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프의 물고기 섞일雜 끓일湯 (Others)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인간에게 더할 수 없는 벗이 될 수 있다. 동물들은 인간의 삶이 힘들고 팍팍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신실한 동반자가 되어 준다. 덜 되고 막 된 사람보다 훨씬 낫다. 그래서, 함께 살고 함께 늙어가는 '반려 동물'이다.

내게도 이런 동물이 있다. 넷이나 된다. 반려 동물이라고까지 하긴 뭐하지만, 물고기 네 마리다. 나의 집 어항을 온 세상으로 여기고 살아 주는 물고기 네 마리. 작고 미미한 존재지만, 나에게 분명한 위안을 주고, 외로움을 쉽게 견디게 해 준다. 처음 데려 올 때는 아기 물고기 여덟 마리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넷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나머지 절반이 꿋꿋하게 살아 남아 몇 년째 잘 지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여덟 마리가 행복하게 지지고볶던 시절.)



열대 민물 고기인 테트라의 일종인 Serpae Tetra다. 이 놈들은 덩치도 조그만한 것들이 자기 영역에 어찌나 민감한지, 어항 안에서 각자 자기 세력권을 만들어 놓고 산다. 누가 그 경계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쫓아낸다. 큰 놈도 그렇고 작은 놈도 그렇다. 넷 중 가장 작은 놈이 덩치에 굴하지 않고 큰 놈들을 의연히 쫓아내는 모습을 가만히 보노라면, 자주국방에서는 자존심과 결의 수준이 화력만큼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데려 올 때는 이 놈들의 성격을 몰랐다. 그냥 예쁘고 너무 크게 자라지 않으니 모셔온 거다. 역시 예쁜 것들은 한 성격 한다고 할까. 아니, 한 성격 할 정도로까지 예쁜 건 아닌데. 어쨌든 이런 성격 탓에, 여럿이 함께 어울려 살랑살랑 헤엄쳐 다니는 풍경 따위는 도저히 구경할 수가 없다.

하긴 밥을 먹을 때처럼 모두 환희작약(이라기보다 '환희폭영(歡喜暴泳)')하는 경우, 혹은 어항을 청소할 때처럼 모두 새가슴이 되어(라기보다 물고기 가슴이 되어) 사색이 된 채 오그라붙는 경우는, 독립심이 넘치다 못해 동족에 적대적이기까지 한 이 놈들도 일치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생존에 기본적인 필요가 해결되면 다시 영역 지키기 모드로 돌입한다. 이런 모습을 가만히 보노라면, 갈려서 싸우느라 하루해가 지는 줄 모르는 존재들이란 결국 등 따습고 배 부른 탓에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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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세상을 떠난 네 마리 중 두 마리는 어항을 청소할 때 사망했다. 임시로 작은 양동이에 넣어 두었더니, 청소를 벌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성질을 참지 못하고 물 밖으로 뛰쳐 나와 자살을 했다. 즉시 발견했으면 구해줄 수 있었을 텐데, 어항을 다 씻고 돌아와 보니 거의 운명하시는 지경이었다. 그 뒤로는 잠깐이라도 양동이에 꼭 뚜껑을 덮어 둔다.

한 마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배가 볼록해져서 죽었다. 이 놈은 사나흘을 앓다가 죽었는데, 낌새가 조금 이상하다 싶었을 때에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죽을 때가 다 되어서는 몸을 세우지 못하고 옆으로 비실비실 눕다가, 다시 안간힘을 내서 몸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모습이 옆에서 지켜보기에 눈물겨웠다. 옆으로 비실비실 쓰러지던 물고기는 결국 볼록한 배를 위로 한 채 숨졌다. 서서 다니는 사람은 죽으면 눕고, 누워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죽으면 뒤집힌다.

죽은 물고기들은 집 밖의 화분에 모셨다. 얘들은 천천히 잘 썩어서, 따뜻한 날에 좋은 꽃으로 되살아났다. 영화 <베니와 준>에서는 죽은 금붕어를 변기에 넣고 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실종되었다. 제한된 공간인 어항에서 실종이라니? 나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히 실종되었다.

어항에는 다행히 이끼가 잘 끼지 않는다. 그러나 바빠서 두어 달 청소를 못해 주면 유리벽에 이끼가 서려 안이 나름대로 은폐된다. (내가 서툰 탓도 있지만, 어항 청소는 적어도 두 시간 동안 진땀을 빼야 하는 대역사다.) 이렇게 안이 은밀해진 어느 날 저녁, 밥을 주며 일석 점호를 하다 보니 한 놈이 부족한 것이다.

어항에는 뚜껑이 있어서 밖으로 뛰쳐나올 수 없다. 밑에 깔린 자갈들이며 조개 껍데기, 가짜 물풀들을 세심하게 점검했지만, 실종된 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얘는 이렇게 사라졌다.

나로서는 어항 안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식의 범죄가 벌어졌다는 추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의 공간이 이끼로 은폐된 틈을 타서, 다른 놈들이 한 놈을 먹어치운 것이다. 그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바쁠 때, 사나흘 밥을 주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 뼈까지 몽땅 사라졌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미스테리다. 이러한 범죄는 비록 추정이지만,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머지 물고기들이 보기 싫고 미워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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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지능을 일컬어 흔히 '기억력 3초'라고 한다. 낚시 바늘에 걸릴 뻔한 물고기가 3초 뒤면 다시 지렁이를 향해 달려든다는 것이다. '닭 대가리'보다 작은 '물고기 대가리'의 지능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적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나의 물고기들에게 적어도 기초적 학습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물고기들은 어항 안에서 벌써 몇 년째 잘 살고 있고, 자살하거나 병에 걸리지 않는 한, 외부로부터 삶을 위협하는 위험이 찾아 오는 일 없이 편안히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 만도 한데 도무지 그렇질 못하다. 지금도 내가 옆으로 지나가기라도 하면 기겁을 한다. 저희를 먹여 살리는 주인이 오셨는데도, 버선발로 헤엄쳐 나와 환영은 못할망정 화들짝 놀라서 부리나케 풀이나 자갈 뒤로 달려가 숨은 뒤 눈을 디룩디룩한다. 우렁각시가 하는 다사로운 대접 같은 것은 기대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좀 섭섭하긴 하다.

언젠가부터 밥을 주기 전에, 작은 숟가락으로 어항 벽을 살살 두드린다. 얘들이 놀랄까봐, 처음에는 살살 시작해서 소리를 조금씩 키우고, 두드리는 부분도 아랫부분에서 시작해 먹이를 주는 배식구멍 쪽으로 옮긴다. 그리고는 밥을 준다.

처음에 이 놈들은 기절을 할 정도로 놀라는 기색이었다. 하긴 하루종일 아무런 소란도 일어나지 않는 어항에서 일정한 시간마다 누군가 벽을 두드리는 것은, 사람으로 치자면 한 달에 한 번씩 진도 8의 대형 지진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밥을 주었는데도 바짝 쫄아서 숨어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부터 사정이 좀 달라졌다. 그 중 한두 놈이 소리를 듣고 살살 기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얘들 중에서 비교적 지능이 뛰어난 놈이라고 할까. '두드리는 소리 = 먹이'라는 관계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파블로프 실험을 한 게 벌써 몇 달째다. 지금은 실험이라기보다, 밥 먹기 전에 벌이는 하나의 관례요 의전이 되어 버렸다. 물고기들이 지금 보이는 반응은 처음과 전혀 다르다. 내가 어항 벽을 살살 두드리기 시작하면 저마다 앞다투어 달려 나온다. 말은 못 하지만, 누가 통역을 한다면 "밥이다, 밥!" 하고 소리치며 나오는 게 틀림없다. '두드리는 소리 = 먹이'라는 관계는 반복된 경험 속에서 완전히 학습된 셈이다. 나는 이를 '파블로프의 물고기'라고 이름 붙였다.

실제로 이런 실험을 해 본 사람이 있다. 연구실에서 변인들을 완벽히 통제하고 한 실험은 아니지만, 물고기도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보여 준 실험이다. 어떤 학자는 물고기가 '보기보다' 상당히 지능이 뛰어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고기도 배울 수 있다. 물고기도 가르치면 된다. 하지만 인간 중에는 가르쳐도 안 되는 이들이 있다. 수학과 영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역사로부터, 반복되는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인류의 이성이 쌓아 온 지혜와 성찰로부터 배우지 않으려는 이들에게는 어떤 학습도 소용이 없다. 새 대가리, 닭 대가리보다 작은 물고기 대가리라도, 학습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된 인간들보다는 지혜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덧글

  • 2010/12/02 12:4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0/12/02 14:43 #

    지금은 다시 크리스티의 살인극이 벌어질 만한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조만간 대청소를 해줘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이든 고양이이든,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함께 있어 주는 느낌, 참 좋죠. 비록 순간일지라도, 잔영이 오래오래 갑니다. 무슨 종류의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뜻하시는 바대로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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