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병사에게도 명예가 있다" 미국美 나라國 (USA)

미 육군 소속 챈스 키슬링 상병은 이라크에 두 번 파견되어 근무했다. 첫 번째 나갔을 때,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정도가 심각해서, 자살 위험이 있는 사병으로 분류되어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이 되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관심 사병이 된 셈이다.

근무를 끝내고 돌아온 뒤 키슬링은 스스로 정신 치료를 받기를 원했다. 그런 그에게 군 당국은 2만7천 달러의 보너스를 제시하며 다시 이라크로 나갈 것을 제의해 왔다. 처음에 키슬링 상병은 이를 거절하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이라크에 가기로 결정했다.

2009년 4월에 두 번째로 이라크로 간 25세의 키슬링 상병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파견된 지 두 달 만인 6월19일에 그는 숙소 화장실에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라크 근무 당시의 챈스 키슬링 상병


키슬링의 부모인 그레그와 재닛 키슬링은 시신으로 돌아온 젊은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모든 것을 그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므로 남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사실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비록 자살이긴 하지만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 죽었는데도 그에 합당한 명예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병사의 부모가 원하는 명예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아들 챈스의 최종 상관이자 군 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의 공식 조문 편지가 그것이었다.

군 소속으로 전쟁터에 나가 복무하다 목숨을 잃게 되면, 미국 대통령은 고인의 봉사에 감사하고 가족을 위로하는 친서를 보내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키슬링 부부는 대통령의 조문 편지를 받지 못했다.


오바마가 전사 장병 가족에게 보내는 조문 편지


키슬링 부부는 아들이 죽고 난 뒤 보훈처를 비롯한 정부 기관으로부터 수많은 편지를 받았다.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도 있었고, 심지어 군 사망자 가족의 심경을 묻는 설문조사 편지까지 있었다. 부부는 편지들을 받을 때마다 아들의 죽음이 떠올라서 고통스러웠다. 엄마는 보훈처에, 불필요한 우편물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연락했다. 보훈처 담당자는 사과하는 전화를 걸어 왔는데, 그 뒤에도 우편물은 변함없이 계속 밀려왔다.

그러나 이 부부가 정작 기다리는 편지, 대통령으로부터의 조문 편지는 오지 않았다.

처음에 키슬링 부부는 아들의 죽음을 위로하는 대통령의 편지가 행정상의 착오로 누락된 것으로 생각했다. 몇 차례 확인 요청을 한 끝에, 부부는 이것이 실수가 아니라 미군의 정책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군 규정에 따르면 자살한 병사에게는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지 않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왜 사망한 병사의 부모에게 이 편지 한 장이 그토록 소중했던 것일까. 엄마 재닛 키슬링은 이렇게 말한다.


챈스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아이였어요. 그가 먼 외국 땅에서 죽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요. 그는 군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해 왔습니다. 6년 동안이나 그랬죠. 그 애의 봉사에 감사한다는 대통령의 편지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이 편지를 받아야, 이제 모든 일은 끝났고 아들을 떠나 보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아들이 봉사한 시간과 희생이 헛되지 않았으며 누군가 이에 감사한다는 증명과 같은 것이죠. 이게 있어야 편하게 아들을 보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바쁜 건 알지만, 편지에 사인 하나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처럼 자식을 전쟁에 내보내 희생시키고 고통을 겪는 부모들은 모두 자식에게 대통령의 편지라는 정당한 명예를 안겨 주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키슬링 부부는 이러한 명예를 얻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대통령 오바마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고, 지역 의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대중매체와 시민단체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부부의 노력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군 유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서서히 공감을 넓혀 갔으며, 이 문제를 국가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아들이 죽은 지 2년이 넘은 2011년 7월, 부부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미국 정부가 군 사망자의 조문 편지 정책을 바꾸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백악관은 전투나 사고로 사망한 병사가 아니더라도 대통령 명의로 가족에게 공식 조문 편지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새 정책은 이러한 변화가 발표된 2011년 7월5일부터 시행된다. 따라서 키슬링 부부는 2년 전에 벌어진 아들의 사망과 관련한 대통령의 조문 편지를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들에게 비공식 위로 친서를 보낼 예정이다.

새로 바뀐 정책은 사망의 원인과 관계없이 전쟁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병사에게 적용된다. 결의에 찬 사람들의 견인불발하는 노력이 세상을 또 조금 바꾸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 각종 장애에 시달리다 자살한 퇴역 병사들은 여전히 명예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중이거나 이로부터 돌아 온 병사들 2백만여 명 중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증상을 보이는 병사들은 3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PTSD도 늘어나고 자살하는 현역 및 퇴역 군인도 늘어난다. 전쟁의 또다른 희생자들이다.


※ 키슬링 상병 이미지: Democracy Now! 동영상, 편지 이미지: 이 곳.

 

덧글

  • 2011/07/31 22: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8/01 12:06 #

    뒷 단락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러한 절차가 보상금이나 유가족 처우 같은 보훈 조처와 직접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측면으로 볼 수도 있을텐데, 저 나라의 경우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의 '기계 사인'은 정말 논란의 여지가 있군요. 사정이 이해되긴 하지만... 흥미로운 화제입니다.
  • 민노씨 2011/08/02 10:57 # 삭제 답글

    요즘 가장 자주 찾는 블로그가 들풀님의 '가로수' 블로그입니다. : )
    마지막 문단은, 몇몇 영화들의 잔상들을 떠올리며, 잔잔한 여운을 남기네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에게도 명예는 있다"는 문장은 많은 시대적 변화를 함축하는 것 같습니다.
    제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고전적인(?) 군사문화에 대한 순응화된 감수성을 다시한번 일깨우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항상 좋은 글 고맙습니다.

    추.
    종종 댓글대화에 비밀글이 있어서, 어떤 내용이었을까 궁금하곤 한데, 위 댓글 대화도 무척 궁금하네요. ㅎㅎ
  • 민노씨 2011/08/02 11:08 # 삭제 답글

    아참, 종종 트위터에 가로수 블로그 글을 소개하곤 하는데요.
    들풀님께서도 직접 트위터 등을 쓰시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곤 합니다.
    지난 인주찾기 컨퍼런스 펄님 발제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트위터/페북 같은 SNS는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나요? (쓰신다고 하셔도 왠지 비밀에 부치실 것 같지만)

    저는 트위터에 대해선 반쯤 회의적이고, 페북에 대해선 대단히 비판적이지만, 구글플러스는, 본질적으론 (익명성을 반강제적으로 실명화하는 점이나 단일프레임에 모든 것이 수렴되는 현상에 대해) 우려스럽지만, 트위터와 페북에서 느꼈던 저항감을 많이 해소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좀더 써봐야 확실해지겠지만요. 혹시라도 구글플러스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해서.. 사족처럼 여쭤봅니다. ^ ^

    이미 초대장을 받으셨거나, 쉽게 구하실 수 있겠지만, 혹여라도 G+ 쓰실 생각이 계시고, 초대장이 없는 경우라면, 들풀님을 직접 초대하는 영광을 누려보고 싶네요. 혹여 그런 경우라면 skymap21@gmail.com 로 간단한 메일(한줄도 많죠 ㅎㅎ) 부탁드립니다. : )
  • deulpul 2011/08/02 13:52 #

    제가 트위터를 한다면... 1) 미친다(140자 제한 때문에) 2) 운다(팔로잉 0000명, 팔로워 0명) 3) 다시 미친다(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이상한 사람들의 트윗 때문에) 4) 다시 운다(어느 새 날이 새네...) 의 악성 사이클이 무한 반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로서는 그저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최고에요...

    사실 아포리즘적인 메시지에 흥미도 있고, 세상이 소비하기 편한 방식으로 따진다면 그 편이 더 소구력과 친화력이 있다는 생각도 들며, 더 나아가 이를테면 '2mb2ThumbsUp' 같이 지극히 친정부적인 가상 트위터를 운영해 봐도 재미있겠다 싶긴 합니다만... 저는 아무래도 질질 끄는 장문이 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모두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항상 관계에 목말라 하면서도(라기보다 관계를 빙자한 맥주에 목말라 하면서도...), 인터넷에서는 관계보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소통하고 싶은 게 제 취향인 모양입니다.(맥주가 안 나오니까...). 관계란 인간 관계 자체가 아니라 싸이월드의 1촌 관계 같은 것을 말씀드리는 거지요.

    G+는 남탕이라는 소문이 돌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는... 은 농담이고요, 아직까지 이 자의 실체를 잘 모르긴 합니다만, 제 인터넷 자아는 음습한 그늘만을 찾아다니는 성격인지라 아마 당장은 친해지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고맙게 초대해 주신 일을 꼭 기억하고 있다가 신청드리겠습니다. 영광이라뇨, 초대받은 제가 당연 영광이지요, 하하.
  • 민노씨 2011/08/03 03:55 # 삭제 답글

    그러시군요. ^ ^
    읽으면서도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네요.
    더 조르는 건 비례인 듯 하고... 다만 언제든 생각이 바뀌시면 청해주시길 바라봅니다. : )
  • deulpul 2011/08/04 12:11 #

    더 조르시는 게 비례가 아니라, 비례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과공이 비례입니다, 하하. 네, 잘 알겠습니다.
  • 우기지니 2011/08/04 09:29 # 삭제 답글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혹, PTDS는 PTSD의 오기가 아닌지요?

    건필하세요.^^
  • deulpul 2011/08/04 12:11 #

    헐, 실수를 했군요. 수정하였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뉴욕에서 2011/08/10 04:56 # 삭제 답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제나 차분히 생각할 거리를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들풀님 글과 클리오님 글을 좋아하는데, 요즘 클리오 님이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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