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옥 교육 섞일雜 끓일湯 (Others)

흔히 교육은 백년지계라고 한다. 미래 세대를 제대로 길러 내는 것이 한 나라의 장래를 좌우하는 요소라는 뜻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거대하고도 심각한 것을 꼽으라면 바로 이 교육 백년지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아이와 학부모가 모두 시달리고 병들어 가는 기형적 교육 체제가 근본적인 검토의 대상이 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들은 그렇다치고, 이런 교육 시스템에 시달리는 학부모가 수백만, 수천만이지 않은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데도, 전체 차원에서나 지역 차원에서나 아무런 대책도 없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묵묵히 순응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교육의 결과로 빚어지는 한국의 장래가 어떤 모습일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말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공개한 연구 결과에서 한국 청소년의 '더불어 사는 능력'이 조사 대상 36개 나라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은 한국 청소년이 시험 문제를 푸는 능력은 높지만 사회 활동 영역은 극히 저조하다고 평가했다. 시험 점수만이 어른과 아이를 옭아매는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는 교육 환경에서 이러한 결과는 별로 놀랍지 않다. 이 결과에 대해 한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한국 학생은 창의적이고 대외활동적인 면에서는 약하고 지필검사 성격의 검사에서만 강하며, 학교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교육이 그동안 어느 방향으로 매진해왔는지를 나타내주는 분명한 지표로 이에 대해 학생들은 전혀 신뢰를 보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다.

교육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건전한 시민으로 서로 도우면서 더불어 사는 삶을 영위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학생들은 그동안 학교도 정부도 불신하면서 조화롭게 사는 능력을 박탈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물질적 가치와 점수 서열에 의한 줄 세우기만을 강조한 교육의 결과가 드러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나 교육 당국은 반성은 커녕 전국 일제고사, 학교 간 성적공개 등을 통하여 학생들 간에 경쟁을 부추기고 학교 간, 지역 간 줄 세우기도 조장하고 있으니 도대체 학생들의 조화로운 삶은 어디에서 보장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잘하는 공부의 내용을 들여다 봐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공부는 잘 하지만, 이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부모와 사회에 끌려가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공부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이렇게 주장한다.


각종 국제 비교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최상위권인데 학업 흥미도는 하위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나라 아이들이 왜 공부하는지를 드러낸다. 한마디로 ‘혼날까봐’ 공부하는 것이다.

(중략)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공부에 대한 흥미를 체계적으로 압살하는 것이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흥미로운 것’에서 ‘지겨운 것’으로 바꾸는 데 학교도, 학원도, 부모도 일조한다. 학생들의 70%가 ‘공부가 흥미롭다’고 답한다는 핀란드에 무한한 부러움이 앞선다.


이것도 한국 교육에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창의력 대회'에 가서도 호텔방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는 게 한국 아이들이고, 그렇게 시키는 게 한국 부모다. 국제 학생 창의력 올림피아드에 참가한 한국 아이와 부모들의 특이한 행태를 지적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주 ‘국제 학생 창의력 올림피아드’가 열린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의 한 호텔. 1층 로비에는 한국 초등학교 3학년 학생 2명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문제집을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10쪽 다 안 풀면 수영장에서 못 논다고 그랬어요.” 문제집 표지에는 ‘중1 수학’이라고 씌어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문제집을 펼친 고등학생도 있었다.

한국 팀 중 한 팀의 호텔방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로 문제집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문제집에는 엄마가 꼼꼼히 채점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딸과 함께 온 어머니는 “이 대회에 나오면 공부할 시간을 빼앗긴 셈이기 때문에 문제집이라도 풀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창의력 교육도 중요하지만 절대 입시 공부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캐나다 학생들이 같이 놀자고 호텔방 문을 두드렸지만 아직 ‘할당량’을 다 채우지 못한 학생은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봤다.


기사에는 한국팀의 특이한 행태가 몇 가지 더 나온다. 어머니가 학생들의 공연 내용을 하나하나 반복해서 지도하는 한국 학생들 모양을 본 외국인들이 기막혀 했다든가, 아이들 작품으로 보기에는 너무 잘 짜여 있어서 오히려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든가, 공연 점수가 발표되자 한국 아이들이 심사위원에게 항의하러 갔다든가, 다른 나라 아이들이 모두 즐겁게 놀 때 한국 아이들은 관중석에 앉아서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만 했다든가 하는 모양이 모두 한국식 교육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한 마디로 말해 똑똑한 아이들을 시험이나 점수에 주눅 든 멍청이들로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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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No Child Left Behind 법(NCLB Act)이라는 게 있다. 조지 W. 부시 당시인 2001년에 제정된 교육 관련 법이다. 여러 가지 내용이 담긴 법이지만, 그 주요한 취지는 학업 성적이 낮고 읽기나 계산 같은 기초적 능력조차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는 미국 기초 공교육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안의 한 가운데에는 일괄적인 평가, 즉 모든 학생이 치르는 표준화된 시험이 자리하고 있다. 주(州) 단위로 치러지는 이 강제적인 일제 고사 성적을 통해 학습 상황을 점검하고 학교 교육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은 입안 단계에서부터 뜨거운 논쟁이 되어 왔다. 법안의 핵심이 시험이니만치, 논쟁의 핵심도 시험이다. 시험이 공립학교 교육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는 주장과 오히려 질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 끊임없에 대립하여 왔다. 반대하는 측은 학교 교육의 질이 몇 가지 과목에 대한 시험 성적으로만 평가된다는 점과, 교사들이 성적 향상을 목표로 한 '시험을 위한 교육'을 한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한국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시험 성적 향상을 위한 교육이 왜 문제가 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마인드는 이를테면 '더불어 사는 능력'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지필고사 성적에만 올인하는 기형적 교육 환경에서 잉태되어 나온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정상적인 교육이라면 학습 능력과 창의력, 도덕성, 사회성 등을 모두 갖춘 인격체로 길러 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NCLB는 시험 성적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로써 교육 성과를 평가하기 때문에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측은 이 법이 10가지 이상의 문제점을 가진 것으로 지적한다.

하기 싫은 공부도 엄마가 시키면 억지로 해야 하고, 문제가 있는 법도 나라가 시키면 억지로 지켜야 하는 식으로는 살지 않는 미국인들이 이런 중요한 문제를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전국 135개 단체가 모임을 결성하여 이 법안의 문제점을 따져 보고 그 대책을 마련한 대안을 제시했다. 여기 참가한 그룹에는 민권 운동 단체, 교육 단체, 장애인 운동 단체, 시민 운동 단체, 노동 운동 단체, 종교 단체 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으며, 지금도 참여 단체들이 계속 늘고 있다.

이들이 마련한 대안에 담긴 주장의 핵심은 시험 성적으로만 따져 교육을 좌우해서는 안 되며, 좀더 체계적인 방식으로 지역 단위 교육의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평론가 앨피 콘은 "이 법안의 주요 효과는 불쌍한 어린이들을 죽어라 시험 준비에 내모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그가 한국 학생들을 보았다면 NCLB에 시달리는 미국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지 쉽게 깨달을 것이다. 그 정도인데도, 현재 오바마 행정부는 이 같은 비판을 반영한 NCLB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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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학자 다이앤 래비치는 뉴욕 대학 교육학과 교수이자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이다. 그녀는 조지 W.H. 부시 행정부에서 교육부 차관보를 지냈으며, NCLB 법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따라서, 2010년에 래비치가 갑자기 자신의 신념을 바꾸고 NCLB에 반대하고 나섰을 때 큰 화제가 되었다.

최근 한 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래비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질문: 당신은 과거에 표준화된 시험을 치르는 방식을 지지했으나, 지금은 반대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래비치: 시험 결과에 따라 처벌이나 보상을 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두 가지 현상이 벌어진다. 하나는 시험이 원래 목적과는 달리 변질된다는 것이다. 시험은 교육을 측정하는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되어 버린다. 시험 성적이 너무나 중요해지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한다. 교사들은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교육을 반복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실제로 아이들이 배워야 할 많은 것들, 예컨대 예술, 역사, 지리, 시민생활, 과학, 체육, 보건 같은 중요한 내용을 가르칠 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두 번째는 표준화된 시험 자체에서 나오는 문제점이다. 이런 종류의 시험은 여러 개의 항목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형태로 치러지는데, 이것은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나를 평가하는 데 매우 부적당하며, 학생들에게 모든 문제에서 옳은 답과 틀린 답이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이런 시험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생각은 허용되지 않고 처벌 받는다는 점을 가르치는 학습 효과를 낳는다. 창의적 사고나 혁신적 생각, 상상력을 말살하는 평가인 것이다.

질문: 당신이 (NCLB를 지지하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나?

래비치: 많은 계기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2006년에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다. 보수주의 싱크탱크에서 주최한 이 학회는 NCLB 법이 시행된 5년 간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열렸는데, 나는 그 날 발표된 10여 편의 논문들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마무리 발언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나는 이 논문들을 자세히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명망 있는 학자들이 각 지역에서 나온 데이터에 기반하여 쓴 이 논문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법이 실패하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모든 논문의 결론은 똑같았다. 시험과 시험 준비에 수백만 달러가 쓰이고 있는데도 이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이 법으로 덕을 보는 것은 갑자기 등장한 사교육 회사들뿐이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들은 연방정부의 자금을 빨아들이며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 법으로 인해 일선 학교는 수많은 문서 처리의 가욋일과 관료주의에 시달리고 있으며, 실제로 아이들이 얻는 이익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되어 버린 나라,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그렇게 믿고 사는 나라, 일제 고사와 다지선다형 문제가 학생들을 틀에 가두고 목을 조이는 나라, 그런 시험을 치르지 않게 했다고 교사를 처벌하고 징계하는 나라, 사교육과 공교육이 주객전도된 나라에서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정책을 시행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보완해 나가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 텐데, 한국의 경우는 이미 거대한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하여,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알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거나 알면서도 질질 끌고 나가고, 끌려 가는 아이들의 태반이 자신의 꿈을 꽃피워 보기도 전에 낙오자로 전락하고, 그렇게 끌려 가며 겨우겨우 버텨 온 아이들에게도 주어지는 미래는 없다. 이런 상황이 염려스럽거나 버거운 부모는 아이를 낳을 생각조차 포기한다. 이게 무슨 생지옥인가. 이것은 분명한 생지옥이지만, 사회 일각의 이익단체들이나 기득권층에게는 결코 바꾸고 싶지 않은 즐거운 생지옥이라는 점도 분명한 것 같다.


※ 사진: Wiki

 

덧글

  • BigTrain 2011/04/15 13:30 # 답글

    김연아의 성공에도 어머니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죠. 20대가 넘어서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고. 뭐, 김연아는 스스로도 피겨를 좋아했으니 능력과 적성이 어머니의 극성과 융합한 운좋은 케이스긴 합니다만..

    단기간 내 고도성장을 위해 대량의 인재를 생산해야만 했던 체제상의 요구에 부응하다보니 교육 체제가 이렇게 되 버린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여러모로 단기간 내에 고칠 수 없는 문제인 듯 합니다.
  • deulpul 2011/04/23 11:18 #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이러한 파행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와 아이들의 미래에 드리워지는 사태가 올까 걱정입니다.
  • 크롬지붕 2011/04/15 13:46 # 답글

    최근 몇년간 미국티비광고에서 사교육광고가 부쩍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때문이었군요.
  • deulpul 2011/04/23 11:19 #

    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게 마련이고, 자본 공급이 있으면 이를 따 먹으려는 수요도 발생하지요.
  • 2011/04/15 14:1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4/23 11:21 #

    그게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렵기도 하고요. 저로서는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몇 개의 키워드가 있다고 보는데, 그런 키워드를 쥔 주체들이 지금의 상황을 구태여 바꾸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 아공 2011/04/15 17:15 # 삭제 답글

    그게 저는 얼마나 단점인지 잘 모르겠어요. 사회성이 떨어진다던가 공공의 이익에 대해서 무심하고 경쟁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이지만, 캐나다 애들이 놀자고 해도 문제집을 풀거나, 공연에 대해서 어머니가 하나하나 지도하는 것은, 사실 미국에서도 중산층일부 자녀들은 그렇게 하고 있고, 미국에서 에이미 츄아 같은 중국계 어머니에게 보이는 현상이기도 한데요.

    결과적으로는 중산층은 자식들에게 극성 교육을 시켜서 계급의 상승 혹은 유지를 하고 있고, 중국계 미국인들이 사회 계층에서 위로 올라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지 않나요.

    재능과 소질과 창의성을 따지는 교육은 좋게 들리지만, 결국 지난 몇십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고, 오히려 극성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교육이 만약에 사회계급과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위한 것이라면 한국식 교육이 맞지요.

    그렇다면, 아이들의 행복이 문제가 될텐데, 좀 애매하지요.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것은 우선 그 의미가 모호하고 (공부많이 하는 애들은 정말 불행한가?), 두번째 행복하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평생을 봤을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애매합니다. 무조건 공부를 덜시키고 많이 놀게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게 하는 교육이 좋은것이라고 말할수는 없는거지요.

    무조건 한국 교육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관성일지도 몰라요.
  • deulpul 2011/04/23 11:22 #

    아래 댓글까지 모두 합하여 답글 씁니다. 별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아공 2011/04/15 17:18 # 삭제 답글

    물론 측정 방식이나 교수방식 등은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지만, 한국 특유의 극도로 강한 경쟁체제는 무조건 나쁘다고 보기 힘들다고 봅니다.
  • ardine 2011/04/15 18:34 # 삭제 답글

    /아공 : 몇십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놓기 전에, 몇 십년간 뚜렷하게 그런 교육을 할수 있었는지 묻고 싶네요. 전체 시스템 상의 문제들이 간과하기 어려운 수준을 향해 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래비치같은 사람들도 돌아서고 있다는 얘기를 본문은 하고 있고요 그것은 '한국 특유의 극도로 강한 경쟁체제'라는 것이 단기적 혹은 특정 개인에게는 효율적인 방법이었을 지 몰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아닌 방법'이라는 회의와 반성에서겠지요.
    더불어, 아이들이 공부많이 하는 것의 반대가 '무조건 공부를 덜 시키고 많이 놀게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공부를 덜 시키고에서의 그 '공부'에 대해서 일단 고정관념을 갖고 계시네요.
  • 풍금소리 2011/04/15 22:46 # 답글

    정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맞습니다.
    근데 이런 중요한 점이 간과되고 있다는 게 참으로 슬프네요.
  • deulpul 2011/04/23 11:24 #

    누구나... 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문제라고 느끼면서도 그냥 무력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가 무섭습니다.
  • shift 2011/04/15 22:55 # 답글

    제가 보기엔

    창의력마저 학원에서 배우는 작금의 현실이 좀 많이 그렇더라구요.

    역시 대국은 대국이군요. 틀렸다고 인정해버리고

    암튼 좋은글 잘봤습니다.
  • deulpul 2011/04/23 11:24 #

    잘 지적하셨습니다. 틀린 걸 알면 인정하고 고치는 것도 미덕이고 능력이지요...
  • 아공 2011/04/15 23:03 # 삭제 답글

    우선 저는 공부는 학습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시행하는 것은 학습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공부(학습)을 경쟁적으로 많이 하는 것의 반대가 그럼 어떤 것인가요? 학업성취도로 사회계급의 필터링을 여태껏 해왔던것 아닌가요. 다른 좋은 방법이 가능한지 그럼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려주세요.

    저는 최근에 걱정되는 것은 학업성취도로 사회계급변화가 예전만큼 쉽지 않아졌다는 것인데요. 차라리, 4당5락이라고 하면서 매년마다 많은 고3자살자들이 나타나지만, 그것만 지나면 사회계급 성취가 가능한 시스템도 장점이 있던겁니다.

    사실 세상에 제일 쉬운게, 잘못되었어, 라고 간단히 말해버리는 것이죠. 대안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면서.
  • 이기심 2011/04/16 22:26 # 삭제 답글

    나(내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민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은 해결은 요원.
  • deulpul 2011/04/23 11:26 #

    구조와 이기주의가 무엇이 먼저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만, 둘이 연쇄되어 나선 효과를 가진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 하얀그림자 2011/04/18 10:16 # 답글

    //아공

    한국식 교육의 장점은 평균적 상승과 빠른 catch up에 있죠.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무한대로 가동되는 것이 아닌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것입니다. 회사에 들어오는 신입사원들보면 실수는 하지 않지만, 의욕도 창의성도 없는 친구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런 시스템에서 나름 승자들이라는 친구들인데도 보고 있노라면 사회의 앞날이 막막해질때가 많습니다.

    한국식 교육의 최대 단점은 다양성의 불인정이죠. 아니 교육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단점이죠. 그러다보니 숱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이상으로 좌절하고, 의욕상실과 패배감에 젖죠.

    학업성취도로 사회계급의 필터링을 해왔다? 시험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글쎄요 학업성취도와 사회계급간의 상관관계가 어떤것인지 잘 모르겠군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인 친구들이 높은 사회적 계급에 올라가 있나요? 대략적으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는 낮습니다. 대기업체 취직해서 대충 먹고살만한 수준이 높은 사회적 계급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깨놓고 이야기해서 남들이 잘 나간다고 이야기하는 대원외고 졸업생으로서, 그리고 동생이 서울과학고등학교 출신이지만, 막상 대원외고(서울과학고)-서울대-아이비리그 유학의 경로를 탔지만 별것 없는 경우도 숱하게 있습니다. 저런 경로를 거쳐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하는것이지 그게 상승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한는것이 필요하죠. 반드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면, 누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그럼 어디서 고칠것인지, 아님 아예 그 시스템을 때려칠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안도 내놓지 못하는 무분별판 비판..이라는 표현은 비판 자체를 막는 레토릭에 불과하죠
  • 아공 2011/04/18 20:19 # 삭제 답글

    다양성의 불인정, 어느정도 이후에는 (사회전체적으로) 이득이 크지 않다는 것은 동감합니다. 그것은 한국 교육의 단점이 맞습니다.

    그리고, 지난 50년간 새로운 사회를 남한이 건설해오면서 신지배층을 구축 할 때에 중심이 된 것은 학벌이었다는 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지요. 학벌이 지난 몇십년동안 신분상승의 수단이되고 한정된 기회에 대한 필터링의 역할일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합리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의 계급이동이나 필터링의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부족한 실정이지요. 실제로 최근 10년간 관찰되는 현상은 학벌의 신분상승효과가 점점 작아지며, 부모님의 집안, 특히 재력에 의해서 계급과 기회가 좌우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현실을 냉정히 보면, 학벌사회 타파 (학벌로 차별하는 사회)이후에 무엇이 와야할지 논의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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