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의 모르몬 선교사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큼지막한 모르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성전이 있다. 평소에는 인근에 이런 교회가 있다는 점을 의식할 일이 거의 없다. 내가 종교에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일요일에 인근 도로가 막히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는 정류장 두 개 중 하나가 바로 그 교회 앞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따금씩 무심코 바라 볼 때가 있다. 교회는 큼직한 건물인데, 십자가를 달지 않았다. 대신 뾰족한 첨탑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가끔 흰색 와이셔츠와 짙은 색 양복 바지를 입고 둘씩 짝지어 다니는 모르몬 선교사들을 볼 때도 있다. 이들은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 것인지, 차를 타고 다닐 경우는 당연히 눈에 안 띄어서 그런 것인지, 언제나 보행자가 드문 보도를 하염없이 걷는 모습으로 목격된다. 비록 한시적인 기간이긴 하지만, 영화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허용되지 않고 음악조차 종교 음악만을 듣도록 되어 있는 이들의 생활을 떠올려 보면, 종교나 교파를 떠나서 현대인으로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놀라운 금욕적 생활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활동하는 모르몬 선교사들은 2009년 현재 5만2천 명 정도이며, 이들은 한 해에 세계에서 28만여 명을 새 신도로 가입시킨다.

이 모르몬 선교사들이 최근 뉴욕 브로드웨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뉴욕의 선교사들은 모르몬의 정통 선교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쇼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선교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지난 3월에 개막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컬 <모르몬 경전(The Book of Mormon)>에 등장하는 선교사들 이야기다. (모르몬교의 4대 경전 중 하나인 The Book of Mormon은 한국 후기성도 교회에서는 '몰몬경'이라고 한다.)



지난주인 6월12일에 열린 제65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모르몬 경전>은 무려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그 중에서 9개 부문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에는 뮤지컬을 대상으로 한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작곡상, 감독상 등이 포함되었다.



작품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당연히 스포일러)


두 모르몬 선교사가 자신들의 희망과는 달리 아프리카의 오지 우간다로 발령을 받는다. 내전과 독재의 폭압, 기아와 질병과 에이즈가 판을 치는 이 어둠의 땅은 선배 선교사들이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곳이다. 두 사람은 상황을 놓고 실망과 희망을 거듭한다. 한 사람(프라이스)은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소청하려던 마음을 접고 독재자를 개종시키기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커닝햄)은 마을 사람을 대상으로 선교를 한다.

모르몬 경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커닝햄은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모르몬 교리와 엮어서 마을 사람에게 전파한다. 수많은 고통에 지친 마을 사람들이 모르몬교에 관심을 갖고, 일부가 신도로 등록까지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모르몬 본부의 교회 원로가 축하하러 방문했다가, 마을 주민이 왜곡된 교리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원로는 선교사들을 소환하기로 결정하고 마을 주민들은 모르몬교도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더욱 강화하며 독재자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프라이스는, 이와 같은 고통의 땅에서는 경전의 해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통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두 선교사는 자신들의 믿음도 공고히 하고, 우간다를 '후기 성도'들이 살아 숨쉬는 지상 낙원으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직접 본 게 아니고 각종 리뷰와 정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줄거리라서, 실제 공연 내용과 약간 다를 수도 있다. 쓰고 보니 꽤 심각한 모양이 되었는데,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코메디 뮤지컬임을 상기하시기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시퍼렇게 살아 숨쉬는 막강한 종교를 대중 예술의 흥행물 소재로 삼아서 무대에 올려 놓았다. 줄거리만 보면 딱히 모르몬교를 비방한다고 볼 수 없고 마지막도 해피 엔딩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줄거리 전체부터 구석구석에 장치된 은유까지 모두 신랄한 풍자로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모르몬에서 성인으로 치는 인물들이 거침없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어떻게 겁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나.

이것은 이 작품을 탄생시킨 공동 창작자 세 명 중 두 명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 <사우스 파크>의 제작자들인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금기시되거나 도그마틱한 것들을 잘근잘근 씹는 일을 낙으로 삼는 그 사람들이다. 파커와 스톤은 (로버트 로페즈와 함께) 이 작품의 각본을 쓰고 노래의 곡과 가사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

뮤지컬 <모르몬 경전>의 모르몬교 모독 가능성과 관련해, <뉴욕 타임스>의 리뷰 중에서 관련 부분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모르몬 경전>의 노래에 사용되는 언어들은 존경과 조롱의 의미가 뒤섞인 형태로 등장하는데, 굳이 말하자면 존경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극 형태는 불가피하게 신성모독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이 뮤지컬은 모르몬 교회의 가르침 중 일부를 극에 직접 사용하였으며, 제목에서부터 교회의 역사를 차용하고 있다. 조지프 스미스나 브리검 영 같은 교단 설립자들이 실명으로 거론되며 예수나 모로나이라는 이름의 천사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인물에 대한 찬사가 코메디 뮤지컬에 등장하면, 그것은 주로 고도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르몬 경전>의 주요 포인트는 다음과 같은 점이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삶과 죽음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헤쳐 나가면서 의지하게 되는 모든 형태의 신화와 종교적 의식(儀式)은, 어떤 시각에서 보면 일정한 부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화와 종교 의식들이 웅장하고 장엄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이 점은 뮤지컬교(敎)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뮤지컬은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 세계를 소재로 하여, 사람들을 무아지경으로 몰고 가는 형태로 이를 재생산한다.


다시 말해서, <모르몬 경전>에서 모르몬교를 풍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극의 중심 주제는 모르몬교가 아니라 신화와 종교적 의식의 부조리함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뮤지컬을 포함한 흥행 문화도 예외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평가는 이 작품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지적(知的)인 평가라고 볼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했지만, 당사자인 모르몬 교회 역시 그렇게 평가해 줄 것인가. 내용이야 어쨌든, 일단 교회 이름이 거론되고 설립자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풍자극이 아닌가. 게다가 미국에서도 초기에 큰 박해를 받으며 정착된 역사를 가진 교회가 아닌가. 우리 정서로 보자면, 종교의 교리를 왜곡하고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는 데 항의하기 위해 신도들이 대거 브로드웨이로 몰려가서 극장 앞을 점거하고 공연을 방해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그렇다. 이 뮤지컬에 대한 모르몬 교회의 반응은 '신중한(measured)'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모르몬교는 7년 동안 제작된 <모르몬 경전>이 개막되기 직전인 2월 말에 이 작품과 관련한 공식 논평을 내 놓았다. 논평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 공연물은 관객을 불러 모아 하룻저녁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몰몬경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인생이 영원히 달라지게 만들 것이다."

모르몬 교회 본부의 공보 담당자는 4월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풍자물은 물론 현실과 다릅니다. 현실을 매력적이고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왜곡한 것이죠. 사람들이 풍자물을 보고 웃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런 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위험해집니다. 다시 말해 이 뮤지컬을 본 관객들이 '모르몬 교도들은 정말로 초현실적인 세계에서 자기 기만과 환상에 사로잡혀 사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극장문을 나선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시위나 공연 방해보다는 1)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재인식하고 2) 풍자 창작물이라는 점을 환기시키는 편을 선택한 셈이다.

이러한 교회 반응에 대해, <사우스 파크>의 제작자이자 이 뮤지컬을 만든 파커와 스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들은 교회의 공식 반응은 '뮤지컬 <모르몬 경전>은 하룻밤 관객을 즐겁게 해 주지만, 실제 몰몬경은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러한 교회의 반응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 거의 일치한다. 이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며 풍자하는 뮤지컬에 대한 쿨하면서도 미국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교회의 반응이 나오기 전에, 많은 사람이 '교회에서 어떻게 나올지 두렵지 않은가?' 하고 물어 왔다. 우리는 '그들은 쿨하게 반응할 거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면 질문하는 사람들은 '아니지. 교회는 당장 시위를 벌이며 반대 운동에 나설 걸'이라고 말했다. 그럼 다시 우리는 '아니요. 그들은 쿨하게 나올 거에요'라고 말해 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의 실제 반응에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믿었다."

이것은 지적이고도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양측이 다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렇게 나온 말이 일정한 사회적 의미(에다 작품성에 흥행성까지)를 가지고, 그런 말의 소재가 된 측은 자신의 영역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자부심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풍자라는 문화 양식을 놓고 성숙한 인간끼리 마주하면 어떤 모습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딴 건 몰라도 이런 건 좀 쿨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악의 없는 소재만 되어도 죽어라 덤비는 거, 정말 유치하다. 파커와 스톤이 '미국적인 반응'이라고 한 데에 좀 낙심하게 되지만 말이다.

원래 뮤지컬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비평가들로부터 이렇게 큰 호응을 받는데다 위에서 쓴 저간의 사연까지 얽혀 있어서 꼭 보고 싶은 작품이다. 직접 보지 못하고 포스팅을 해서 아쉽다.

※ 이미지: <뉴욕 타임스>, 본문에 링크. 도표: 위키, 일부 편집.

 

덧글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1/06/23 18:13 # 답글

    한사람이 한해에 5명정도를 선교하는군요.
  • deulpul 2011/06/23 18:40 #

    그런 셈이죠? 인용한 수치는 2009년 말 현재 자료인데, 위키( http://en.wikipedia.org/wiki/Missionary_(LDS_Church) )에 보면 최근 40년 동안 선교사 1인당 입교자 수의 최고 기록은 1989년의 8.03명인 것으로 되어 있고, 최근 몇 년에는 4~5명 선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 2011/06/23 21: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6/24 03:25 #

    농담이 아니라, 그것은 일종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속하게 흘러가는 개개의 장면들을 유심히 보아야 하고, 그 장면들을 어떤 형태로든 기억 공간에 담고 있어야 하고, 관련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그 장면들과 연결시키는 유추 작업을 해야 말씀하신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죠. 저도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장르는 다르지만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인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네요.
  • 사시미 2011/06/24 10:56 # 삭제 답글

    쿨하네요. 그만큼 자신들의 교세(?)에 자신이 있다는 것인지. 이번 글은 은근히 재밌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 deulpul 2011/06/25 11:14 #

    실제로 갈등을 빚어봤자 미국 사회에서는 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전혀 유리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겠지요. 작품이 비리를 보도하는 뉴스 프로그램처럼 공격성이 강한 것도 아니었고요. 어쨌든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 xmaskid 2011/06/25 04:08 # 답글

    표구하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특히 주말표는 10월이나 되야 구할수 있는듯. 게다가 토니상까지 석권했으니 저는 내년을 기약하렵니다.
  • deulpul 2011/06/26 00:16 #

    프린터로 정교하게 인쇄한 가짜표까지 나돈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합니다. 12월부터 미국 투어 공연이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저는... 기약을 할 수가 없군요.
  • 인형사 2011/10/03 19:29 # 답글

    재미있는 정보 잘 봤습니다. 그런데 이 기시감이란?

    사우스 파크라면 이미 모르몬교를 한 번 다룬 적이 있지요.

    http://www.mojvideo.com/video-south-park-all-about-mormons/3dbc3ec28f4ad658c80d

    이 에피소드는 모르몬교를 풍자하는 듯 하지만 실은 천박하고 냉소적인 무신론을 까는 내용이지요.

    소개해주신 것을 보니 역시 뮤지컬도 같은 접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에 링크한 사우스 파크 에피소드의 마지막 대사를 보면 모르몬 교회가 쿨한 척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Gary: Maybe us Mormons do believe in crazy stories that make absolutely no sense, and maybe Joseph Smith did make it all up. But I have a great life and a great family, and I have the Book of Mormon to thank for that. The truth is, I don't care if Joseph Smith made it all up, because what the Church teaches now is loving your family, being nice and helping people. And even though people in this town might think that's stupid, I still choose to believe in it. All I ever did was try to be your friend, Stan, but you're so high and mighty you couldn't look past my religion and just be my friend back. You've got a lot of growing up to do, buddy. Suck my balls.

    Cartman: Damn, that kid is cool, huh?

    이미 쿨하다고 추켜주었으니 쿨한 척 할 수밖에요.

    그리고 그것이 '넘버3'에서 송강호가 열변을 토한 헝그리 정신이기도 하지요.

    http://www.youtube.com/watch?v=bHemuO2zC3g
  • deulpul 2011/10/04 03:15 #

    종교란 기본적으로 신념의 체계이기 때문에, 믿으면 이해되고 안 믿으면 이해 안 되고, 누가 까든말든 사실 큰 관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만 고려하면, 믿지 말라고 탄압하거나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이상, 또 실정법으로 보아 문제가 없는 이상, 쿨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얼마든지 생긴다고 봅니다. 이 작품의 경우에서 그런 걸 읽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