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경원 14세 때時 일事 (Issues)

서울 시장 후보자로 나온 이들에 대해 몇 가지 훑어보다가, 한나라당 후보 나경원의 선거용 홈페이지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감상 후 첫 인상은 이렇다. 이 홈페이지의 주요 컨셉을 기획하고 승인한 사람이 누군지 참 개념이 없구나. 민주주의, 그래 그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도 없고, 정치 홍보나 PR에 대한 개념도 없구나.

이 홈페이지는 3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맨 위에는 홈페이지의 뼈대가 되는 메뉴가 큼직하게 나열되었고, 가운데 공간은 이미지 사진이 넓게 차지했으며, 아래에는 실제 콘텐츠가 섹션으로 분할되어 들어가 있다.

문제는 뼈대가 되는 메뉴들과 거기에 담긴 상징성이다. 상단의 메뉴를 자세히 보면 이렇다.




나경원의 성이 나씨로서, 마침 한국어의 1인칭 주어 '나'와 같다는 점을 활용한답시고 이렇게 구성한 것 같다. 한국어를 쓰는 것이 틀림없는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선거용 홈페이지에서 '나'로 표기하지 않고 'Na'로 한 것은 그냥 넘어가자. 'NaSeoul' 같은 유치한 표현도 넘어가자. (이것은 박원순도 마찬가지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WONSOON = WS = WONDERFUL SEOUL'라는 말이 달려 있다. 이런 유치하고도 자위적인 국적불명 말들을 구질구질하게 꼭 붙여 놔야 직성이 풀리는 천박함들의 연원을 도대체 모르겠다.)

나경원 홈페이지의 메뉴 중, Na는 서울이다? 이건 밑에서 보자. Na도 시장이다!? 선거는 아직 치르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인지? 선언해 버린다고 시장이 되나?

이 홈페이지에서 'Na'는 서로 대척적인 두 가지 의미가 뒤섞인 채 쓰이고 있다. 하나는 방문자들이 스스로를 '나'로 보는 의미에서의 나고, 다른 하나는 나경원 자신을 말하는 나다. 전자의 예는 방문자가 글을 쓸 수 있게 만든 공간에 'Na도 시장이다!'라는 메뉴명을 붙여 놓은 경우다. "여러분이 시장이 되신다면 어떤 시정을 펼쳐 나가시겠습니까?" 같은 설명이 그러한 의도를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다른 메뉴들에서 Na는 나경원을 의미하고 있다. 첫 메뉴인 'Na는 서울이다'의 내용은 나경원의 출마 선언문과 프로필이다. 셋째 메뉴인 'Na의 정책공약'도 나경원이 내세우고 있는 선거 공약들이다. 넷째 메뉴인 'Na와 서울시민'은 말하나 마나다.

후보자 자신만을 두드러지게 내세운 메뉴들인데다 개념의 일관성조차 갖추지 못했다. 이것이 이 홈페이지의 개념상의 첫 번째 실패다.

짐이 곧 서울이다?

두 번째 실패는 더 시사적이다. 이 점은 맨 앞에 내세운 메뉴 'Na는 서울이다'에 집약된다. 앞서 보았다시피 여기서 Na는 갈 데 없는 나경원이다. 출마 선언과 프로필로 연결되는 이 메뉴는 다시 말하면 '나경원은 서울이다'인 것이다.

마치 선언문 같은 이 말은 자연스럽게 루이 14세를 떠올리게 만든다. 프랑스 절대 왕정의 전제 군주였던 그는 흔히 '짐은 곧 국가다(L'État, c'est moi)'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논란이 있지만, 그 여부야 어떻든 이 말은 국가와 인민에 대한 그의 자세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왕권은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의 신봉자이기도 한 루이 14세에게 국가는 곧 그 자신이나 마찬가지였고, 인민은 통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재위 기간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그가 민주주의, 그래 그 자유민주주의형 인간이 아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이런 전제 군주적인 마인드가 가장 잘 집약되어 있는 것이 '짐은 곧 국가'라는 말이며, 따라서 그가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모호함에도 언제나 그를 대표하는 말이 되어온 것이다.

21세기 민주 공화제 국가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시장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의 홈페이지에 걸린 캐치프레이즈가 18세기 전제 군주의 절대 왕정을 상징하는 텍스트와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는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안효상은 루이 14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국왕을 통해 국가를 인격화하려는 절대주의의 시도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것이었다. 모든 면에서 고도로 발전된 국가의 개념은 권력의 비인격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왕에 의한 모든 형태의 인격화를 배제하려고 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따라서 절대주의건 아니건 간에 모든 왕정 국가는 그 이름에서부터 폭발적인 긴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프랑스 대혁명은 국왕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통해 국가를 새롭게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다.

절대 왕정 국가에서조차 이랬다.

하긴 나경원이 속한 집단의 특성을 생각하면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가 속한 집단과 같은 소속으로 두 대 전에 서울시장을 했던 사람은 서울을 들어다가 자신이 믿는 신에게 바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역시 '짐이 곧 서울이다'의 전제적 마인드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언행이다.

이 루이 명박 14세는 한때 자신이 '선거 때는 무슨 말을 못하냐'의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이 말은, 마키아벨리적으로 말하자면, 선거 때에는 본색을 숨기고 여론을 호도하여 표를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심지어 그도 그런 사실을 아는데, 후보자의 홈페이지가 '나는 서울이다'라는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진술을 대문에 당당하게 내세운 것은 어떤 자신감 때문인지 궁금하다. 아니면 '나는 가수다'식 표현 방식의 유행 때문인가? 그런데 가수들은 가수인데 나경원은 서울이 아니잖아.

이러한 이해가 오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Na의 주어가 나경원이 아니다, 다시 말해 "주어가 없다"고 억지를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주장과 억지가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홈페이지는 두 번째로 실패한 것이다.

[덧붙임]: 후보자들의 기호가 정해지면서 박원순의 홈페이지에는 해당 기호가 표기되었고 위의 국적 불명 영어 표기는 사라졌다.


※ 이미지: 해당 홈페이지(본문에 링크).

 

덧글

  • 나는 시민이다 2011/10/07 07:25 # 삭제 답글

    완전히 나는 가수다 유행에 따라가는 군요.. '나는 서울이다', '나는 시장이다'??? ㅋㅋㅋ 정말 웃기는 짜장입니다...
  • deulpul 2011/10/07 09:10 #

    그런 것 같긴 한데, 갖다 붙일 데 붙였어야죠...
  • 나는 학생이다 2011/10/07 09:39 # 삭제 답글

    학생입니다. 한가지 첨언하자면 전 인도 수상 인디라 간디도 "Indira is India and India is Indira"라는 선거 구호를 썼던게 아직도 회자되고 있지요. 그렇게 "인민의 열망에 따라" 재선이 된 뒤로는 구호를 철저히 지키며 지금도 이어지는 간디왕조를 설립했고요. 물론 Na경원씨는 그럴만한 그릇도 되지 않아 보인다는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위안'이 되네요.
  • deulpul 2011/10/07 11:12 #

    말씀 들으니 MIT의 한 학자가 인디라 간디 재임 시절에 대해 "민주주의가 인도를 곤경에 빠뜨린 게 아니라 인도가 민주주의를 곤경에 빠뜨렸다"라고 평가했던 기억이 납니다. Indira is India, 맞나봐요.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1/10/07 11:40 # 답글

    서울과 이다 사이에 "인"자가 빠졌을수도^^
  • deulpul 2011/10/07 11:49 #

    흠... 최소한의 상식을 배제하지 않으려다 보니, 그런 추정을 해줄 수도 있군요. 게다가 같은 단어를 쓴 메뉴들 사이에 띄어쓰기가 다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럼 다들 문맹인지 하는 의문이 새로 생기는군요...
  • snowall 2011/10/07 13:10 # 삭제 답글

    집권신수설이군요.
  • deulpul 2011/10/07 13:38 #

    오오... 정치학 및 역사학계에 대파란을 일으킬 엄청난 블록버스터 개념입니다... 하하. 아닌 게 아니라, 저 홈페이지의 "Na에게 바란다"라는 게시판에는 "나(는) 경(성) 원(맨)이므로 하늘이 준 서울시장"이라는 개그도 있긴 있네요...
  • 긁적 2011/10/07 14:31 # 답글

    제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죠.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예요. DC에 가지 않아도 병림픽을 볼 수 있으니.'
    이제 이 말을 쓸 때마다 횟수를 세어보아야 겠습니다. -_-; 자주 쓸 듯?
  • deulpul 2011/10/07 15:01 #

    그러게 말입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거 정책을 토론하는 방송 토론회에 폭탄주 퍼마시고 나와서 횡설수설하는 작자가 없나... 이런 인간들이 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간다는 것도 아주 코미디 천국.
  • dhunter 2011/10/07 21:45 # 삭제 답글

  • 긁적 2011/10/08 09:12 #

    404 not found (...)
  • deulpul 2011/10/08 11:38 #

    정말 웹페이지 에러로 나오는데요? 오리지널 대문 링크와는 index.php와 intro.php의 차이가 있고... 다른 내용이 실려 있었던가요?
  • deulpul 2011/10/08 15:01 #

    혹시 이거 말씀하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2971352 (아니면 알려주십시오.) 설마 제정신으로는 저랬을 것 같지는 않고... 누가 해킹한 것인가 싶기도 하군요. 하지만 신지호 토론에 대해 사과한다고 나온 사과문(위 링크에 함께 있음)을 보면 충분히 할 만한 집단인 것 같기도...
  • deulpul 2011/10/08 18:34 #

  • Silverwood 2011/10/07 22:31 # 답글

    요즘은 개나 소나 대통령하고 개나 소나 서울시장하겠다고 난리니..이젠 개나 소도 너무 식상해..그래서 전 흑염소가 되기로 했습니다.
  • deulpul 2011/10/08 11:54 #

    뭐 민주주의, 그래 그 자유민주주의 사회니까 피선거권이 있는 한 누구나 나오는 것은 좋습니다만, 염치를 알면서 살아 온 사람들이 나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습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개나 소는 피선거권이 없지 않습니까? 흑염소는 잘 모르겠네요... 하하.
  • 민노씨 2011/10/09 02:18 # 삭제 답글

    발화자의 취지를 최대한 존중해서 자연적으로 해석하면, 뭐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지만, 그러니 'Na(경원)는 서울(시장)이다'라는 취지였겠죠, 그런 취지가 확정적으로, 더욱이 (아마도) 심사숙고 끝에 결정된 '형식'이 이모냥 이꼴이라는 건 들풀님의 예리한 지적처럼 "루이 명박 14세"류의 "전제적 마인드"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제적 마인드"에서 "전제"는 1) '선행되는' '바탕이 되는' 이라는 의미에서의 '前提'인가요? 2) 전제주의, 전제정치의 '專制'인가요? 글을 읽으면 당연히 2)와 같은 취지에서 그렇게 쓰신 것 같기는 하지만, 중층적으로 겹쳐지면서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적고 보니 별 것도 아닌 걸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뻘쭘하네요. ㅎㅎ
  • deulpul 2011/10/10 11:57 #

    말씀 듣고 재미삼아 잠깐 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서울이다'라는 표현에서 '짐은 국가다' 식의 전제적 마인드를 읽어 내는 일을 잠시 유보하고, 이 문장을 그 의미 자체로만 풀어 보면,

    나는 서울이다. (너는 부산이냐?) - 횡적 카테고리로서의 의미
    나는 서울이다. (너는 도봉구냐?) - 종적 카테고리로서의 의미
    나는 서울이다. (너는 한국이냐?) - 또다른 종적 카테고리로서의 의미
    나는 서울(시장)이다. (너는 대통령이냐?) - 종적 카테고리 의미의 확장

    이렇게밖에는 유의미한 맥락을 찾기 어렵고, 선거가 아직 치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네 경우 모두 '나는 서울(에서 출마한 것)이다'라는 말이 되는데, 지금 선거가 총선이나 대선, 전국지자체 선거가 아니라 서울만의 선거임을 고려하면 어느 것이나 뜬금없는 소리가 되지 않나 싶어요.

    본문에도 썼지만, '나는 가수다'의 패러디라고 해도 개념적으로 어불성설인 것이, '나는 가수다'에 나온 사람들은 이미 가수이므로 서술격 조사 '-이다'의 의미에 정확히 부응하는 데 (나=가수... 참) 비해, '나는 서울이다'에 나온 사람은 서울은 물론 아니고 아직 서울시장도 아니라는 점에서 (나(경원)=서울... 거짓, 혹은 나(경원)=서울시장... 거짓) 여전히 삑사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며 그래도 make sense한 점을 찾다 보니, 결국 '짐은 서울이다'의 메시지를 읽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 경우에는... 여하튼 어떻게 보든, 그냥 한 마디로 무개념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대로 '전제'는 專制主義(한 사람의 지배자가 주권을 마음대로 행사함)의 전제입니다. 꿈은 시원찮은데 해몽을 아주 잘 해 주셨습니다, 하하.
  • Ha-1 2011/10/10 13:25 # 답글

    나트륨 시장
  • deulpul 2011/10/10 19:08 #

    지금껏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자극을 심어준 한국의 고등 교육 덕분에, 저도 제1감이 그거였습니다...
  • 민노씨 2011/10/11 04:19 # 삭제 답글

    나는 서울(시장이 되고 싶은 사람)(또는)(서울시장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그런데 결국 정말 중요한 건, 제 뻘댓글 때문에 들풀님 귀한 시간을 괜히 빼앗은 것 같아 민망하다는 점입니다. ㅡ.ㅡ;; ^ ^;;;
  • deulpul 2011/10/11 04:35 #

    천만에요-. 원래 잉여질은 자신이 재미없으면 할 수가 없죠, 하하. 그 여섯 자로 표현하고 싶었던 애초의 뜻은 말씀하신 내용이겠지요, 아마도. 그런데 보통 사람은 그런 의미를 저렇게 표현하질 않는단 말이에요... 더구나 선거용 홈피에서. 뻔한 문장에서 주어를 못 찾는 사람들이라서 이해는 합니다.
  • 에잉 2011/10/12 03:48 # 삭제 답글

    나경원씨에게는 '민주주의'나 '정치' 라는 개념 자체가 들풀님이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랑 완전히 다른것 같아요. "서울 시장선거가 정치와 연관이 되어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박원순 변호사의 활동전적을 얘기하면서는 "시민운동과 정치는 다르다", 나경원씨가 말하는 정치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시장선거나 시민운동은 정치와 연관이 없는것인지 모르겠어요. 답답할 따름입니다.
  • deulpul 2011/10/13 10:05 #

    말씀 듣고 설마 싶어서 찾아보니 "다만 "시장선거를 정치선거로 하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며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은 참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라고 나와 있네요. 민주 국가에서 정치나 선거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민운동과 권력 운운 하는 것도 치졸한 몰이해구요. 이건 어떻습니까? "서울 시장 선거에 정치인이 나온다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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