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아줌마는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미국美 나라國 (USA)

러시아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끼의 장편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한 소년이 개인과 시대의 불행을 몸으로 겪으며 꿋꿋한 볼셰비키 전사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이 묻고 있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소설의 뒷장을 덮고 난 후라야 하겠지만, 이 급한 인스턴트 시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손이 저절로 뒷쪽의 정답지 묶음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선 급한대로 단답형으로 대답해 보자.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불 속에 들어가 온 몸이 녹도록 달구어지고, 쇠망치로 흠씬 두들겨 맞고, 찬 물에 들어가 분자 하나하나가 재배열되는 고통을 겪으며, 또 이러한 고통을 이기며 단련된다. 한 마디로 하면 시련과 투쟁으로 단련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소설의 주인공도 비슷한 과정으로 단련된다.

이것은 좀 거창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나 혁명 전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태동시키고 유지하는 구조 속에서 다수의 일상은 언제나 크고작은 시련의 연속이 아닌가. 이러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내 속에서 작은 혁명들을 끊임없이 이루어 가야 하지 않은가. 때로 세상은 뜨거운 쇠가 찬물에 들어갈 때처럼 정신이 번쩍 나는 각성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11월15일부터 미국 위스콘신에서는 주지사 스캇 워커를 소환하기 위한 서명 운동이 시작되었다. 15일 오전, 소환 운동 대표자가 소환 선거를 관리하는 주 정부 행정책임위원회(Government Accountability Board)에 청원서를 내는 장면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역사적인 청원 운동의 개시를 알리는 타종이나 마찬가지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 날 소환을 요구하는 주민들을 대표하여 청원서를 들고 행정책임위원회를 찾아 온 사람은 소환 운동을 이끄는 시민단체의 책임자가 아니라, 평범한 자원봉사자인 줄리 웰스 아줌마였다. 손주가 12명이나 있으니, 아줌마가 아니라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까. 하지만 할머니라고 하면 뭔가 보수적일 것 같다는 편견은 피하고, 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은 마음부터 젊으리라는 편견은 가동시켜, 그냥 아줌마라고 하자.




줄리 웰스는 지게차 운전사이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조합 소속은 아니다. 그녀는 작년까지만 해도 평생 정치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다. 흔히 정당에 가입하는 평범한 미국인과는 달리, 어느 정당에 속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 2월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주지사의 노조 파괴와 공공 부문 삭감에 항의하는 역사적인 시위가 그녀를 바꿔 놓았다. 시위를 보러 나왔던 웰스는 "아,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구나" 하고 느꼈다고 한다. 그녀 자신은 주 정부 소속 노동자가 아니지만,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단체협상권에 대한 주지사의 공격이 일단 마음에 걸렸다. 또 그동안 진전되어 왔던 환경 관련 규제들이 철폐되는 것과 공교육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녀의 크고작은 손주 12명이 바로 그 교육을 받는 대상자였다.

여름이 되고 시위에 힘이 빠지기 시작할 즈음, 웰스는 오히려 더욱 확고해졌다. 그녀는 앞으로 벌어질 일련의 소환 운동을 추진하는 단체에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카운티의 소환 운동을 떠맡게 되었다. 웰스의 카운티에서 주지사 소환 운동과 관련한 자원봉사자 첫 모임은 11월1일이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농촌 지역인 이 동네에서 모임에 나오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3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막상 모임 당일에 웰스와 동료 자원봉사자를 찾아온 사람은 무려 120명이나 되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서로에게 감동했다.

"이를 시작으로 해서, 지금까지 모두 250명의 자원봉사자가 서명 접수 교육을 끝마쳤습니다. 이 동네는 보수성이 강해서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잘 나서지 않지요. 두려워 하구요. 하지만 워커 주지사가 우리들을 일깨웠습니다. 내가 주지사라면 정말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을 거에요."




줄리 아줌마는 소환 운동 단체를 대표하여 청원서를 접수하면서 다음과 같은 짤막한 성명서를 읽었다.


저는 오늘 주지사 스캇 워커와 부 주지사 레베카 클리피쉬를 소환하려는 청원서를 정식 제출합니다. 워커는 위스콘신 주민에게 거짓말을 해 왔으며 우리 주를 파괴해 왔기 때문입니다. 워커는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교육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자신을 주지사 자리에 앉혀 준 거대 기업들에게 우리 주를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주지사를 소환하려는 노력은 드문 일이며, 우리 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워커의 행동은 우리에게 다른 선택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워커가 주지사로 존재하는 것을 단 하루도 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워커를 소환하러 나선 위스콘신연합의 수십만 지지자 중 하나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스캇 워커 때문에 고통을 겪는 수많은 위스콘신 주민을 대표하여, 또 그들을 위해 오늘 이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정치에 관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워커의 행동 덕분에 제가 사는 주를 위해 깨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스캇 워커와 레베카 클리피쉬를 소환하는 서명 운동에 수많은 위스콘신 주민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위스콘신 주민 소환 운동은 결국 숫자와의 다툼이고, 따라서 그 승패는 줄리 아줌마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 달려 있다. 매스컴의 초점은 주 정부가 있고 큰 행사가 벌어지는 주도에 쏠려 있지만,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시골 구석구석에서도 수많은 줄리 웰스들이 영하로 뚝뚝 떨어지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고 있다. 진보적 시민운동에 대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더 프로그레시브>의 편집장 매튜 로스차일드는 "내 평생 이렇게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풀뿌리 운동은 처음 본다"라고 말한다.

평범한 시민을 각성케 하고 단련시키는 요정들이 번성하는 시대다.

이들이 요정인가. 물론 아니다. 진짜 요정은 요술봉으로 꽃가루만 뿌리면 사람들이 환상에 빠지기도 하고 각성하기도 하지만, 이 정치 요정들은 흙먼지와 몸싸움과 피비린내와 아비규환의 세상을 만들어 내면서 사람들을 각성시킨다. 이러한 각성과 단련은 이런 요정들이 그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자 부산물이다. 하긴, 이러한 각성이 진짜 각성인지도 모른다. 쇠는 간지른다고 단련되는 게 아니라, 불에 들어갔다가 물에 들어갔다 두들겨 맞으면서 퍼렇게 벼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 이미지: AP 사진, PBS 정지화면

 

덧글

  • 딸기 2011/12/12 17:05 # 삭제 답글

    우와, 오스뜨로프스키 <강철~>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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