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지 않고 즐거운 심야의 공포 쇼 섞일雜 끓일湯 (Others)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늦었다. 밤 12시에 시작하니까 늦어도 11시50분까지는 들어갔어야 했다. 인적 차적 다 끊어진 도로를 죽어라 달려 갔더니 12시10분이다. 주차장에 차를 넣고 극장 입구에 도착하니 15분. 창구에서 예매해 두었던 표를 받아서 들어가는데, 쇼는 벌써 시작되었는지 극장 안이 온통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심야 쇼다. 무슨 쇼냐 하면...




좌석 안내를 돕는 직원이 내 표를 받아들고 자리를 확인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물론 공연이 시작된 뒤에 들어왔으니, 자리로 가기 적당한 시간이 될 때까지, 말하자면 노래가 한 곡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려 깊고도 통상적인 관행은 오늘 밤은 전혀 무의미한 것 같았다. 극장 안은 무대뿐 아니라 객석까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관객들은 대부분 일어서서 괴성을 지르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객석 사이의 통로와 뒷쪽 공간으로 웬 일행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니기도 했다.

헐벗은 차림새로 보아 공연자들의 일부인 게 틀림없었는데(나중에 보니 이들은 트란실베이니아의 즐겁고도 선량한 주민들이었다), 온 관객들이 일어나서 춤을 추며 열광하다 보니 이들은 사실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좋게 보면 신나는 락 공연장에 온 듯했고, 좀더 정확히 말하면 도떼기 시장이었다.

벽 하나를 넘어선 극장 밖은 어둠과 추위와 눈에 덮여 사람 흔적 하나 없는데, 이 안은 이렇게 미치도록 뜨거운 세상이었다.

이런 판이 벌어지는 와중이라, 노래가 끝나고 자리를 찾아가기 좋은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의미하고도 어이없게 느껴졌다. 다른 관객에게 폐를 끼칠 염려도 없고, 손전등을 켜서 자리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우리(안내 직원과 나) 바로 앞에서 사람들이 춤추며 발광하며(아주 적절한 표현임) 마구 뛰어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나와 안내 직원이 함께 춤을 추고 괴성을 지르며 자리를 찾아 가더라도 아무도 주목하지 못할 분위기. 게다가 나는 복도쪽 맨 끝자리라서 다른 사람의 무릎을 짚으며 건너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래도 직원은 몇 분 늦게 들어온 나를 징벌하기로 작정한 것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고지식한 것인지, 이런 장면을 묵묵하게 지켜보다가, 곡이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을 때에야 나를 내 자리로 인도했다. 원칙적으로는 그게 맞고, 원칙대로 하는 데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무대 위의 공연자들과 무대 밑의 연주자들이 부르고 연주하여 관객을 발광케 한 노래는 개막곡 'Science Fiction, Double Feature'였다. 다행히 아주 늦게 온 것은 아닌 셈이었다.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의 입술이는 이 노래를 그 아릿따운 모습으로 아주 정감 어리고 서정적으로 불렀는데, 지금 이 판에서는 락 버전이라고 할 만큼 파워풀하고 시끄럽게 편곡되어 나왔다. (나중에 공연 리뷰 기사를 찾아보니, 밴드는 이 곡에 앞서 Joan Jett의 락 커버 두어 곡을 땡겨서 분위를 끌어 올렸다고 한다.)

심야 쌩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를 10번 이상 보았다. 모두 혼자 골방에 처박혀 본 것이라서, 이 영화가 상영되거나 쇼로 공연될 때 벌어지는 집단적 발광 현상은 오늘 처음 체험하게 되었다.

무대 위의 쇼는 영화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 갔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1975년)가 무대 쇼(1973년)의 줄거리를 따라 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쇼의 진행은 나에게도 익숙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아니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객석에 앉은 놈들이 여기저기서 아예 대사를 큰 소리로 외우며 시끄럽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이 진정한 매니아들에게 "졌다!"를 수십 번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공연을 꽤 보아 왔지만, 이렇게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관객들은 처음 봤다. 이 자들은 브래드란 말이 언급될 때마다 "Asshole!" 하고 소리쳤고, 재닛이 언급될 때마다 "Slut!" 하고 합창했다. Slut은 "슬러~엇!"하고, 마치 중국어의 3성 단어처럼 곡조까지 실었다. 아시다시피 두 사람은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온다. 공연 내내 객석에서는 '바보 자식!'과 '못된 뇬!'의 합창이 울려퍼진 셈이다. 너무도 기막히게 일치단결하여 합창하는 바람에, 미리 연습을 하고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극 중간에도 여기저기서 수시로 헛소리들을 해서, 그 주변을 중심으로 웃음이 퍼져 가는 기현상이 공연 내내 연출되었다.

이러한 관객들의 추임새는 <록키 호러 쇼>의 특징적인 관람 방식인 '관객 참여(audience participation)' 중 하나로, 영화나 실제 공연이나 할 것 없이 통용되는 B급스러운 여흥거리다. 추임새뿐만 아니었다. Time Warp 춤을 출 때는 모조리 일어서서 함께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고, 브래드와 재닛이 폭우를 맞으며 프랭크의 성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일제히 신문지를 꺼내어 썼다. 작은 손전등이나 라이터 불이 갑자기 밝혀지기도 했으며, 또 공연 내내 뭔가를 던졌다.

내가 이 공연을 보는 동안 객석 위를 날아다녔던 것들은 카드, 빵조각, 신문지, 두루말이 화장지, 작은 색종이 조각,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등이었다. 이 물품들은 극장에 입장할 때 관객에게 나누어 준 것들이다. 열혈족 가운데는 자기가 가져온 사람도 있다. 극장에 따라서는 던질거리들이 들어 있는 작은 봉지를 팔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양상은 상당히 소란스러우면서도 아주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분위기가 너무나 파티스러웠으므로, 나는 혼자이면서도 전혀 쑥스럽지 않게 Time Warp 춤을 추고(영화를 많이 보면 누구나 자연스레 익숙해진다), 손뼉을 치며 즐겁게 놀았다.

두 시간은 후딱 갔다. 내가 본 공연은 Rocky Horror Company가 제작하는 것처럼 국제적인 수준의 무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연출이 좋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비롯해 150편 이상을 무대에 올려 본 사람이 감독을 맡았는데, 경력이 다양한 배우들을 고르게 다듬은 솜씨가 엿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쌩쇼에 동반된 쌩음악도 괜찮았다. 머리가 벗겨진 음악 감독이 두 시간 내내 열심히 팔을 흔들며 밴드를 지휘했다. 연주의 내용이 1급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어쩌면 <록키 호러 쇼>는 공연의 세밀한 질이 중요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이미 내용을 다 알고 대사까지 줄줄 외우는 사람들이 무대로부터 감동이나 영감을 받으러 객석을 찾아온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보다는 '놀러 온다'고 해야 정확하지 않을까 싶었다. 무대에서 판을 만들어 주고, 객석에서 무대와 호흡하며 같이 논다. 가만히 앉아서 배우들의 동작을 눈으로만 따라가지 않고, 두 시간 동안 자신도 극의 일부가 되어서 함께 논다.

이 공연을 감독한 연출자는 인터뷰에서, "이미 영화를 통해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찾아가서 무대 공연을 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두 가지로 답했다. 첫째는 예술을 지원해 달라는 것(support the arts)이고, 둘째는 실제 공연 공간을 호흡해 보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대답을 다른 말로 하자면 와서 잘 놀라는 것일 게다.

오밤중에 이렇게 다들 잘 논다. 덩달아 오밤중에 이렇게 잘 놀았다. 천재 리처드 오브라이언 덕분에.

집에 돌아와 보니, 공연장을 날아다니던 카드 중 한 장이 후드에 담겨 따라왔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하트 퀸이었다.





※ 두 번째 이미지: 공연이 열린 극장 사이트에서. 저 장면은 인근 도시에서 리허설 겸 짧은 공연을 할 때라고 한다.

 

덧글

  • 2011/03/12 19: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3/13 13:43 #

    가까운 데서 큰 일이 벌어져서 다들 걱정 많이 하게 되네요. 그것 아니라도 걱정하며 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말입니다. 전혀 보고 싶지 않은 쇼인데, 제작들은 왜 그렇게 또 열심히 해 대는지...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