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의 국과수 문서 감정 때時 일事 (Issues)

세상을 살다 보면 사기를 당하는 일도 겪게 된다. 자신은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친지 등 주변 사람 중에 사기 당한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다. 사기는 어떤 점에서 살인보다 더 나쁜 범죄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한 사람뿐 아니라 온 가족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벗어나기 어려운 불행을 오래도록 안겨 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어떤 사람(甲이라고 하자)이 오랫동안 소유해 온 땅이 있다. 그냥 묵혀 둔 땅이었는데, 갑자기 팔 일이 생겨서 등기들 떼었더니 어이없게도 명의가 자기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이미 몇 년 전에 이 땅을 판 것으로 되어 있고, 그 결과 땅은 새로운 소유자 명의로 등기가 되어 있었다. 사기꾼들이 甲의 인감 도장을 위조하여 가짜 매도증서를 만들어서, 실제 거래가 이루어진 것처럼 하여 땅을 가로채 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乙이라고 하자)에게 친척이 빌린 돈을 갚으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乙은 친척이 돈을 빌리는데 지불 보증을 선 적이 없음은 물론, 그 친척이 돈을 빌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지불 보증 각서가 가짜였던 것이다. 가짜 각서에는 乙의 서명이 선명하게 씌어 있었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丙이라고 하자)에게 빨리 빚을 갚으라고 독촉이 왔다. 빌린 적도 없는 빚이다. 따졌더니 丙이 직접 쓰고 서명까지 한 차용증을 내민다. 그런데 丙은 이런 문서를 쓴 적이 없다.

어이없고 황당한 일인데,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사기 사건이다. 이런 사기를 당해 분통이 터져 생업을 포기하고 10년 넘게 사건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고, 이런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도 있다.

이런 종류의 사기 사건은 결국 문서가 진실을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문서의 진실이란 곧 문서에 포함된 필적, 서명, 인감 등이 본인의 것이냐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전문가들이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1. 필적이나 문서 감정을 하는 소수의 전문가(감정사, 감정인)들이 다툼을 판가름할 전권을 쥐고 있다. 이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내리느냐에 따라서 진실이 손바닥 뒤집듯이 휙휙 바뀐다. 문서 말고는 아무런 증거가 없기 때문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대에 이르는 소송이 이런 도장이나 필적 감정 하나로 결정되거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감정 전문가들이 객관적으로 잘 판단해 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2. 같은 문서를 놓고 전문가 사이에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한 감정사는 진짜라고 하고 다른 감정사는 가짜라고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모두 서울시청 주변에 사무실을 내고 법률 감정을 하는 전문가들인데도 그렇다. 이들은 전문가끼리 의견이 엇갈리는 데 대해, 위조가 갈수록 정교해져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기를 당한 사람 처지에서는 보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전 던지기에 의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꼴이 된다. 동전 던지기에서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집안이 망한다. 사기꾼쪽에서 보면 이기면 횡재고 지면 본전이다(처벌은 받겠지만).

3. 문서 감정에 금품이 개입하는 사례도 있다. 감정사들이 의뢰인으로부터 금품을 받아 적발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은 돈을 받은 사실만 문제가 되었을 뿐, 금품 수수 사실이 감정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조사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만의 영역이니까.

4. 이상은 주로 사설 문서감정사들에 관한 이야기다. 재판이 붙으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문서를 감정하는 경우도 자주 벌어진다. 물론 국가 기관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민간 감정사들이 내린 감정 결과보다 더욱 결정적이다. 그런데 국과수에서 감정을 하는 사람도 돈을 받아 챙긴다는 사실이 드러난 적이 있다. 1992년 2월의 일간신문에는 이런 사실이 크게 보도되었다. 그 중 <한겨레> 2월11일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필적과 인장, 지문 등 문서감정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와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직원이 사설감정인을 통해 소송당사자나 문서위조 사기조직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고 거짓 감정을 해왔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주장은 9일 일부 사설감정인들이 비리사실을 폭로함에 따라 제기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10일 이 사건을 서울지검 특수3부에 배당해 진상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 ㅈ감정원 전 원장인 신아무개씨는 9일 자신은 소송관계자들의 부탁에 따라 소개료를 받고3∼4차례 문서 감정업무를 담당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에게 소개시켜 유리한 감정을받게 한 사실이 있다고 폭로했다. 신씨는 이 경우 한 건에 보통 5백만원을 소송의뢰인으로부터 받아 국과수 직원에게 ‘사례금’ 명목으로 건네주었으며, 이 금액의 20% 정도를 소개비로 받았다고 밝혔다.

신씨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소개해 준 사건의 감정결과는 모두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5. 뿐만 아니다. 90년대 초 민주화 운동의 흐름을 확 바꾸어 버린 '유서 대필 사건'이라는 게 있다. 1991년, 당시 재야 단체인 전민련의 관계자 김기설이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살한 뒤, 전민련에서 같이 근무하던 강기훈이 유서를 대신 써 주며 자살을 부추겼다고 기소해 처벌한 사건이다. 검찰이 주도하고 언론이 열심히 나팔을 불어 댄 이 사건은, 도덕성이 핵심인 운동권에게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자살조차 부추기는 패륜 집단이라는 틀을 씌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서도 유서의 필적에 대한 감정이 소송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과수는 검찰 요구에 따라 유서의 필적을 감정한 뒤 강기훈의 필적이 맞다는 결과를 내주었다. 강기훈은 자살 방조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죄가 인정되어 3년을 복역했다.

그러나 국과수의 감정은 거짓이었다. 이것은 국과수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다. 16년이나 지나서였지만 말이다. 2007년에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 관계 단체로부터 진실 규명 신청을 받은 뒤, 7개 사설 감정기관에 의뢰해 유서가 자살한 당사자의 것이 맞다는 결과를 받았다. 심지어 국과수로부터도 같은 결과를 통보 받았다. 스스로 한 감정 결과를 16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물론 그런 가짜 감정 결과가 가져온 개인적, 사회적 영향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뒤집을 수 없을 것이었다.

1991년 당시 강기훈의 필적 감정서에 서명한 국과수 감정인은 네 명이다. 2007년에는 그 중 세 명이 감정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했다. 나머지 한 명은 돈을 받고 감정을 해 주다 적발되어 국과수를 떠났다. 위의 박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6. 이러한 일들은 문서 감정이라는 것이 1) 소수의 감정사들이 절대 권한을 행사하며 2) 이해 당사자의 금권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3) 권력에도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4) 감정 결과가 진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가 아니라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썼다. 1)의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2), 3), 4)는 모두 까마득한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이고, 지금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믿고 싶다.

 

덧글

  • 긁적 2011/03/17 01:57 # 답글

    이런 씨X.
    저는 '법원이나 검찰(혹은 국과수)의 판단이 아무리 엿 같아도 일단 신뢰하고 따르자.'라는 생각을 저의 원칙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고 장자연씨의 경우에도 '그럼 장자연씨가 왜 자살해?'라는 의문 때문에 발표가 매우, 아주 심히 불만족스럽더라도 받아들일려고 했는데, 실제로 저런 사례가 있었군요.

    저는 위의 원칙이 옳다고 생각하며 저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 상당히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주 엿 같군요 -_-; 욕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엉....
  • deulpul 2011/03/17 07:54 #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란, 그 사람이 바르지 않다면 결국 망하는 것이죠. 바르지 않은 인간이란 어디나 있고, 더구나 조직적으로 바르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세상 모든 일을 호랑이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딴 건 몰라도, 중립성에서 문제가 그치지 않는 대표적인 권력기구 떡찰을 신뢰하고 따르신다는 것은 좀...?
  • LordKim 2011/04/07 21:50 #

    국과수의 필적감정에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이유가 유서대필 사건인데....웃기는건 2007년에 그 발표가 뒤집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유서를 대필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죠.
    2007년에 밝혀진 내용자체가 좌빨들이 압력을 행사해서 바뀌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 deulpul 2011/04/09 07:33 #

    @LordKim: 아마, 유서가 대필되었다는 사건과 관련한 기사의 양과 16년 뒤에 결과가 뒤집혀졌다는 소식을 보도한 기사의 양을 비교하면 1,000 : 1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0,000 : 1 인지도 모르겠네요. 거짓말이든 사기든 일단 지나가면 게임 끝이라는 게 사회의 논리가 되어가는 꼴인데, 공약(空約) 남발하여 당선된 뒤 아닌게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시간이 지났다고 게임 끝이 아니라 사기를 친 자는 100년이 지나도 편하게 잠을 못자는 사회 기풍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불타는 밀밭 2011/03/17 16:07 # 삭제 답글

    16년이나 잘 해먹고 이제와 떠나면 뭐한답니까?
  • deulpul 2011/03/17 16:52 #

    아, 유서 대필 사건의 허위 감정 당사자인 김 아무개 당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뒤 떠난 게 아니라, 위에 언급한 것처럼 돈을 받고 감정을 해준 혐의로 1992년 2월에 사건이 터진 뒤 구속되었습니다(뇌물 수수 혐의). 검찰은 김씨를 조사한 뒤 "돈은 받았으나 허위 감정을 하지는 않았다"라는, 마치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식의 기가 찬 발표를 합니다. 김씨는 그해 9월에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재판부는 김씨를 풀어주면서 "뇌물을 받고 감정한 김씨의 행위는 처벌을 면키 어렵지만 20년간 국가공무원으로 근무했고, 이미 면직되는 등 사실상 처벌을 받았다" "앞으로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주기 위해 집행유예한다"라는, 언제 들어도 기가 찬 설명을 달았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16년 뒤 감정 결과가 번복되고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자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을 절대로 수긍할 수 없다" "그 어떤 외압도 없었고 의심받을 일도 전혀 없었다"라고 했다지요. 코웃음이 나오는 이야기거니와, 설령 그 말을 믿는다 해도 자신이 문서 감정을 책임지는 국가 기관의 담당자로 일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하는 꼴이죠. 나쁜 놈, 아니면 무능한 놈. 참 막상막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기사도 있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71203192346&Section=03

    "김씨는 1980년에도 허위감정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동료 감정사의 감정으로 풀려난 바 있으며, 유서대필 조작사건 이후인 1998년에도 토지사기단과 결탁하여 감정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김OO 씨는 소송 중인 양쪽 당사자로부터 돈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까 뇌물 받은 사실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에는 아마 국과수를 떠났을 듯하고, 그 뒤로도 감정사로 활동하면서 여전히 돈을 받아 또 구속된 적이 있다는 것이죠. 아마 지금도 감정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위 감정으로 남의 인생을 망쳐놓고 본인은 뇌물 받으며 열심히 살았으니 "16년이나 잘 해먹고"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긁적 2011/03/17 23:16 #

    아... 혈압이(....)
  • deulpul 2011/03/18 12:14 #

    @긁적 - 그래서 "뉴스는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경고문도 등장요...
  • ghistory 2011/03/17 23:18 # 답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경찰의 통제를 받는 국가기구이므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판정들 가운데 정치성이 농후한 사례들은 경찰 상층부의 의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지 궁금합니다.
  • deulpul 2011/03/18 12:01 #

    그래서 독립화 주장이 나온 지도 한참 되었는데, 독립시킨다고 독립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점진적으로나마 개선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ghistory 2011/04/06 00:16 # 답글

    2.

    2010년에 조직의 등급이 상승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http://www.nisi.go.kr:8080/history.action 참조.

    3.

    앞서의 표현 수정: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확하게는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구입니다. 다만 행정안전부는 경찰도 통제하고 있으므로, 앞에서 개진한 본인의 견해는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mopas.go.kr/gpms/view/korea/korea_index_vm.jsp?cat=int&menu=int_02_01 참조.
  • deulpul 2011/04/06 05:02 #

    이름이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바뀌었군요. 읽으시는 분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본문의 명칭을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기관명 확인을 위해 가본 국과수 홈페이지에는 오늘도 '알림판'이란 이름 아래 4대강 사업, G20 따위를 홍보하고 있네요. 과학 수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독립화가 되어야 외부 입김도 덜 받고 이런 꼴도 안 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니케 2011/04/06 00:40 # 답글

    헐~~~! 가장 기본적인 공신력이 의심되는 기관일줄야. 국민으로서 정말 답답하고 깝깝하네요.
  • deulpul 2011/04/06 05:06 #

    일부 사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지만, 한 치의 오차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이른바 '과학 수사'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 또 다른 나 2011/04/06 10:15 #

    저 치들이 이야기하는 과학 수사는 科學 修辭 입니다 -_-;;;
  • deulpul 2011/04/09 07:25 #

    @또 다른 나: 적절하십니다. 과학이 특정한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용된다면 이미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포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겠죠.
  • 마무리불패신화 2011/04/06 23:44 # 답글

    국과수도 저렇다니...
  • deulpul 2011/04/09 07:26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 마하살9 2011/04/07 18:11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_()_
  • deulpul 2011/04/09 07:26 #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천만의 말씀입니다!
  • 에른스트 2011/07/16 18:41 # 답글

    姜基勳씨 공소사실 요지(1991년 7월 12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75870

    <姜基勳씨 수사> 검찰 발표문(1991년 7월 12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79872

    姜씨사건수사 姜信旭부장검사와의 일문일답(1991년 7월 12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72187

    日필적감정인, 韓國 법정서 증언 용의(1991년 7월 22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475540
    분신한 金基卨씨의 유서를 감정했던 일본인 감정인 오니시 요시오(大西芳雄)씨는 22일하오 도쿄都내 日本기독교교회협의회(JNCC)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金씨의 유서는 姜基勳씨의 필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밝히고 『韓國법정에서 요청이 있으면 증언하겠다』고 말했다.

    "유서필체는 姜基勳씨 것과 달라"(1991년 11월 28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554788
    검찰은 이에대해 글자 하나하나에 대한 획수,필법등에 대해 감정이 잘못됐다며 오니시씨를 집요하게 추궁,오니시씨로부터 "한글을 몰라 감정당시 재일한국인의 도움을 받았으며 특정 자음이나 모음의 수를 잘못 계산했음을 인정한다"는 진술을 받아내기도 했다.



    "큰 누나에 대한 언급없어 의심들었다"진술(1991년 10월 9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514941
    金基卨씨 아버지, 姜基勳씨 사건 3차공판서

    遺書대필 사건 일지(1992년 7월 24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577623


    <강기훈, 김형영을 허위 감정 혐의로 고발>

    국과수 前문서분석실장 金炯永씨 피소(1995년 1월 29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19544

    검찰,金炯永 前국과수실장 무혐의 결정(1995년 6월 2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96197

    前(전)국과수 문서실장 검찰 무혐의처리(1995년 6월 4일)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60400209131006&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6-04&officeId=00020&pageNo=31&printNo=22873&publishType=00010

    서울지검 형사 6부 유국현 부장검사는 3일 지난 91년 발생한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에서 허위로 문서를 감정한 혐의로 고발된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 김형영씨(60)를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결정문에서 "관련기록과 증인들의 진술을 종합해볼때 김씨가 감정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당시 국과수 필적 감정한 김형영의 토지 사기건>

    유서대필 사건 姜基勳씨, "재심 청구"(1998년 2월 11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295864
    姜基勳씨(35.큐빅테크 직원)는 11일 前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 金炯永씨가 사기범들과 짜고 토지문서를 허위감정해준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유서대필사건 당시부터 이같은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유서대필 사건 당시 필적감정을 맡은 金씨의 증언으로 유죄가 확정돼 3년여에 걸친 감옥살이를 했던 姜씨는 "당시 재판과정에서 金씨가 대규모 토지브로커들과 연계했던 사실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지만 사법기관은 국가 공신력의 훼손을 위해 결국 金씨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토지사기 연루 전國科搜실장(강기훈 필적 감정한) 무죄(1998년 7월 3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277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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