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 침장수 섞일雜 끓일湯 (Others)

지난 12월에 이사를 하고 나서 곤란한 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웬 인간 하나가 제가 사는 창 밑으로 지나다니며 가래침을 뱉는다는 것인데요.

사람이 길 다니다 보면 침을 뱉을 수도 있고 똥을 쌀 수도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인간은 그 규모의 장대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인간의 가래침 뱉는 소리는 얼마나 우렁찬지, 그가 등장하는 것은 약 100미터 밖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게 침을 뱉으며 등장합니다. 그 소리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보통 사람처럼 카악~~ 이 아니라 쿠워어어어억~~~~~ 하는, 보기 드문 바리톤이나 베이스입니다. 똥물을 퍼마시고 폭포수 밑에서 공력을 닦아 득음한 명창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성량이 풍부하고 그윽한 깊이가 있습니다. 그 소리가 아파트 벽들에 반사되어 메아리가 칩니다: 쿠워어어억억억억어어어어어.... 메아리가 끝나나 싶으면 이윽고 이어지는 마무리 사자후, 퉤엣!!

이런 인간이 뭘 하는지 하루에도 대여섯 번은 제가 사는 집 밑을 지나다닙니다. 언젠가 봤더니 운동 삼아 왔다갔다 하는 것 같은데, 딴 데 어디도 안 가고 꼭 여기 근처에서 가래침을 비산 살포합니다. 살포의 빈도는 약 15초당 1회, 그러니까 쿠워어어어어억(5초) - 퉤엣! (1초) - 휴지기 (10초) 를 반복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 온 이 나라의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장쾌하고 호연지기 넘치는 인간은 보지 못했습니다. 인상 착의는 이렇습니다. 일단 동양인 남성. 키는 175cm 정도고 미디움 빌드에 나이는 중년으로 추정됩니다. 언제나 벙거지같은 잠바 후드를 덮고 다니는 바람에, 아직 정확한 낯짝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간혹 밥을 먹을 때 쿠워어어어억!이 들릴 때도 있는데, 식욕이 딱 떨어집니다. 혹시 전분이 들어간 음식 같은 것을 먹고 있다가는, 먹은 걸 다시 꺼내고 싶어집니다. 다이어트에 아주 좋습니다. 원하시면 녹음해 올려드릴께요...

호쾌한 인간답게, 주변에 사람들이 있건말건 신경도 안 씁니다. 가래침을 뱉으며 선(禪) 수양을 하다보니 무시선 무처선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경지에 도달하였는지, 불쌍한 축생들이 근처에서 오물거리든 말든 꿋꿋하고 의연하게 걸쭉한 가래침을 끌어 올립니다. 쿠워어어어어어억~~~!

처음에는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911에 신고를 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물론 가래침을 뱉고 다니는 게 법규에 위반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어서 그것으로는 안 되겠고, 밤이나 낮이나 어슬렁거리니까 웬 수상한 놈이라는 빌미로 신고를 하는 것이죠. 아닌 게 아니라, 밤에 문을 나서다 어두운 데 마주쳐서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쿠워어어어어억~~~~~ 퉤엣!

경찰이 와서 군시렁군시렁 하면 아무리 호연지기 넘치는 인간이라도 약간은 위축이 될테니, 비록 며칠이라도 다섯 번 나올 것을 세 번만 나와줘도 아주 살 만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도 틀림없이 근처에 살 것이므로, 경찰관이 다급한 (척 하는) 긴급 연락을 받고 도착할 때쯤이면 제 소굴로 들어가 버리고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별로 소용이 없을 듯 싶었습니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가래침을 카악 뱉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복장 터치는 침장수(將帥)

가래침에 젖은 꿈이
복장 침장수를 부르면
그는 쿠웍쿠웍 가래를 끌어올리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가 막히는
복장 터치는 침장수



동물들은 계절이 바뀌면 습성이 변하므로,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덧글

  • 물장수 2012/03/16 16:32 # 삭제 답글

    하하... 정말 기가 막히는 군요. 운동의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하시는 수 밖에...
  • deulpul 2012/03/17 04:22 #

    그러게요. 아니면, 우리가 운동을 중단하는 이유가 뭐가 있던가요...
  • 낭비 2012/03/16 17:48 # 삭제 답글

    참 곤란한 상황이네요 ㅎㅎ 동족간에 침뱉기로 자신의 영역을 알리는 습성이 있는 것 같은데, 어쩌겠어요 계절이 바뀌고 봄이 오기를 기다릴밖에. 그렇지만 이러한 역경이 있기에 <복창 침장수> 같은 아름다운 시도 탄생하는 거겠죠?
  • deulpul 2012/03/17 04:27 #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영역 표시... 더러워서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으니 말입니다.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하하.
  • 아이더러워 2012/03/17 05:26 # 삭제 답글

    처하신 상황의 역겨움을 백분 이해합니다. 그런 사람은 마땅히 직접 얘기를 하시던가 아파트 경비실에 얘기하시는게 효과적입니다. 정말 더러운 경우네요...
  • deulpul 2012/03/19 11:06 #

    그래도 요즘은 뜸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자그니 2012/03/18 02:50 # 답글

    +그분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네기는.. 어려울까요?
  • deulpul 2012/03/19 11:14 #

    일단 말이 통할지에 자신이 없습니다. 언어로도 그렇고, 이런 호쾌한 성품으로 볼 때, 알아 들어도 모른 척 하거나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 이런 일로 정서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가 않네요...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렇군요. 하지만 언제 제가 팩 돌아버리면 나가서 말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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