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에 몰아치는 기업 범죄 때時 일事 (Issues)

부산 저축은행 사태를 보자니 여러 생각이 든다. 감독 기관부터 실무자까지 모조리 어떻게 하면 한 건 해 먹을 수 없나만 고민한 것 같은 양상을 보면, 대체 세상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암담한 마음뿐이다.

요즘도 모럴 해저드란 말이 있는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는 방향을 보면, 그런 말이 존재하는 정도만 해도 양반일 지경이다. 해저드는 둘째치고, 대체 모럴이라고 할 기준 비슷한 것이라도 있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아래는 얼마 전에 신디케이트로 발표된 제프리 삭스의 칼럼이다. 정경유착의 문제점을 세계 경제 차원에서 논하고 있다. 과거의 정경유착이 비록 범죄적인 내용이라도 최소한 정책의 형태를 띠면서 이루어져 왔다면, 우리 시대의 정경유착은 노골적인 범죄와 이에 대한 묵인이라는 기막힌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좀 약하거나 실현하기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하긴 이런 미친 세상에서 삭스라고 뾰족한 만병통치약이 있지는 않을 듯싶다.

세계 경제에 몰아치는 기업 범죄

- 제프리 D. 삭스(Jeffrey D. Sachs)

기업들이 벌이는 사기 행각에 세계가 빠져들고 있다. 명색 건전한 통치력을 유지한다는 부유한 국가들에서 만연한 문제다. 가난한 나라 정부는 뇌물을 더 받고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세계 기업들이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용인하는 것은 부유한 국가다. 돈이 말하는 시대이며, 돈은 세계 모든 곳에서 정치와 시장을 부패시킨다.

기업들의 불법 행위 관련 소식이 없이 넘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다. 월 스트리트의 모든 기업은 지난 10년 동안 가짜 계좌, 내부 거래, 주식 사기, 폰지 사기, 최고 경영자들의 노골적인 횡령 등의 혐의로 막대한 벌금을 냈다. 지금도 뉴욕에서는 대규모 내부자 거래 조직이 적발되어 재판이 열리는 중이며, 여기에는 금융 산업의 간판격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최대의 투자 은행들은 증권 관리 규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위반한 혐의를 받고 줄줄이 벌금을 내고 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월 스트리트 대규모 은행들의 파렴치한 행위는 2년 전 역사상 가장 큰 금융 위기를 몰고 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간 금융 산업 관계자는 아무도 없다. 회사가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CEO나 경영진이 아니라 주주들이다. 언제나 벌금은 불법 행위로 벌어 들인 이익의 새발의 피 수준이다. 따라서 월 스트리트에서는 불법 행위를 벌이면 확실하게 돈을 번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퍼져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은행들의 로비가 규제 기관과 정치인을 무력하게 하고 있다.

부패는 미국 정치도 검게 물들이고 있다. 현 플로리다 주지사인 릭 스캇은 Columbia/HCA로 알려진 의료 관련 기업의 CEO였다. 이 회사는 정부를 속이고 의료 비용을 과다 청구하여 왔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이 회사는 14가지 중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17억 달러의 벌금을 납부했다.

FBI의 수사가 벌어지자 CEO였던 스캇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 회사가 유죄를 시인한 지 10년만에 스캇은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공화당 정치인으로서였다.

버락 오바마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 구제 금융을 지원하는 일과 관련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자, 월 스트리트의 '해결사' 스티븐 래트너를 찾았다. 당시 래트너는 정부 관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으며, 오바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래트너는 백악관에서 구제 금융 관련 업무를 마친 뒤, 자신의 혐의에 대해 벌금 몇 백만 달러를 내고 문제를 종결지었다.

주지사나 대통령 보좌관 뿐만 아니다. 전 부통령 딕 체니는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핼리버튼의 CEO였다. 그가 핼리버튼에 재직할 당시 이 회사는 수십억 달러 가치가 있는 나이지리아 원유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 나이지리아 관리들에게 불법으로 뇌물을 건넸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핼리버튼을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하였을 때, 이 회사는 3천500만 달러를 내고 합의 형식으로 처벌을 면했다. 물론 체니에게 돌아온 불이익은 전혀 없었다. 이런 소식은 미국 언론에서는 제대로 나오지조차 않았다.

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는 경우는 널려 있다. 실제로 거의 모든 기업 범죄는 눈에 띄지 않게 저질러진다. 드물게 범죄가 발각된다 하더라도, 대개는 적당한 벌금을 납부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 이 벌금은 주주들에게서 나온다. 실제 범죄자인 회사의 최고 경영진은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기업이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경우에도 CEO들은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주주들은 낱낱이 분산되어 있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경영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기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기업의 불법 행위는 폭발적 양상을 보인다. 미국, 유럽, 중국, 인도, 아프리카, 브라질, 기타 다른 지역 어디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 나가는 추세다. 이 때문에,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이를 통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 범죄가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만연하는 중요한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 거대 기업들은 다국적화 되어 있는 반면에 정부들은 국가 안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은 재정적으로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각 정부는 그들과 맞서 상대하기를 두려워 한다.

둘째, 미국 같은 곳에서 기업들은 선거 운동의 주요한 자금원이다. 정치인들 자신이 기업 소유주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기업 이익의 은밀한 수혜자인 것이다. 미국 상원의원의 절반 가량이 백만장자이며, 그들 중 다수가 의원이 되기 전부터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따라서 기업이 불법을 저질러도 정치인들은 이를 외면하게 된다. 설령 정부가 법을 동원해 처벌하려 나선다 할지라도, 막강한 법률가 군단을 거느리고 있는 기업들은 정부를 가볍게 능가한다. 그 결과, 면책의 문화가 성립된다.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는다는 기대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부유한 이들과 법을 집행하는 권력 사이에 존재하는 긴밀한 관계로 볼 때, 기업 범죄에 고삐를 물리는 일은 매우 어려울 듯하다. 다행히, 오늘날 정보가 빠르고 폭넓게 확산되는 상황이 기업 범죄를 억제하는 살균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듯하다. 부패는 어두운 곳에서 번창하게 마련이다. 이메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기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더 많은 정보가 유통되는 상황은 기업 범죄를 막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된다.

또 새로운 방식으로 선거 운동을 수행하는 새로운 정치인이 필요하다. 기존 미디어에 값비싼 광고를 내는 대신, 돈이 들지 않는 온라인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치인이 스스로를 기업의 기부금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면, 기업 범죄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되찾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계의 어두운 곳을 백일하에 드러낼 필요도 있다. 특히 케이맨 군도나 스위스 은행들 같은 조세 피난지에 주목해야 한다. 탈세, 리베이트, 불법 공여, 뇌물, 기타 불법적인 자금들이 이곳 계좌로 모여 든다. 현재 이러한 비밀 거래 시스템에 의해 지탱되는 부, 권력, 불법 행위들이 팽배한 나머지, 국제 경제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리는 상태다. 정부가 부유한 이들에 대해 세금을 물릴 정치적인 의지나 운영상의 능력이 없는 탓에 소득 불균형과 재정 적자가 전례 없이 악화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따라서, 앞으로 아프리카나 다른 가난한 지역에서 부패 스캔들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런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부패를 벌이고 있는 이들은 누군지를 잘 살펴 보라. 미국이나 다른 어떤 '선진국'도 가난한 나라들을 향해 함부로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많은 경우 이런 스캔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덧글

  • 2011/05/16 23: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23 12:37 #

    정말 그런 모양이네요. 탈법으로 치러야 하는 것도 그저 수익 추구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 정도로 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답이 없는데, 결국은 정신 똑바로 박힌 정치를 챙겨야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만, 지금은 그게 거의 모순어법(oxymoron)이나 다름 없으니 난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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