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일린의 '북한 우방설', 실수는 실수다 미국美 나라國 (USA)

이러한 점은 대담의 내용을 앞뒤로 훑어보면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라디오 쇼 진행자인 글렌 벡과 페일린이 나눈 대담 중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중간에 회색으로 토를 단 것은 물론 나.)

(글렌 벡과 공동 진행자): 여론 조사를 보면 당신이 (차기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될 듯하다. 당신은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페일린: 글쎄, 북한이라, 내가 보기에 문제는 우리가 그저 손 놓고 앉아서 "아니 세상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묻기만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이 하려고 하는 일을 저지할 만큼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주지 못한다는 데서 큰 문제가 나온다고 본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오바마 흠집내기)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 안보라는 더 큰 그림이다. 나는 우리의 국가 안보 정책과 관련하여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큰 그림' 운운은 디테일에 약할 때 써먹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 그러나 어쨌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우방인 북한과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 남한이지.

페일린: 그래. 또한 우리는 우리의 우방인 남한과도 신중한 협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지. 북한이 나쁜 행동을 하면 우리가 줄 보상이란 없으며 미국은 물러나지도 않겠다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 또 이 지역에서 중국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압박을 해야 한다.

글렌: 우리가 어떻게 중국을 압박하지? 뭐 내가 정신줄 놓은 쪼렙처럼 보일지 몰라도, 미사일 관련 전문가들과 이야기해 보면 얼마 전에 캘리포니아 해안에 나타났던 구름은 비행기가 아니라 미사일로 인한 것이라는데. 나는 그게 중국이 발사한 2단계 미사일이라고 믿고 있다. 이건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중국과 러시아는 오늘, 두 나라 사이의 결제에 달러를 쓰지 않기로 결정하지 않았나. 중국은 세상을 지배한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우리는 두 해 전만 해도 초강대국이었으나 이젠 아니다. (잃어버린 2년 타령)

페일린: 음, 니 말이 맞다. 그리고 중국은 달러화도 보유할 거다. 우리가 엄청 보내주니까. 이 모든 것의 상당수는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천연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번영하는 국가로 거듭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에너지 공급을 국내적으로 확대해 왔다. 외국의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 중국은 북한으로의 에너지 수출을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이러한 방향과 정책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아니지.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자신의 엄청난 에너지 자원을 여전히 꽁꽁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에너지 정책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야.

나는 지난 2008년 대선 때 세라 페일린의 부통령 후보 토론회를 보면서, 페일린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 적이 있다:

택스 - 택스 - 택스 - 에너지 - 에너지 - 에너지 - 알래스카 - 알래스카 - 알래스카 - 워킹 피플 - 워킹 피플 - 워킹 피플 - 택스 - 택스 - 택스 - 에너지 - 에너지 - 에너지.

이 여자에게 모든 문제는 알래스카의 에너지로 통하는 모양이다. 중국 문제도 그렇고 북한 문제도 그렇다. 에너지는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듯하다. 위의 대담에서도 '에너지'를 화두로 놓고, 북한을 포함한 국제 문제를 미국 국내 에너지 문제로 환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리 답안지를 써 놓고, 예상했던 것과 다른 문제가 나오더라도 억지로 이를 미리 준비한 답안지와 연결하는 양상이랄까.

그건 그렇고, '북한 우방설' 문제로 돌아가자. 대담을 보면 북한에 대해 어떠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틀림없어 보이는데, 남한이라고 해야 할 부분에서 실수로 북한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행자가 바로잡아 줄 때 이를 시정했으면 좋았을 것을, 얼떨결에 지나가면서 "남한'과도' 협력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남북한이 모두 미국의 우방이 된 꼴이 되었다.

단순한 말 실수를 놓고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를테면 강용석의 성희롱 발언이나 이재오의 하방 발언은 실수라고 하기 어렵다. 발언이 이들의 사고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형식)은 그 의미(내용)와 일관되어 있으며, 그래서 가루가 되도록 까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페일린은 단순히 '남한'이라고 말해야 할 부분을 '북한'이라고 말한 것이며, 이는 그저 삑사리 정도로 생각된다.

그렇더라도 이 분이 국제 문제에 대해 별다른 안목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대담에서도 그런 게 다시 확인되는데, 이는 단순한 실수인 '북한 우방설'보다는 대담의 전체적인 톤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에너지 환원론'도 그 중 하나다. 무엇보다, 대담의 수준이 마치 대학교에서 머리 텅 빈 대학생들이 리딩도 해 오지 않은 채, 저도 모르는 문제를 놓고 'you know, you know' 'I mean, I mean' 해가며 조잘거리고 있는 느낌이 난다. 위에서 링크한 대담 전문을 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페일린은 연예인에 가까운 수준으로 등극, 혹은 전락하고 있다. 11월 중순부터 방영되고 있는 자신의 리얼리티 쇼 '세라 페일린의 알래스카(Sarah Palin's Alaska)' 때문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은 둘로 쪼개진다. 싫어하는 사람은 침을 뱉고 싶을 정도로 혐오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열광한다. 페일린에 대해 논하는 한 게시판에서 어떤 사람은 "만일 페일린이 교장이 되어 우리 애가 다니는 학교에 부임해 온다면, 나는 당장 애를 전학시키겠다"라고 한다. 페일린의 사고방식과 그녀가 애들을 키우는 모양을 본다면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세라 페일린 매직쇼에 대해서는 곧 제대로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그건 그렇고, 한반도가 전쟁의 숯구덩이에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당장 북폭을 감행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천조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머저리 페일린이 당선되기를 간절히 염원해야 할 듯하다. 현실을 가늠할 지식도 없고 미래를 내다 볼 지혜도 없지만, 각오 하나는 대단한 것 같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페일린의 '북한 우방설' 실수에 대해 쓴 한 기사가 인상적이다. <한겨레>는 "페일린 "북한 지지해야" 실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담에서 페일린이 한 실수에 대해 서술한 뒤 다음과 같은 단락을 달았다.

"과거 증언에 비추면 페일린의 실언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지적 밑천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페일린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선 2008년 대선을 다룬 책 <게임 체인지>를 쓴 <뉴욕매거진> 기자 존 헤일레먼은 “페일린이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아는 게 없었다는 대선 캠프 참모의 증언을 전했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 쪽에서는 “페일린은 아프리카를 대륙이 아니라 국가 이름으로 알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읽다 머리를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증언에 비추면 페일린의 실언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지적 밑천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라는 엄청난 서술이 신문 기사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기자 개인의 견해다. 스트레이트 기사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문장일 뿐더러, 그 내용의 지나친 단정으로 보아 개인 칼럼에서도 조심스럽게 쓰여야 할 문장이다. 이런 말이 과감하게도 기사에 들어가 있다. 이 한 문장을 들어내더라도 뒷부분에서 이미 충분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지 않은가.

 

덧글

  • 명랑이 2010/12/08 17:49 # 답글

    그렇군요. 한국의 신문은 전면 사설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ㄷㄷ
  • deulpul 2010/12/08 18:10 #

    오오, 부정하기 어려운 기막힌 통찰이네요...
  • .... 2010/12/08 21:41 # 삭제 답글

    글렌백은 라디오가 아니라 TV쇼 호스트 아니었는지?
  • deulpul 2010/12/09 00:36 #

    TV도 합니다만 오랫동안 주력이 라디오였습죠. 데뷔도 라디오.
  • 이녁 2010/12/08 22:15 # 답글

    이미지가 중요해지는 만큼 정치인의 정책이나 정견이 아닌 말실수 하나하나가 더 주목받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0/12/09 00:45 #

    그런 모양입니다. 정치인들의 말 실수는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에 큰 기여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의 정운찬, 최근의 송영길이나 안상수를 성공적인 엔터테이너로 볼 수 있겠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항상 언론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 공인이 할 말, 못 할 말 챙기는 것도 중요한 자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 Bloodstone 2010/12/09 00:19 # 답글

    뭐 페일린은 저런 소리 했다고 이미지가 '더 무식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 deulpul 2010/12/09 00:51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경제나 주식은 바닥을 치면 상승세를 타는데, 정치인의 이미지는 일단 찍히면 바닥도 없습니다. 그런 이미지를 강화하는 증거들이 더욱 선별적으로 회자되게 마련이어서요. 그냥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아예 그쪽으로 포지셔닝을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페일린처럼 말이죠...
  • xmaskid 2010/12/09 02:12 # 답글

    공화당도 지금 딜레마인게 계속 잘한다 잘한다 그랬다가 정말 후보가 되면 선거에서 질것 같고(현재 팰린을 싫어하는 미국 사람이 35퍼센트가 넘기때문에) 그렇다고 후보 못되게 비난하자니 공화당내에 힘이 너무 세서 입지가 약해질것 같은거죠.
  • deulpul 2010/12/09 07:46 #

    게다가 본인이 나가겠다고 자꾸 큰소리치고 있고 말이죠. 다음 대선에서 오바마가 재선에 도전할테니, 어쩌면 오바마 vs. 페일린 대결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네요. 공화당이 그렇게 정신이 나갈 리가 있나 싶긴 하지만... 이런 대결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흑인과 여성이 대통령 자리를 놓고 싸우는 획기적인 평등 낙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믿으시면...
  • xmaskid 2010/12/09 12:24 #

    페일린 입장에서도 자기가 대통령 선거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때문에 책도 팔고 강연회도 하고 텔레비젼에도 나오는거라 아마 끝까지 사퇴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 mooni 2013/04/15 02:40 # 삭제 답글

    "과거 증언에 비추면 페일린의 실언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지적 밑천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었죠. ㅠㅠ
  • deulpul 2013/04/15 04:58 #

    이것은 사실 진술이 아니며, 저는 여전히 언론의 스트레이트 뉴스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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