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바바라 리 미국美 나라國 (USA)

화창한 초가을 날이었던 2001년 9월11일 오전, 미국은 충격 속에 빠져 들고 있었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테러 장면이 코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국인은 경악했다. 사건 장면을 실시간으로 숨가쁘게 전하는 텔레비전 화면 밑에는 'AMERICA UNDER ATTACK'이라는 글자가 굵게 박혀 있었다. 미국인은 자신들이 공격 받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자기 땅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데 놀랐고, 공격의 규모와 끔찍함에 놀랐고, 테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데 놀랐다.

9/11 공격은 그 규모도 충격적이었지만,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생중계되는 테러라는 점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러한 생중계 테러는 미국인에게 커다란 정서적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수업이 중단되거나 취소된 강의실에서 대학생들이 엉엉 울며 나왔다. 테러가 벌어진 뉴욕으로부터 아득히 떨어진 이 곳에서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러한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애국주의'라는 깃발로 집중되어 갔다. 동시에, 감정에 경도된 반응이 압도하는 상황이 늘 그렇듯 이성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었다. 예컨대 미국 각지에서 이슬람 사원들은 난데없이 공격을 받았다. 엄청난 공격, 엄청난 피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인들은 애국주의의 창을 들고 누군가에게 복수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듯 했다. 그 누군가를 찾는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충격이 너무 컸다. 일단 복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미국 의회의 '대테러 군사력 사용 승인 결의안(AUMF)'은 9/11 테러 직후의 이러한 정서적 분위기로부터 직접 추출된 작품이다. 사건이 벌어진 지 불과 사흘만인 9월14일 하룻동안 상하 양원을 일사천리로 통과한 이 합동 결의안은, 대통령 조지 W. 부시에게 9/11 공격을 기획하고 수행하고 지원한 이를 찾아 '필요하고 적절한' 군사력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전쟁 결의안 비슷하면서도 상대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와는 달랐다.

이것은 말하자면 전쟁을 할 수 있는 백지수표나 마찬가지였다. 결의안에 따르면, 부시는 누구든 9/11과 관련이 있다고 자신이 점찍기만 하면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군사력을 동원해 공격할 수 있었다. 국가의 전쟁 행위를 대의 기구인 의회가 결의하고 조정, 통제하는 권한을 포기한 셈이었다. 이것은 9/11 공격의 충격과 그로 인한 정서적 반응이라는 요소를 빼고 보면 미국 민주주의 과정에서 허용되기 어려운 정치 행위였다. 어쨌든 결의안은 통과됐으며, 부시는 10월7일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AUMF 결의안을 놓고 9월14일에 벌어진 상하 양원의 표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상원: 찬성 98, 반대 0
하원: 찬성 420, 반대 1


상하 양원을 통틀어 5백 명이 넘는 의원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 단 한 사람은 캘리포니아 출신 하원의원인 바바라 리(Barbara Lee) 의원(민주당, 아래 사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반대표를 던지는 사람이 있나? 혹시 한국의 옛날 국회의원이 그랬듯 가(可)와 부(否)를 헷갈려서 잘못 투표한 것인가? 아니다. 리 의원이 표결에 앞서 단상에 나아가, 자신이 왜 결의안에 반대하는지를 밝힌 짤막한 연설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나는 오늘 매우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내 마음은 이번주에 목숨을 잃거나 부상 당한 이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슬픔으로 꽉 차 있습니다. 지금 미국인과 전세계인이 느끼는 슬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가장 멍청한 사람이거나 목석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미국이 당한 형언하기 어려운 공격을 놓고, 나는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나의 도덕적 잣대, 나의 양심, 그리고 신에게 의지하여 결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11은 세상을 바꿔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모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군사적으로 대응한다고 해서 앞으로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모두 방지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음을 확신합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하게 뒤얽힌 일입니다.

나는 이 결의안이 통과될 것이며, 설령 결의안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은 전쟁을 벌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는 일어서서 자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잠깐 한 발 물러서서, 오늘날 우리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러한 행동이 가져 올 결과를 좀더 총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 앞에 벌어지는 것은 재래전이 아닙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와 같은 통제 불능 상태의 나선형 악화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국가 안보, 대외 정책, 공공 안전, 정보 수집, 경제, 살인극 따위가 뒤얽혀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의 대응도 마찬가지로 다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둘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이미 너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미국은 지금 애도하는 기간입니다. 우리가 서둘러 대응 공격에 나선다면 여성, 어린이와 비전투원들이 또 큰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또 악의에 찬 살인자들이 잔인한 행위를 벌였다고 해서, 아랍계 미국인, 이슬람교도, 동남아시아인, 기타 다른 많은 사람이 그들의 인종, 종교, 민족적 배경 때문에 가혹한 편견의 희생자로 전락하는 일을 합리화해서도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출구 전략도 없고 특정한 목표물도 정해지지 않은 기약 없는 전쟁을 무조건 시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1964년에 의회는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공격에 대응하고 차후의 공격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의회는 그 자신의 헌법적 책임을 방기하였으며, 개전 선언도 없이 수년에 걸친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을 끌고 들어갔습니다.

당시 통킹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단 두 사람 중 한 명인 웨인 모스(Wayne Morse)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미국 헌법을 훼손하고 기만하였다고 기록할 것으로 믿는다. 다음 세기의 미래 세대는 지금 역사적인 대실수를 저지르려 하는 우리 의회에 대해 큰 실망감을 갖게 될 것이다."

모스 의원은 옳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지금 그와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두려워합니다. 나는 이 표결을 놓고 매우 고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벌어진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추모식를 보면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한 사제가 한 감동적인 말씀으로 제 뜻을 대신합니다. "우리가 행동을 하러 나설 때, 우리가 비난하는 악마는 되지 않도록 합시다."


바바라 리의 연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건너와서 상황을 둘러보고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연설문을 쓴 듯하다. 웨인 모스가 이성의 힘으로 미래를 내다 보았듯, 그녀 역시 피격의 혼란 속에서 이성을 찾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미국 의회에서 그 같은 사람은 단 한 명이었고, 미국은 역사상 최장의 전쟁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상이, 나라가 한 방향으로 휩쓸려 가는 상황에서도 이성을 통해 생각할 줄 알고, 더구나 그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용기가 존경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홀로 518명의 동료 의원들을 거스르며 국민에게 바른 소리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호전적인 전쟁광들이 아니라 이들이 진짜 용감한 사람이며, 이들이 진짜 애국자다.

※ 이미지: 리 의원 홈페이지. 연설문과 동영상의 불일치는, 발언 시간 제한 때문에 리 의원이 좀더 요약해서 발표한 때문인 듯하다.

 

덧글

  • 차원이동자 2011/06/04 19:47 # 답글

    저 분의 말씀을 들으니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생각나네요.
    아무리 옳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생각에 따라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지금의 행동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결정내리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좋은 번역 감사합니다
  • deulpul 2011/06/05 08:43 #

    적절한 작품을 일깨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법의 원칙에서부터 심리학, 설득 이론에 이르기까지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수많은 내용이 방 하나에서 벌어지는 일에 모두 들어가 있는 명작이죠. 영화에서 묘사되는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네요. 앞으로도 그렇겠지만요...
  • 2011/06/05 18: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6/06 14:33 #

    네, 저런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스럽고 살 맛이 나죠. 고맙습니다. 좀 다른 말씀이지만, 미국인들이 운동 경기에서나 뭔 일 있을 때마다 떼를 지어 외치는 "유에쒜이! 유에쒜이!"는 왜 그렇게 상스럽고 천박하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항상 굵은 남성 목소리로 각인되는데, 정말 douchebag스럽다는 생각이 저절로 납니다. 맨 앞자가 U여서 그런 어감이 나는 것인가, S나 A로 시작한다면 좀 다른 느낌일까 싶기도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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