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남과 구애녀 섞일雜 끓일湯 (Others)

"여자친구 있다"며 정체밝힌 '버스남' 알고보니…

버스에서 만난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 여성 이야기가 계속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남자를 찾느라 포스터까지 내다 붙였다는 것인데요. 광고 캠페인의 의혹이 가시지 않으면서도, 워낙 특이한 일이라 관심의 대상이 되는 모양입니다. ('OO녀'라는 표현은 그렇게 불리고 있더라도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여기서는 'XX남'과 균형이 맞추어져 있어서 그냥 씁니다.)

남녀 공학 고등학교가 드물었던 과거에는 버스에서 만난 이성(주로 여학생)에 첫눈에 반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한 공간 안에서 대량으로 이성을 만날 기회가 드물었고, 대량으로 만나다 보니 제 눈에 어떤 안경을 쓰고 있어도 대충 첫눈에 반할 만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와 한가인도 그랬고요. 남녀 학교들이나 학원이 많이 모인 곳, 이를테면 혜화동, 용산, 서대문 등을 거쳐가는 버스들은 당시 고등학생 세대의 풋내나는 애환이 서린 사랑의 유람선이기도 했죠.

첫눈에 반했다! 이런 로맨틱한 꿈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꿈을 꾸고 현실에서 추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구나 첫눈에 반하기보다는 상대의 직업이나 연봉이나 자동차에 반하게 되는 세상에서, 아직도 첫눈에 반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가끔 지역 신문을 뒤적이며 재미있게 보는 광고란이 있습니다. 'I Saw You'라는 쪽광고들입니다. 사람을 찾는 광고인데, 구인이나 실종자 광고가 아니라, 우연히 마주쳤다 지나친 사람(주로 이성)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내는 광고입니다. 말하자면 버스에서 어깨를 빌려준 남자를 찾는 여성 같은 사람들이 내는 광고죠. 무척 재미있습니다.

광고는 마주친 날짜와 장소, 상대방 인상착의, 당시 상황, 자기가 한눈에 반한 이유, 연락처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일부러 광고를 낼 정도면 잠깐이나마 정말 깊은 인상을 받았나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찾은 I Saw You 광고 중 일부입니다.



남성이 10월15일, 애봇 스트리트 스타벅스에서 만난 여성을 찾음:
당신이 스타벅스에 들어올 때 나는 컴퓨터를 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빨간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죠. 당신을 보자마자 너무 긴장해서, 모니터 뒤로 얼굴을 감추어야 할지, 모자를 더 눌러써야 할지 몰랐다니까요. 하지만 당신도 나를 주목한 게 틀림없어요. 그런데 왜 커피를 받아 나갔나요? 그러나 어쨌든 내 커피를 더 맛있게 해준 데 감사해요.



여성이 10월17일 운동경기장에서 만난 남성을 찾음:
우리는 10째 줄에 같이 앉았었죠. 당신은 친구와 같이 왔고, 나는 두 친구와 있었어요. ... 우리는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당신은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패션을 좋아한다고 했죠. 끝나고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무척 후회합니다. 당신은 반지를 끼지 않았었고, 결혼했는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파란 눈을 잊을 수 없군요. 한잔 해요.

이런 식입니다. 세상에 외로운 사람들 참 많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도 인구가 적당한 곳이어야 가능하겠죠. 1천만 인구가 와글거리는 서울에서 "11월1일에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노란 후드티의 당신..." 같은 식으로는 하나마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포스터 40장 복사해 길목에 붙이는 편이 더 효과적일지 모르겠군요. 게다가 이렇게 언론까지 나서서 협조를...

첫눈에 반할 수 있나.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만나보고 확 깨더라도 말이죠... 사실 안 만나지는 게 서로에게 더 이로운 경우도 태반이라고 하겠습니다만. "후드티와 나는 두 번 만났다. 두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랄까요.


※ 이미지: 본문에 링크

 

덧글

  • yonghokim 2010/11/01 13:09 # 답글

    craigslist 에 가보시면 personals 부문에 질리도록 읽을 수 있음; http://losangeles.craigslist.org/
  • deulpul 2010/11/01 13:25 #

    아, 크레이그 리스트에도 'missed connections'라고 있었군요. 목록만 봐도 질립니다, 하하-. 그런데 이 메시지들은 왜그런지 좀 날림 같고 진정성이 덜 느껴지는 것도 희한합니다. 수가 많아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겠죠.
  • yonghokim 2010/11/01 13:35 #

    저는 대학 졸업하고 백수 일 때 이거를 무려 email subscription 으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읽는 속도가 메세지가 쏟아지는 속도를 못 따라가더군요;
  • deulpul 2010/11/01 13:50 #

    아니, missed connections 같은 것을 이메일 구독하신다면, 한눈에 반할 만큼 마스크가 출중하시다는 증거임이 틀림없는... 아, 그나저나 오랜만에 뵈니, 최근 다시 뜨거운 화제가 된 DADT을 정리하겠다고 얼마 전에 말씀드린 게 생각나는군요. 숙제만 늘어갑니다.
  • 뷰티공간 2010/11/01 16:26 # 삭제 답글

    이번에는 마케팅이 아니라, 순수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였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날씨도 추운데 이런 훈훈한 이야기로 따스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 deulpul 2010/11/01 17:26 #

    저도 꼭같은 마음입니다. 본인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아니라고 믿고 싶고, 결과도 아름답게 끝났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풍금소리 2010/11/02 02:28 # 답글

    아아...오랜만에 피천득 님의 <인연>을 느껴보고 갑니다.ㅋ
  • deulpul 2010/11/02 17:06 #

    <인연>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거기서 다루고 있는 소재가, 뭐랄까 정서가 허약할 때마다 가끔씩 먹어줘야 하는 보약 같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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