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차벨라 바르가스 섞일雜 끓일湯 (Others)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Amazon이나 iTunes store에서 한 곡씩 사기 때문에, CD를 사 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CD를 한 장 샀다. 멕시코 할머니 차벨라 바르가스의 판이다.

1919년생, 올해 92세인 바르가스가 갑자기 좋아진 것은 영화 <아들아, 아들아, 뭔 짓을 한 게냐(My Son, My Son, What Have Ye Done)>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시작 장면과 끝 장면에서 바르가스의 노래가 나온다. 둘 다 고정 카메라에 찍힌 그림 같은 장면을 배경으로 하여 음악이 흐른다. 뭐랄까, 그냥 말할 수 없이 좋다.









시작 부분의 노래는 'Valente Quintero', 끝 부분의 노래는 'Gabino Barrera'다. 둘 다 19세기 멕시코 혁명가에 얽힌 옛날 이야기 같은 노래들이다.

영화 자체는 아주 매력적이지는 않다. 특별한 갈등이나 절정 없이 흐르는 심리극 스타일의 영화라서 화려한 그래픽이나 눈요깃거리 같은 것은 없다.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영화. 나는 배우 마이클 섀넌과 윌렘 데포를 좋아하는 탓에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내가 보기에 보석 같은 장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가슴을 울리는 바르가스의 노래는 <프리다(Frida)>에도 두 곡이 실렸고, 그 중 하나는 화면에 직접 등장하여 불렀다. 왜 그 때는 알아채지 못했을까. 프리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열중하느라 바르가스의 노래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프리다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상도 탁월하지만, 영상 없이 노래만 들어도 저절로 슬퍼지는 이 노래는 'La Llorona'다. 프리다에게 술을 따라주는 인생 같은 할머니가 바르가스다. 2002년 작품이니까 83세 때다. 끝 부분에서 살해되는 사람은 극중 트로츠키.

마침 이 세 노래가 한 판에 들어 있는 CD가 있어서 산 것인데, 콜롬비아에서 제작된 수입판이다. 네 쪽짜리(그러니까 한 장을 반으로 접은) 조야한 자켓에 바르가스에 대한 소개가 스페인어로 씌어 있다. CD는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비트로 은닉된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값지다. 어스름한 저녁, 불 다 꺼놓고 좋은 음향기기에 걸어 소리를 키워 듣고 싶은 곡들이다.

 

덧글

  • 만슈타인 2011/05/05 08:36 # 답글

    아침을 깨우는 좋고 건강한 노래였습니다
  • deulpul 2011/05/05 10:46 #

    아니, 앞의 두 개는 분위기가 밝고 명랑해서 아침 음악으로도 좋네요, 정말. 저는 왜 모두 초저녁 음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아무래도 밤이 좋죠?
  • 만슈타인 2011/05/05 10:50 #

    그렇죠 앞의 두개는 적절한 아침기상용으로도 좋을 듯 합니다.
  • deulpul 2011/05/05 12:11 #

    뭐니뭐니해도 기상용으로 최고의 음악은... 모짜르트 피 아노 협 주곡 21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 삭여 주며 아침 햇살 눈 부심에 나를 깨워 줄... 아 쓰다 보니 닭살이 돋다가 갑자기 화가 나네요, 하하하.
  • 만슈타인 2011/05/05 12:31 #

    쓰읍...
  • 2011/05/05 21: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06 07:58 #

    어떻게 이렇게 제 코드만을 골라서 쿡쿡 찔러 주시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입니다. 옮겨 주신 장면은 위에서 좋은 장면들이 있다고 한 바로 그것이었는데, 건방지도록 과감한 연출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래도 좋았구요. 말씀하신 영화는 아주 오래 전이라서, 연두색이 가득 했던 것 같은 포스터는 기억이 나는데 영화 자체는 가물가물합니다. 잠깐 찾아 보는 동안, 거기 동반되는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가슴이 얼얼해지는 게, 저는 잊었지만 틀림없이 이 영화나 음악에 얽힌 무언가가 기억의 더께 아래 깊은 데 잠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마지막 말씀은 헛소리가 아니라... 고담 준론이 되겠습니다, 하하. 그러고 보니 나를 깨워 주는 게 아니라 꿈 깨라는 것인지도...
  • 2011/05/06 11: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06 17:17 #

    사실 그 노래 좋아합니다. 노래나 음악이 그 자체로 좋을 때도 있지만 사연이 얽혀 있어서 좋을 때도 있죠. 테이프, 아 테이프가 뭐였더라, 여하튼 테이프를 사기도 했던 듯 하네요... 그 동물은 정말 수많은 상상과 사유를 저절로 일깨워 내는 신비스러운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그 흔한 놈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태어나서 죽는 과정 자체가 이렇게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동물도 흔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2011/05/06 21: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09 01:05 #

    아, 노래 좋네요. 어머니께서 대단한 감수성을 가지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두 가지 감상(정서?)를 말씀하셨는데, 앞부분은 쉽게 이해되지만 뒷부분은 '한 감수성' 하는 사람이라야 추출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말씀 듣다 보니 언제 포스팅 하나를 털어서 그 동물에 얽힌 모든 것을 다 긁어 모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리고 동물 맞지 않나요? 여기서 동물이란 계문강목과속종의 '계'에 해당하는 의미로서인데... 조카분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십시오. 선행 학습도 중요하다고 하니까요, 하하.
  • 2011/05/09 02: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09 14:03 #

    마감 때이신가요, 사흘 철야를... 그 말씀이시죠? 댓글 시간도 그렇고요. 설마 어른들과 사흘 철야로 놀았다는 말씀은 아니시렸다? 처음에는 그렇게 보고, 그분들의 감수성뿐만 아니라 체력도 부럽다는... 하고 생각했습니다만, 하하. 그 어린이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씩씩하고 똑 부러지게 할 말 하는 걸 보니 대성할 싹이 보입니다. 논리적으로도 별로 나무랄 데가 없네요.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귀여울지 짐작이 됩니다... 그렇죠. 인간이 기본적으로 좀 양감이 있고 안을 수 있고 안길 수도 있는 동물하고 살아야지, 기껏 개미 따위하고 살아서야 쓰나요. 맞는 말입니다. 아빠:0, 어린이:1.
  • 2011/05/09 02: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10 12:36 #

    댓글 내 놓으십시오! 저도 마감중이라 잘 읽어 보고 천천히 답글을 달려고 했더니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토해 내세요. 생각이 안 난다... 이 허망한 기억력. 어쨌든 몇 달 동안 하시는 마감은 대체 어떤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잠 적게 자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그렇게 자면서 살 수가 있습니까. 건강을 해치시지 않나 걱정이 되네요. 보면, 몸이 받쳐 주어야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몸이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으면 곧잘 잊어버리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 때부터 조심해야죠, 소리를 내면 늦습니다... 대나무는 쓸 만하다고 생각하시면 얼마든지 이용하십시오. 그 심정 잘 알고,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대나무 반쪽이 드러나서 좀 그렇긴 합니다만...
  • 2011/05/10 17: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16 14:30 #

    어머니는 이번에도 역시 존경스럽습니다. 저절로 상상이 되는 저 언어 구사력이시라니요. 깨어나기 힘들 때와 비상식량을 연결하여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도 많으니까요... 하하. 저는 예전에는 잠을 주 단위로 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만... 하루에 7시간 자야 한다가 아니라 일주일에 50시간 자면 된다는 식이었죠. 지금은 그저 잠과 적이 되어 있고, 달족에서 해족으로 전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2011/05/17 03: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23 12:32 #

    때는 안 좋아서 초인 같은 힘이 필요하시겠지만, 장소는 참 좋네요. 여기는 높은 건물도 많지 않고 심야에 차들이 꼬리를 물고 다니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그런 장면이 참 그립습니다. 예전에 두어 번, 높은 데 사시는 분 집에서 그런 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귀를 귀울이면> 시작 장면을 볼 때처럼 아스라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감흥이라기보다 향수인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건강하시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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