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지젝이 천리를 간다 때時 일事 (Issues)

슬라보예 지젝이 지난 일요일에,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점령 시위'에 나와서 연설을 했다. 동료와 그 이야기를 하다가, 연설문을 옮겨보고 싶어졌다.




동영상도 아주 인상적이다. 지젝의 무대 매너(?)도 그렇고, 연설 방식도 그렇다. 전체 연설은 20분 정도이고 이 유튜브 영상은 뒤가 조금 잘린 15분 정도다. 원래는 그 절반 시간이면 충분했을 텐데, 마이크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반복하며 스피커 역할을 하는 바람에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세계적인 학자가 세계의 눈길을 모으는 시위에 나와 연설을 하는데, 그의 주변에 21세기형 스마트폰과 카메라는 숱하게 많지만 17세기에 그 아이디어가 나온 이래 전통적인 '시위 용품'이 되어 온 그 흔한 메거폰 하나 없어서 주변 청중이 그의 말을 구절 구절 반복 재생한다. 이것은 뉴욕시 당국이 메거폰을 비롯한 확성 장치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코티 공원에서 누가 연설을 하든, 연설은 이런 원시적인 (혹은 80년대식) 방식으로만 증폭된다. 그의 주장은 바로 그가 서 있는 작은 공간을 넘어서 전달되기도 어려운 양상이다.

그러나 한편, 스마트폰과 카메라에 기록된 덕분에 그의 주장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무한히 확장되고, 나와 당신이 이렇게 보고 있다. 비조직성 같은 이번 시위의 특성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데, 지젝의 연설을 비롯해 주코티에서 주장이 탄생하고 확장하는 과정은 그 상징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연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우리가 모두 루저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루저들은 저곳 월 스트리트에 있다. 우리가 낸 돈으로 수십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가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밤낮으로 몇 주 동안 사유재산을 파괴한다 해도, 2008년의 금융 시장 붕괴 당시 파괴된 사유재산의 양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피땀 흘려 이룬 그 사유재산 말이다. 그들은 우리가 꿈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말한다. 정작 백일몽을 꾸는 이들은 지금과 같은 방식이 무한히 계속될 수 있으리라 믿는 그들 자신이다.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점점 악몽이 되고 있는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파괴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스템이 그 스스로 파괴되어 가는 것을 지켜 보는 목격자일 뿐이다. 마치 만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과 흡사하다. 고양이가 낭떠러지를 향해 다가간다. 끝을 지나서 디딜 땅이 없어졌는데도, 고양이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계속 걸음을 걷는다. 아래를 쳐다보며 그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고양이는 이미 추락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일을 하는 중이다. 우리는 월 스트리트 사람에게 "아래를 쳐다보라구!" 하고 말하는 중이다.

2011년 4월 중순에 중국 정부는 대안 현실이나 시간 여행을 포함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소설 등을 모두 금지시켰다. 이런 조처는 중국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여전히 대안을 꿈꾸고 있으므로, 이런 꿈꾸기를 금지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곳의 우리에게는 그런 금지 조처가 필요없다.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은 우리가 꿈꿀 여지조차 주지 않고 우리를 옥죄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영화들을 생각해 보라. 세상이 종말로 향하는 스토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쳐 모든 생물이 멸종하게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의 종말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공산주의 시절에 나돌던 구닥다리지만 매력적인 농담이 하나 있다. 한 동독 인민이 시베리아에 파견되어 일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보내는 우편물이 검열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두었다. "암호를 정해 두세나. 만일 내가 파란색 잉크로 편지를 써 보낸다면, 그건 내가 쓴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일세. 만일 빨간색 잉크로 씌어 있다면, 편지 내용은 거짓일세." 그가 떠난 지 한 달 뒤에, 그의 친구는 시베리아에서 온 첫 편지를 받았다. 파란색으로만 쓰인 편지였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굉장하다네. 상점은 질 좋은 음식으로 가득 차 있고, 극장에서는 서방에서 만든 유명한 영화가 상영되지. 아파트는 널찍하고 고급스럽다네. 여기서 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빨간색 잉크뿐이라네."

바로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자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빨간 잉크가 없다. 우리가 갖지 못한 자유를 드러내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도록 교육 받는다. 이를테면 테러와의 전쟁에서 강조되는 자유라든가 말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자유의 개념을 왜곡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빨간색 잉크를 만들어 내는 것.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바로 그것이다.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여러분 자신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 우리는 여기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러나 축제란 원래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축제가 끝난 다음날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 뒤가 문제인 것이다. 그 때 어떤 변화가 생길까? 시간이 지난 뒤 당신은 오늘을 이렇게 기억할지도 모른다. "아, 우리는 젊었었고, 시위는 대단했지." 나는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을 그런 식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대안을 생각할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닌가.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전히 실현 가능한 최선의 사회가 아닌 것이다. 우리 앞에는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우리가 맞서야 할 문제들은 진정으로 어려운 것들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회 체계가 자본주의를 대치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가?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당신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이다. 또 적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물타기하러 나선 가짜 친구들에 대해서도 주의하라. 이들은 이 시위가 아무런 해가 없는 도덕적 항의에 그치도록 만들기 위해 애쓸 것이다. 마치 카페인 없는 커피, 무알콜 맥주, 무지방 아이스크림처럼. 그들의 노력은 커피에서 카페인을 빼내려는 것이나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가 무엇인가. 깡통을 재활용하는 일, 자선 사업에 푼돈을 기부하는 일,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를 사면서 1%가 제3 세계 기아 아동을 돕는 데 쓰이도록 하는 일 등을 하면서 도덕적 만족감을 느끼기에는 이 세상의 문제가 너무 크다는 점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닌가. 일도 아웃소싱되고 포로에 대한 고문도 아웃소싱되는 세상이다. 결혼 알선 업체들은 우리의 사랑마저 아웃소싱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 참여 또한 아웃소싱되도록 허용해 왔다. 이제 우리는 이를 되찾고 싶은 것이다.

만일 공산주의란 말이 1990년에 무너진 시스템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이 오늘날 가장 효율적이고도 무자비한 자본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오늘날 중국의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지만,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당신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이를 반민주주의적이라고 매도하는 협박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은 끝났다. 변화는 실현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원고로 준비한 연설이고, 아래는 원고 없이 직접 말한 내용이다.)

오늘날 실현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미디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기술적인 면과 성적인 면에서 안 되는 일이란 없는 곳이 된 듯하다. 달로 여행할 수 있으며, 유전자 공학 덕분으로 영생에 가깝게 되었다. 당신이 원한다면 동물을 비롯한 그 무엇과도 섹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나 경제 분야를 보라. 이 분야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되어 있다. 만일 당신이 부자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약간 올리고 싶다고 해 보자.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경쟁력을 잃는다고 주장하면서. 만일 당신이 의료 체제를 갖추기 위해 돈이 좀더 필요하다고 해 보자. 그들은 "전체주의 국가가 되자는 말이냐.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것이다. 곧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도 당장의 의료 혜택을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 지출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 이런 세상은 무언가 잘못된 곳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높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더 나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것이다.

우리를 공산주의자라고 한다면, 그 말이 맞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the commons를 염려한다는 점이다. 자연의 commons, 지적 재산에 의해 사유화된 commons, 유전자 공학의 commons. 우리는 이를 위하여, 그리고 오로지 이것만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공산주의는 분명히 실패했지만, commons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은 여기 모인 우리가 미국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들을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주장하는 보수 근본주의자들이 깨달아야 할 게 하나 있다. 기독이란 무엇인가? 성령이다. 성령이란 무엇인가? 자유와 책임을 가진 신자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 평등한 공동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성령이 임한 곳은 바로 지금 이곳이다. 저 건너편 월 스트리트에는 신성을 모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이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견인불발의 마음가짐뿐이다. 내가 염려하는 유일한 점은, 우리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간 뒤, 1년에 한 번씩 만나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 때 우리 정말 대단했지" 하고 추억에 젖어 회상이나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겠다고 여러분 자신에게 약속하라.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욕망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욕망하는 것을 실제로 추구하기를 두려워 말라.


the commons는 communism과 연결되며 쓰였는데, 뒤에서 사용되는 문맥까지 고려하면 한국어로 옮기기가 쉽지 않아서 그냥 두었다. 사전적으로는 서민이란 뜻이 있고, 여기서는 그러한 계층이 구성원이 되는 공동체 정도로 이해해도 괜찮을 듯 싶다. 아니면 추상적인 공(共, 더불어)의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듯. 지젝이 이 말을 다른 의미로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덧붙임]

지젝이 연설에서 말한 'the commons'의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관련 자료는 <New Left Review> 2009년 5/6월호(43-55)에 실은 그의 에세이 'How to Begin from the Beginning'인 듯하다. 이 에세이 뒷부분에, 연설에서 나온 거의 그대로의 형태와 의미로 이 말이 사용되고 있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식 인식을 비판하며, 세계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재생산을 부정할 만큼 모순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는 네 가지 가능한 모순을 제시하는데, 1) 생태적 재앙의 위협, 2) 이른바 지적 재산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부적절한 사유화, 3) 새로운 과학 기술(특히 유전자 공학) 발전에 따른 사회윤리적 문제, 4) 새로운 형태의 사회 격차와 차별 등이다. 연설에 나온 "자연의 commons, 지적 재산에 의해 사유화된 commons, 유전자 공학의 commons"는 이 1)~3)과 정확히 대응한다. 그리고 그 아래 이 commons들을 개별 설명하는데,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강조는 내가).

First, there are the commons of culture, the immediately socialized forms of cognitive capital: primarily language, our means of communication and education, but also shared infrastructure such as public transport, electricity, post, etc. If Bill Gates were allowed a monopoly, we would have reached the absurd situation in which a private individual would have owned the software tissue of our basic network of communication. Second, there are the commons of external nature, threatened by pollution and exploitation—from oil to forests and the natural habitat itself—and, third, the commons of internal nature, the biogenetic inheritance of humanity. What all of these struggles share is an awareness of the destructive potential—up to the self-annihilation of humanity itself—in allowing the capitalist logic of enclosing these commons a free run. It is this reference to ‘commons’ which allows the resuscitation of the notion of communism: it enables us to see their progressive enclosure as a process of proletarianization of those who are thereby excluded from their own substance; a process that also points towards exploitation. The task today is to renew the political economy of exploitation—for instance, that of anonymous ‘knowledge workers’ by their companies.

아래 댓글에서 의견을 주신 분들의 해석들과 다 잘 맞는다. commons를 어떤 말로 옮기든,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개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는다.


※ 이미지: imposemagazine.com

 

덧글

  • 2011/10/16 07: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10/16 12:09 #

    앞 부분 말씀은 저도 항상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이고, 대안을 생각해 보기도 쉽지 않지요. 하지만 두 가지 점을 기억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는 원시시대 이후 인류 역사상 욕망과 사유재산은 언제든지 있어 왔지만, 이게 자본주의라는 사회 체제로 정착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며, 그것도 지구상의 부분적인 일(곧 major가 되지만)이었다는 점과, 이 시스템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때로는 이 시스템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제도들로 늘 패치 업 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욕망이 인간에게 본래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래서 이를 적절히 규제하는 시스템이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성욕은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이를 무자비하게 추구하도록 허용하는 제도 대신, 성욕의 실현을 규제하고 이를 위반하면 잡아 가두고 중형에 처하는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뒷 부분 말씀은 저도 위의 연설에서 아주 강한 인상을 받은 내용이고, 그 때문에 연설자가 시쳇말로 관심병 환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회 변화를 바라는 진정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가벼움은 우리 시대의 표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가벼워야 할 것이 가벼운 것은 좋지만, 무거워야 할 것조차 가볍게 되면 변화는 고사하고 사회의 깊은 곳에서 흐르는 본류에 내려가 닿을 수조차 없겠지요.

    특히 사회나 제도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거의 언제나 반대쪽에 기득권을 가진 강한 세력이 버티고 있고, 이러한 사실까지 고려하면서 진정한 변화를 꿈꾼다면 머리나 몸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노는 것은 좋은데, 놀고 끝나면 안 되는 것이죠. 변화를 외치는 몸짓은 실제로 그런 변화를 조금씩이라도 이루어 갈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시위 현장의 양상 같은 것보다는 거리에 나선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더 관련된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축제는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고, 정작 중요한 것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앉아 있을 때라는 점은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견인불발의 인내력과 초심을 잃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축제 현장에서 받은 상처의 깊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됩니다. 상처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인식과 고민에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인식과 고민으로 이어지지 않는 축제는 지젝 말대로 싸구려라고 봅니다.
  • 2011/10/16 09:0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10/16 12:09 #

    고맙습니다. 링크나 부분 인용을 해 주시면 어떨까요?
  • 2011/10/16 13:4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10/16 13:44 #

    넵, 물론입니다.
  • euirae 2011/10/16 14:02 # 답글

    감사합니다. 퍼가겠습니다 .
  • deulpul 2011/10/16 15:17 #

    트랙백으로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capcold 2011/10/16 14:35 # 삭제 답글

    !@#... 소리통! https://plus.google.com/112335211471412785377/posts/VfdYJ53YgfV
  • deulpul 2011/10/16 15:14 #

    마이크! 의 한글화...
  • sanna 2011/10/16 15:01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페북에 링크 공유를 해도 되겠지요?
  • deulpul 2011/10/16 15:14 #

    넵, 물론입니다.
  • sanna 2011/10/16 22:29 # 삭제

    들풀님, 페북에 링크 공유했더니 글 잘 읽었다는 친구들의 덕담과 공유가 잇따라서, 들풀님께 감사 인사 전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egloos 2011/10/16 15:59 # 답글

    "오늘날 중국의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지만,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당신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이를 반민주주의적이라고 매도하는 협박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은 끝났다. 변화는 실현될 수 있다"

    우와..
  • 역보 2011/10/16 17:05 # 삭제 답글

    저도 좀 퍼가겠습니다. 이게 미국말고도 먹히는 나라가 또 있네요. 여기라든가 한국이라든가 대한민국이라든가(...)
  • 꽃다운청춘 2011/10/16 19:25 # 답글

    글 감사합니다. ^^ 여러번 읽으며 곱씹을 수 있도록 퍼갈게요
  • 이재원 2011/10/16 20:05 # 삭제 답글

    오오옷~!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될까요?
  • ... 2011/10/16 21:15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근데 이 상황보다, 지젝 뒤에 목발 든 단발머리 여자가 참 이쁘다고. 인도계로 보이는 분홍넥타이 털보를 부러워하는 저는 뭘까요. 급좌절.ㅠ
  • 고맙습니다 2011/10/16 21:21 # 삭제 답글

    페이스북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페이스북에도 감사하고. 이 홈의 쥔장에게도 감사합니다. 좀 퍼가겠습니다. 양해해주세요.
  • asd 2011/10/16 22:38 # 삭제 답글

    트위터의 지젝봇에 리트윗된 글 따라 왔습니다.
    지젝이 무슨 소리 했나 궁금하던 차였는데 이런 좋은 번역이..감사합니다.
  • 송인주 2011/10/16 23:38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페이스 북을 통해 들어왔네요.
  • 2011/10/17 01:1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10/17 04:5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10/17 10:51 # 답글

    읽어 주시고 댓글 남겨 주신 분들, 다른 곳에 알려 주신 분들, 링크와 인용 사실을 댓글로 말씀해 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이 글을 들어오시는 경로를 보았더니 대부분 트위터와 페이스북 링크였습니다. 유머 사이트가 이 블로그로 유입되는 주요 경로인 경우가 많은데(oTL),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지젝이 말한 내용을 의미 있게 여기신 분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 조인선 2011/10/17 11:20 # 삭제 답글

    페이북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퍼가고 싶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 deulpul 2011/10/17 19:44 #

    고맙습니다.
  • blumenkohl 2011/10/17 12:45 # 삭제 답글

    1. the commons는 '서민'이라기 보다는 what is common, 즉 '공공소유물'로 번역하는게 사전적으로나 이 글의 문맥상으로나 더 적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젝의 말에 따르자면 마땅히 공공의 소유여야 할 것들의 독점과 부당한 사유화, 혹은 "아웃소싱"을 가능케 해준 것이 바로 현 자본주의 시스템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 두 문단의 번역을 다음과 같이 수정해보고 싶습니다:

    "공공의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 --- 오직 이러한 뜻에서 우리는 '공산주의자'이다. 모두의 것이어야할 자연, 지적 재산의 형태로 사유화 되어버린 공공물, 유전자 공학이 다루는 공공의 것들... 이것들, 그리고 오직 이것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우리는 쌰워야한다. 

    공산주의는 완벽하게 실패했지만, 공공물의 과제는 아직도 여기 남아있다."

    2. 지젝의 연설문을 빨간색 잉크로 표기하신 것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겠죠? ㅋㅋ

    3. 링크된 연설의 원문이 있는 웹페이지에 가봤더니 사진들에 아는 얼굴들이 보여서 당황했습니다. 그 중에 한명은 학교 졸업생인데 The Colbert Report에도 "typical liberal"로 얼굴을 비추더군요.
  • deulpul 2011/10/17 19:57 #

    말씀 듣고 보니 훨씬 잘 이해가 됩니다. 해석상의 의문이 있어서 번역하지 않고 그냥 둔 것이었는데, 'commons of biogenetics'까지 가면 더 복잡해지더군요. 옮기신 것으로 보니 쏙쏙 이해가 됩니다. 조언 고맙습니다. 3번 말씀 들으니, 대학 때 다른 학교 다니던 1년 선배가 저를 길거리 현장에서 봤다고 너무나 반가워하던 생각이 납니다. 어떨 때 세상은 정말 좁고, 우연은 필연인 것처럼 느껴지지요. 아, 빨간색 잉크로 써서 지젝의 연설을 거짓말로 만들어 버렸네요, 하하. 아시겠지만 이 블로그에서 인용문은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됩니다...
  • 다른 생각 2011/10/18 00:15 # 삭제

    제 생각인데요. commons 는 저렇게 원래대로 영어 단어 그대로 남겨두시는게 오히려 조금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민이라고 번역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공공소유물로 번역하는 것도, 공공의 것이 포함하는 여러가지가 (민주주의 정신의 공공의 가치도 내포) 조금 좁게 해석하게 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소유물이라 붙이는 것보다는 그대로 두심이 좋을 듯 합니다.
  • deulpul 2011/10/18 16:25 #

    @다른 생각: 신중한 의견 고맙습니다. 저 역시 계속 생각하고 있는 중이기에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말은 함부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게, 단어나 개념을 자신의 이론 구조 안에서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저 같은 문외한들은 삑사리를 내기 십상이죠. 여하튼 돈 받고 하는 번역도 아니니까(이런 무책임...) 일단 그냥 두고, 읽으시는 분들과 함께 그 맥락을 이해하는 쪽으로 계속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풍경 2011/10/17 20:15 # 삭제 답글

    제가 아는 카페로 담아 갑니다.
    고맙습니다.^^
  • 2011/10/18 00:5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1/10/18 04:35 #

    흠... 마지막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젝이 아주 달라 보이기도 하네요. 하지만 결국은 지갑이 섹시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는... 슬픈.
  • Gemma 2011/10/18 14:37 # 삭제 답글

    페북에서 보고 들어왔다가 저도 제 네이버 블로그로 퍼갑니다.
    감사합니다!!!
  • 김한정 2011/10/18 15:32 # 삭제 답글

    지젝이 말한 "commons"는 공유지 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입니다. '공유지의 비극' 은 공유 공간이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개인의 일견 합리적인 행동이 집단적, 결과적으로는 공유 환경을 파괴하여 모두가 파국을 맞는 사태를 일컫습니다. 예를 들어 공유해역에서의 무제한적 포경업이 고래를 멸종시키는 것 과 같은....
  • deulpul 2011/10/18 16:09 #

    도움 말씀 고맙습니다. 지젝이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을 썼는지 잘 이해가 되고, 특히 'the commons of nature'와 직접 맥락이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자료를 본문에 약간 추가해 놓았습니다.
  • 유랑인 2011/10/18 15:37 # 삭제 답글

    우연히 들어와 글 읽고 퍼갑니다. 감사합니다!!!
  • 주제 넘게 한마디 2011/10/19 19:41 # 삭제 답글

    앞의 확성장치 없는 원시적 방식이 스마트 폰, 카메라를 타고 순식간에 무한히 확장된다는 말, 감동적입니다.
    그런데요.~~ 번역이 이상한 데가 있어서. 실은 저는 공부한 바 없어 자신은 없지만,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연설의 마지막 문장을 프레시안에서는 아래처럼 번역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진정 원하지 않는 것을 욕망하고 있다. 정말로 욕망하는 것을 추구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 번역이 맞는 것 아닐까요?
    이는 라깡의 주장과도 상통하는 말이라고 하던데...

    사람들은 진정 원하지 않는 것을 욕망한다. 즉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잉여쥬이상스라고 하는 소비 욕망 등을 자기 욕망이라고 생각하고
    정말로 욕망하는 것을 추구 두려워한다. 즉 인간의 내면에서 정말로 욕망하는 것, 연대, 혁명 등등은 두려워한다는 것이죠. 지젝은 연대, 혁명 등등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욕망하는 것을 추구하라는 말 아닐까요?
  • deulpul 2011/10/20 00:24 #

    연설 텍스트에 충실하게 옮겼습니다. 현장에서 지젝이 말한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We know that people often desire something but do not really want it. Don’t be afraid to really want what you desire." 이걸 그가 연설한 톤을 살려서 받아 쓴다면 이렇게 될 겁니다(동영상을 보십시오): "We know that people often desire something BUT DO NOT REALLY WANT IT. DON'T be afraid to really want what you desire." 여기서 문제는 욕망이 아니라 추구인 것이죠. 이 마지막 말은 연설의 바로 앞부분에서, 자신이 걱정하는 유일한 점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이를 계속하여 추구하지 않고) 술이나 퍼마시며 자위하는 꼬라지라고 강조한 뒤 이어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 보십시오.

    인용하신 해석은 내용상 두 문장이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주장이 뒤섞여 들어가 있습니다: 1)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욕망하여야 한다, 2)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을 추구하여야 한다. 지젝은 앞뒤 문장에서 really를 모두 want를 수식하는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만일 지젝이 "We know that people often desire something that they do not really want it. Don’t be afraid to want what you really desire"라고 했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옮겼을 겁니다.
  • 편도 2011/10/19 21:59 # 답글

    들풀님, 좋은 글이라 카페와 페이스북에 공유하고자 합니다. 좋은 글 써 주시고, 또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소금인형 2011/10/22 14:53 # 삭제 답글

    페이스북으로 공유 신고합니당.
  • deulpul 2011/10/22 18:04 #

    제게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1/10/23 18:13 # 삭제 답글

    강금실이 출처 밝히지 않고 자기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게 마치 원본인 것처럼 트위터에서 유통되네요.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ithkumsil&logNo=30121426044
    혹 들풀 님께 허락(?)을 받거나 가져간다고 말을 했다고 해도 이렇게 올리면 안 되는 건데. 물론 자세히 보면 아래 부분에 댓글까지 옮겨가서 주인이 누군지 알아차릴 수도 있지만요.
    한두 번 당하는 게 아니시겠지만, 제가 다 기분이 나빠져서 들풀 님께 하소연(고자질?)하러 왔습니다. 흠흠.
  • 지나가다 2011/10/28 19:32 # 삭제

    같은 진영인데 태클 걸겠습니콰.
  • deulpul 2011/11/03 03:38 #

    친절한 제보 고맙습니다. 사실 다른 곳에서도 링크 없이 원 소스를 전혀 알 수 없는 형태로 전재한 것을 보아서 잠깐 우울했고, 그래서 본문의 말미에 전재를 원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따로 붙일까 역시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만, 일단 그런 꼬리는 달지 않기로 했었습니다. 알려주신 경우는 링크가 살아 있는 덧글까지 모두 함께 옮겨져 있어서, 알려고 하면 원 소스를 쉽게 찾을 수 있는 형태라 비교적 심리적 데미지(?)가 덜 했다고 할까요.

    사실 이 포스팅을 놓고 원래의 '전재 금지' 원칙을 고집하기가 좀 그런 게, 어차피 내용 자체는 지젝이 토해 낸 것이고 저는 번역을 하고 주석을 단 게 다이기 때문이어서요. 그렇다고 번역이라는 창조적 작업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그런 느낌을 좀 갖고 있어서, 종종 발견되는 전재를 보고도 조금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줄 링크를 달아두는 작지만 기초적인 요건들은 왜 돌아보지 않는지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재 금지' 원칙을 왼쪽 메모란에 공지해 놓았습니다만, 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지 않는 분들은 이 공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고, 특히 모바일로 오시면 공지가 눈에 띄지 않게 노출되는 모양입니다. 이 점은 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퍼갑니다'의 의미도 좀 달라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트위터로 링크를 가져가시면서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건 '펌'이 아니지 않습니까? 페이스북에 공유한다는 말씀도 퍼간다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요? 자주 드린 말씀이지만, 링크로 가져가시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며, 알려 주시면 고맙지만 그렇지 않으셔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제 처지가 되어 생각해 주시고 친절하게 알려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밥 살께요. (누구신지 모르니까 공수표 남발)

    아, 그리고 위에 지나가시던 분... 차라리 "다른 성별인데 태클 걸겠습니콰" 했더라면 그나마 좀 설득력이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 2011/11/28 17: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장승규 2011/11/28 21:02 # 삭제 답글

    가슴이 뜨거워지는 연설. 페북으로 공유합니당.
  • 서수민 2011/11/29 02:08 # 삭제 답글

    뒤늦게 감동먹고 페북으로 퍼갑니다.
  • 버드나무 2013/07/04 21:02 # 삭제 답글

    좋은 연설이네요!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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