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보다 무식해요" 섞일雜 끓일湯 (Others)

'당신은 5학년짜리보다 똑똑한가?(Are You Smarter Than a 5th Grader?)'라는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이 있다. 어른 한 명을 불러다 놓고 초등학교 수준의 문제를 내서 맞추는 게임 쇼다. 여느 퀴즈 프로그램처럼, 문제를 잘 맞추면 상금이 불어나고 단계를 계속 올라갈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문제에 도전하는 어른 출연자뿐만 아니라 진짜 초등학생 다섯 명이 '같은 반 친구'가 되어 함께 출연한다. 이 초등학생들은 출연자와 함께 문제를 푸는데, 이들이 쓴 답안지는 가려 두어서 출연자가 볼 수 없게 한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출연자는 초등학생 중 한 명을 선택해 '컨닝(cheat)'를 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쇼의 재미는 코흘리개 아이들도 척척 대답하는 문제를 멀쩡하게 생긴 어른들이 풀지 못해 낑낑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어른 대부분에게는 매우 '어렵다'.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라 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위를 몇 개씩 가진 사람도 초등학생보다 무식한 모습을 보이게 되고, 시청자는 이런 극적인 장면을 보며 즐거워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서 최종 단계를 통과하고 모든 문제를 풀어 낸 사람은 단 두 명이다. 그 중 한 명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조지 스무트가 힘겹게 씨름한 마지막 문제는 '아카디아 국립공원은 어떤 주에 있는가?'였다. 노벨 물리학상이 아니라 노벨상 5관왕에 빛나는 대학자라도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사람에게 물어 볼 질문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정 국립공원이 어느 주에 있는지는 물리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러한 지식을 아는 것 역시 노벨상 수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얼마인지 사암과 편마암과 화강암이 어떻게 다른지 초등학교 때 다 배웠지만, 그걸 지금도 기억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른에게 이런 지식은 그저 사소한(trivial) 잡학상식일 뿐이다. 어른들은 그보다 더 어렵고 많은 문제를 끌어 안고 살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와 고민으로 가득 찬 그들의 머리 속에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들어 있을 공간은 거의 없다.

프로그램에 나온 어른 출연자가 문제를 틀려 결국 낙마하게 되면, 스튜디오를 떠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창피한 고백을 해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보다 무식해요!" 관객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이런 판결은 공정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어른과 초등 5학년생을 함께 데려다 놓고 초등학교 문제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어른이라는 점에 핸디캡을 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초등학교 교습 내용은 어른에게는 까마득한 과거의 지식이며 초등학생에게는 현재의 지식이라는 점에서 출발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

기억의 메커니즘에는 흔히 빈발성(frequency)과 최근성(recency)이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는 어른에게는 자주 사용되는 지식도 아니고 최근에 입력된 지식도 아니다. 이런 사항에 대해 기억하기를 강요한 뒤, 제대로 복원해 내지 못했을 때 '무식하다'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매우 불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설령 이 프로그램의 문제를 모두 잘 맞추고 끝냈다고 하자. 그 때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은, 쇼의 컨셉에 따르면 '초등 5학년보다 유식한 사람'이 된다. 이게 자랑스러운 호칭인지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상금이 걸려 있지 않다면 '져도 OO, 이겨도 OO'이나 다름없는 쇼에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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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초등학생이 있으면 부모는 시간 날 때마다 아이의 공부를 돌봐 주게 된다. 저학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어느 순간 이런 일을 포기해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의 지식은 어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지식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태반이고, 이 지식을 아이에게 가르치려면 어른이 먼저 다시 배워야 한다. 이것은 어른 본연의 임무, 이를테면 밥벌이를 한다든가 사회에서 생존하는 데 별다른 효용이 없는 작업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직접 가르치기를 포기하게 된다. 이것은 어른이 현명하지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관련 부분은 0:44 부터)

우리 아들은 12살인데, 내가 숙제를 잘 도와 주지는 못해요. (다섯 살짜리) 딸의 숙제는 쉽죠. 그냥 점선 글자를 따라 쓰거나 색칠하기 같은 거에요. 근데 아들이 학교에서 가져 오는 숙제는 내가 20년 동안 보지도 못한 거잖아요.

아들이 숙제를 나에게 넘겨주면, 나는 얼른 다시 돌려줘요. 이렇게 서로에게 미루기를 한 시간이나 계속한다구요. "나는 졸업한 지가 옛날이라구. 이런 거 나한테 가져 오지 마!"

문제를 보면 도무지 모르는 거라서 이렇게 진땀을 흘려야 해요. "아... 끙..." 그러다가 핑계를 찾아야 하죠. "야, 이거... 이거 새로운 수학인데? 새로운 수학이야... 우리 때 배웠던 거하곤 달라...그래, 이 뺄셈은 덧셈으로 해야 한다구..."

내가 숙제하는 걸 도와줬더니, 다음 날 모두 틀렸다고 지적을 받아 가져 왔네요. 아들이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 왔어요. "얘야, 뭔 일 있었냐?" "아빠, 선생님이 나한테 빵점 두 개를 줬어요." "왜 두 개지?" "하나는 저한테 준 거구요, 하나는 아빠한테 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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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양과 현명함, 혹은 기억력과 현명함은 비례하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가는 청소부에게서 지혜를 배우는 일이나 면벽 선승에게 삶의 자세를 배우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둘의 관계가 배타적이거나 반비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단편적 지식들의 합이 현명함을 구성해 주지는 않는다면, 중요한 것은 조각 난 지식의 누적량이 아니라 통찰일 것이다. 통찰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누적된 지식이 저절로 양질 전화하여 통찰을 형성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한 듯하다. 지식보다는 경험(청소부)이나 사유(선승)가 통찰을 만들어 주는지도 모른다. 똑같은 것이 편견과 아집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 이미지: TV Guide

 

덧글

  • 드래곤워커 2011/05/18 02:40 # 답글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거야 지금은 다 잊어버렸으니...
  • deulpul 2011/05/23 12:41 #

    사실 유사시에 인생에 조금 도움이 되는 점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맥가이버(아실려나... 하하)가 활용하는 지식은 대개 의무교육 수준에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것들이라든가...
  • 2011/05/22 04: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23 12:48 #

    뭐 조금만 어려워도 무리가 될 듯하니 딴 거 다 필요없고, 그저 <바른생활> 1-1, 1-2, 2-1, 2-2 정도만 다시 배우면 되겠습니다. 지금은 제목이 달라졌겠지만요... 제가 병 나실 줄 알았습니다. 크게 불편하지 않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진통제에 따라, 고열 불면 중에 창의력이 높아지는 특이한 경험도 하실 수 있습니다만... 지금 보여 주신 창의력만 해도 약은 필요없군요, 하하.
  • 2011/05/24 01: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5/24 04:28 #

    짧은 영상인데도 속도가 받쳐주지 않아서 툭툭 끊기면서도 잘 보았습니다. 도시적 감성을 물씬물씬 불러 일으키는 도발적인 영상이군요, 하하. 당연한 말씀이지만 링크는 정말 감사하지요. 찾는 수고를 덜어주시는데요. 예전에 어디에도 썼지만, 음악은 내가 좋아하면 남에게 권하는 건 당연하고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주고 싶기까지 한 게 정상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전 나눠 끼는 사람들 이해합니다, 하하. 말씀하신 작품은 저로서는 영 생소한데, 다행히 DVD 대여하는 넷플릭스에 들어 있는 아이템이군요. 소개를 찾아보니 매력적이어서 바로 예약함에 넣어 두었습니다. 넉 장이 우편 배달로 오며가며 다 보려면 시간은 좀 걸리겠습니다만, 이런 종류의 기다림은 즐거움이죠.
  • 2011/05/24 23: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6/02 11:47 #

    이야, 짧은 글 안에 많은 생각의 실마리가 터질 듯이 꽉 차 있네요. 동영상도 음악 들으랴 가사 생각해 보랴 이미지로 표현된 스토리를 짚어 보랴, 하나씩 분해해서 서너 번은 보아야 충분한 음미가 될 것 같습니다. 일드 부분은 빼더라도 그렇군요. 노래는 요요한 게, 아주 특이한 느낌을 줍니다. 말씀을 듣고 영상을 보니, 그 드라마는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영상 댓글에서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그 댓글에도, 노래 가사에도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취향 탓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야근 안 하시는 날은 언제인가. 물론 정답은 잠 자는 날일테지만요, 하하.
  • 2011/06/03 20: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6/05 06:10 #

    하하하, 어떤 일인지 무척 궁금하네요. 당연히 실상은 별일 아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즐겁고 괴로웠다가 졸려운 것은 인생이 점점 달관의 경지로 들어가고 있다는 증표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어쨌든 좋은 일 있으셔서 축하(?)하고요, 그런 것도 자주 해야 코메디가 안 생기지 않을까 싶네요. 자주 하십시오. 돈은 안 쓰는 게 버는 거지만,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는) 만나는 게 버는 겁니다...
  • 2011/06/05 09: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6/05 10:22 #

    음...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없어서 빗나가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무언가 장점을 가진 것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그 유명한 세시봉 특집 프로그램을 보는데, 여러 사람이 모두 김민기에 대해 그렇게 사람 좋은 사람 못봤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한 명이 그런 이야길 하면 취향이 같은 인간이고 두 명이 그러면 우연일 수도 있는데, 세 명 이상이 그러면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랑할수록 서로 조심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고 기본이기도 한데, 어떨 때는 불필요한 예의 때문에 답답한 경우도 있죠. 사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다. 옙, 끝은 언제나 시작의 다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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