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주지사에 대한 복수전 시작되다 미국美 나라國 (USA)

미국 위스콘신에서는 오늘(11월15일)부터 주지사 스캇 워커를 목표로 한 주민 소환 운동이 시작되었다. 선출직 공직자가 임기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야 소환할 수 있는 규정 때문에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이 이제 본격적인 복수전에 들어간 것이다.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권 축소와 거대 기업 친화적인 정책으로 위스콘신과 미국 전체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워커(아래 사진)의 정치적 운명은 앞으로 서너 달에 걸쳐 벌어질 또다른 치열한 정치 과정의 결과로 결정되게 된다. (참고: 위스콘신 시위 한 달)




워커 주지사에 대한 주민 소환 운동은 일찌감치부터 예상되어 왔으므로, 모두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지난 2월 말 사태의 초기부터 주지사를 소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주를 넘어 전국 차원에서 벌어진 반대 운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킨 데 대해 소환 말고는 별다른 대응책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점도 반대자들을 주민 소환으로 치닫게 했다. 현재 소환 운동을 이끄는 주체는 민주당과 시민 단체(위스콘신 연합)이며, 녹색당, 자유당, 독립 세력, 기타 진보적인 정당과 단체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주민 소환을 통해 주지사를 끌어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을 상징하는 단어들은 열정, 헌신, 참여, 관심, 지속성 같은 것들이다. 지금 세상의 정치 현실에서 볼 때 어느 것 하나 쉬운 말들이 아니다.

소환 투표를 성사시키는 데에만도 막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위스콘신 주법에 따르면, 주민 소환 투표가 이루어지려면 직전 주지사 선거 때 투표한 사람 수의 25%가 서명해야 한다. 이 말은 이번 소환 투표가 성립하려면 민주당과 시민 단체들은 위스콘신 주민 54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야 한다는 뜻이다(부적절한 서명으로 판명되어 무효가 될 서명 수를 고려하면 70만 명 정도의 서명을 받아야 안전하다고 전망된다). 기간도 제한되어 있다. 소환 청원을 한 뒤 60일 안에 그 수를 채워야 투표가 가능해진다. 그것도 악명 높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우리는 어디든 찾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를 한국의 경우로 생각해 보자.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 참여자는 약 2천369만 명이다(투표율 62.9%). 그 중 25%라면 600만 명 정도다. 그것도 온라인 서명 등은 안 되고, 직접 소환 서명 문서에 자필로 서명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게 한국 상황이라면 자원봉사자들은 주민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600만 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환 투표를 추진하는 측은 투표 성립 여부에 대해 낙관한다. 워커 주지사 개인이나 그의 정책에 대한 염증이 광범위하고, 맨 처음 사태가 벌어진 뒤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의 주 의원 소환 투표도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 당시 소환 투표에서 민주당과 주민들은 공화당 상원의원 두 명을 민주당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당시 주 의회의 다수당을 뒤집는 일은 아슬아슬하게 실패했다. 아래 사진은 당시 소환 서명 장면인데, 주 의원 소환이 궁극적으로 주지사를 겨냥한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뜨거운 열정을 가진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이 벼르고 있다. 현재 수천 명 규모로 파악되는 이들은 소환 투표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이미 끝낸 뒤, 서명 접수 작업이 시작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왔다. 모두 자기 시간을 쪼개서 하는 일이다. 개개인의 열정이 이러한 활동의 추동력이라면, 그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조직력이다. 넓은 땅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아야 하므로, 지역 조직의 존재와 활동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한 자원봉사자는 지역 신문에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기막히게 조직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맡은 지역에서는 추수감사절(다음주 목요일) 이전에 모든 서명을 다 받아낼 예정입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다른 지역을 도와야죠"라고 말한다.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조직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소환 투표의 추진 주체 중 하나인 민주당은 당원들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하고, 당원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자원봉사자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소환 운동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 교육은 공화당 분위기가 압도적인 지역을 포함하여 주의 72개 카운티 전역에서 이루어졌다. 구석구석을 아우르는 조직망이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 민주당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디든 찾아갈 것입니다. 연말 선물을 사려고 사람이 북적이는 도심의 쇼핑몰에서도 우리를 볼 수 있고, 사슴 사냥이 이루어지는 시골 숲의 사슴 세척장에서도 우리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위스콘신 주민이 숨쉬고 살아가는 모든 현장을 찾아갈 것입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치 공세라는 비난이 따라 나올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 소리를 별로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좀 특이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정치 공세 맞다. 법에 규정된 정치 과정을 통해 정치인을 끌어내리는 정치 활동이 정치 공세인 것은 당연하지 않나. 정치 공세가 나쁜 말도 아니며, 정치 공세를 정치 공세라고 하는 것은 비판도 비난도 아닌 무의미한 말이다. 법이 보장하는 절차를 비난하는 것은 주장의 정당성을 삭감시킨다.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하나마나한 헛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소환 운동 김빼기용 꼼수도 등장

물론 정치 공세 운운하며 비난이나 하고 있을 정도로 사태가 여유롭지 않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워커 주지사는 소환 운동에 흔들리지 않고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나 그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는 중이다. 그는 소환 투표와 관련해 벌어질 각종 캠페인을 치르기 위해 이미 상당한 양의 자금을 비축해 놓았다.

지난 금요일에는 놀랍게도 워커 지지자 한 명이 워커를 대상으로 한 주민 소환 청원을 먼저 제출했다. 물론 진정으로 워커를 끌어내리기 위한 청원은 아니다. 야당은 워커 지지자들이 야당의 본격적인 소환 운동에 물을 타고 김을 빼기 위해 선수를 친 것으로 본다. 또 소환 청원이 제출되는 시점부터 해당 공직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무제한의 기금 조성을 즉시 시작할 수 있으므로 이를 위한 꼼수라는 관측도 나왔다. 어쨌든 이러한 움직임은 워커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의 각오를 더욱 다져주고 있다.




주민 소환 운동이 성공하여 실제로 소환 투표가 벌어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소환 투표는 찬반 투표이므로 주지사에 대한 지지도를 통해 그 결과를 짐작해 볼 수 있다. 2010년 주지사 선거에서 워커는 52.3%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당선 1년이 지난 현재 워커에 대한 지지율은 보수적인 단체의 조사에서도 높지 않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 한 보수 싱크탱크가 지난 10월30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워커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5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지하지 않는 것과 소환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이 기관의 조사에서 워커를 소환해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47%, 그렇지 않은 사람은 49%로 나왔다. 약 9%의 사람은 워커를 지지하지 않지만 소환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셈이다. 어쨌든 소환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여론조사에서 찬반 사이의 차이인 2%는 오차 범위 안에 들어 있을 정도다. 보수적인 단체의 조사에서도 팽팽한 것으로 나올 정도로 소환 추진측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소환 선거는 당선 가능성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먹던 밥그릇을 놓고 싸우는 것인 데다, 여러 군데에서 함께 벌어지는 동시다발전이 아니라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여 벌어지는 집중전이기 때문에, 캠페인이 훨씬 치열하다. 캠페인 비용도 일반 선거 때보다 훨씬 많이 투입된다. 지난 8월에 주 상원의원 9명에 대한 소환 투표가 벌어질 때의 캠페인 비용은 작년 11월의 정규 선거에서 주 전체 상원의원 선거에 들어간 비용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고 그 자금의 4분의 3 이상이 주 밖의 각종 이익단체들로부터 나왔다.

주지사의 돈과 시민의 의지가 벌이는 싸움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이번 주지사 소환 운동, 그리고 이것이 성공할 경우 벌어질 소환 투표는 주지사측의 돈과 시민측의 열정이 다투는 싸움이 될 듯하다. 돈과 사람 사이의 싸움이라고 할까. 물론 소환 추진 쪽도 노동조합 등 각종 단체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 규모나 처지에서 차이가 크다. 주지사 선출을 포함한 일반 선거에서는 개인이나 단체가 후보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선거 지원금이 제한되어 있지만, 소환 투표의 대상이 되는 공직자에게는 이러한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원하는 사람은 워커에게 무제한으로 캠페인 자금을 퍼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가뜩이나 주 안팎 거대 기업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워커에게 이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소환 운동을 추진하는 측에는 보통과 다름없는 제한이 가해진다.

이렇게 돈이 부족해도 대신 사람이 있다. 그냥 쪽수가 아니라 견결하게 다짐하고 있는 의지에 찬 사람들이다. 소환 운동을 추진하는 위스콘신 연합은 이미 주 전역에서 20만 명 이상으로부터 주지사 소환을 지지하겠다는 다짐을 받은 바 있다. 적절한 간격을 두고 잇달아 드러나는 워커와 그 측근들의 부패 사례는, 한 번도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민들마저 등을 돌리게 하고 있다. 이러한 여론 덕분에 민주당과 위스콘신 연합은 앞으로 60일 동안 벌어질 서명 확보 작업에서 투표 성립에 필요한 수보다 훨씬 많은 서명을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실제 투표 이전에 서명 확보 때부터 일찌감치 소환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이번 위스콘신 소환 운동은 주지사 스캇 워커뿐만 아니라, 워커를 뒷받침하는 '고무 도장' 역할밖에 하지 않는 주 부지사 레베카 클리피쉬(위 사진 오른쪽)도 그 대상이다. 뉴스 앵커 출신 정치인인 클리피쉬는 2010년 선거에서 티파티 운동의 지지에 힘입어 부지사가 되었다. 한 진보적 신문은 사설에서 "이번 주민 소환 운동은 위스콘신이 오랫동안 자랑스럽게 유지해 온 가치와 이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 주 전체에 경제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해를 끼치고 있는 주지사와, 자신이 취임할 때 주 헌법을 수호하고 주민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한 선서를 뒤집고 있는 부지사에 대한 소환 운동은 단호하고도 확고하다"라고 썼다.

현재 미국에서 주민 소환을 통해 선출직 공직자를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는 주는 38개 주이다. 그 중 20개 주는 연방 공직자(연방의회 의원 등)나 주 공직자(주지사 등)를 제외한 지역 공직자(시장, 지방의회 의원 등)에 대해서만 소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나머지 18개 주는 주 공직자와 지역 공직자 모두가 소환 대상이 된다. 위스콘신은 이 18개 주 중 하나다.

이번 소환 운동은 미국 정치사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미국 역사상 현직 주지사를 대상으로 하여 주민 소환 운동이 벌어지고 실제 투표를 통해 주지사가 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두 차례에 불과하다. 하나는 1921년에 노스다코다 주에서 벌어졌고, 다른 하나는 2003년에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졌다. 터미네이터 슈워제네거가 새로운 주지사로 등장한 바로 그 소환이다.

1988년에 애리조나에서는 주민 서명을 통해 주지사 소환 투표가 성립되었는데, 투표일 이전에 주 의회가 탄핵하고 주지사가 구속되는 바람에 주민의 손으로 내쫓을 필요가 없어진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면, 주의 일부 정치 및 사회 세력이 주지사 소환 운동을 벌여 투표 성립에 필요한 서명 수를 채운 경우는 극히 드물다. 뒤집어 말하면, 적정한 수의 서명을 받아 소환 투표만 성립시키면 주지사 낙마는 거의 기정사실화된다고 볼 수 있겠다. 소환 투표를 했는데도 현직 주지사가 승리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이번 주지사 소환 운동에 사용될 캐치프레이즈는 '오소리가 족제비로 전락하는 일을 방치하지 마십시오'이다. 오소리(badger)는 위스콘신 주의 상징물이다. 이른바 '위스콘신 아이디어'를 무너뜨려 가고 있는 스캇 워커 주지사는 흔히 족제비(weasel)에 비유된다.


※ 이미지: Huffingtonpost 1, 2, TPM, CapitalTimes.

 

덧글

  • d 2011/11/16 23:15 # 삭제 답글

    정말 잼나게 읽었어요 한때 위스콘신 사태가 뉴스에 많이 나오던데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졌거든요 꼭 성공해서 스캇워커가 물러났으면 좋겠네요 항상 좋은글 감사드려요
  • deulpul 2011/11/18 02:19 #

    지난 초봄에 전미 흥행을 하고 한국에도 몇 차례 알려졌지요. 그 뒤 소강 상태에 머무른 것처럼 보였으나, 물은 수면 밑에서 열심히 끓고 있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민의를 모으고 반영할 수 있는 정치 과정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덕택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 2011/11/17 04:01 # 삭제 답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은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입니다.
    또 한번의 낭보를 기대하며 이번엔 나도 한표!!!
  • deulpul 2011/11/18 02:21 #

    저는 서명도 할 수 없고 투표도 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만, 언제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면 따뜻한 지지 덕담 몇 마디라도 건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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