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이름, 한국 중매媒 몸體 (Media)

올블로그 → 이정환닷컴을 통해 본 <뉴욕 타임스>의 인터넷 실명제 관련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인터넷에서 이름 불기

3년 전에 한국에서는 유명 여배우가 인터넷에서 시달림을 당한 끝에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하여,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패악질을 척결하기 위한 급진적인 정책이 도입되었다. 포털을 비롯한 인기 사이트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려면 반드시 가명이 아닌 실명을 쓰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에 대규모 보안 사고가 발생하여 인터넷 사용자 3천5백만 명의 주민등록번호가 해커에게 유출된 뒤, 한국 정부는 이 같은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한국 인터넷 사용자가 웹사이트에 가입하려면 실명 확인을 위해 이 번호를 적어 넣어야 한다.

한국의 사례는 인터넷 '실명' 정책이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개인 정보가 위협 받는다는 것은 그 한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온라인 익명성은 아랍 세계의 반정부 봉기를 주도한 이들과 같은 정치적 반대자나 기업의 내부 고발자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다. 미국 대법원은 익명성 보장이 헌법에 적합하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인터넷 익명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지난달에 독일 내무장관 한스-페터 프리드리히는 블로거들이 실제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테러리스트 용의자 브레이빅이 '피요르드맨'이라는 가명 아래 활동하던 한 블로거를 추종했다고 자백한 사례를 제시했다. (이 부분은 말이 좀 안 맞다. 테러리스트가 블로거를 추종했다는 사실과 그 블로거가 익명이었다는 사실이 무슨 관계인가. 원래 이 기사는 브레이빅 자신이 피요르드맨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고 서술했으나(따라서 익명성의 폐해),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본문처럼 수정되었다. 기사의 주장이 모호해진 것은 어쩔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사실은 기사 맨 끝에 '바로잡습니다'로 밝혀져 있다.)

프리드리히 장관은 <슈피겔>의 기사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때는 보통 실명을 쓴다. 왜 인터넷이라고 해서 이런 사정이 달라져야 하는가?"하고 말했다.

구글 회장 에릭 E. 슈미트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슈미트는 지난달 에든버러에서 열린 미디어 관련 컨퍼런스에서 "만일 인터넷 사용자가 개(dog)나 허위 인물, 스패머가 아닌 실제 사람 신분으로 활동한다면 인터넷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슈미트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구글의 새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인 구글 플러스를 언급하는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실명을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구글 플러스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열린 인터넷'을 추구한다고 주장해 온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익명성을 폄하하는 말을 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온라인 토론 참여자들이 실명만을 써야 한다면 인터넷 공간이 좀더 성숙한 곳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맞춤법과 구둣점을 챙기기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폭력들이 꼴사납다는 것도 사실이다. 극단적인 일이 벌어진 경우에서 익명성은 더 이상 방어해야 할 가치가 아닌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온라인으로 상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일은 어떤가. 직접 얼굴을 대고 하거나 편지를 보내서 협박하는 일보다 경미하다고 보아야 하는가. 지금 미국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이 진행중이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남자가 매릴랜드의 불교 지도자와 그녀의 동료들을 위협하는 트위터 메시지 8천 개를 익명으로 포스팅한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익명으로 활동하는 무법자와 꼴통들이라도 사법 당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찍어 낼 수 있는 수단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Anomymous'라는 조직에서 활동하는 악명 높은 해커 조직원들을 검거한 일련의 사례도 이 같은 점을 보여주는 증거다.

슈미트 회장이 실명 사용을 지지하는 것은 범죄를 예방하려는 이유보다는 사업 목적과 더 큰 관련이 있다. 구글은 사용자들의 신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데, 사용자 정보는 광고주를 비롯한 관련 사업체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에딘버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만일 사용자들이 실명을 쓴다면 좀더 책임감 있게 활동하리라 기대할 수 있고, 그들(의 활동)을 점검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고, 에... 또 그들에게 고지서를 보낼 수 있으며, 에... 또 그들의 신용카드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고, 등등이다. 이유는 쌔고 쌨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페이스북처럼 폐쇄적인 인터넷 서비스들도 '실명'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경선도 없는 인터넷에서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 사실은 또다른 한국 사례가 잘 보여준다. 구글은 자사 서비스인 유튜브와 관련하여 한국의 실명 정책을 따르기보다는, 유튜브 한국 사이트의 업로드를 막고 그 사용자를 국제판인 Youtube.com으로 유도하는 편을 선택했다.

실제 세상은 때때로 개판이고 혼돈스러우며 익명스럽다. 인터넷 역시 그런 성격을 갖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 이상 많이 동의할 수가 없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한국어로 옮겨 놓고 보니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 인터넷이 실제 현실 상황을 반영하는 편이 규제를 강제하는 편보다 낫다는 취지다. 굳이 이런 사족을 달지 않아도 이 블로그의 눈 밝은 익명 독자들은 다 알아챘겠지만 말이다.

기사에서는 '실명제("real name" system)'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모두 실명이라는 부분에 따옴표가 붙어 있다. '이른바' '가로되' 등의 의미가 담긴 따옴표인데, 낯설다는 의미가 읽힌다. 한국을 제외한 곳에서는 인터넷 실명제라는 말 자체가 낯설다. 실명제 관련 기사에서 한국이 여러 차례 언급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을 흔히 '인터넷 강국'이라고 한다. 많은 거품이 끼인 표현이고, 때로는 '인터넷이 강한 나라'라는 뜻인지, '인터넷 때문에 강한 나라'라는 뜻인지, '인터넷 회사들이 강한 나라'라는 뜻인지, '사용자가 아니라 인터넷만 강한 나라'라는 뜻인지, 심지어 '인터넷 관리규제가 강한 나라'라는 뜻인지 헷갈릴 때가 많지만, 어쨌든 각종 인프라와 더불어 전인민의 네티즌화에 가까운 침투성(penetration)의 양상으로 볼 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명제는? 선진국임의 증표인가, 아니면 후진국임의 증표인가? 얼른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기사에 언급된 구글 슈미트 회장의 에딘버러 회견 문답에는 구글 플러스의 실명 정책에 대한 부분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Q: 구글 플러스를 둘러싸고 초기에 벌어진 논란 중 하나는 사용자에게 닉네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컨퍼런스에 온 NPR의 앤디 카빈은 트위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실명을 쓰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어떻게 구글은 구글 플러스의 실명 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단 말인가?"

A: 글쎄, 그에 대한 내 첫 대답은 구글 플러스는 전적으로 선택 사항이라는 점이다. 사실 무지하게 많은 사람이 이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어 한다.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굳이 구글 플러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Q: 그러나 당신이 이란이나 시리아 사람이라면 (실명을 써야 하는) 구글 플러스를 사용하지 않겠지?

A: 이란과 시리아라... 이건 좀 복잡한 문제니까 뒤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고, 서구 사회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구글은 사람들이 실명을 쓰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앞에서 말한 점들과 관련이 있다.

실명에 대한 요구는 이렇게 생긴 것이고, 물론 앞으로도 이에 대한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대표하고 표현하기를 바란다. 실명을 쓰는 것이 적합하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구글 플러스는 전적으로 선택 사항이다. 당신이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쓰지 마라. 뻔한 문제다.

이란과 시리아 같은 경우라면, 내가 이 나라들에 대해 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자세히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전적으로 다른 사회다. 거기서는 개인 정보가 보호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보편적이고, 인터넷 사용이 추적되고 비밀 경찰이 뒤를 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보안) 감수성은 다른 세계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구글 플러스가 옵션이므로, 싫은 사람은 쓰지 말라, 쓰고 싶어하는 사람 널리고 널렸다는 말은, 맞긴 맞는 말인데도 약간 정이 떨어질랑말랑 한다.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하려는 움직임을 보면 언제나 떠오르는 말이 있다. 아서 밀러의 연극(나중에 영화로도 나옴) <시련(The Crucible)>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 존 프록터는 자신의 이름이 마녀 사냥을 위한 가짜 고백문에 서명되어 널리 게시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이름과 목숨을 맞바꾸었다. 이름으로 상징되는 개인의 정체성을 공공화하는 일이란, 때로 무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목숨처럼 엄중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판사: 자, 그럼 이제 자네의 진술서에 서명하게.

프록터: 당신은 (내가 자백하는) 모든 것을 지켜 보았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소?

판사: 서명하지 않겠다는 겐가? 프록터,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증거가 필요하네. 자네가...

프록터: 나는 이미 다 자백했소! 회개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꼭 이렇게 대중에게 알려야 한단 말이오? 신은 내 이름이 교회 벽에 나붙어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실 것이오. 신은 내 이름을 이미 아시며, 또 나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이오. 그것으로 충분하오!

판사: 프록터, 나는 자네가 저지른 죄에 대한 명백하고 법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프록터: 당신이 최고 재판관이지 않소? 당신의 말이면 충분한 거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죄를 자백했다고 말하시오. 내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계집애처럼 울며 매달렸다고 말하시오. 무엇이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시오. 하지만 내 이름만은...

판사: 그럼 왜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나에게 설명해 보...

프록터: 내 이름이니까! 내 인생에서 또 다른 이름을 가질 수는 없으니까! 나는 거짓 고백을 했고, 그 거짓말에 서명을 해야 하니까! (거짓에 서명을 하면) 나는 당신이 목을 매단 사람들의 발치에 날리는 먼지만큼도 가치가 없으니까! 내 이름 없이 어떻게 살란 말인가? 나는 당신에게 내 영혼을 주었소. 그러니 내 이름은 나에게 남겨 두란 말이오-!

Danforth: Come, then, sign your testimony.
Proctor: You have all witnessed it-- it is enough.
Danforth: You will not sign it? Proctor, the village must have proof that--
Proctor: I have confessed myself! Is there no good penitence but it be public? God does not need my name nailed upon the church! God sees my name; God knows how black my sins are. It is enough!
Danforth: Mr. Proctor, I must have good and legal proof that you--
Proctor: You are the high court, your word is good enough! Tell them I confessed myself; say Proctor broke his knees and wept like a woman: say what you will, but my name cannot--
Danforth: Then explain to me, Mr. Proctor, why you will not let--
Proctor: Because it is my name! Because I cannot have another in my life! Because I lie and sign myself to lies! Because I am not worth the dust on the feet them that hang! How may I live without my name? I have given you my soul; Leave me my name! (원문 텍스트)


나도 영혼을 드렸으니까 이름은 요구하지 마시기 바란다.

 

덧글

  • 뱀  2011/09/09 10:02 # 답글

    구글플러스가 참 장점이 많은 서비스라고 생각했는데 실명제 관련 발언을 보니 실망스럽군요. 현재 구플 한국 서비스는 사실상 실명제가 아니고 닉네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성과 이름을 따로 넣어야 하기 때문에 예컨대 갈매기가 닉이라면 성이 갈, 이름이 매기, 이렇게 입력해야 합니다. 자기 이름이 '매기'라고 뜨게 되죠. 그리고 성과 이름의 언어가 다르거나 하면 프로필 정지를 먹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짜증나는데 혹시 나중에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명을 강요하게 될까 벌써부터 걱정이 되네요.
  • deulpul 2011/09/09 13:19 #

    그렇군요. 실효도 적으면서 불편하게만 되어 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일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의 방침이 그러하고 그런 방침을 유지해도 이용자 확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니까, 이용자 측에서는 쓰든지 말든지 선택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슈미트 회장의 말처럼, 원하지 않으므로 쓰지 않습니다. 법제화에 가까운 수준으로 실명제를 요구할 경우, 적어도 한국에서 이 서비스는 설령 성공하더라도 제한적 성공에 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 young026 2011/09/09 15:56 # 답글

    실명을 걸고 활동하는 시스템에 책임감과 신뢰성 같은 특별한 장점도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긴 합니다. 예전의 VT 온라인 서비스가 그랬고, 그쪽에서 파생된 커뮤니티 중에도 지금 활동하는 곳이 있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익명성 하에서 지켜질 수 있는 것에는 그보다 더 소중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 많으니까요. 실명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범용성이 크고 대다수에게 필요성이 높은 부류의 시스템에서는 익명성이 지켜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deulpul 2011/09/14 11:12 #

    실명화의 정도와 책임감은 비례해야 하지만, 실제에서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 미발표 연구에서도 실명/비실명 댓글을 비교한 결과 큰 차이가 없다는 쪽으로 결과가 나왔고, 실명 등록하고 쓰게 되어 있는 언론사 댓글란을 보아도 실명이란 것 자체가 온라인에서 책임 있는 활동을 보장해 주는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명화를 투명성의 차원으로 보면, 그러한 시스템이 가진 장점이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상투적인 규제와 편의주의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실명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 2011/09/13 03: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09/14 11:15 #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도 하지요. 저는, 이렇게 불합리하거나 무리한 제도는 끊임없는 문제 제기(주로 귀속력이 있는 법률적 방법)를 통해 귀찮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이 잘 벌어지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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