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런 9/11'과 십자가 논란 미국美 나라國 (USA)

크루그먼 "9·11 악용 수치스럽다" 네오콘 맹비난

폴 크루그먼이 <뉴욕 타임스> 사이트에 운영하는 자신의 블로그에 짤막한 글을 써서 9/11 이후 벌어진 일들을 비판했다고 한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수치스러운 세월

9/11을 추도하는 움직임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인가?

내가 그렇게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며,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9/11 이후 벌어진 일은 매우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우파들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인정하든 않든 말이다. 이 끔찍한 사건은 사회를 통합하는 계기가 되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쐐기처럼 쪼개는 이슈가 되고 말았다. 버니 케릭*, 루디 줄리아니,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조지 W. 부시 같은 가짜 영웅들은 국민의 공포심을 활용하여 현실적 이익을 챙기느라 바빴다. 뿐만 아니라 네오콘은 자신들이 벌이고 싶어했던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9/11 공격을 활용했다. 이런 전쟁은 9/11과 아무런 관련도 없었으며, 전쟁을 수행하는 이유는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도 제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편한 길을 선택하여 부조리에 눈을 감고 이 참극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데 일조했다.

9/11의 정신은 돌이킬 수 없이 오염되어 버렸다. 수치스러운 사건의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점을 미국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9/11 10주년 추도 움직임도 의외로 조용한 것이다.)

이 글에는 댓글을 허용하지 않겠다. 왜 그런지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다.

(* 버나드 케릭: 9/11 당시 뉴욕 경찰청장. 줄리아니 시장 휘하에 있었으며, 2004년에 부시에 의해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되기도 했으나, 뇌물 수수, 탈세, 위증 등의 혐의가 드러나 구속되었고 현재 수감중이다.)


강한 표현이 좀 있지만, 정략적 입장에서 벗어나 보면 별로 논란이 일어날 만한 주장이 아닌 듯하다. 그런데도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우파 인간들은 이 짧은 글을 놓고 치를 떤다고 한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 아닐까 싶다.

9/11 이후에 온갖 뻘짓이 벌어진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미국으로서는 사상 초유의 사건인데다, 비주얼로 그대로 중계되는 경천동지할 일을 겪은 터라, 국가와 사회와 개인이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미쳐 돌아갔던 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단기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었으며, 이에 편승하여 공포를 조장하고 그로부터 현찰을 챙기는 전쟁광들이 마음껏 발호하도록 방치되었다는 점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진정한 애국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크루그먼의 말대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뻘짓이라고 했지만, 9/11 이후 미국의 침공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간인과 미국 병사가 겪은 비극을 뻘짓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뻘짓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9/11이 벌어진 2년 뒤 나는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라운드 제로' 현장에 갔더니 웬 웅장한 철제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당시 느낌을 나는 이렇게 썼다.


9/11 사건이 벌어진 지 2년 가까이 된 2003년 여름에 뉴욕에 잠깐 들렀습니다.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 빌딩 자리를 지나다 보니, 한 가운데에 엄청나게 큰 철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건물의 잔해 철거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발견했다는 이 십자가 형태의 구조물은 빌딩에 박혀 있던 철제 빔이었습니다. 잘리고 구부러진 수많은 철제 빔 잔해들 중에서 우연히 십자 모양 비슷하게 생긴 것을 발견한 미국인들은, 이 건축 폐기물에 지나지 않는 고철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현장 한복판에다 떡하니 세워두었던 것입니다. 폐허 더미 한가운데에 거대한 철십자가가 꽂히자마자, 이 곳은 테러 공격의 희생지에서 종교적 성지로 갑자기 탈바꿈했습니다.

WTC 같은 초고층 건물에서 나온 산더미 같은 잔해를 치우다 보면, 십자가꼴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쓰이는 만(卍)자 형태의 조각도 나올 수 있고, 히틀러가 쓰던 철십자 문양도 나올 수 있었을 테며, 마음만 먹으면 별별 모양 다 찾아낼 수 있었겠지요. 그런 속에서 저렇게 십자가를 찾아내 세우며 피격 현장을 성지로 둔갑시키려 노력하는 그네들 모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치하기 짝이 없게 보였습니다.


이것은 유치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종교(기독교)의 뜻을 스스로 훼손하는 덤앤더머 같은 짓이 아닐 수 없었다. 테러 현장의 쓰레기 더미에서 나뒹굴던 십자가 모양의 쇳덩어리가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란 대체 무엇인가.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쓰레기 더미에 십자가를 처박아 둔 신의 뜻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구나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인정하듯, 테러 현장에 크리스천의 상징물인 십자가를 세운 것은 분명한 종교적 동기에서 나온 일이다. 9/11 테러 현장과 기독교는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희생자가 모두 기독교인들이기라도 하던가. 이것은 말하자면 미국 사회를 통합하기보다 파죽(破竹)처럼 쪼개는 또 하나의 쐐기를 만들어 버린 꼴이다.

철제 빔 십자가는 테러로 불붙은 국수주의의 광풍에 기독교주의를 덧입히려는 비이성적 뻘짓의 하나였을 뿐이다. 헌법에 제정분리가 명시되어 있는 미국이지만, 나라가 광풍에 휩싸일 때 이러한 원칙을 돌아 볼 여력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철제 빔 십자가는 지금껏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던 모양이다. 현장에 9/11 기념관이 설립되면서, 올 7월에 이 십자가는 현장에서 들어올려져, 지하 전시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전시관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그리고 한 무신론 단체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 시점이다.

American Atheists라는 단체는 이 특정 종교의 거대한 상징물이 공공 자금(즉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념관에 설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이 단체는 공공 기념관에 특정 종교의 상징물만이 전시되는 것은 적합하지 않으며, 이를 전시물에서 제외하거나 아니면 무신론을 비롯한 다른 믿음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이 옳고 그름은 차치해 두자. 문제는 테러 공격 이삼일 뒤에 현장 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웠을 때부터 벌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이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뒤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미친 바람을 누가 감히 거스를 수 있었을 것인가. 10년이나 지난 지금도, 9/11 십자가를 둘러싼 소송 소식을 전해들은 Fox News 시청자들이 이 무신론 단체 회원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말을 무시로 내뱉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소송을 제기한 무신론 단체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또 그 소송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에게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란 존재와 그들이 모여서 만드는 사회란 대체 어디까지 비이성적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건물 잔해에서 찾아 낸 십자가 모양, 예전에 내가 쓴 그대로 다시 옮기자면 "WTC 같은 초고층 건물에서 나온 산더미 같은 잔해를 치우다 보면, 십자가꼴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쓰이는 만(卍)자 형태의 조각도 나올 수 있고, 히틀러가 쓰던 철십자 문양도 나올 수 있었을 테며, 마음만 먹으면 별별 모양 다 찾아낼 수 있었겠지요" 하는 곳에서 발견한 십자가, 이를 이제 공공 기념관에 영구 전시하겠다는 발상,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덤앤더머의 희극처럼 보인다. 크루그먼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종교로 덧칠되고 오염된 9/11 정신의 수치스러운 사례라 할 만하다.

이런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닌 듯, 이번주에 나온 풍자 신문 <더 어니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9/11 기념관 큐레이터, 테러 현장에서 발견한 나치 철십자 문양을 전시하지 않기로 결정

9/11 공격으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직후 우연히도 현장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나치 철십자(swastika) 모양의 철제 빔이 발견되었음에도, 9/11 기념관측은 이 상징물을 전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나치 철십자 모양의 철제 빔은 지난 10년 동안 보관되어 오던 대로 비공개로 수장될 예정이다.

기념관의 대변인인 스탠리 모겐스턴은 "WTC 빌딩의 잔해에서 가로/세로 각각 80피트나 되는 대형 나치 철십자가 정확한 모양을 한 채 발견된 것은 매우 기적적인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철십자를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기념관 설립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징물이 발견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학적으로 보아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기념관의 설립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지 신나치 조직들은 철십자가 전시물에서 제외된 사실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 거대한 철십자가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라고 주장하며 "9/11은 모든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여기에는 아리안 인종의 유전적 우수성을 믿는 사람들도 포함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무신론 단체의 소송이 제기되자, 공화당 소속 한 하원의원은 9/11 십자가를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는 입법을 발의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피자 후라이팬에서 마리아상이 나타났다며 신의 계시라고 주장하고, 월마트 영수증에서 아무도 본 적 없는 예수의 얼굴을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널린 시뮬라크라의 세상에서, 9/11 십자가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비록 그 덤앤더머의 규모가 엄청나지만 말이다.

(※ 참고: 이 일과 관련하여 내가 본 것 중에서 비교적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주장은 이것. 요약하면, 9/11 십자가는 추모의 상징물로는 어울리지 않고 기념관 전시물로는 적합하다는 정도.)


※ 이미지: TheBla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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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1/09/14 11:17 # 답글

    미국의 과학 기술력과 그정신은 미국으로 유학온 사람들에게서 나온것이니까요.
  • deulpul 2011/09/15 14:21 #

    네, 그렇긴 한데, 그게 어떤 맥락에서의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1/09/15 14:30 #

    아 너무 짧게 써놓았네요. 죄송... 밑의 분들이 덧글과 비슷한 말을 쓰려고 했었는데;;;

    전에 무진장한 황금이 유입되어서 무능력해진 스페인을 미국에 비유 하고 싶었답니다. 우연히 얻어진 돈과 힘으로 수많은 지식인들을 불러들여 결과를 얻고 더 좋아진것같지만, 사실 그들의 전체적인 생각하는 힘은 퇴화 해버린...
  • deulpul 2011/09/15 14:43 #

    아, 그런 말씀이셨군요.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영화 <이디오크러시(Idiocarcy)>가 황당무계한 코메디 영화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은유적으로 적시한 예언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 Hadrianus 2011/09/14 12:49 # 답글

    종교를 비판해야 할지 민주주의를 비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둘 다 인류의 훌륭한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그것들을 바보로 만드는 건 사람인 듯(....)
  • 긁적 2011/09/14 21:08 #

    넵.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
  • deulpul 2011/09/15 14:24 #

    사람이 엉망이다.
  • 긁적 2011/09/14 21:08 #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님의 이름으로 무신론자를 다 때려 죽이자!
    나이쓰.
    모두 죽이면 주님께서 판단하시겠지 -_-.....
  • deulpul 2011/09/15 14:23 #

    아닌 게 아니라, 저 폭스 뉴스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 중에는 "무신론자는 죽여서 신을 만나게 해줌으로써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라는 주장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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