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은 왜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는가 섞일雜 끓일湯 (Others)

어제 열린 2012년 아카데미 시상에서 각본상은 <파리에서 한밤중에(Midnight in Paris)>를 쓴 우디 앨런에게 갔다. 상은 갔지만, 수상자는 상을 받지 않았다. 앨런은 언제나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상자 이름이 발표되고 청중은 박수를 쳤지만, 객석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봉투를 열었던 안젤리나 졸리는 "아카데미는 우디 앨런에게 축하를 보내며, 그를 대신하여 이 상을 받습니다(The Academy congratulates Woody Allen and accepts the Oscar on his behalf)"라고 말하고 넘어갔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문장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앨런은 매번 시상식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1978년에 <애니 홀(Annie Hall)>로 첫 오스카 상을 받을 때부터, 시상자들은 트로피를 주고 악수를 나누는 대신 이 말을 낭독해야 했다.

영화로 일가를 이루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는 우디 앨런은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가장 큰 행사인 연례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가지 않는다.

아카데미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카데미는 지금까지 그를 무려 23차례나 아카데미 상 후보로 올려 주었다. 그 중에 네 번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세 번은 각본상이었고 한 번은 감독상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수십 년 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1974년에 자신의 작품 <슬리퍼(Sleeper)>가 아카데미로부터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을 때, 그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상을 주고받는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죠. 나는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따를 수가 없어요. 그들이 '당신 작품은 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라고 할 때 이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상을 받을 가치가 없다'라고 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죠.

앨런의 전기 작가로 <우디 앨런과 대화하다(Conversations with Woody Allen)>를 쓴 에릭 랙스는 NPR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앨런은 예술이 평가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예술이란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공연이 저 공연보다 낫다거나 이 글이 저 글보다 낫다는 식으로 말할 수가 없다는 거죠.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의지하는 것은 덫에 걸리는 일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훌륭한 평가자들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의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를 그들의 평가에 맡기는 덫에 빠지게 되면, 당신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과 거래를 시작하게 된다는 겁니다.

랙스는 앨런이 왜 아카데미와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가를 설명하면서, <애니 홀>에 나온 대사 하나를 제시한다. 여기서 앨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건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야. 나는 나 같은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모임에는 절대 나가고 싶지가 않다구.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미국 영화계의 거목임에도 아카데미 회원이 아니다.

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한 단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10년 전인 2002년 시상식이었다. 뉴욕에 9.11 공격이 벌어진 뒤 처음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우피 골드버그의 소개로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앨런은, 자신이 왜 나타났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넉 주 전쯤에, 뉴욕의 집에 앉아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수화기 속의 목소리는 자신이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아카데미의 원이름)라고 밝혔는데,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했어요. 전에 나에게 준 오스카 상을 되돌려 받으려고 전화한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내가 전에 몇 번 상을 받은 적이 있잖아요. 이 상을 철회하려는 건줄 알았죠. 기겁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전당포가 망한 지가 옛날이어서, 그 트로피들을 되찾아 올 수가 없으니까요.

근데 전화의 용건은 그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더욱 영문을 알 수가 없었어요. 내가 올해 만든 영화 <옥전갈의 저주(The Curse of the Jade Scorpion)>는 오스카 상 어디에도 후보로 올라가지조차 않았거든요. 그래서, 아카데미가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전화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죠.

또 이런 생각도 했어요. 어느 날 맨해튼 5번가를 걷고 있었는데, 노숙자 한 명이 다가와서 점심을 사달라고 했어요. 점심을 사주진 않았지만 50센트를 줬죠. 혹시 그때, 아카데미 회원 누군가가 우연히 이 모습을 목격하고, 나에게 진 허숄트 선행상을 주려는 게 아닐까. 혹은 (주로 원로 제작자에게 주는) 솔버그 상 같은 건지도 모른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죠. 나이 계산을 하게 되는 거지요. 난 지금 예순 여섯이거든요. 나도 내 인생의 3분의 1이 끝났다구요.

그런데 전화를 걸어 온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니라고 했어요. 작년에 뉴욕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뒤, 아카데미는 뉴욕을 지지하고 기리는 뜻으로 뉴욕의 모습이 담긴 영화의 장면들을 모아서 보여주자는 결정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소개를 제가 해 주었으면 한다는 거죠. 그래서, 아이구, 나보다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숱하게 있지 않냐고 했죠. 마틴 스콜세지, 마이크 니콜스, 스파이크 리, 시드니 루멧... 쌔고 쌨죠. 이름을 죽 불러 주고 나서, 나보다 재능이 있고 똑똑하고 세련된 사람 열댓 명쯤 불러 줬으니 그들 중에서 찾아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건 맞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없다고 했다는 거에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난 뉴욕을 위해서라면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턱시도를 입고 이렇게 나왔죠. 뉴욕은 훌륭한 영화 도시에요. 나는 어릴 때부터 뉴욕 거리의 영화 세트에서 자랐어요. 이 거리에서는 언제나 영화가 만들어졌거든요. 뉴욕은 영화 속에서 낭만적이고 멋진 배경이 되어 왔어요. 지금도 활기 넘치고 근사한 뉴욕은 여전히 영화를 하기 좋은 도시입니다. ...(재미있는 '발 페티쉬 남자' 농담은 생략) 그러니 뉴욕으로 와서 영화를 만들어 주세요. 뉴욕은 언제나 훌륭한 도시로 남아 있을 겁니다.

큰 사건을 겪으며 충격에 빠진,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 뉴욕을 위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왔다는 말이 되겠다. 자신이 별로 인정하지 않아서 경원해 왔던 자리에 나왔는데도, 회원들을 포함한 쟁쟁한 관중들이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에서 그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고, 좀 불편할 수도 있는 자리를 재기발랄한 농담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도 소탈한 거장답다.

우디 앨런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가지 않는 것과 관련해 많은 '도시 전설'이 떠도는데, 그 중 하나는 그가 뉴욕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고(아카데미 시상식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다), 또다른 하나는 시상식을 거부하고 그 시간에 재즈바에서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앨런에게 늘 붙어다니고 나도 언젠가 그렇게 들은 바 있어서 그렇게 알고 있었다.

앨런이 음악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색소폰은 아니지만, 운지가 비슷한 클라리넷 주자다. 1960년대 말부터 재즈 악단에서 공연을 했고, 밴드와 함께 유럽 투어도 갔으며, 음반도 냈다. 앨런의 밴드(New Orleans Jazz Band)는 매주 월요일에 맨해튼의 한 호텔 바에서 연주를 해 오고 있다고 한다.




앨런은 음악에 상당히 열심인 것 같다. 랙스가 쓴 전기에는 그가 클라리넷을 연습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 때문에 <샘, 다시 한번 연주해줘요(Play It Again, Sam)>를 찍을 때는 아랫입술이 벗겨져 있었고, <옥전갈의 저주>에서는 입술이 부은 모습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색소폰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위의 앨런 전기에도 색소폰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색소폰이든 클라리넷이든, 그가 시상식을 제치고 바에서 무언가를 연주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일까. 랙스는 "그건 정중한 변명이라고 봐야겠죠. 만일 시상식 때 연주가 잡혀 있다면, 그는 내가 연주를 해야 하니까 못 간다고 하긴 할 겁니다. 이런 변명은 <애니 홀> 때부터 있었던 거죠"라고 한다.

어쨌든 지극히 뉴욕적인 색깔과 뉴욕적인 재능과 뉴욕적인 자존심을 가진 앨런.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그의 특이한 자존심은 거장만이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아니면 이런 자존심을 가졌기에 거장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남의 평가에 (종종 지나치게) 민감한 우리로서는 되새겨 들을 만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한편, 이렇게 자신들이 주최하는 뜻깊은 행사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꾸준히 수상 대상에 올리고 투표를 통해 상도 수여하는 아카데미 회원들도 인상적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한다고 할까.

 

덧글

  • 에스티마 2012/02/28 07:31 # 삭제 답글

    저도 어제 아카데미시상식을 보면서 우디 알렌이 "역시 안나왔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이렇게 멋지게 정리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ㅎㅎ
  • deulpul 2012/02/28 12:35 #

    아, 함께 보셨군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시상식 방송에 서너 개 붙은 스폰서 중 하나로 현대자동차가 들어가는 바람에 아제라와 제네시스 광고를 계속 보아야 했는데, 잦은 광고를 보면서도 짜증나기보다 뭔가 기특한 생각이 드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막판에는 늘 그렇듯 뮤트시키고 보긴 했습니다만, 하하.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 joonwlee 2012/02/28 08:43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deulpul 2012/02/28 12:35 #

    고맙습니다.
  • 에스티마 2012/02/28 14:06 # 삭제 답글

    저도 어제 TV를 보면서 삼성과 현대가 번갈아가면서 스폰서로 나오고 광고가 계속 나오는 것을 보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ㅎㅎ 정말 옛날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잖아요?
  • deulpul 2012/02/29 06:54 #

    네, 안에서야 어쨌든 밖에서 볼 때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이란인이나 남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인, 미술상을 받은 이탈리아인이 그런 것처럼, 언젠가 한국어도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2/02/29 17: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2/29 23:04 #

    네, 그렇게 하십시오.
  • thyade 2012/03/06 20:20 # 답글

    요즘 하루 서너 시간 자면서 PT 준비 중인데, 앨런의 <바나나 공화국>처럼 발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ㅠㅠ 아무래도 일하기 싫어서 <스몰 타임 크룩스>처럼 땅굴이라도 파야 하나 싶네요.
  • deulpul 2012/03/07 03:56 #

    인생이 그처럼 스펙터클하다면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매체 인물상의 재현이 빚어내는 비극은 수퍼맨 흉내를 낸 아이에서 끝났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삶이 때로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기막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언제나 희극적인 쪽으로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 좀 아쉽습니다만. 일을 땅굴처럼 파시니, 절반은 재현하고 계신 듯도 싶네요. 게다가 성공은 종종 예기치 않은 쪽에서도 나오나니...
  • thyade 2012/03/07 04:18 #

    남조선의 '막장드라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몸, 미니시리즈의 문법을 빌어 '너희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실패해왔으니 우리 제안을 받아들여 철썩~' 이렇게 발표하면, 재벌2세의 마인드로 돌변한 클라이언트가 '우리한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일해줘' 이러는 건가요? ㅋㅋ
  • deulpul 2012/03/07 10:22 #

    흠... "일해줘!" 할 뿐 아니라 "아가야~"로 나온다든지... 화자의 퀄리티도 중요하겠습니다만. 뭔가 상당히 구닥다리 느낌이 나지만, 최근 한드 트렌드는 쫓지 못하는 터라 이해 바랍니다. 어렵게 진행하시는 것이니 꼭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 막장드라마 주인공이시라도, 어렵게 캐스팅되고 주연 따내서 찍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좀 힘이 나실지도요.
  • 2012/03/08 11:0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3/08 14:36 #

    전혀 상관없습니다. 제가 감사한 일이죠. 친절한 말씀 고맙습니다.
  • 措大 2012/03/13 09:40 # 답글

    와...재미있네요. 그런데 왜 발 페티쉬 농담은 생략하신건가요? 빵 터졌는데요. ^^
  • deulpul 2012/03/13 10:57 #

    논문의 각주에 흥분하는 발 페티쉬 남자... 정말 재미있죠? 저도 한참을 웃었습니다만, 여기다 옮기지 않은 것은 주제에서 약간 옆길로 새고 인용문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아쉽긴 했습니다.
  • 2012/03/15 08:0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3/15 11:26 #

    네,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정말 꼼꼼하게 잡아 주셔서 놀랐습니다. 바삐 옮겨 적으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바로 수정하였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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