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좀비 낚시 2: 퀴건과 드레즈너의 좀비 이론 섞일雜 끓일湯 (Others)

좀비는 살아 있는 인간의 살(특히 뇌)을 먹는 죽은 인간으로서, 현실적 위협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상상력이 만들어 낸 피조물이다. 따라서 20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무덤에서 기어나와 나를 공격하는 일은 아마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100% 확신하긴 어렵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달리 하여 보면, 좀비의 습격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유사한 현상을 상징하는 탁월한 비유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을 공격하는 치명적이며 강력한 바이러스를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돼지독감과 치명적인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결합형 같은 것이다. 별다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은 인명을 해치며 속수무책으로 번져 나갈 수 있다. 죽은 사람의 시신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살아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 상황이다.

죽은 사람이 직접 일어나지는 않지만, 죽은 사람의 정령을 대신하는 아바타라 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산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좀비 공격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실제적인 위협이다. (CDC의 좀비 대처법은 그런 가능성을 직접 활용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좀비는 그 자체로 영화나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의 소재가 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그 모습 그대로, 혹은 비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재료이기도 하다. 예컨대 경제학자 존 퀴건은 <좀비 경제학>에서, 이미 무덤에 파묻었어야 할 죽은 경제 이데올로기가 살아 있는 경제,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끈질기게 공격하는 양상을 좀비에 빗대어 서술한다.




책의 내용과 방향은 다음과 같은 소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경제 이데올로기의 묘지에서는 이미 죽은 아이디어가 여전히 살아서 배회하고 있다. 최근의 금융 위기로 인해, 문제가 무엇이든 시장에 기초한 해법이 언제나 최선이라는 시장 자유주의를 지탱해 왔던 많은 가정의 헛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시장주의 지지자들은 주류 경제학을 지배하여 왔으며, 투기적인 투자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안전하다는 어이없는 신념을 널리 유포시키는 시스템을 창출해 왔다.

금융 위기는 이러한 이론의 잘못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이를 폐기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이론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생각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일반 대중, 전문가, 정치인, 경제학자, 심지어 엉망이 된 경제를 일으켜 세워야 할 정책 담당자들조차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죽은 아이디어가 좀비처럼 여전히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셈이다. 미래에 더 큰 경제 위기를 피하려면 우리는 이 죽었지만 죽지 않은 사상을 한번 더, 그리고 확실하게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확실하게 죽여야 하는 좀비 경제 이론으로 퀴건이 제시한 다섯 가지는 1) 대안정 이론(The Great Moderation), 2) 효율적 시장 가설(The Efficient Markets Hypothesis), 3) 동적 확률적 일반 균형론(Dynamic Stochastic General Equilibrium), 4) 트리클-다운 가설(The Trickle-Down Hypothesis), 5) 민영화(Privatization) 등이다.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기회가 되시면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좀비로 낚시하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 (여기서 내가 쓰는 '낚시'란 말은 물론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정치학자 대니얼 드레즈너다. 그는 좀비 전문가라기보다 국제 정치 전문가이다. 그러나 좀비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좀비와 관련한 책을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쓴 <국제 정치 이론과 좀비>는 좀더 좀비 친화적이다. 좀비를 단지 비유로 쓴 것이 아니라, 좀비 연구에 좀더 비중을 두었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보면 본격 좀비 서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그의 책은 좀비의 위협이 얼마나 '실제적인지', 대중 문화뿐만 아니라 학술 저서나 논문에서 좀비가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좀비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등을 학자답게 풀어내면서 책을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좀비는 '생물적으로 형체를 갖추고 인간의 몸을 빌어 움직이며 인간의 살을 먹기를 열망하는 존재'라고 정의된다. 지금까지 등장한 좀비 관련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좀비의 특징은 세 가지이다:

1. 좀비는 인간의 살에 집착하며, 자기들끼리는 먹지 않는다.
2. 좀비는 뇌가 파괴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3. 좀비에게 물린 인간은 누구든 불가피하게 좀비가 된다.


좀비를 학문적 틀로 들여다 보는 것은 흥미로운 접근이지만, 드레즈너의 관심은 좀비 자체라기보다는 여전히 정치와 정책이다. 그의 책은 가상의 좀비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정치 주체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다양한 측면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출몰은 국제 관계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이를 이해하려는 국제 정치 이론에도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산 자를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인간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 줄 이론은 무엇인가. 기존 이론들은 좀비의 공격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책의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드레즈너는 "이러한 좀비 열풍은 심각한 현상이며, 심각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국제 정치 이론가들이 보기에, 괴기스러운 것에 대한 모든 관심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대중적 노력의 상징으로 파악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나 위협에 대해 대중이 인식을 획득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좀비 열풍이 나온다고 보는 시각은 신선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도 수많은 좀비 창작물이 나올 풍부한 토양을 갖추고 있음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대중 문화에서 또다른 열풍을 불러 일으키는 괴기 주인공인 드라큐라와는 달리, 좀비는 정체를 위장한 채 인간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좀비 사태가 벌어지면 정부와 국제 사회는 이 적대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드레즈너가 보기에 이런 대처는 정책 결정자가 어떠한 정치 사상적 태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첫째, 무정부 상태가 국제 사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며 힘을 유일한 가치로 간주하는 정치 현실주의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좀비 창궐 사태는 평상시와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계는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좀비는 흑사병이나 인플루엔자 전염병 사태, 기타 항상 존재하는 위협과 마찬가지다. 강한 자는 살아남을 것이고, 약한 자는 죽을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좀비 사태를 빌미로 하여 자국의 세력을 넓히는 계기로 활용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대만을 점령하고 미국은 쿠바를 복속하는 식으로 말이다.

둘째, 국제 사회에서도 국가 간에 선의의 협조를 통해 상호 이익을 얻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자유주의자들은 초기에는 좀비 사태의 위협을 부채질한다. 이를테면 국경을 단호하게 닫아 거는 데 반대함으로써 좀비 확산을 방치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을 맞은 인간들이 공통의 적을 앞에 두고 서로 신뢰하며 협조하는 것 말고는 어떤 대책이 있겠는가. 자유주의자들은 좀비에 대처하는 국제 기구를 만들어 공동 대처를 꾀할 것이다. 어느 순간 이들은 좀비를 완전히 퇴치하기가 불가능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좀비가 지구를 정복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세상을 선과 악으로 단순명료하게 파악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은 좀비와 타협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좀비의 위협을 인정하기조차 거부한다. 이들은 무조건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인간의 헤게모니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좀비가 발생해 공격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묘지를 찾아가서 무덤들을 타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이들의 대처 방안은 좀비의 위협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예컨대 이들은 적이 언제나 '악의 축'을 형성하는 단일 체계이거나 누군가의 배후 조종을 통해 등장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단순한 인식은 문제를 입체적으로 보는 능력을 마비시킨다. 뿐만 아니라 좀비의 위협을 다른 위협과 뒤섞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체제의 지도자들을 좀비와 동시에 제거하는 군사적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런 접근은 국제 사회의 연합전선을 훼손하고 좀비와의 전쟁의 효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렇게 가상의 좀비 사태를 놓고 국제 정치 사상을 적용해 보는 드레즈너의 접근은 흥미롭다. 그는 책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좀비 연구들에 담겨 있는 비유적이면서도 압도적인 관점, 즉 일단 좀비가 등장하기만 하면 세상은 망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론으로 읽히기를 원한다.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국제 정치 이론은 분명히 현실적으로 효용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이 현재의 국제적 위협과 도전을 설명하는 능력은 국제정치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적일 수도 있다. 세계 정치에 관심을 잃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충분한 정보에 바탕하여 자기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좀비들이 생각을 시작하기 전에 말이다.


결국 이것은 좀비 관련 서적이 아니라 국제정치학 개론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좀비의 발호라는 세계적 위협을 놓고 다양한 국제 정치 이론이 이러한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좀비라는 말 대신에 테러리즘을 넣든 악의 축을 넣든 지구 온난화 사태를 넣든 결과는 비슷하다. 그러나 좀비를 내세운 결과, 드레즈너의 책은 생생하면서도 매력적인 옷을 입게 되었다. 좀비를 매우 적절히 활용한 효과적인 낚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퀴건이나 드레즈너 같은 낚시라면 얼마든지 권장할 일이 아닌가 싶다. 학자의 저술 작업에 '~학' ~론' '~연구' 같은 제목을 붙이지 않으면 찬밥 대접을 하는 한국 학계의 분위기를 신랄하게 질타한 김용석의 주장을 돌이켜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좀비는 권위주의와 먹물의 탈을 쓰고 상아탑 주변에서도 어슬렁거리고 있지 않은가.


※ 책 표지들: Amazon.com, 도표: 드레즈너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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