할 여지가 어디에 있을까요? 일방적으로 자신의 글을 삭제당하고, 자신의 의사표현의 창구를 폐쇄당하는 피해자일 뿐입니다.

    아, 책임이 없지는 않군요. 이런 문제가 터질때마다 정말 집단적으로 움직여 '우리 네티즌들은 이정도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을 부당하게 느끼며, 이러한 서비스업체의 책임방기가 지속될 경우 서비스 이용을 보이콧하겠다'와 같은 의지를 보여주기는 커녕, 난데없이 등장해서 업체의 쉴드를 치거나 쿨게이드립이나 치고, 한번 확 끓었다가 식어버리는 냄비짓이나 했던 것은 참~~~~ 우리의 잘못이네요. 빌어먹을. ㅋㅋㅋ
  • 트윈드릴 2010/10/23 11:19 #

    tuton5//
    악플러 무뇌아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이 되는 소리도 하네요?
    [ http://hvanb756.egloos.com/3471333#7903536 ]

  • young026 2010/10/23 12:17 #

    트윈드릴/ 무뇌아가 아닌 악플러가 훨씬 더 많습니다.-_-;
  • ㅇㄹㄹㄹㅇ 2010/10/21 10:39 # 삭제 답글

    콜드란 사람 남의 글 퍼와서 자기 글인양 쓰던 사람 아닌가요?
  • 트린드리야 2010/10/21 10:40 #

    그런 말은 당당히 하세요. 사실이라면 중요한 지적이고, 아니면 음해인데 왜 로그인을 안 하세요.
  • 아이고 2010/10/21 18:39 # 삭제

    옛날부터 펌글가지고 수십번은 까였는데 뭘 중요한 지적이며 음해니.
  • young026 2010/10/21 21:43 #

    이건 그것과는 관계없는 일이죠.
  • 람다 2010/10/21 11:02 # 삭제 답글

    이래서 그냥 외국에서 제공하는 블러그 쓰는게 맘 편하네요..

    아오..

    욕이 절로 나와요...
  • 심플리스트 2010/10/21 11:31 # 답글

    http://ilju.egloos.com/9828564

    제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써서 블라인드 처리를 피했습니다만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 ..... 2010/10/21 17:16 # 삭제

    좋은 회사네요 ^-^
  • 네리아리 2010/10/21 12:05 # 답글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목적이란 것은 없다능'이 공공연한 요즘 세대의 철학이라고 봐서리...
  • 개멍 2010/10/21 15:14 # 삭제 답글

    문제되는 글로 인해 실제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겼을 경우, 그 책임이 글쓴이 만이 아닌 운영회사에게도 주어진다는게 큰 문제입니다. 운영회사가 개기면 ISP 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글루스 IDC 에서 네트웍이 끊어지는 사태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허위사실을 대자보로 붙여서 누군가 피해를 봤는데 제지회사에 책임 묻는거나 같은 상황이죠.
  • deepthroat 2010/10/21 16:39 # 답글

    이상하게 한국 IT 매머드들은 '평판'에 대한 감각이 아주 무딘듯합니다.

    맨날 미국놈들 욕할때 '돈만 밝히는 자본주의 돼지 색히들이 어디 반만년 역사의 동방 예의지국 운운'하는데 미쿡놈들도 보면 '목숨'보다 평판을 더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 곳곳에 있는데 말이죠..

    앞에 앉아서 온갖거 이래라 저래라 내놔라 사라 이러다가 누가 밖에서 한대 칠라카면 싹 사라져서 맨몸으로 맞게 하는 시스템이니..
  • Q 2010/10/22 00:04 # 삭제 답글

    한국 법체계는 innocent until proven guilty가 아니라 guilty until proven innocent 라서 그렇습니다[...] 적어도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보이는걸로는 말이죠[...]
  • 2010/10/22 12:18 # 삭제 답글

    법체계는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보다는 법전으로 파악해야죠. (...) 한국 법체계가 guilty until proven innocent로 보인다면 그건 첫째, 그걸 전달해주는 언론매체의 잘못일 경우가 많고, 둘째, - 언론매체에게 그런 타성이 붙은 이유기도 한데- 한국에선 구속만 성공하면 거의 대부분 유죄판결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둘째가 왜 심각한 문제냐, 한국 검찰이 지독히 유능하다는 소리 아니냐고 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너무 유능해도 문제가 되죠. (...)

  • 2010/10/26 14: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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