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윌리엄스: 신데렐라는 아무나 하나 미국美 나라國 (USA)

좋은 목소리를 가진 덕분에, 길에서 구걸하는 노숙자에서 일약 미국의 스타로 떠오른 테드 윌리엄스. 술과 마약에 망가진 막장 인생을 살다가 우연히 언론에 노출되고 유튜브에 그의 '황금 목소리'가 소개되면서 인생 유전을 겪게 되었다. 또 하나의 신데렐라 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신데렐라는 현재를 불우하게 사는 많은 사람의 꿈이다. 단 한번 뛰어오름[一躍]으로써 당장의 굴레를 벗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현실이 피곤한 사람들이 피부 밑에 간직해 두는 은밀한 상상이지 않은가.

그러나 불행히도 신데렐라는 불우한 모든 사람의 꿈이 현실화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보편성을 지니지 못한다. 신데렐라의 화려함 뒤에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군가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배광처럼 넘실거리지만, 눈을 자신에게 돌리는 순간, 오히려 신데렐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뼈아픈 현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신데렐라가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마술을 부려 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옷과 보석, 마차, 유리 구두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숯검둥이(신데렐라는 재나 숯을 뜻하는 cinder에서 나온 말이다)는 계모의 미움을 받으며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허리가 휘도록 허드렛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가 그녀에게 유리 구두를 만들어 주었더라도, 자신의 발 크기와 같은 여자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기막힌 행운이 없었더라면 극적인 신분 상승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행운까지 따라 주었더라도, 신데렐라가 오크처럼 생겼다면 멍청한 왕자가 덥썩 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여전히 착하고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데렐라는 원래부터 귀족 출신이며, 누군가(즉 대모(godmother) 요정)가 마술을 부려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신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데렐라와 비슷하게 살고 있던 착하고 마음씨 고운 수많은 당대의 젊은 여성이 모두 신데렐라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황금 목소리' 없는 노숙자는?

테드 윌리엄스는 두 가지 의미에서 신데렐라와 비유할 만하다. 하나는 극적인 스타덤이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개인의 행운을 넘어서는 사회적 의미를 전혀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든 노숙자가 윌리엄스처럼 황금의 목소리를 가진 것은 아니며,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꽃거지' 같은 얼짱, 몸짱이거나, 황금의 손, 황금의 발, 황금의 시력, 황금의 기억력 따위를 가진 경우는 드물다. 또 하나의 신데렐라인 폴 포츠 역시 목소리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상당한 성악 교육을 받았던 사람으로 드러나지 않았던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노숙자들도 여전히 일자리가 필요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윌리엄스 사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고민하는 데에 아무런 긍정적 암시도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윌리엄스는 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영웅 만들기'의 소산일 뿐인지도 모른다. 사회는 언제나 신데렐라를 필요로 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우리는 항상 화젯거리가 필요하다. 친구와 차를 마시면서, 혹은 저녁 식탁에서, 혹은 오랜만에 만난 별로 친하지 않은 in-law들과 즐겁게 나눌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한다. 적당한 시기에 결혼하고 이혼하고 마약하고 외도해 주는 연예인들은 얼마나 고마운가.

둘째, 좀더 중요한 의미로서, 사회는 구성원에게 꿈을 심어 주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그렇다. 헛된 꿈이라도 심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현실에 절망하기 시작하면 사회가 불안해진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혁명은 언제나 절망에서 시작되었으며, 절망적 현실을 자각한 구성원들이 꿈과 환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적극적으로 희망을 찾기 시작하는 일은 사회 기득권층이 별로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사회 모순을 감추고 꿈과 환상을 조장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아편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신데렐라는 개인의 불우함에 소구하는 전통의 히트 상품이라 할 수도 있다. 신데렐라가 불행하고 불우하지 않았다면 신데렐라 스토리는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이 신데렐라처럼 팍팍한 현실을 살지 않는다면 각양각색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기적으로 등장하여 사랑받기는 어렵다. 누구나 다 귀족처럼 살고 있다면, 일거에 미모 하나로 귀족이 된 사람을 누가 부러워 하겠는가. 거꾸로 말해, 신데렐라가 등장하고 회자되는 것은, 우리 삶이 얼마나 피곤한가를 잘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사회는 신데렐라를 필요로 하지만, 실제로 신데렐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언론이다. 언론은 항상 영웅을 만들고 싶어 한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에서도, 건물이 폭싹 무너져 내린 참상 속에서도, 화재로 인한 잿더미 속에서도 언론은 영웅을 찾는다. 숨겨진 영웅, 평범한 영웅, 이른바 unsung hero를 찾아내야 하고,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언론에 의해 '발굴'되거나 보도된 영웅 중 많은 경우가 거짓이거나 터무니 없는 과장이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네가 겪는 불행은 네 탓"

극적인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렇다. 현실이 불행할수록, 언론은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영웅이나 행운을 차지한 신데렐라를 보여주려고 애쓴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가 꿈과 희망이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곳이며,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심어 준다. 이렇게 보자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개개인의 불우함을 양분으로 하여 언론과 사회가 키우는 헛된 콩나무와 같은 것이다.

신데렐라의 행운을 누리는 것은 신데렐라 자신에게는 잘 된 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윌리엄스도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인생보다는 마이크 앞에서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인생이 훨씬 값지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스 스토리는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지혜를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데렐라 스토리의 영원한 부작용, 즉 네가 겪는 불행은 다름 아닌 네 탓이라는 사악한 착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겪는 개인적 불행의 상당 부분은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빚더미에 올라 앉아 시달리다 못해 목숨을 끊는 사람의 불행은, 정부의 경제 정책이 달랐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불행도, 교통 시스템과 법규가 미리 갖추어져 있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러시아의 교차로 교통사고들을 찍은 유튜브 영상을 보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러한 구조적 불행이 개인의 탓, 개인이 무능한 탓, 개인이 불운한 탓인 것처럼 보이는 환상을 조장한다.


화려함의 대명사 같은 로스앤젤레스 Sunset Blvd. 근처의 노숙자들


미국에서는 보험 없이 큰 병에 걸리면 노숙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다. 이런 불행은 의료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보완됨으로써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윌리엄스의 사례를 계기로 하여 이처럼 노숙자 문제의 구조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모두 화려한 빛만을 쫓는다. 그 뒤에는 황금 목소리를 갖지 못한 노숙자 350만 명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중 135만 명은 여전히 어린이들이다.


※ 만평 이미지: Jeff Stahler

 

덧글

  • 소드피시 2011/01/18 11:53 # 답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대로 신데렐라 이야기와 현실의 괴리는 큽니다.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상 로또와 다를 바 없는 가십에 불과하기도 하죠. 그러나 신데렐라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가 가려진다고 보는 관점은 조금 비약이란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누군가의 불행을 무조건 그의 탓으로만 돌린다는 말씀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군요. 폴 포츠와 자기 자신을 겹쳐보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구별해서 볼 겁니다. 왜냐하면 '나'에겐 그와 같은 신의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 사실을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한다면 들풀님 말씀이 맞겠지만, 저는 그 부분에서 동의하기 어렵군요.
    최근 유행했던 모 가수선발 쇼프로에서 우승한 허각이란 친구의 성공스토리가 폴포츠의 한국버전이라 할만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 못한 나머지 사람(시청자를 포함해서)이 한 순간에 루저가 되어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과연 그렇게 높은 시청률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바꿔 말하면 사람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보면서 어쩌면 현재의 문제를 안고서도 성공한 신데렐라 극을 그저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극 쯤으로 치부하고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동경심이나 부러움, 대리만족이라는 기분으로 감정의 배설을 이끌어낼 뿐이죠. 그러나 그런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현실 인지가 동일하게 흐려진다는 흑백론적 사고는 조금 위험하다고 봅니다.

    덧) 어쩌면 저는 계층론과 계급론을 동의하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사회적 집단을 논할 때 단일 인격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게 타당한가라는 의문도 들고.

    덧2) 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deulpul 2011/01/18 13:16 #

    진지한 말씀 고맙습니다. 제가 잠깐 언급한 폴 포츠와 허각의 경우에 초점을 맞추셨는데, 이들은 윌리엄스의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다르며, 그 다른 점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폴 포츠처럼 신데렐라가 되지 못하는 우리들은 평범하게 사는 것을 (말씀대로)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지만, 윌리엄스처럼 신데렐라가 되지 못하고 '평범하게' 벌벌 떨면서 거리에서 기식하는 노숙자들은 큰 문제입니다. 제가 윌리엄스 스토리를 통해 드리려고 한 말씀은 후자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개개인의 불행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점과, 신데렐라 스토리들은 흔히 이러한 점을 가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하려 했습니다. 윌리엄스와 같은 처지의 수많은 노숙자들은 갑자기 스타가 된 그를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도 있고,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깨닫고 절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느끼든, 중요한 점은 윌리엄스의 노숙자 탈출은 철저히 개인적 재능으로 인해서이고, 더구나 그도 말하듯 '신이 부여한', 다시 말해 자신의 노력과는 큰 상관 없는 재능으로 인해서입니다. 또 당연히 누구나 그런 재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개인적인 재능을 통해 문제에서 벗어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도 신데렐라 스토리는 흔히 누구나 개인이 노력하면 문제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교훈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재능이 없어서든 노력을 안 해서든) 결국 너 잘못이라는 인식을 암암리에 강화해 준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강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승리한 자가 강한 자다'라는 식의 우악스런 멘털리티죠. 이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패배한 자는 모두 약한 자다(=너 잘못이다)라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모두 연예인 지망생도 아닌데, 말씀대로 폴 포츠나 허각을 보면서 그렇게 연예인이 되지 못하는 우리 신세를 비관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부분은 노숙 상황이라는 거대한 사회 문제와 얽혀 있는 윌리엄스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라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윌리엄스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큰 사회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말씀도 그런 점에서 드렸습니다. 폴 포츠를 잠깐 언급한 것은 누구나 비슷한 재능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던 부분이라는 점도 고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지러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본문이나 이 댓글-답글과는 다른 말씀입니다만, 이 기회에 잊지 않도록 적어 두려고 합니다. 저는 허각이나 슈스케 방영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만, 한국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가장 사려 깊은 생각을 보여준 사람은 남재일(http://www.hani.co.kr/arti/SERIES/56/449740.html)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들 읽으셨겠지만요.)
  • 소드피시 2011/01/18 21:03 #

    정성스런 답변 감사드립니다. 논점의 핵심은 역시 신데렐라 스토리의 교훈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와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에 해악을 가져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군요. 저는 들풀님의 의견에 두 가지 점에서 동의합니다. 하나는 개개인의 불행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재능보다 노력에 초점을 맞춘 신데렐라 이야기는 위험하다는 점이죠.
    그러나 (논점을 조금 벗어나서 죄송합니다.)그런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부 몰가치하다거나 부당한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보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가 있는 배경을 통해 잊고 있었던 현실(이 경우엔 노숙자 문제)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봅니다. 물론 단순 이슈에 불과하기에 받아들이는 시청자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적어도 일반 다큐보단 그들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덜 가지고 접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다시 한 번 답변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deulpul 2011/01/21 05:59 #

    제가 말씀드린 부분을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신데렐라 스토리가 악의적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회자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점도 분명히 있고요.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다만 거기서 한 발 더 나간다면 어떤 생각을 해 볼 수 있을까 정도를 말씀드린 것으로 보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 독자 2011/01/18 13:15 # 삭제 답글

    세계인들이 찬양하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어째서 영웅주의가 부각되는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죠.
  • deulpul 2011/01/18 13:52 #

    그냥 영웅으로는 모자라서 초영웅(superhero)까지 활개치고 다니는 데가 거기 아니겠습니까... 제가 사는 곳에서 발행되는 주간 신문은 이번 주 표지 기사로 편집진과 칼럼니스트들이 뽑은 'local hero' 리스트를 내 놨네요. 신데렐라와 영웅주의는 의미가 좀 다르긴 합니다만.
  • 이런 2011/01/20 04:25 # 삭제

    미국의 자유 민주주의는 한국의 기득권들이나 찬양하지 제대로 정신있는 세계인들은 찬양하지 않습니다.
  • deulpul 2011/01/21 06:03 #

    @이런 아니 그게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부작용이라든가 혹은 흔히 내치와는 다른 성격을 띠는 대외 정책에 대한 비판들은 흔하지만 말이죠...
  • 난난 2011/01/18 13:39 # 답글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재능과 노력만으로 "신데렐라"가 된 "우리 주변 이웃 이야기"'가 조명되는 것이 불편하더라구요. 물론 노력으로 행복을 거머쥔 분들은 아름답고 박수쳐 마땅한 분들일 것입니다마는, 그런 미담들이 사회 전체에 "될 놈은 된다" 라는 담론을 퍼뜨리는 것이 걱정스러워요. '될 놈은 된다'라는 건 자신을 다잡기 위한 개인적인 신념일 때는 긍정적일지도 모르지만 사회적인 담론이 되기 시작해서 그 대상이 타인을 향할 때에는 본문에 쓰신 것처럼 "네 불행은 네 탓"이라는 시각과 연결되기 쉽다고 보거든요. 너처럼 가난하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아픈 동생 돌보는 누구누구는 저렇게 잘 됐는데 너라고 왜 못해? 네가 하려고만 해봐, 결국 네가 못나서 그런 거잖아- 이런 식으로요.
    허각이고 테드 윌리엄스고 몇천만명 중의 하나 태어날까 말까 하는 사람들이지요. 될 놈들도 뭐 그렇게 많겠습니까. 결국 천 명 만 명 중 한 명이 '될 놈'들일 텐데, 그 '될 놈' 못 되는 보통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요.
    써 놓고 보니까 본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의 되풀이 같아서 조금 민망합니다마는, 좋은 글 읽은 김에 평소 생각하던 바 몇 자 적고 갑니다. 올려주시는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
  • deulpul 2011/01/18 14:10 #

    아닙니다. 제가 어지럽게, 오해하기 좋게 쓴 것을 아주 간명하게 표현해 주셨네요. 하신 말씀에 100% 동의합니다. 한 명이 열 발 나가는 것 못지않게 여럿이 한 발 나가는 것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가짜거북 2011/01/18 16:12 # 답글

    상대방의 노력과 근성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한 폭력도 없죠. 그보다 함께 공감하고 함께 헤쳐나가기를 선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 deulpul 2011/01/21 06:04 #

    폭력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보는 터라, 공감이 가지 않을 수가 없네요.
  • 夢影 2011/01/19 00:15 # 답글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현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인 마약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방송매체가 그런 것을 부풀리는 것을 더욱 기뻐라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이 많아질 수록 개인이 성공을 이루는 것이 곧 윤리적인 일이고 성공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이 비윤리적인 일이 되어 버리죠. 그러다보면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점차 없어지게 되고요. 한국사회가 그런 면이 너무 심각한 것 같아서 가끔 걱정이에요. 자신만은 그 성공한 대열에 낄 테니까 성공한 사람이 더욱 잘 살고 실패한 사람은 당연히 도태되는 사회인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신데릴라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사실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이라고 환상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가득한지 몰라요!
  • deulpul 2011/01/21 06:14 #

    공감합니다. 경쟁이라는 것과 성공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호모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경쟁이란 본질적으로 일부만의 승리를 전제하는 구조이므로, 보편적 성공이라는 결과를 도저히 가져 올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두 개념을 아무런 모순 없이 내재화하고 있다는 데 우리의 불행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어디 경쟁의 종목이 다양하기나 합니까.

    이 글에 보리차님이 링크 핑백해 두신 알랭 드 보통의 강연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아주 감명 깊었습니다.
  • mooni 2011/01/19 10:09 # 삭제 답글

    흔히 사람들은 노숙시스템에는 전혀 관심이 없죠. 돈이 있던지 없던지, 구조가 어떻던지...

    아마 이 이야기의 핵심은 '재능과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심받지 못해 자신의 꿈을 접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다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다르기 마련이죠.
  • deulpul 2011/01/21 06:20 #

    네, 맞습니다. 종종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씀드리곤 하는데,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개인의 능력을 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보니, 여건과 환경이 받쳐 준다는, 좀더 사회적 의미에서의 '할 수 있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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