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방과 중퇴생 브래드 피트 섞일雜 끓일湯 (Others)



나에게 있어 브래드 피트는 <델마와 루이스>로 시작해서 <파이트 클럽>으로 완성된 배우로 인식된다. 한 대 후려치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조연 배역이었던 피트는 이제 숭배의 대상이 될 정도로 훌쩍 컸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완성된 배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를 보여주었다고 할까.

이제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중견 배우이고, 더구나 졸리님의 남편이 되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의 심히 창대한 현재 역시 미약한 시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브래드 피트는 연기를 전공했는가? 아니다. 그의 대학 전공은 저널리즘이다. 졸업도 안 했다. 다니다 때려치웠는데, 졸업을 불과 두 주 남겨놓고 그랬다. 성격 참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으로 채우려는 사람에게 대학 졸업장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새 영화 <머니볼>과 관련하여 작년 9월에 NPR의 '프레쉬 에어'에 나온 브래드 피트는 대담자 테리 그로스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로스: 당신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죠? 졸업한 뒤 뭐가 되고 싶었나요?

피트: 확실한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내 자신에 대해 시험하는 기간이었죠. 그 학교는 미국 최고 수준의 저널리즘 스쿨이었거든요.

그로스: 무슨 대학인데요?

피트: 미주리 대학이요.

그로스: 그렇군요.

피트: 졸업 때가 다가오자, 친구들은 모두 취업 준비로 바빴어요. 그런데 나는 그 쪽으로 나갈 준비가 안 되었음을 깨달았어요. 영화를 공부하거나 그 방면으로 진출할 수 없다는 점을 언제나 아쉽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거죠.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짐을 쌌어요. 졸업을 안 한 거죠. 2주 남겨놓고 로스앤젤레스로 와 버렸어요.

그로스: 단 2주 남았는데 왜 끝내지 않았나요? 그 정도 시간은 눈 깜짝하는 동안 지나가잖아요.

피트: 스파이크 존스가 크리스 쿠퍼랑 만든 영화에서 명대사가 있었는데요...

그로스: 수전 올린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죠? 제목이 <각색(Adaptation)>이었죠.

피트: 네, 거기서 주인공이 난초 관련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 기억이 맞다면 물고기를 키우는 일을 했었죠. 근데 누군가가 왜 그 일을 그만두었냐고 물으니까, 그건 할 만큼 했다고 대답하죠. 나도 그랬어요. 내가 거기서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 했죠.

그로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스스로 알았던 거군요.

피트: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았던 거죠. 나에겐 나아갈 방향이 있었어요. 나는 이처럼, 다음의 목적지를 깨닫게 되는 통찰의 순간을 언제나 좋아했어요.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졸업이 다가올수록 어떤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거에요. 친구들은 일을 찾아갔죠. 나는 거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내게 있어 영화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것이었요. 하지만 미주리에서 영화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죠. 그래서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영화가 내게 오지 않는다면, 내가 영화에게로 가자!'


유명 대학의 졸업장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방향(direction)을 선택한 피트는, 전재산인 275달러와 낡은 닷슨 자동차를 갖고 할리우드로 건너갔다.

물론 그렇게 선택한 삶이 쉽지는 않았다. 로스앤젤레스로 와서 연기 학원을 다니며 정식으로 연기를 공부했다. 돈은 잡일로 벌었다. 댄서들을 업소에 데려다 주는 리무진 운전사나 이삿짐 업체 일꾼 같은 험한 일이었다. 한때 그는 패스트 푸드점에 고용되어, 커다란 닭 의상을 뒤집어 쓰고 춤을 추며 식당을 홍보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숱한 별들이 지나다니는 할리우드의 선셋 불리바드에서였다. 길거리의 인간 광고판을 보고 비웃어서는 안 된다. 그 안에는 당신은 생각조차 않는 커다란 꿈을 키우는 젊은이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피트는 로스앤젤레스로 온 지 9개월 만에, 자막에 이름도 오르지 않는 단역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유명하지 않은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질구레한 역할을 하던 피트는 1991년의 <델마와 루이스>, 1992년의 <흐르는 강물처럼>, 1993년의 <칼리포니아>를 거쳐 1994년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나아가며 탄탄한 할리우드 인생에 진입하게 된다. (이 영화들은 모두 내가 무척 좋아하는 것들이다. 피트와는 관련 없이 그런 것인데, 생각해 보니 그가 단역으로 잠깐 나왔던 1993년작 <트루 로맨스>도 페이버릿 중의 하나다. 우연이든지, 아니면 내가 너무 잡식성이든지.)

피트가 마지막에 때려치우는 바람에 졸업장을 못 받게 된(아니지, 안 받게 된) 수업은 무엇일까. 피트는 2학점이 모자라서 졸업이 안 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마지막 수업은 'J336' 이라는 수업 분류 번호가 붙은 광고 디자인 수업이었다. 이 수업의 학기말 과제는 '달력 만들기'.

피트와 친했던 한 교수의 후일담에 따르면, 대학생 피트는 이 과제물을 준비했으나 담당 교수는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제물에 대한 예비 평가에서 담당 교수는 피트가 작품을 너무 빨리(대충)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피트가 배우로 성공한 뒤,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은 피트가 이제라도 해당 과제물을 제출하면 2학점을 인정하고 졸업장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피트가 나온 영화의 장면들을 그냥 붙여서 제출하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제안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해당 수업이 요구하는 '전문성'은 충분히 갖추어진 셈이니까 말이다.

피트는 이러한 제안에 별다른 대답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에도 중요하지 않았던 대학 졸업장이 이제 새삼 중요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브래드 피트는 대졸이 아니다. 대학을 때려치운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이 만들어 준 삶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direction을 따라 가는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보람있지 않은가 싶다. 인생이란 어차피 한 번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면, 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죽을 때 후회는 덜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에 나오는 바텐더 존처럼 끊임없이 자괴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해마다 오는 졸업 시즌이 되니 그런 생각이 든다.

※ 이미지: 인터넷에 널려 있는 영화의 한 장면.

[덧붙임]

생각난 김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저 위에서 브래드 피트와 대담을 한 테리 그로스 이야기다. 이 아줌마는 공영방송 NPR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인 '프레쉬 에어'의 진행자이자 프로듀서이다. '프레쉬 에어'는 유명인이나 화제의 인물을 불러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 프로그램인데, 필라델피아에서 제작된다. 현재 청취자는 450만 명 정도라고 한다. 대담 대상자는 문화, 예술, 출판, 연예, 사회, 언론, 정치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선정되는데, 문화 영역에 좀 특화되는 느낌이 있다.

테리 그로스는 이 프로그램을 1975년부터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도 장수 프로그램이지만, 진행자 역시 이 프로그램과 함께 성장하고 늙은 셈이다. 상도 많이 받았다. 그녀는 인터뷰 전에 대담자에 대해 지독하게 공부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한 방송인 그로스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뉴욕 출신인 그로스는 뉴욕주립대(SUNY) 버팔로에서 석사를 했다. 학부 전공은 영문학, 석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공부를 끝낸 뒤 잡은 첫 직업은 중학교 교사였다. 힘차게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로스는 그러나 6주 만에 잘리고 말았다. 너무 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녀는, 자신이 교직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학교에서 해고된 뒤 찾아간 게 라디오 방송사다. 다행히 버팔로에 있는 NPR 네트워크 소속 방송사에서 받아줬다. 그런데 무보수 자원봉사직이었다. 말하자면, 돈을 안 줘도 좋으니 일하게 해 달라고 한 셈이다. 지금식으로 말하자면 무급 인턴이라고 할까.

학교에서 잘리고 방송사에서도 무급 직원. 실의에 빠질 만도 한데, 젊은 그녀는 열심히 배웠다. 2년 동안 프로그램 제작과 진행을 배우고 실제로 해본 뒤, 필라델피아에 있는 현재의 방송사로 옮겼다. 여기서 '프레쉬 에어'의 진행자가 되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지역 인물을 중심으로 인터뷰하는 작은 대담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딱 10년 뒤, 이 프로그램은 NPR을 통해 전국 네트워크에 제공되는 방송이 되었으며, 그녀에게 전국적인 방송인으로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 이미지: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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