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자본의 패악을 규탄하는 뉴욕 월 스트리트의 시위가 두 주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10월1일 토요일에는 맨해튼에서 브루클린으로 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브루클린 다리 주변에서 수백 명이 체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규모가 크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아직 '사람이 개를 무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서인지 한국 언론에는 보도가 많지 않다.
9월17일 맨해튼의 금융가 심장부인 주코티 공원을 점거하면부터 시작된 시위는 뉴욕 증권거래소와 뉴욕 경찰 본부를 중심으로 하여 연속적인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조를 비롯한 외부 조직들이 참여하면서 힘을 더하고 있고, 워싱턴,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앨버커키 등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뉴욕의 시위를 조직하고 진행하는 Occupy Wall Street는 겨울까지 농성과 시위를 계속할 예정이다. 아래는 이 조직이 뉴욕 시위를 시작하면서 내건 테마 포스터.

금융 자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경제 구조에 밟히고 밟힌 지렁이들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는 셈인데, 이게 어떠한 양상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미국과 세계를 주무르는 거대한 금융 자본의 영향력과 비교하면 수백, 수천의 시위대가 벌이는 거리의 규탄이란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지만, 시위에 참여한 한 교수의 말처럼 "We should try"의 마인드가 소중하다고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는데 세상이 저절로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뉴욕의 시위 현장에는 마이클 무어와 수잔 서랜든 같은 유명인도 먹거리를 들고 찾아 왔고, 노엄 촘스키는 OWS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격려했다. 촘스키의 이메일은 시위 현장에서 낭독되었고, 당사자의 허락을 얻어 블로그와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격려가 선동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월 스트리트의 거대 자본가들은 그렇게 볼 것이다. 시위대나 촘스키 뿐만 아니라 작금의 경제 상황을 우려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공공의 적으로 지목하고 있으므로 당연하다고 하겠다.
쪽방 아파트에서 월세를 걱정하며 라멘 누들로 끼니를 때우는 언임플로이드 제임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우울한 현실과 구조의 문제를 연결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저 시끄러운 놈들이 싫은 제임스에게 무어나 서랜든이나 촘스키의 격려는 가증스러운 선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온갖 법규를 주무르고 특혜를 받으며 무자비하게 이윤 추구에 매진하고 있는 금융 자본가들은 이런 제임스들에 크게 빚지고 있기도 하다. 범인의 처지에서 볼 때, 칼에 푹푹 찔리고 있는 피해자가 범행을 말리는 사람을 나무라는 것보다 더 고마운 상황이 있겠는가.
한편, 뉴욕 시위 확산 소식을 전한 뉴시스 기사에는 시위 양상과 관련하여 오해를 일으키거나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기사에는 2주 동안 700여 명이 체포된 것처럼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토요일 하루의 시위에서 체포된 숫자다. 시위 상황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잘못이다. 이렇게 체포된 시위대는 대부분 범칙금 딱지를 받고 당일로 풀려났다. 거대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 금융을 규탄하는 시위의 결과가, 구제 금융의 원천이 되는 세수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또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를 발포했다"라고 했으나, 그동안 경찰의 대응 중 최루제 관련 사항은 9월24일 경찰관 한 명이 여성 두어 명에게 최루액 스프레이를 분사한 게 전부다. 경찰의 '진압'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여하튼 시위에 대한 경찰 대응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잘못이다.
이 최루 스프레이 분사는, 시위 현장의 몸싸움 광경에 익숙한 우리 시각에서 보면 비교적 사소한 사건인데도, 동영상으로 찍혀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큰 물의를 빚었다. 해커 그룹인 Anonymous는 이 경찰관의 신원을 파악해 냈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라는 경고 메시지까지 날렸다. 뉴욕 경찰은 이 경찰관의 대응이 적법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덧붙임: 이 일은 경찰관의 권한 남용 사건이 되어, 뉴욕 경찰국의 내사팀(IAB)와 맨해튼 검찰국에서 동시에 독립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한 우려와 항의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찰의 권한 남용에 대한 조사를 업무로 하는 뉴욕시 해당 부서에는 항의가 400건 가량 쇄도했는데, 그 중 다수가 뉴욕 주 이외의 다른 곳 시민들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행동해야 일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선동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한국의 70년대 말 험난한 시기에 나왔던 '선동시' 하나를 소개한다. 이 시를 보면서 그 선동성에 치가 떨리는 분이 있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선동'의 결과로 획득되었다는 점이라든가, 올 초 아랍 독재를 무너뜨린 역사의 현장에서도 많은 '선동'이 그 동력이 되었다는 점 같은 것을 상기해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 '프리케어리어트(precariat)'는 '불안정한, 위태로운'을 뜻하는 precarious 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의 합성어로, "일자리가 불안정하며 고용된 경우에도 피고용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함에 따라 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집단'을 뜻한다(맥밀란 사전). 주로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 통합의 시대에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뜻한다. 신생어라서 그런지 위키피디아에 간단하게 두어 줄로 설명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비정규직 같은 고용 불안 상황의 노동자뿐 아니라 고용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도 포함시키고 있다. 대충 찾아보면 이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5, 6년 전부터임을 알 수 있다.
영국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올 7월에<프리케어리어트: 위험한 신흥 계급(The Precariat: The New Dangerous Class)>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프리케어리어트는 "직업 안정성, 안정적인 사회 안전망, 보호 규제 등을 갖지 못한 채 일련의 단기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불안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된다. 이것은 세계적인 현상인데, 자본의 힘은 점점 강해지는 반면 노동측은 갈수록 무력하게 되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며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과 복리 후생 등이 점점 열악해지는 등의 측면으로 나타난다. 넓게는 신자본주의적 경제 구조의 결과로, 좁게는 자본주의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기업 경영의 손해를 전적으로 노동측에 떠넘기는 결과로 빚어진다.
9월17일 맨해튼의 금융가 심장부인 주코티 공원을 점거하면부터 시작된 시위는 뉴욕 증권거래소와 뉴욕 경찰 본부를 중심으로 하여 연속적인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조를 비롯한 외부 조직들이 참여하면서 힘을 더하고 있고, 워싱턴, 보스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앨버커키 등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뉴욕의 시위를 조직하고 진행하는 Occupy Wall Street는 겨울까지 농성과 시위를 계속할 예정이다. 아래는 이 조직이 뉴욕 시위를 시작하면서 내건 테마 포스터.

금융 자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경제 구조에 밟히고 밟힌 지렁이들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는 셈인데, 이게 어떠한 양상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미국과 세계를 주무르는 거대한 금융 자본의 영향력과 비교하면 수백, 수천의 시위대가 벌이는 거리의 규탄이란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지만, 시위에 참여한 한 교수의 말처럼 "We should try"의 마인드가 소중하다고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는데 세상이 저절로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뉴욕의 시위 현장에는 마이클 무어와 수잔 서랜든 같은 유명인도 먹거리를 들고 찾아 왔고, 노엄 촘스키는 OWS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격려했다. 촘스키의 이메일은 시위 현장에서 낭독되었고, 당사자의 허락을 얻어 블로그와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융 기관들로 구성된 월 스트리트의 깡패들이 미국인과 세계 사람에게 막대한 해를 끼쳐 왔다는 점은 장님이 아니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난 30년 사이에 경제와 정치에 미치는 이들의 영향력은 급속히 커졌으며, 이에 따라 이러한 해악도 점점 더 증가해 왔다. 전체 인구 중 1%에 지나지 않는 소수 집단에게 막대한 부가 집중되고 정치 권력도 쏠리는 악순환이 고착화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불안정한(precarious)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이른바 프리케어리어트(precariat)로 점점 더 전락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깡패들은 그들의 추악한 행위를 거의 완벽한 면책을 받으며 수행하고 있다. 덩치가 큰 탓에 무너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감방에 들어가지도 않는 것이다.
지금 월 스트리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용감하고 명예로운 저항은 이러한 재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헌신적인 노력을 이끌어 내며, 사회가 좀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월 스트리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용감하고 명예로운 저항은 이러한 재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헌신적인 노력을 이끌어 내며, 사회가 좀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격려가 선동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월 스트리트의 거대 자본가들은 그렇게 볼 것이다. 시위대나 촘스키 뿐만 아니라 작금의 경제 상황을 우려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공공의 적으로 지목하고 있으므로 당연하다고 하겠다.
쪽방 아파트에서 월세를 걱정하며 라멘 누들로 끼니를 때우는 언임플로이드 제임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우울한 현실과 구조의 문제를 연결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저 시끄러운 놈들이 싫은 제임스에게 무어나 서랜든이나 촘스키의 격려는 가증스러운 선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온갖 법규를 주무르고 특혜를 받으며 무자비하게 이윤 추구에 매진하고 있는 금융 자본가들은 이런 제임스들에 크게 빚지고 있기도 하다. 범인의 처지에서 볼 때, 칼에 푹푹 찔리고 있는 피해자가 범행을 말리는 사람을 나무라는 것보다 더 고마운 상황이 있겠는가.
한편, 뉴욕 시위 확산 소식을 전한 뉴시스 기사에는 시위 양상과 관련하여 오해를 일으키거나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기사에는 2주 동안 700여 명이 체포된 것처럼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토요일 하루의 시위에서 체포된 숫자다. 시위 상황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잘못이다. 이렇게 체포된 시위대는 대부분 범칙금 딱지를 받고 당일로 풀려났다. 거대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 금융을 규탄하는 시위의 결과가, 구제 금융의 원천이 되는 세수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또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를 발포했다"라고 했으나, 그동안 경찰의 대응 중 최루제 관련 사항은 9월24일 경찰관 한 명이 여성 두어 명에게 최루액 스프레이를 분사한 게 전부다. 경찰의 '진압'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여하튼 시위에 대한 경찰 대응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잘못이다.
이 최루 스프레이 분사는, 시위 현장의 몸싸움 광경에 익숙한 우리 시각에서 보면 비교적 사소한 사건인데도, 동영상으로 찍혀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큰 물의를 빚었다. 해커 그룹인 Anonymous는 이 경찰관의 신원을 파악해 냈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라는 경고 메시지까지 날렸다. 뉴욕 경찰은 이 경찰관의 대응이 적법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덧붙임: 이 일은 경찰관의 권한 남용 사건이 되어, 뉴욕 경찰국의 내사팀(IAB)와 맨해튼 검찰국에서 동시에 독립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한 우려와 항의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찰의 권한 남용에 대한 조사를 업무로 하는 뉴욕시 해당 부서에는 항의가 400건 가량 쇄도했는데, 그 중 다수가 뉴욕 주 이외의 다른 곳 시민들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행동해야 일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선동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한국의 70년대 말 험난한 시기에 나왔던 '선동시' 하나를 소개한다. 이 시를 보면서 그 선동성에 치가 떨리는 분이 있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선동'의 결과로 획득되었다는 점이라든가, 올 초 아랍 독재를 무너뜨린 역사의 현장에서도 많은 '선동'이 그 동력이 되었다는 점 같은 것을 상기해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버님 말씀
정희성
학생들은 돌을 던지고
무장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고
옥신각신 밀리다가 관악에서도
안암동에서도 신촌에서도 광주에서도
수백 명 학생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피묻은 작업복으로 밤늦게
술취해 돌아온 너를 보고 애비는
말 못하고 문간에 서서 눈시울만 뜨겁구나
반갑고 서럽구나
평생을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에서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이렇다 하게 사는 애비 친구들도
평생을 살 붙이고 살아온 늙은 네 에미까지도
이젠 이 애비의 무능한 경제를
대놓고 비웃을 줄 알고 더 이상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구나
그렇다 아들아, 실패한 애비로서
다 늙어 여기저기 공사판을 기웃대며
자식새끼들 벌어 먹이느라 눈치보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으로서
그래도 나는 할말은 해야겠다
아들아, 행여 가난에 주눅들지 말고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부디 네 불행을 운명으로 알지 마라
가난하고 떳떳하게 사는 이웃과
네가 언제나 한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
아직도 돌을 들고
피흘리는 내 아들아
(원문 시에는 연 구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편의를 위해서 세 곳에 행바꿈을 넣었다.)
정희성
학생들은 돌을 던지고
무장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고
옥신각신 밀리다가 관악에서도
안암동에서도 신촌에서도 광주에서도
수백 명 학생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피묻은 작업복으로 밤늦게
술취해 돌아온 너를 보고 애비는
말 못하고 문간에 서서 눈시울만 뜨겁구나
반갑고 서럽구나
평생을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에서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이렇다 하게 사는 애비 친구들도
평생을 살 붙이고 살아온 늙은 네 에미까지도
이젠 이 애비의 무능한 경제를
대놓고 비웃을 줄 알고 더 이상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구나
그렇다 아들아, 실패한 애비로서
다 늙어 여기저기 공사판을 기웃대며
자식새끼들 벌어 먹이느라 눈치보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으로서
그래도 나는 할말은 해야겠다
아들아, 행여 가난에 주눅들지 말고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부디 네 불행을 운명으로 알지 마라
가난하고 떳떳하게 사는 이웃과
네가 언제나 한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
아직도 돌을 들고
피흘리는 내 아들아
(원문 시에는 연 구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편의를 위해서 세 곳에 행바꿈을 넣었다.)
※ '프리케어리어트(precariat)'는 '불안정한, 위태로운'을 뜻하는 precarious 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의 합성어로, "일자리가 불안정하며 고용된 경우에도 피고용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함에 따라 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 집단'을 뜻한다(맥밀란 사전). 주로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 통합의 시대에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뜻한다. 신생어라서 그런지 위키피디아에 간단하게 두어 줄로 설명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비정규직 같은 고용 불안 상황의 노동자뿐 아니라 고용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도 포함시키고 있다. 대충 찾아보면 이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5, 6년 전부터임을 알 수 있다.
영국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올 7월에<프리케어리어트: 위험한 신흥 계급(The Precariat: The New Dangerous Class)>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프리케어리어트는 "직업 안정성, 안정적인 사회 안전망, 보호 규제 등을 갖지 못한 채 일련의 단기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불안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된다. 이것은 세계적인 현상인데, 자본의 힘은 점점 강해지는 반면 노동측은 갈수록 무력하게 되고, 고용이 불안정해지며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과 복리 후생 등이 점점 열악해지는 등의 측면으로 나타난다. 넓게는 신자본주의적 경제 구조의 결과로, 좁게는 자본주의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기업 경영의 손해를 전적으로 노동측에 떠넘기는 결과로 빚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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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밤비마마 2011/10/03 09:50 # 답글
deulpul 2011/10/03 11:46 #
밤비마마 2011/10/04 15:18 #
deulpul 2011/10/05 04:35 #
인형사 2011/10/03 13:14 # 답글
그러나 미국의 시민사회의 해체가 이미 극에 달했기 때문에 과연 기대해도 될런지?
deulpul 2011/10/03 15:39 #
인형사 2011/10/04 06:26 #
그런데 사시는 곳에서 이미 올해 초에 큰 시위를 직접 보셨을텐데 그 때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그것이 시작의 시작의 시작이었을텐데요. 그 때는 실제 점령도 하지 않았습니까? 초기에는 미국 진보세력의 상당한 기대를 받다가 소환투표의 실패로 많이 실망하던 눈치던데요.
deulpul님의 블로그가 재미있어 계속 읽다 보니 어디에 사시는지를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플라스틱 핑크 플라밍고가 공식 새인 도시 맞지요?
그리고 제임스의 행동의 이유는 무지나 귀찮음이 아니지요. 공화당 남부전략의 기획자였던 Lee Atwater에 의하면 말이지요. 그는 민주당이 흑인 시민권을 지지한 결과 민주당을 이탈하게 된 남부 인종주의적 백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 정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으며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추구하던 감세, 복지축소, 규제완화와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으로 충분하다고 했지요. 인종주의적 백인들은 그런 정책이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것이 흑인들에게 더 큰 불이익을 준다는 것을 또한 잘 알기 때문에 지지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 결과 미국에서는 공화당을 통해 인종주의와 대자본의 동맹이 성립된 것이지요.
인형사 2011/10/04 23:33 #
Lee Atwater식으로 제임스의 행동을 해석하면, 자신이 칼을 맞는 것은 옆에 있는 흑인이 자기보다 칼을 한 번이라도 더 맞으라고 찌르는 놈과 짜고 하는 작전인데, 그걸 방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화를 내지요. 더군다나 자신은 자신의 이익은 초개처럼 던지는 살신성인의 행동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deulpul 2011/10/05 04:43 #
이미 아시겠지만, 아이덴티티와 관련한 이 블로그의 방침은 DADT(Don't Ask, Don't Tell)과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입니다. 원래의 DADT와 NCND가 그렇듯, 피차 서로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도 일단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올 봄에서 여름에 걸쳐 미국 위스콘신에서 벌어진 정치적 파동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요, 저는 과거에도 썼지만, 상대방이 유력한 수단을 독점하고 있을 때 어떤 방법이 남아 있는가에 대해 여전히 고민합니다만,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냉소하지는 않습니다. '점령'이라면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는 의사당이라는 지리적 공간에서 시위를 했다는 부분보다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소환투표를 통해 정치적 공간의 지형을 바꾸려고 한 부분에 더 어울리는 말이겠지요. (Occupy Wall Street도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령은 종잇장처럼 얇은 차이로 실패했지만, 소환투표의 애초의 목표가 주지사임을 고려하면 소환 추진측에 희망적인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는 평가도 있습니다. 두고 봐야죠.
아, 그리고 '제임스'를 언급하신 부분은 제가 여기서 등장시킨 것과는 맥락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인형사 2011/10/06 03:51 #
제임스 이야기가 맥락이 다르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미국판 국개론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일부를 트랙백으로 올릴테니 괌심이 있으시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deulpul 2011/10/06 04:26 #
제가 이러한 방침을 대문에 내걸고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니까 인형사님이 모르실 수도 있고, 그래서 사과까지 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어쨌든 오로지 해당 공간에 글자로 표현되는 점만으로 교류하자는 것이 제 생각이고, 따라서 그 사이에 인형사님의 블로그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다른 분들의 경우에도 거의 모두 적용되는 저의 원칙입니다. 사실 그렇게 둘러 볼 시간이 허락되지도 않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제 블로그에서는 로그인 댓글과 익명 댓글이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냥 참고로 말씀드린 것이고요.
맥락이 다르다는 것은, 왜 갑자기 인종 차별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끌고 오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주제를 놓고 그 주제가 적용될 수 있는 사례를 찾기로 하자면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의 외연이 불필요하게 확장되는 형태의 토론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관계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deulpul 2011/10/06 04:59 #
dook 2011/10/03 14:57 # 삭제 답글
deulpul 2011/10/03 15:41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1/10/03 18:52 # 답글
deulpul 2011/10/04 03:15 #
2011/10/05 10:5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deulpul 2011/10/05 12:52 #
뉴욕에서 2011/10/05 21:52 # 삭제 답글
deulpul 2011/10/06 02:08 #
soocheenbu 2011/10/06 02:35 # 삭제 답글
덕분에 현지소식을 보다 정확하게 알게되었습니다.
퍼갑니다!
soocheenbu 2011/10/06 02:38 # 삭제 답글
deulpul 2011/10/06 0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