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소고(小考) 섞일雜 끓일湯 (Others)

미국에 있어서 편한 것들을 들라면, 나는 존대말이 없고 호칭이 간편하다는 점을 주저하지 않고 첫 손에 꼽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흔히 나이나 직급에 따라 호칭을 달리 붙여야 하는 우리들과는 아주 다르다. 이곳에서도 직급과 관련한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공식적인 자리이거나(Mr. Mayor, Dr. Wilson), 명령 체제가 엄정한 직장이거나(Captain, Sergeant),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을 관행적으로 직함으로 부르는 경우(Father, Doc, Coach)를 빼면 흔하지는 않다. 처음 만나 악수하고 인사하고 친해지면, 대개 그 다음부터 윗사람 아랫사람 가리지 않고 잡스러운 것에 성까지 다 빼고 이름만을 부른다.

이게 얼마나 편한 것인지는, 거꾸로 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절실하게 체감할 수 있다. 존, 마이크, 매리, 샌디, 하다가 갑자기 사장님, 부장님, 교수님, 선생님, 선배님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이와 직급을 치밀하게 따져, 자기보다 밥을 더 먹었는지 아닌지, 혹은 자기보다 서열이 위인지 아래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깨놓고 물어보면 또 무척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인간으로 간주될 수도 있으므로, 눈치껏 알아서 챙기고 짚어야 한다. 아니면 제3자를 통해 수소문을 해야 한다. 무척 피곤한 일이다. 남 쓰라고 만든 게 이름인데, 왜 그렇게 아끼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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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의 나이를 잘 챙기지 못한다. 누가 몇 살이고 몇 학번이고 이런 건 별로 듣고 싶지도 않고, 어쩌다 들어도 들으면서 잊어 버린다. 자주 만나다 보면 대충 3~4년 정도의 range로는 기억한다. 이를테면 '홍길동은 학번이 95~99학번 정도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나이뿐 아니라 출신 학교나 고향 같은 것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거의 주목하지 않고 기억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가 묻지도 않는데 저 스스로 만날 때마다 자기가 어느 학교 나왔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사투리를 표나게 쓰거나 하지 않는 한,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래? 거기 출신이야?" 하고 놀라면서 되묻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미 여러 번 들어 놓고도 그런다. 당신에게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당신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껍데기에 무관심해서다. 아니 그보다 아둔해서인지도. 대신 인간이 착한지 아닌지, 쓸 만한지 아닌지, 싸가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날카롭게 본다.

그러나 마냥 이런 식으로 살면 상당한 물의가 발생한다. 나보다 한참 위, 나보다 한참 아래는 잘 몰라도 되지만, 나와 얼추 비슷한 경우마저 그럴 수는 없다. 이런 경우는 정밀하게 햇수, 심지어 달수까지를 따져 정립되는 서열에 편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싫어도 그래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편해진다. 편해지자고 피곤함을 자초하는 셈이지만, 유구한 서열 의식을 뼛속 깊이 체화한 채 살아야 하는 한민족끼리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를 기준으로 하여 근접한 나이의 분포는 기억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윗사람 대우를 하고,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후배 대접을 한다. 후배 대접을 하더라도 처음에는 꼭 존대를 한다. 나랑 아주 친하게 되면 존대 어미가 떨어져 나간다. 그것도 도마뱀 꼬리 잘리듯 한 번에 확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니라, 개구리 뒷다리 나오듯 해라형 %가 조금씩 늘어나는 형태로 떨어진다.

군대에서처럼 한 내무반에서 24시간 함께 울고 웃고 구르고 얻어터지며 한솥짬밥을 먹는 처지라면, 피를 나눈 형제 같아서 무람없이 해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 혹은 다행히 사회는 군대가 아니다. 후배나 동생뻘 되는 사람들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 나 역시 누가 나에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우악스레 반말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주민증 까고 확인한 것도 아닌데 제가 좀더 나이 들어 보이니까 다짜고짜 그러는 경우도 있더만.

후배뻘 되는 이에게 씨를 붙이고 존대를 하는 것은 이렇게 좋은 뜻에서 생긴 습관인데, 이를 불편해 하는 후배들도 있다. 거리감이 느껴진다나. 이건 나도 좀 고민 사항이다. 하긴 나도, OO씨는 어떻게 했어요? 하지 않고 니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하고 말하고 나면 훨씬 정다운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더라.

어쨌든 내가 학교를 떠나 사회 생활을 시작한 뒤 만난 후배들을 '아무개야' 하고 불러 본 적은 없다고 기억한다. 반드시 '아무개 씨' 하고 부른다. 간혹 미국식으로 '길동!'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이것도 '길동아!' 하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서 나온 편법이랄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정이 좀 옅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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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까지는 대체로 나이와 성취가 함께 가므로, 호칭에 신경쓰고 갈등할 일이 별로 없다. 누구를 깨진 콜라병으로 찌르고 한 학년 꿀었다가 왔다는 사람 같은 이가 간혹 있기도 했는데, 나이가 많아서 형 대접하면 문제 없었다. 나이가 어려도 형이라고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이들은 키가 작아도 교실 맨 뒤에 자리를 잡고 언제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곤 해서, 경이원지하면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

대학교에 갔더니, 동급생인데도 천차만별이다. 재수, 삼수에 군대 갔다 온 양반까지 있다. 고등학교 동급생들처럼 이쉑 저쉑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행히 갈등의 소지는 입학 첫 주에 현명한 과대표에 의해서 깔끔하게 제거되었다. 교수 한 분이 늦게 들어오는 시간을 이용해서 간단한 회의가 열렸다. 아직도 서로 어색한 분위기인데, 임시 과대표로 뽑힌 친구가 앞으로 나갔다. 함께 들어온 신입생 중에서 키나 덩치가 두어 번째로 큰 데다 얼굴도 18방 예비역 정도는 되는 것처럼 보였던 이 친구는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해서 좌중을 웃겼다.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제가 제일 나이가 어릴 겁니다. 제가 학교를 되게 일찍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형님 누님들로 잘 모시겠습니다. 저는 그러면 되는데, 형님들끼리는 서로 좀 불편할 테니까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삼수까지는 편하게 맞먹는 겁니다. 사수 이상이나 예비역 분들은 형으로 모시고요."

그래서 얼떨결에 그렇게 교통정리가 싹 되었다. 스무 살 안팎의 두 살은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상당히 차이가 날 만한 세월이기도 한데, 다 맞먹다 보니까 모두 애들처럼 히히 놀면서 편한 친구가 되었다. 예비역 형들은 또 형답게 점잖게 담배 하나씩을 요구하곤 해서 우리는 잘 갖다 바쳤다. 그 뒤로 졸업하고 지금 이때껏 학과 친구들끼리 호칭으로 갈등한 경우는 없었다고 기억한다. 이건 내가 재수를 하지 않아서 심정적 피해의식을 가질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아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복잡한 경우는 물론 있었다. 동급생 중 두 사람이 고등학교 선후배였다. 한 놈은 재수를 했고 한 놈은 바로 들어왔다. 둘이는 다른 친구들 있는 데서도 형 동생 호칭을 했다. 고교 선후배 같은 것은 한 번 찍히면 평생 가는 낙인이라서, 학과 임시 대표의 유장한 연설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극복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둘 다에 대해 친구로 대했다. 

스스로 나이가 제일 어리다고 실토하면서 앞으로 형들 잘 모시겠다고 했던 덩치 큰 과대표는, 3월달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보고 이 자식 저 자식 하며 지내게 됐다. 하는 짓도 언제나 제일 늙어서, 그가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곧 잊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만나면 늘 좌장이다. 돌아보면 절로 웃음이 나는 흐믓한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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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사를 들어갔더니 선배 밖에 없더라. 막내였으니 당연하지. 그런데 나보다 나이가 어린 선배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어릴 뿐만 아니라, 업무 라인도 약간 달라서 호칭을 정하기가 좀 모호한 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선배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회사를 떠나는 날까지, 회사를 떠나고 나서도 선배로 부르고 대접했다. 왜? 회사 생활은 그가 나보다 먼저 시작했고, 나는 그로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와 나는 초중고대학교가 겹치지도 않았고, 해병대 같이 기수를 따질 상황도 아니었고, 노인정에서 주민증 까며 다툴 정도로 늙지도 않았다. 서로 도와 밥벌이를 하는 공식적인 공간인 회사에서 매일 만나는 그는 분명히 나의 선배였다. 따라서, 거꾸로 그가 나를 '아무개 씨!'로 부르는 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 일상적으로도 늘 엮이는 사이지만 업무 라인이 아주 다른 동료들도 있었다. 나이도 대개 나보다 많이 어렸다. 이런 경우는 나와 그들이 모두 서로를 아무개 씨로 불렀다. 역시 나와 인생이 겹치는 공통의 과거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크게 개의치 않는 호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나이를, 그들은 경력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서로 상쇄했다고 할까. 한국인의 호칭 역학은 이렇게 열역학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치밀하고 오묘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이에 대해서는 역시 선배라고 불렀다.

회사를 좀 다니다 보니 직속 후배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이것 참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게다가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학교 선배들이다. 아 진짜. 그런데 이 선배이자 후배인 사람들은 내가 그랬듯이 고맙게도 나를 선배라고 불러 주었다. 지금도 나를 만나면 그렇게 불러 준다. 나는 그들을 형이라고 부른다. 형과 선배. 아랫사람은 없다. 존대 호칭의 인플레이션인 셈이지만, 보기는 좋다.

내가 나보다 나이 많은 그들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관습상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이나 나나 다 회사를 떠난 상황에서 그들이 나를 여전히 선배로 불러 주는 것은 그들이 사람이 좋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 선한지 아닌지는 날카롭게 보는 편이므로 아마 맞을 것이다.

이 '형'들이 회사에 들어왔던 초기에, 나는 선배들 눈치가 보여서 사무실에서는 이들을 '아무개 씨'라고 불렀던 것 같다. 입사 순서를 챙겨 기수라는 숫자를 붙여 따지는 종류의 직장에서는 그 기수 서열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고, 그 경우 기수는 대개 나이보다 우선적인 기준으로 간주된다. 군대도 그렇지. 친구 하나는 나이가 많아서 군대를 갔는데, 나이 한참 어린 상병 새끼가 빌미만 있으면 신나게 패더니, 하루는 와서 그러더란다. 야 미안하다, 근데 너 보면 집안 말아먹은 친형이 생각나서 더 패게 된다. 너랑 나이가 같거든. 네가 이해해라.

이렇게 대개의 직장에서 나이보다 기수이긴 하지만, 내가 이 형들을 아무개 씨라고 불렀을 때,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충분히 불쾌할 수 있는 일이었다. 회사 문화 때문이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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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회사 영업부 직원들의 명함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 모르는 새에 모두 승진을 해 있었다. 대리는 과장으로, 과장은 차장으로, 차장은 부장으로 되어 있는 식이었다. 

영업을 뛰며 외부인을 만나 거래해야 하는 사람들은 간혹 실제보다 직급을 높인 명함을 갖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그게 영업에 편하기 때문이다. 설령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부서에서 그렇게 찍어 준다. 

가끔 회사에 들르곤 했던 어떤 손님은, 비슷한 방식으로 직원들을 모두 승진시키곤 했다. 차장을 부르면서 아무개 부장!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럼 옆에서 듣는 부장은 기분 나쁘잖아? 그런데 부장을 부를 때는 또 아무개 이사! 이렇게 한 단계 올려서 불렀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고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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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 한 분이 있었다. 사람이 격의 없고 형식 따지지 않는 분이지만, 나름대로 칼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어서 존경하는 상사였다. 그렇게 격의 없고 형식 따지지 않는 철학은 그의 옷차림에서도 가감 없이 드러났다. 이 분은 대개 잠바때기를 입고 회사를 다녔다. 양복 정장을 입을 때에도 별로 맵시가 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람됨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어서, 두세 켜 천쪼가리가 사람 값을 넘을 수 없음을 잘 보여준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 상사는 별명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 동네 X씨'였다. 별명이 붙은 연유는 이러하다.

어느 날 선배 한 명이 그 상사와 함께 그 분의 집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초저녁인데 그 상사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니, 상가 입구의 수퍼 앞에 갖다 놓은 평상 같은 데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치더라는 것이다. "어이, X씨, X씨! 이제 오는겨? 이리 와서 쐬주 한잔 혀!"

동네 주민 서너 명이 모여서 일찌감치 소주병을 기울이고 있다가, 이 분이 오는 것을 본 것이다. 이 분에게는 물론 회사에서 쓰는 직함이 있었다. 직함도 보통 직함인가. 들으면 눈 한 번은 크게 떠야 하는 직함이다. 우리는 모두 그를 그 직함을 붙여 불렀고, 회사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회사 근처의 식당 주인들도 누구나 다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그의 동네 이웃들은 'X씨'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직함을 구태여 이웃들에게 밝히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웃들이 듣고도 모른 체 하는 것이리라. 여러 모로 보아 전자의 경우일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잠바때기를 입고 다니는 이 상사는 회사에서는 산 같은 존재였어도, 아파트에서는 '우리 동네 X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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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평생을 군대에서 봉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계급으로 불렀다. 영내에서도 그랬고, 부대 밖에서도 그랬다. 집과 부대와 술집만을 근면하게 다니신 분이라, 이웃들과 별로 안면이 없었다. 정년 퇴직을 하시고 다른 일을 할 때, 평생 처음으로 이웃들과 친해졌다. 그런데 이 이웃들은 아버지를 계급으로 부르지 않고 "O씨"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전혀 꺼려하지 않았다.

이런 호칭을 끔찍히 싫어한 것은 어머니였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몇 해 되었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아버지를 그렇게 부른 사람들을 다 기억한다. 그 정도로 싫어 하셨다. 높지도 않은 아버지의 계급을 어머니가 그렇게 귀하게 여긴 것은, 아마도 그 계급 호칭 안에 아버지의 인생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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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의 아는 사람에게 연락할 일이 있다. 친구가 아니라 동료라는 공적 관계로 만난 사람들이다. 옛날에는 나나 그들이나 다 버벅대는 말단 사원들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직함을 하나씩 달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은 술집을 함께 전전하며 서로 등을 두들겨 주었던 정도의 사이가 아니라면, 나는 지금의 그들을 부를 때, 그들의 근면한 인생이 그들에게 선사한 직함을 붙여서 불러준다. 어떤 경우는 깍듯하게 존대까지 한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성취를 존경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간혹 오해도 하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이재용하고 친구거나 그의 선배라고 해 보자. 코흘리개가 어느 날 보니까 부사장이 되어 있다. 조낸 기특하고 대견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재용 부사장님 이러저러합니다 하고 말한다. 업무로 연락하는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랬더니 재용이는, 내가 뭐에 삐져서 자신을 과대하게 대접하며 이죽거리고 있는 것으로 오해한다. 한국말 정말 어렵다. 그런 거 아니다. 나도 할 수 있거든? <이장과 군수>에서 이장이 초등학교 친구인 군수한테 전화를 걸어서 야 이 새끼야 나야 미친 자식아 했던 것처럼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당당한 성취를 당당하게 챙겨주는 의미로 그렇게 한다. 오해들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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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양놈들처럼 남을 모두 빌, 존, 마크, 짐, 조지 하고 부르면서 산다면, 위에 쓴 이야기들은 하나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호칭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정말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강요되는 위계 질서와 그에 대한 의식이 이 몇 어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칭 때문에 주민증 까면서 나이 따지다 칼로 푹푹 찌르는 살인도 난다. 한국으로부터 수만리나 떨어진 이 곳에서도, 나이 가지고 서로 신경쓰다 사이 틀어지는 한국인들 종종 본다. 남보다 대접 받으려고 나이를 감추거나 올려붙이는 사람도 있더라. 조금만 더 살아봐라. 나이 깎고 싶어서 환장할 것이다.

원칙 몇 개를 기억하면 좀 도움이 된다. 갑자기 애정남 삘이 나네. 한국인들은 나이를 큰 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 관계에서 호칭을 교통 정리할 때 나이를 첫째 기준으로 삼아 내림차순으로 쏘팅하면 대개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나이가 어린 사람이 상급자 입장에 있을 경우 그렇다. 직함이 있으면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 좋다. 모호해서 헷갈릴 때는 대접해 주는 편의 호칭을 선택한다. 그렇게 해 주었더니 이걸 대접이라고 생각지 않고 제가 진짜 윗사람인 줄 알고 누르려 하면, 주차장으로 불러내서 한 번 찐하게 개겨 준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비록 자기가 직급이 높더라도 '아무개 씨' 하고 부르지 않는 게 좋다. 영미놈들의 Mr.는 존칭으로 쓰이지만, 한국놈들이 일상에서 쓰는 '씨'는 비칭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사전적으로는 높임 호칭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는 잘 모르는 이, 혹은 나보다 어리거나 낮은 이를 높여 준다는 의미다. 1대1의 관계에서 쓰이는 호칭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개 씨' 하면 "나는 너를 잘 몰라. 하지만 대접은 해 주지" 아니면 "넌 나보다 어리지만(낮지만) 예의는 차려 주겠다" 정도의 뜻이다. 어느 경우라도 어린 사람은 조심해서 써야 할 말임에 틀림없다. 장관이 청사 수위를 부르는 경우라도, 젊은 놈이 그렇게 부르면 싸가지 없어 보인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감이 잘 안 서고 실수하고 싶지도 않으면,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쪽에서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은데 뭐라고 불러 달라는 말을 직접 들어버리고 나면, 안 부를 수도 없고 곤란하지 않은가. 이런 건 감정이 얽혀 있어서 서로 내놓고 거래하기가 쉽지 않은데,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불필요하게 갈등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일 수 있다고 본다.

어째도 부르기 불편하면 차라리 안 부르는 편이 낫다. 이름 안 부르고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우리말로 하는 대화에서는 영어처럼 상대방 이름을 수시로 갖다붙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해 보면 쉽다. 그것도 싫거나 못하겠으면 아예 말을 안 하면 된다. 할 수 있나.

 

덧글

  • 리리안 2012/03/09 22:25 # 답글

    아아 정말 공감 가네요...
  • deulpul 2012/03/09 22:35 #

    힘들어요. 이런 자질구레한 데 신경쓰면서 살아야 하는 것도 피곤하고요...
  • 치체로바 2012/03/10 00:49 # 삭제 답글

    정말 호칭문제는 한국인이 미국에서 오래살면 공통으로 느끼는 점 같아요..
    한국에서 회사다닐때 새로들어온 나이도 어린(!) 계열사 직원이 꼭 누구누구씨 하고 이름을 불러서 정내미가 떨어졌던 생각이 나네요..
  • deulpul 2012/03/10 06:11 #

    예, 저도 호칭 때문에 불필요한 갈등이 벌어지다 결국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종종 봐서, 늘 아쉽게 생각합니다. 이건 한국인으로서는 지구 망할 때까지 지고 가야 할 숙명인 모양입니다.
  • 새알밭 2012/03/10 11:44 # 삭제 답글

    여러모로 공감 가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모두 잘 살고들 계시겠죠. 직장 후배로 들어온 대학 선배들 중 한 분과 뜻하지 않게 사단이 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직장을 옮긴 다음이었는데요, 평소에 서로 늘 존댓말을 써 왔는데, 그 날따라 제가 뭐에 씌었는지 반말을 해버린 겁니다. 조만간 만나자 운운... 그리곤 수화기를 내려놨는데, 그 순간에 '아차!'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요.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 그런데 곧바로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그 선/후배였습니다. 아니 내가 직장 후배였던 건 사실이지만 나이도 당신보다 많은데 그렇게 말을 막 놔도 되는거냐며 화를 내더군요. 아 미안하다, 아니 미안합니다. 일에 치여 정신이 깜빡한 모양이에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 뒤로 곧바로 이민을 와 버려서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그 대목부터 사과를 해야 할듯... 만나면 민증부터 까야 하는 한국의 상황, 참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 deulpul 2012/03/10 12:51 #

    하하하, 이거 웃을 수 없는 일인데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네요. 당사자들께서는 곤혹스럽고 복잡한 심경의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정말, 이런 에피소드를 이쪽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이해시키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일은 이제 과거의 추억이 되었겠지만, 지금도 한국에서는 또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을 테고요... 아아 그리고 새해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조만간에 연락 올리겠습니다.
  • 2012/03/11 14: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3/12 07:11 #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네요. 촌수에 따라 다 명칭이 다르고 각기 존비를 따져야 하고, 나이와 서열이 뒤집히는 일도 흔히 벌어지고... 말씀하신 대로, 가족 관계가 남성 중심으로 편제되어 왔기 때문에 친족 호칭에도 그런 구폐가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과 비교하면, 촌수 서열 관계없이 그냥 이름을 부르는 서양인들의 풍습은 야만적...이어서일 수도 있지만, 인간 관계의 평등 의식이 반영된 측면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라파엘 2012/03/11 23:29 # 삭제 답글

    정말 재미있고 공감가는 분석 입니다. ㅎㅎ
  • deulpul 2012/03/12 07:17 #

    인생 살면서 비슷한 경험들 다 한번씩 해보시지 않나 싶어요, 하하.
  • rock bogard 2012/03/12 10:55 # 답글

    씨자를 붙일지 고민중이지만 안 쓰고 있는데 마지막 문단에서의 뭔가가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군요ㅎㅎ
  • deulpul 2012/03/12 17:24 #

    헙, 설마 '말 안 하면 된다'의 해결 방식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시지요? 설령 직접 호칭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3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이를 뭐라고 부르는가라는 또 하나의 산이 있습니다. 이런 건 또 당사자 귀에 기가 막히게 잘 들어가거든요...
  • rock bogard 2012/03/12 18:56 #

    존댓말로 애기를 하지만 씨자 붙이는 게 제 스스로 어색하고 다른 분들도 어색해할까봐 아직은 안 쓰는 중입니다. 달아주신 댓글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deulpul 2012/03/13 05:30 #

    아, 그런 상황이셨군요. 그런데 한국의 호칭 역학이 매우 복잡한 고차 함수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 얼른 그림이 떠오르지 않네요... 어쨌든 현명하게 잘 풀어 나가시길 빕니다.
  • 2012/03/12 11:37 # 삭제 답글

    정말 공감 버튼이나 like 버튼이 있으면 한 100개쯤 눌러주고 싶은 포스팅이네요.
    저 역시 그놈의 호칭문화 확 없애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꼭 그놈의 서열 탐색(그것도 직접 물어보기 힘드니 탐색을 해야)부터 해야 하는 이놈의 문화..
    존댓말 반말, 호칭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시퍼요!!!
  • deulpul 2012/03/12 17:25 #

    이것 참 숙명이긴 한데, 불편한 건 어쩔 수 없군요. 불편한 게 존대 어법과 호칭인지, 그런 것을 강요하는 서열 문화인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요. 엊그제 라디오를 듣는데, 할머니 두 사람이 나와서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우리 때도 그랬잖아" 하고 티격태격하는데, 다른 할머니가 전화를 해서 "나 오늘 96번째 생일이거든"라고 했더니 조용해지는... 딱 요 정도의 서열만 있었음 좋겠습니다, 하하.
  • 써머즈 2012/03/12 13:29 # 삭제 답글

    (한국에 살지만)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은 모두 OOO님으로 통일해서 부르고 불리니 편해요. :-)
  • deulpul 2012/03/12 17:26 #

    정말 인터넷에서는 시시콜콜 촌수 따질 일 없어서 편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한국 특유의 넷 호칭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영어 쓰는 쪽에서는 역시 그냥 닉으로 부르는 것 같거든요. '님' 같은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탓도 있겠습니다만... 여하튼 우린 상대방을 존경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 밤비뫄뫄 2012/03/13 10:06 # 답글

    한국여자들은 해외에서도 '언니'라는 호칭을 자주 쓰는데 이것도 좀 그래요. 교회나 뭐 그런 사적인곳이면 모르지만 직장에서도 '언니'하는게 당연시 되는 분위기인데, 차라리 나이어린 사람이 내게 ~씨를 붙여도 좋으니 공적인 자리에서 언니언니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이런게 일하는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근데 또 애가 대학에 다니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라면 또 그것도 힘듭니다..;;; 교회같은데선 서로를 이모 고모라고 호칭하는데 전 그것도 너무 이상해요. 아는분들 아이 생기면 이모나 고모가 되는데 솔직히 내가 그 분들이랑 피를 나눈사이도 아니고 그 아기들을 내 조카로 생각하는 만큼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왜 나를 이모나 고모로 부르는지///

    가게가면 아가씨로 불리는지 아줌마로 불리는지 또 신경쓰이고..그냥 손님하면 되잖아요?? 근데 꼭 할머니나 나이많은 아주머니들이 '언니"하고 부르면 또 그것도 불편하고....

    국어학자들이 어서 호칭 정리해서 퍼뜨려주는게 국민정서에 도움이 될듯 합니다.
  • deulpul 2012/03/13 11:05 #

    하하하... 역시 곤란하고 불편해서 쓰신 말씀인데 저는 배꼽을 잡게 되는군요. 이것 참, 한민족은 모두 한 가족이어서인지 두루두루 그렇게 가족 호칭을 붙이게 되는데, 아아 정말 곤란합니다.
  • 호랑호랑 2012/03/13 21:49 # 삭제 답글

    저도 호칭이나 서열이 한국 특유의 언어습관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쪽 언어들은 상당수가 격에 따라 서로 다른 호칭을 가지고 있고, 헝가리에서는 언어도 달랐다고 하더군요. 설마 한국같은 존댓말일까 싶어 계속 물어봤는데, 실제로 그런 수준의 격식언어라고 합니다. 한국과 다른 것은 '달랐다'라는 점입니다. 현재는 잘 안쓰고, 쓰긴 써도 정서적인 의미는 거의 퇴색한 모양이더라구요.
    심지어 한 호칭은 무려 6가지 버전이 있기도 했다는데, 설명하는 사람도 잘 모르는 그런 오래된 언어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많은 교류가 있어왔고 우리나라 역사보다도 훨씬 더 거친 사회변화가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도 조선만큼이나 안정적인(닫힌) 사회구조를 600년간 유지했다 하더라면 같은 문제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나저나 여기서 계속 '야너임마' 하다가 혹시라도 한국직장에 취직했을 때 불상사라도 일으킬까 그것이 두렵네요. :]
  • deulpul 2012/03/14 02:19 #

    아, 유럽쪽 언어에서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그렇다면 우리도 희망을 좀 가져 볼 수도 있을까요. 말씀 듣고 생각해 보니, 우리의 현재 언어 생활에 쓰이는 존대나 존칭도 200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게 사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다들 아시는 말씀이겠지만, 서양 문화에서 서로 이름을 편하게 부르고 반말(?)을 하지만, 그들 나름의 격식과 예절이 있다는 점도 함께 이해해야 하겠지요. 한국 직장에서는 처음에 한번 그냥 콱 찍히면 오히려 편해집니다...
  • 민노씨 2012/03/14 03:19 # 삭제 답글

    너무 너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ㅎㅎ
    특히나 대학시절 추억을 들려주신 부분은 눈 앞에서 펼쳐질 것처럼 풍경들이 펼쳐지네요.
    펄 님도 말씀하셨지만, 저 역시 우리 호칭문화(?)는 정말 싹 사라져버리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다만 들풀 님께서 펼쳐내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어면서, 그 호칭 문화에서 잉태한 이야기들은 참 다채롭고, 풍성하네요.

    저는 주로 웹에서 만나 오래 사귄 벗들께는 두 가지 호칭을 쓰는데요. ~ 님, ~ 씨죠. 이게 나름으로 원칙이 있는데, 필명(한국식 작명의 어감에서 멀어진 경우)엔 ~님, 실명을 쓰시거나 필명을 쓰더라도 한국식 작명 어감인 경우엔 ~씨라고 부르는 편입니다. 그런데 말미 들풀 님의 "~씨"에 대한 서술 부분을 접하니 약간 찔리네요...;; 제 나름의 노하우(?)는 ~씨라고 부르는 경우에도, 가급적 "~씨께서"라고 덧붙여 쓰곤 합니다. "~씨가, ~씨는"이라고 하는 경우는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 편이구요.
  • deulpul 2012/03/14 10:46 #

    아, '씨'가 무조건 나쁜 게 아니고, 적절한 상황에서는 아주 적절한 호칭이라는 점도 기억해야겠지요. 무엇보다, 듣는 당사자가 상관없다고 여긴다면 일단 가해(?)의 효과가 나지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민노'씨' 경우처럼 말입니다... '-씨가'와 '-씨께서'는 같은 씨를 써도 그 어감 차이가 천양지차네요. 오묘하고 판타스틱한 한국어 존칭...
  • 찰수 2012/03/25 10:27 # 삭제 답글

    글 잘보앗습니다.
    제가 요즘에 고민하는주제를 잘 정리하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저는 올해 33살의 청년으로 2000년도 학번으로 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조금다른각도로 호칭에대한 저의 생각은, 우리사회의 보수화입니다.
    선생님께서 학교를 다니던 때보다 제가 대학가던시절이 더욱 호칭에대해 보수적이엇습니다.
    한살차이라도 무조건 형 동생이 되었지요, 생일도 따져서 빠른 생일(3월이전생일) 들은 손 윗사람이되엇구요.

    이번에 제가새로들어간 조직에서도 나이로 서로의 신분을 정해두기가 싫어서 모두 ~씨 라고 부르고 있는데(제가 제일연장자였습니다) 또 그런것이 불편해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장깐 캐나다에 살 기회가 있어서 , 그나라의 호칭이 너무 좋았었지요, 백발의 할아버지와도 친구가 되고,
    십대 청년과도 격의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부러웠었습니다.

    그런 환경을 우리나라에서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부질없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지요.

    저는 ~씨 라는 말이 모두를 평등하게 해 줄수있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내요^^

    예전에는 인터넷상 ~님 ~님 하는게 개인적으로 꼴불견이라 생각해서 일부러 ~씨 라 불럿던 일도 생각이 나내요^^

    다함께 즐겁고 유쾌하게 살 수있는 사회를 만들기가 참으로 힘든가 봅니다,

    다시한번 좋은글 감사드리고, 봄날 건강하세요^^
  • deulpul 2012/03/26 08:00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상황에서 가장 무난하게 호칭과 존대를 정리한다면, 모두 씨로 부르고 존대하기로 하는 정도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때 윗사람/연장자의 거부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가 되고, 그래서 적어도 상당 기간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무님을 홍길동씨!? 쉽지 않군요. 위계 계층이 비교적 적은 작은 조직에서부터 만들어져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님은 저도 처음에는 낯설고 거부감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흔하게 쓰이다보니 그 존칭값이 조금 떨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경험을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퍼지 2012/03/26 09:36 # 삭제 답글

    나이어린 사람은 공감하고, 나이많은 사람은 공감 못할듯.. ㅎㅎ
    35살 정도가 나이어린 사람과 나이많은 사람의 경계선?

    한국에서 나이먹어봐.. 나이 대접 받으려고 하지...
    남들 다 나이 대접 받는데, 자기만 못 받아봐... ㅋㅋ
  • deulpul 2012/03/27 04:47 #

    호칭과 존대 역학에서 나이는 당연히 상대적인 겁니다. 70대끼리 서로 연장자라고 싸우는 게 한국입니다. 그런데 퍼지님은 아마 90대이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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