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같은 부고 기사 중매媒 몸體 (Media)

‘그게 아니라여’ 구수한 사투리 이젠…‘서민 연기의 대가’ 김인문씨 별세

지난 4월25일 타계한 배우 김인문의 부고 기사다. 고인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이 기사도 정말 아쉽다. 기사에는 한 시대를 살아 간 예인의 삶과 죽음이 무미건조하고 상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고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자료만 들춰보고 얼마든지 써낼 수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죽음이란 어떤 의미에서 가장 큰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는 한 사람이 평생 밟아 온 삶의 궤적이 압축되어 담겨 있다. 죽음은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극적인 계기이며, 그렇게 돌이켜 보는 고인의 삶의 과정이 죽음이라는 드라마의 플롯이 된다. 또 감정 반응을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정서적 사건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의 죽음도 그럴진대, 잘 알려진 사람의 죽음에는 이러한 요소가 더욱 많다고 볼 수 있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이 보여주는 드라마를 통해 고인과 자신이 함께 얽혔던 과거를 추억하고, 고인의 삶이 드리운 그늘을 떠올려 보며, 고인이 남긴 궤적을 다시금 음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드라마를 글로 잘 전달한 것이 잘 쓴 부고 기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부고 기사는 마치 배우 김인문의 이력서를 읽는 듯하다. 그의 경력, 겉으로 드러난 그의 활동은 알 수 있지만, 그의 내면을 읽을 수 없으며 그가 어떤 체취를 지닌 사람이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주간지 <타임>에는 매주 유명인의 부고를 전하는 'Milestones'라는 지면이 있다. 이 잡지 2010년 12월13일자에는 11월28일에 사망한 배우 레슬리 닐슨의 부고 기사가 실려 있다. <총알 탄 사나이>의 그 레슬리 닐슨이다. 인터넷 링크도 있지만, 실제 지면을 보시라고 이미지를 떴다.




이 부고 기사는 닐슨이 등장한 한 영화(<Airplane!>)에 나온 농담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저 그런 농담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영화사에 기록된 명대사 중 하나다. 게다가 기사가 머릿글감으로 선택한 이 영화는 배우 닐슨에게 매우 중요한 영화다. 그가 심각한 배우에서 코메디 배우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기사는 320단어로 된 3단짜리 짧은 글 안에 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의 부모, 형제는 누구인지까지 다 밝혀 넣었으며, 작품들도 그저 나열하지 않고 그의 생애와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거론했다. 마무리는 역시 그가 남긴 유명한 농담을 인용하는 것으로 했다. 폭넓게 사랑 받은 코메디 배우의 부고 기사로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이 부고 기사를 쓴 리처드 콜리스는 67세의 영화 전문 기자다. 영화에 대해서 잘 알고, 사람에 대해서도 좀 알 만 하고, 더구나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 마디쯤 할 수 있는 연배의 사람이다. 짧으면서도 깊이 있는 부고 기사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다.

잡지라서 그런가?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닐슨이 숨을 거둔 다음날 나온 신문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뉴욕 타임스> 부고 기사에는 "1960~70년대에 그의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하자 그는 더욱 비중 있는 인물을 맡기 시작했다. 군 지휘자, 정부 지도자, 심지어 깡패 두목까지 연기했다"라는 대목이 나오고, 그가 1993년에 펴낸 자서전 <Naked Truth> (물론 '총알 탄 사나이(The Naked Gun)'의 패러디)조차 아카데미 상 두 차례 수상,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염문 같은 코믹한 허구로 채워 넣었다는 부분도 있다.

<LA 타임스>의 부고 기사는 닐슨 자신의 발언들을 효과적으로 인용하여 그의 배우 인생을 되짚어 보았다. 여기서도 <Airplaine!> 에피소드는 빠지지 않았다.

레슬리 닐슨과 김인문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부고 기사들을 평면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두 사람의 부고 기사를 비교하자는 게 아니라, 이러한 죽음을 대하는 방식, 이러한 죽음을 기사로 표현하는 방식을 보자는 거다. 게다가 김인문이 못할 것은 뭔가. 그의 삶을 뒤적여 보면 닐슨 못지 않은 드라마가 한 가득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적으로 알려진 인물의 부고 기사는 최소한 동년배의 초상 몇 건쯤은 치러 본 논설위원급 기자가 쓰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살아서 펄펄 뛰는 자만이 아니라 늙고 병들어 사라져 가는 자도 기억해야 할 존재라는 인식을 글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죽음이라는 무게에 걸맞는 짐을 지고 모니터 앞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죽음이라는 마지막 드라마의 주인공인 고인을 독자가 공감할 수 있게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미지: <타임> 지면.

 

덧글

  • 만슈타인 2011/04/29 20:15 # 답글

    헐... 레일이 닐슨옹이 돌아가셨엇습니까 어휴 -_-;; 그분 개그 영화 보면서 웃엇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엇네요 -_-;;

    김인문씨와 레일리 닐슨옹의 명복을 빕니다.
  • deulpul 2011/04/30 02:19 #

    지금도 우울하면 가끔 찾아보는 영화들의 주인공 닐슨... <무서운 영화> 시리즈 막판에서는 몸이 눈에 띄게 예전같지 않아서 나이를 실감했는데, 작년 말에 돌아가셨습니다.
  • 차원이동자 2011/04/29 20:30 # 답글

    솔직히 우리나라는 저렇게 센스있게 예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주는 사람이 없어요...
  • deulpul 2011/04/30 02:39 #

    음... 고인을 옆에서 지켜 보았던 사람, 혹은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에게 글을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꾸 남의 집 이야기를 해서 좀 그런데, <타임>에서는 이 방법을 자주 씁니다. 데니스 호퍼의 부고 기사는 감독 데이빗 린치가 썼고, 환경운동가 에드거 웨이번이 죽었을 때는 시에라 클럽의 칼 포프 회장이 썼습니다. 정치인 스튜어트 우달의 부고 기사는 아들인 상원의원 톰 우달이 썼으며, 해양 공원의 동물 조련사가 자신이 관리하는 범고래에 딸려가 사망했을 때는 이 테마 공원의 동물 조련팀 팀장이자 고인의 상사가 부고 기사를 썼지요.
  • young026 2011/04/29 23:10 # 답글

    어디서 본 얘기인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햇병아리 기자를 훈련시키는 방법으로 부고 기사를 쓰게 하는 게 있다고 하더군요. 육하원칙에 맞춰 군소리없이 글쓰는 방법을 익히는 데에 제격이라던가.
  • deulpul 2011/04/30 02:46 #

    쉽게 쓰려면 가장 쉽게 쓸 수도 있고 어렵게 쓰면 가장 어려운 주제의 기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게 부고 기사가 아닐까 합니다. 제대로 쓰려면 어렵겠지요. 누군가의 부고 기사를 쓴다는 것은 사건 보도보다 더 큰 무게와 통찰을 요구하게 마련이고, 쓰는 사람 처지에서는 크나큰 영광이기도 하리라고 봅니다. 어려운 게 정상이며, 훈련용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2011/04/29 23: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4/30 02:54 #

    아, 정말 잘 썼네요. 읽으면서 네 번 이상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자서전의 부제는 압권이었습니다.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생전에 한 일뿐 아니라 그의 성격, 인품, 인간됨이 어떠했는지가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네요. 이런 부고 기사는 쓰는 기자에게도, 받는 고인에게도 큰 영광이 아닐까 싶습니다.
  • 문화의 차이 2011/04/30 03:05 # 삭제 답글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미국에서는 장례식장에서도 고인과 관련되었던 에피소드와 농담도 해가며 웃으며 기리잖아요.. 한국에서는 그랬다가는 욕을 바가지로 먹겠죠..
  • deulpul 2011/04/30 03:21 #

    그런 점이 있고, 농담의 측면에서만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지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농담스럽고 우습지 않은 방식으로도 고인의 인간됨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는데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 지아쿨 2011/05/02 11:44 # 답글

    문득 지난 3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부음에 NYT가 실었던 부고기사가 떠올랐습니다.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이미 6년 전에 사망했음에도, 기사가 너무 훌륭해 원문을 살짝 손질만 해서 그대로 실었다고 하더군요. 부고기사를 동년배의 기자가 작성해야 한다는 들풀 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 deulpul 2011/05/02 17:48 #

    오랜만이시네요! 저도 그 기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읽지는 못했습니다. 조만간에 한 번 찾아 보아야겠네요. 미국 언론들이 나이 많은 유명인들의 부고 기사를 미리 써 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이 pre-written obituary, 혹은 draft obituary는 망자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으므로 철저히 보호되는데, 가끔 실수로 노출되어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부고 기사에 놀라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허허.
  • 사시미 2011/05/03 11:27 # 삭제 답글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일컬어 선진국이라 할 지 모르지만, 아직 여유는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계속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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