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에게 발리는 대선 후보 미국美 나라國 (USA)



미국의 공립학교 과학 과정에 창조론이나 그 변형인 지적 설계론을 포함시키려는 종교주의자들의 노력이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종교나 철학 수업이 아니라 과학 수업에 창조론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과학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종교와 교육 분리를 규정한 미국의 헌법적 원칙에도 어긋나서 그 뜻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전략이 좀 달라졌다. 한편으로는 정규 교육에서 창조론을 유포하지 못하므로, 대신 진화론을 흠집내는 데 주력한다. 사실이 아니라 이론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문적 자유(academic freedom)'라는 틀짓기를 통해 창조론 교육이 시민적 자유권인 것처럼 포장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각 주의 의원들을 움직여, 학교 교육에서 창조론을 허용하거나 강제하는 법안을 만드는 입법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른바 '학문적 자유권(Academic Freedom Bill)'이라는 멋진 이름이 붙은 이런 법안들은 남부를 중심으로 한 10개 안팎의 주 의회에서 끊임없이 제출되고 있으며, 일부는 표결을 통해 법안으로 통과한 뒤 폐지되기도 했다. 현재 정식으로 채택되어 있는 법은 2008년에 주 의회에서 압도적 표결로 통과되어 다음해에 발효된 루이지애나의 '루이지애나 과학교육법(Louisiana Science Education Act, LSEA)'뿐이다.

창조론 교육의 길을 튼 루이지애나 법안

이 법은 "주(州)의 초등 및 중등 교육청은 ... 진화론, 생명의 기원, 지구 온난화, 인간 복제 등을 포함한 과학 이론의 교습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 능력, 논리적 분석,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토론이 촉진되도록 하는 환경을 창출하고 고무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무척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규정 같지만, 그 실제 의도는 진화론, 생명의 기원, 지구 온난화 등의 이슈와 관련한 비과학적인 주장과 논리를 교실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식 교재 이외의 '부교재'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허용해 두었다.

많은 전문가는 이 법안이 교실에서 창조론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하며, 과학 수업에 종교가 틈입할 것으로 염려한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질 경우, 이를 묵과하지 않는 학부모들이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이미 연방대법원 판례로 금지된 사례가 있으므로 결과가 뻔한 소송 사태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종교주의자들에게 이 같은 소모적 과정은 창조론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으로 인식될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공립학교의 창조론 교육을 허용하고 있는 단 하나의 법안인 이 법의 폐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루이지애나의 고등학생 자크 코플린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동료 고등학생과 교사들, 시민과 과학자들의 반대를 조직하며 LSEA 폐지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그가 서명을 받고 있는 청원서에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도 다수가 서명했다.

내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측에서 대선 후보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민주당은 물론 오바마). 그 중 하나인 미네소타 출신의 연방 하원의원 미셸 바크만은 공개적인 지적 설계 지지자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지적 설계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그녀는 2006년에 "인류의 진화가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으며 ... 수많은 과학자가 지적 설계를 믿고 있으며, 여기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신이 말하는 노벨상 수상자는 누구입니까?"

지금도 끊임없이 지적 설계를 강조하고 있는 대선 후보 바크만에게 고등학생 코플린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바크만 의원님, 당신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창조론을 지지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 알려 주십시오. 유권자들이 당신의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면, 당신의 주장을 사실로 입증해 보여 주십시오. 나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노벨상 수상자 43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노벨상 수상자는 대체 누구입니까?"

바크만은 물론 이러한 질문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기자가 최근에 그를 대신하여 바크만에게 질문했다: "루이지애나의 한 젊은이가 LSEA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그는 '진화론이 이론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라고 주장하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노벨상 수상자가 창조론을 지지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게 누군지 이름을 말해 주십시오."

이 질문에 바크만은 "그걸 왜 물어? 버릇없이... 너 진짜 맞는 수가 있다" "나는 지적 설계론을 지지하며, 학교에서 다양한 견해가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동문서답을 했을 뿐, 정작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노벨상 수상 과학자가 누구인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이나 노벨상 수상자의 수가 아니라, 일반 미국인 지지자의 수일 것이다. 2010년 갤럽 조사에서 "신은 과거 1만 년 전쯤의 어느 순간에 인간을 현재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창조하였다"라는 진술에 동의한다고 대답한 미국인은 40%였다.


※ 만화 이미지: Doonesbury.

※ 제목에서 쓴 '발리다'는 국어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뜻으로 쓴 말이다. '경쟁에서 지다, 패배하다, 혼쭐이 나다' 정도의 뜻으로 쓰는 속어라고 해야 할 듯하다. 다들 아시겠지만 혹시나 해서 덧붙인다.


 

덧글

  • 死海文書 2011/07/15 19:52 # 답글

    과학이라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미국인데 저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 라피에사쥬 2011/07/15 20:49 #

    개인적으로 고등학생 시절에 학교측에서 토요일의 자율학습 시간을 악용하여 저런걸 주장하는 사람을 데려다 '강의'라는 걸 한 기억이 납니다. 딱히 종교단체와 관련이 없는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단지 당장 논란의 중점에 서 있지 않을뿐 문제의 소지는 다분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한국의 교육계란 곳이 미국과 달리 '법과 규칙'이 정해져도 예외를 일삼는 곳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선택권 없이 중학교를 배정받았는데 그곳이 하필 종교계열 학교라 일주일에 1시간씩 강제로 종교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 deulpul 2011/07/19 12:50 #

    과학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이룬 나라지만, 일상에 미치는 종교의 영향도 비교적 강하다는 것이 미국의 한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신정일치 국가에는 당할 수 없겠습니다만...
  • 그냥 2011/07/15 20:49 # 삭제 답글

    미국이나 한국이나... 점점 제정일치 사회로 가는 것 같습니다.
  • deulpul 2011/07/19 12:51 #

    생각해 보면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조금씩 더 진보되어 간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담은 못합니다.
  • 아도니스 2011/07/16 03:08 # 삭제 답글

    우리나라가 어떠냐구요? 위에 사해님!!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02&newsid=20110712171028345&p=yonhap

    이렇던데요. 개신교계 "여권법 개정안 폐기하라" 링크 가기 귀찮으실까봐.. 간략하게 주된 요지는..

    국외에서 위법행위를 저질러 국위를 손상시킨 경우 여권 발급을 제한하는 내용의 여권법 시행령 개정안이 "해외 선교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며 개신교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렇군요..!! 하여튼 종교는 재밌어요.
  • deulpul 2011/07/19 12:52 #

    사실 종교 자체보다 그를 (희한하게) 믿는 사람들이 더 재미있습니다. 이를테면 선출된 행정 책임자가 자신의 서비스 지역을 신앙 대상자에게 봉헌한다고 공언한다든가...
  • uto 2011/07/16 13:27 # 삭제 답글

    글 잘봤습니다. 지적 디자인은 지적 설계론이라고 한국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으니 용어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 deulpul 2011/07/16 14:49 #

    본문의 표현을 수정하였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1/07/17 02: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7/19 13:12 #

    이런 것 있죠? "이리 와... 안 잡아 먹을께... (echo)" 말씀을 들으면 언제나 드라마들이 이렇게 말하며 부르는 것 같습니다. 긴장하게 돼요. 하지만 가끔 소개하시는 내용들은 정말 매력적이라서, 드라마와 친하지 않은 저도 언젠가 한번 훑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헌법 수정조항 제1조(표현의 자유, 제정 분리)와 제2조(무기 소지의 자유)는 언제나 뜨거운 주제지요. 한편, 한국 드라마의 왜소한 양상을 떠올리게도 되네요.
  • 2011/07/19 15: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07/20 11:3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7/21 13:38 #

    저는 후배 때문에 6인용 술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은 적이 있습니다. 애꿎게도, 같은 자리에 계셨던 선배가 와장창 깨지는 그릇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으셨는데도 정작 당사자는 생글생글 하는 모습을 보고, 그 뒤로 포기했습니다. 능력 없는 건 괜찮아요. 누구는 첨부터 잘 하나요. 하지만 싸가지가 없는 것은 영원히 바뀌지를 않습니다. 제(his/her) 복이죠. 발제 자료는 아직 못 보았습니다만, 기대 만빵입니다. 곧 정독하겠습니다.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1/07/21 17: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7/26 16:03 #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아는 것이 민주 시민의 덕성... 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이렇게 도제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일상적인 회사 패턴 아닙니까? 이게 사수나 졸병이나 다 피곤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일이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불안하면 달라붙어서 물어보고 기대고 일로 엉키며 배울 수 있는 선배가 있고, 야단치며 가르치고 또 산하님처럼 "내 새끼" 하면서 기특해 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나도 배우는 후배가 있고 하는 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지렁이 가운데 토막 잘라둔 것처럼 혼자 꿈틀거리며 모든 것을 헤짚어 나가야 하는 지금은 그런 상황이 참 그립고 부럽습니다. 그런 점도 있음을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 2011/07/26 22: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7/28 12:00 #

    끙... 대책이 없네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나름대로 선발을 거치고 추천까지 받았던 경우인 듯한데, 마땅한 인물이 아니었나보네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사례를 들을 때마다 저는 지금의 교육 환경 문제를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어린 인간이 자라면서 배워야 할 여러 소양 중에서 아주 제한적인 일부분만을 발달시키고 나머지 부분은 희생시키는 시스템 말이지요. 게다가 부모가 극성스러울 정도로 매달려야 '성공'하는 체제라서, 애는 성인이 되어도 사회에서 제 힘으로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다른 건 아무 것도 못 하고 오로지 시험만 잘 본 사람,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공부한 것 말고는 아무런 경험도 없는 사람이 손쉽게 판사가 될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판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이 배가 고파 담을 넘고 단 몇십 만원에 사람을 찔러 죽이는 사람들의 정서와 환경을 짐작이라도 하겠는가 싶습니다. 책도 안 읽으니 간접 체험할 가능성도 없고요... 큰일입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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