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종업원은 종이 아니라 계약자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임신부 폭행 논란 ‘채선당’ 들끓는 여론에 결국…

사건에 얽힌 사람들은 각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이런 사건은 늘 그렇듯 순식간에 넷 세상을 후닥닥 달궜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파르르 식으며 지나갈 것이다. 여기서 어떤 교훈이라도 조금 건져낼 수 있다면, 세상이 소란스러우며 사람들의 정서와 넷의 바이트가 낭비되는 것만큼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바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위 사건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 나는 우리 사회가 식당 종업원이라는 특수 직종 종사자들에 대해 좀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전으로 떠받들고 모시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 주고 받아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의 식당 종업원은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빈부 격차에 따른 계급 모순, 남녀 차이에 따른 성 모순, 나이 차이에 따른 세대 모순 같은 것이 총체적으로 담긴 직종이며, 만일 종업원이 외국인 노동자라면 국가 간의 경제력 차이에서 나오는 모순, 더 나아가 중국 동포 같은 경우라면 한국의 과거사에서 비롯되는 시대적 모순까지 모두 체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모순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돈을 주고 밥을 사 먹으면서 종업원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반말은 기본이고 정말 종을 부리듯 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내 돈 내고 밥을 먹으니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현대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것도 계약 행위의 일종이다. 소비자는 돈을 내고 밥이라는 재화와 서빙이라는 용역을 산다. 식당 주인은 돈을 받고 밥과 서빙을 판다. 종업원은 식당 주인에게 돈을 받고 노동력을 팔아, 주인 대신 소비자에게 서빙을 제공한다. 이것은 완전히 금전적 보상을 고리로 한 계약 관계다.

따라서 여기서 각자의 계약상의 책무는 보상이 되는 부분, 즉 돈을 받는 부분까지다. '서빙'의 정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에 대해 정밀한 합의를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지만, 종업원이 소비자에게 무한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님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내가 식당에서 종업원 하고 있다고 해서 네가 나를 종으로 부릴 수 있다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돈을 내고 밥을 사 먹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서빙을 하는 종업원이 계급 모순, 남녀 모순, 세대 모순, 국제적 모순의 약자라는 이유로 종업원에게 왕처럼 군림하며 전근대적인 무한 봉사를 요구한다. 당신이 받을 수 있는 서빙은 당신이 먹는 김치찌개 5천원어치 + 당신의 인간됨에 비례하는 정도의 봉사다. 밥집에서 밥을 먹고 술을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왕이 되고 종업원이 당신의 몸종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육체, 감정 노동을 동시에 하는 노동자

종업원과 식당 주인이 손님에게 밥을 먹이면서도(= 정당한 대가를 제공하면서도) 그가 돈을 지불하는 데 대해 감사히 생각해야 한다면, 손님은 돈을 내면서도 (= 정당한 값을 치르면서도) 밥과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대해 감사히 생각해야 한다. 이게 자본주의적 계약 관계의 상식이고, 그 이전에 인간적인 상식이다.

식당 종업원은 육체 노동자임과 동시에 감정 노동자가 아닌가. 어느 한 가지도 쉽지 않다. 식당에서 일해 본 이나 가까운 데 그런 사람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일인지.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인상 찌푸리면서 일할 수도 없다. 손님 눈치도 봐야 하고 주인 눈치도 봐야 한다.

식당 종업원이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챙겨줘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당신의 노예나 종이 아니라, 급여를 위해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라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이나 당신 배우자가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이듯이 말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요식업소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자영업이 어쩔 수 없이 팽창해 있는 시기에, 가족 친척 서너 다리만 건너면 식당 하는 사람이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 한둘은 꼭 있을 것이다. 세상은 좁다.

특히 남자들은 중년으로 넘어가면서 식당 가서 반말 찍찍하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게 무슨 권세나 되는 것처럼 여기는 인간들이 많은데, 권세 부릴 데가 없어서 기껏 식당 종업원에게 거드름을 부리는지, 옆에서 보기에도 참 불쌍할 지경이다.

내가 밥을 사 먹는다고 왕이 되는 것이 아니며, 종업원이 식당에 고용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나의 몸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조금 더 커질 수 있다면, 작금의 왈가왈부가 전혀 무익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 세대가 달라진 덕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자신이 내는 돈의 가치만 알고 상대방이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는 모르는 사팔뜨기 인간들이 새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진상 손님이 있다면 진상 종업원도 있을 것이다. 상식과 수학으로 유추해 보면 그 수는 훨씬 적겠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해당 사건에 대한 글이 아니며, 사건의 내용도 맨 위에 인용한 기사 이상은 모른다.

오래된 생각이다.

 

덧글

  • okcom 2012/02/19 15:51 # 삭제 답글

    좋은 글입니다. 얼마 전 저희 어머니께서 동네 병원을 다녀 오시더니 데스크 담당 간호사가 싹싹하지 않다며 인터넷에 항의글을 올려야 겠다 하시더군요. 병원은 치유를 위한 공간이므로 간호사도 정서적으로 그런 임무를 거들어야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병원엔 그냥 안 가는 것이 소비자의 권력 행사라고 거드셨구요. 저는 "간호사가 꼭 친절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친절하지 않은 게 아니라 개인 스타일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지난 주말에는 삼성전자 AS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일요일에도 센터가 운영하는지를 몰라 나서길 주저하던 차에 어머니께서 "소비자를 위해서라면 영업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셔서 "우리가 지금 쉬듯이 그 사람들도 주말엔 쉬어야 맞지 않겠냐"고 말씀드린 일도 있네요. 저는 부모님과 사회문제에 대해 말을 나누지 않은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이 두 차례의 대화는 그 어떤 때보다 서로의 관점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교환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불필요하게 가족사(!)를 길게 적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공감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 deulpul 2012/02/23 02:03 #

    네, 아주 공감하면서 저도 반성이 됩니다. 저 역시 '어떤 직종의 직원이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그 틀로 다른 노동자들을 본 적이 없다고 할 수 없거든요. 많은 경우 이런 상황은 상대방의 노동 환경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데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도 그런 점이 좀 있구요. 생각해 볼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 5150 2012/02/19 20:08 # 답글

    전에 들풀님이 댓글로도 언급하셨던 김여진씨의 "서비스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란 말이 생각나네요.
    내가 돈을 냈으니 무슨 짓이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 deulpul 2012/02/23 01:57 #

    그런데 사실 많은 일이 그렇듯, 이런 각성이 필요한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갖거나 느끼지 않고,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각성이 필요없는... 불행한 상황이지요. 새로운 사회 구성원들을 잘 키우는 것이 방법일텐데...
  • 철면피 2012/02/22 13:40 # 삭제 답글

    남자는 앉아서 일하고 여자는 서서 일한다. 남자가 앉아있는건 당연시 여기고 여자가 앉아있으면 꼴보기 싫고 못마땅해 하는 한국놈들의 몹쓸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결국 남자들은 계속 앉아있어 다리가 약해지고 여자들은 서있으면서 다리가 단련되어 남자는 여자보다 팔만 강하고 다리가 약해지는 치욕스런 결과를 낳았다.

    남자가 여자보다 하체부실도 훨씬 많고 통풍이나 대퇴골두무혈괴사증 같은 다리병도 많이 걸린다. 정말 창피한 일이다. 이게 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하루종일 서있거나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일은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전에 앉아서 일하던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여직원들 조차 하루종일 서서 일하도록 하는 어리석은 지점장도 있다.

    반면에 남자들은 앉아서 하는 일에 많이 종사한다. 그리고 업무공간이 만들어질 때 여자들이 주로 하는 업무는 애초에 앉을 생각을 못하도록 가구나 비품배치가 서서 작업하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남자들이 주로하는 업무는 가구나 비품배치가 앉아서 하도록 설게되는게 보통이다. 동일한 업무도 남자는 앉아서 여자는 서서 하는 경우도 흔하다.(대표적인게 빌딩 안내데스크)

    서비스업 여성들이 하루 11시간 이상을 서서 일하도록 강요 받는데 반해 대부분 남자들이 한시간만 서있으면 다리가 아파서 의자를 찾는다.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

    상황이 이럴진데 남자들이 간호사, 백화점 점원, 승무원등 서비스직 종사 여성들에게 하루종일 서있으면서 서비스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며 수치스런 행위이다. 예전에 백화점 점원들 의자 놓아주기 운동하는데 여자만 보면 거품물고 열폭하는 다리약한 찌질이들이 거품물고 반대했다는 사실은 정말 수치스러움을 넘어 경악할 일이다.

    그리고 다리가 약해서 여자보다 오래 서있지 못하는 놈들은 남성들의 수치로써 지금부터라도 다리운동을 열심히 하던가 그게 하기 싫다면 자지를 자르고 성전환 수술을 하여야 한다.

    또한 여자들이 벌서듯이 서있어야 그게 친절이고 고객만족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진 업주들은 자격이 없는 놈으로써 그 자격을 박탈하고 강제로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
  • deulpul 2012/02/23 01:54 #

    어... 과격한 말씀이긴 하지만, 불필요한 육체적 고통을 강요하는 작업장 형태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말씀에는 100% 동의합니다. 이게 무슨 고객에 대한 봉사처럼 여기는 사업주들이 있는데, 저는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제가 먼저 불편해지거든요.
  • capcold 2012/02/22 16:07 # 답글

    !@#... http://news.mt.co.kr/mtview.php?no=2012022215160293626&type=&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내용이더군요 결국.
  • deulpul 2012/02/23 01:44 #

    역시 한국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고 한국 뉴스는 2개월 뒤 다시 봐야 한다는... 언론의 불편부당성은 주로 양측의 주장을 모두 반영하는 것으로 충족되는데, 이게 언론만이 지키고 기억해야 할 규범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킨 사례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극성스런 인스턴트 PR 시대라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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