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저 부모 섞일雜 끓일湯 (Others)

잡지 <와이어드>에는 'Dear Mr. Know-It-All'라는 제목이 달린 간단한 상담란이 있다. IT와 관련해 일상에서 벌어지는 고민들을 상담해 주는 지면이다. 서너 달 전에 여기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실린 적이 있다.


저는 이따금씩 아들을 시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골드를 벌게 하고, 그 대가로 용돈을 줍니다. 아내는 기겁을 합니다. 난 이게 집 뜰의 잔디를 깎게 하고 용돈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정말 나쁜 아빠입니까?


컴퓨터/비디오 게임을 하며 자란 이들이 부모 세대가 되면서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 어릴 때 신나게 하던 놀이는 어른이 되면 대체로 재미가 없어져서 안 하게 되고 따로 어른들의 놀이를 배우게 되는데, 컴퓨터 게임은 이런 세대간 단절형 놀이에서 비교적 예외적인 경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게임 자체가 끊임없이 진화를 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말이 컴퓨터 게임이지, 그 안에는 장르가 전혀 다른 수많은 놀이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틀어 컴퓨터 게임이라고 하면,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범용성을 가진 놀이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인류사에 처음 등장한 이 신기한 놀이가 초기 게임 세대의 장년화, 더 나아가 노년화에 따라 어떤 사회 현상을 낳을지 궁금해진다. 30년 뒤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스타나 와우 같은 '고전 게임'을 하고 있는 노인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게임 세대의 부모화/장년화와 관련해 현실에서 두드러지게 알려지는 사례는 일단 부정적인 것들 위주다. 부모가 게임에 빠져 아이를 돌보지 않는 사건이 종종 나왔고, 중국의 사례지만 온라인 게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를 팔아 넘기는 일까지 보도되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집에만 들어오면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가족을 나몰라라 하는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일부 현상은 컴퓨터 게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여흥 오락 문화를 단순히 부정적인 것, 규제해야 할 것의 시각으로만 보기에는 그 저변이 너무 너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러한 현실이 개인과 가족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고 전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 컴퓨터/비디오 게임의 부정적 인식에 대한 반대 증거를 보여주는 연구들이 드물지 않은데, 이러한 양면성을 사회가, 특히 정책이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가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게임 '과몰입'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컴퓨터 게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지나쳐서 좋은 것은 별로 없다. 기호 식품인 술도 과하면 사고를 치거나 몸을 상하게 마련이며, 심지어 사랑과 관심도 지나치면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긴다. 컴퓨터 게임 과몰입 문제는 순수하게 컴퓨터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문제, 혹은 인간이 처한 상황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청소년이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게임 자체가 원인이라기보다, 청소년을 압박하고 있는 삶의 환경이 더 큰 원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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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드>의 상담자인 만물박사는 위의 질문에 대해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래와 같다.


(전략) 당신이 제3세계의 아동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 업자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면 그 대가를 받을 수 있음을 자식에게 가르쳐 주려는 정상적인 부모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일과 보수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건 애가 의자에 퍼질러 앉아서 콜라나 마시면서 수행할 수 있는 심부름 같은 걸 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듣고 있다: 당신의 자녀가 당신으로부터 들어야 하는 아홉 가지 메시지>의 저자인 짐 타일러는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데에서) 육체 노동의 가치를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돈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하려면, 글자 그대로 땀을 흘려서 돈을 벌게 해야 합니다. 와우의 세계를 어슬렁거리는 데 대가를 지불한다면, 이러한 소중한 교훈은 사라져 버릴 수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 돈을 모으는 일은 지루하긴 하지만, 지저분한 빗물받이 홈통을 청소하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밖에 내보내 잡초를 뽑게 함으로써 돈의 가치를 알려주라고 해서, 당신이 레벨 85짜리 캐릭터가 되려는 꿈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의 돈만 지불한다면 당신 캐릭터의 금고를 부풀려 줄 중국 기업이 널려 있습니다. 아니면 내 캐릭터를 사시든지요. 혹시 내가 키운 오크 샤먼 캐릭을 사실 생각 없으세요? 왜냐하면, 나는 이제 이 게임을 끊고 내 아들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는 참이라서요.


창 밖에서 해가 뜨고 달이 지고 가난한 이웃들이 땀을 흘리는 실제 현실도 중요하며, 그러한 현실을 아이에게 잘 이해시키는 것도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부모의 역할이라는 뜻이 되겠다. 생각해 보면 저 아빠의 질문은 사실 어이가 없는 것이긴 한데, 게임을 하며 자란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걱정되는 딱 한 가지 보편적 문제는, 아쉽게도 컴퓨터 게임은 삶에 꼭 필요한 규범과 가치관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덧글

  • dhunter 2011/12/14 19:44 # 삭제 답글

    Wired를 꼼꼼히 보신다니 IT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매우 깊으시군요 -ㅂ-;


    ... 그나저나 정말 놀라운 사례네요.;
  • 타츠야 2011/12/14 22:13 # 삭제 답글

    와이어드를 챙겨보진 않는데 Dear Mr. Know-It-All 코너는 좋아보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lightsound 2011/12/15 00:41 # 삭제 답글

    정말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
    저 역시 비디오 게임세대라 공감도 가고 걱정도 되는 군요. - ...청소년을 압박하고 있는 삶의 환경이 더 큰 원인... 정말 좋은 지적이라 생각됩니다.
    비디오 게임과 아이들의 교육, 그리고 부모가 어떻게 정확히 바라봐야 하는지, 신중하게 고민 해야 할 것 같네요.
  • 비정규인생 2011/12/15 09:21 # 답글

    만물박사님 유머가 넘치네요 ㅎㅎ
  • 2011/12/16 17: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12/31 02: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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