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 않은 '이상한 정정 보도' 중매媒 몸體 (Media)

'스크루 박' 박석순 원장의 항변, 나는 '스크루 원조' 아니다

강에 배가 다니면 수질이 좋아진다고 주장해 왔다는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장에 대한 <한겨레> 기사다. 기사는 1) 그가 이 같은 취지의 말을 여러 번 해 왔으며, 2) 하지만 지금 물어보니까 그런 주장과 관련한 과학적 근거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으며, 3) 다른 학자는 이런 주장이 현실성 없다고 말했다고 서술했다. 기사는 말미에 4) 박석순을 비롯해 4대강 사업을 지지하던 학자들이 환경부 산하 주요 기관장을 맡고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4대강 사업에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이 기사의 취지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스크루'의 수질 개선 효과와 관련한 논란이 아니라 '스크루 박'과 관련한 논란, 즉 이 기사의 시작 부분이었다. 기사는 <경향신문>이 낸 정정 보도 하나를 언급하며 시작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며칠 전 <경향신문>에 이상한 정정보도가 떴다. 이번 정부의 대표적인 ‘4대강 전도사’인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가 국립환경과학원장에 임명됐다는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였다. 정정 대상이 된 기사의 제목은 “‘스크루 박'을 환경과학원장에”였다. '스크루 박'은 환경단체가 박 원장에게 붙인 별명이다.

박석순 교수는 경향신문의 해당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했고, 경향신문과 박 교수는 여러 차례 협의 끝에 1월21일 2면에 ‘바로잡습니다’를 냈다. 그런데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이상하다. 전문을 옮기면 이렇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9월29일자에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장이 2008년 1월10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여기(대운하)에 선박을 운행하면 산소가 공급됩니다. 배의 스크루가 돌면서 물을 깨끗하게 만듭니다"라고 언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박 원장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 원장은 2008년 대운하토론회에서 “일부 정체된 구간에서는 선박이 운항됨으로 인해서 산소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스크루’란 단어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정정보도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쉽게 말해 박 원장은 선박이 운항하면 산소 공급이 이뤄지는 건 사실이지만, 다만 ‘100분 토론’에서 ‘스크루’라는 말은 한 적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의문점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돛단배나 요트를 빼고 세상에 스크루로 안 가는 배가 있나? 어차피 같은 얘기 아닌가?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서 겹따옴표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이렇게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경향신문> 기사는 겹따옴표를 써서 박석순이 한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박석순이 하지 않은 말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나중에 그런 사실(즉 사실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정정 보도를 낸 것은 책임 있는 언론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석순이 한 말의 취지나 논리가 사실상 '스크루'라고 해도, 그리고 <경향신문>을 상대로 한 정정 보도 요구가 박석순의 트집 잡기나 더 나아가 정부의 4대강 사업 홍보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일단 잘못은 잘못이므로 정정 보도가 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겨레>의 기사는 이를 놓고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이상하다"라고 한다. 내용을 꼼꼼히 따져 볼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하나 없다. 인용문은 취재원이 실제로 한 말을 쓴다는 기초 원칙만 챙기면 된다. 취재원이 하지도 않은 말을 인용문으로 옮기는 것은 두 말 필요없는 잘못이다. 모르고 했으면 실수고, 알면서도 기자의 논리로 환원하여 재구성하여 보도했으면 기만이다. 말을 듣고 적거나 녹음하여 옮기는 과정에서 그런 실수는 벌어질 수 있지만, 그런 실수를 놓고 '어차피 같은 얘기 아닌가' 하든지 혹은 그에 대한 정정 보도가 '이상하다'라고 생각한다면 한참 잘못되었다.

세상이 험하고 삶이 전투나 다름없이 되어가서 그런지, 그래서 그런 세상이 사람들에게 뭘 급히 이루어야겠다는 강박을 가져다 주어서 그런지, 결과에 봉사하기만 한다면 과정의 엄밀성은 제쳐 놓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 점점 더 흔해지는 듯하다. 위 기사에서도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는데, 혹은 박석순의 어이없는 말을 비판하자는데, 정확한 인용이라는 원칙쯤 경시했다고 해서 무슨 문제인가 하는 의도가 읽힌다. 일반 독자도 아니고, 기자가 그런 뜻을 내비친다.

이것은 이를테면 4대강 사업을 밀어 붙이는 이들 같은 성과주의자나 결과지상론자들의 태도이지, 그것을 비판해야 할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니다. "뭘 보나, 경제를 살리자는데"라는 주장이 한국 국가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가져왔는지 뼈저리게 겪고 있지 않은가. 미래에 얻게 될 엄청난 국익을 논하던 황우석은 어떻게 하여 날개가 꺾이고 주저 앉았던가. 한국을 혼란과 갈등에 빠뜨린 한 원인이기도 한 이 같은 결과지상주의 행태는, 한때는 일부만의 현상인 것처럼 보였으나, 점점 더 보편화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개개인도 방법과 절차에 민감해야 할진대, 사실에 살고 사실에 죽어야 할 언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생각하자면, 확인되지도 않은 말을 무책임하게 내놓거나 부채질하는 사람들이 언론상을 받는 세상이니, 이 정도는 애교라고 보아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다른 이야기지만, 위에서 인용한 <한겨레> 기사는 본문에서 <경향신문>의 관련 기사와 <오마이뉴스>의 관련 동영상을 링크로 연결시키고 있다. 한국 인터넷 매체 기사에서 보기 드문 현상인데, 이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 언론 보도문의 직접 인용(quotes)과 관련한 이야기를 포함시켰으나, 너무 길어서 잘랐음. 뒤이어 따로 올릴 예정.

 

덧글

  • dhunter 2012/02/03 07:30 # 삭제 답글

    스크루로 안 가는 위그선이 나와서 한겨레를 뻘쭘하게 만들 기세...
  • 가끔오는독자 2012/02/04 22:32 # 삭제 답글

    저도 참 답답합니다. 기사 보다 보면, 내용은 둘째 치고, 언론인으로서 기본 소양이 안돼 있는 게 뻔히 보이는 기자들이 너무 많아서요.

    말씀하신 것처럼 사고방식 문제일 수도 있지만, 기본에 해당하는 걸 모르는 저런 사례를 보면 그냥 미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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