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놓고 보니 고자 섞일雜 끓일湯 (Others)

남자들은 대물(大物) 환상, 혹은 대물 컴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작을까봐 걱정하고, 크면 좋은 줄 안다. 아니라는데도 어쨌든 선망한다. 큰 사람은 큰 사람대로, 작아서 고민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심지어 큰 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또 그런대로 은근히 신경쓴다. 조물주가 "이거 큰 거로 줄까, 아니면 아파트를 큰 거로 줄까?" 하고 묻는다면 고민할 사람 많을 것이다.

대물주의를 집약한 표어 "Size Matters!"는 몇 달러짜리 햄버거 광고에서부터 몇십만 달러짜리 부동산 광고에 이르기까지 흔히 볼 수 있는 말이고, 떡대 좋은 선수를 상찬하는 미식축구 중계 같은 데서도 드물지 않게 흘러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크다고 해서 본인은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더라도, 남들이 이를 알아주기가 쉽지 않다. 넥타이처럼 가슴에 떡 늘어뜨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소불X처럼 덜렁덜렁하며 다니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이렇게 중요한 크기인데도, 이를 공개적으로 측정하고 상호 비교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다.

그래서 이 은닉된 컨셉을 측정해 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곤 한다. 성의학자들이 제시한 설문지에 대답하고 이를 분석하는 과학적 방법도 있지만, 기상천외한 통속적 변수들도 개발되었다. 그 중 하나가 코의 크기다. 몸 가운데서 뭔가 툭 튀어 나온 점이 비슷하니 유추가 된 것일까. 여하튼 코의 크기와 우리가 지금 말하는 그 크기가 비례할 것으로 가정하고, 옷을 벗기지 않고도 측정할 수 있는 대체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언니는 좋겠네 언니는 좋겠네 우리 형부 코가 커서 언니는 좋겠네
아우야 내 동생아 그런 말 말아라 너희 형부 코만 컸지 실속이 없단다
(경상도 민요 '뱃노래', 일부)

언니는 좋것네 언니는 좋것네 우리 형부 코가 킁께 언니는 좋것네
아우야 동생아 그런 말 말어라 느그 형부 코만 컸제 별볼일 없단다
(전라도 민요 '청춘가', 일부)

그렇다. 코란 놈은 숨을 쉬거나 콧물을 흘려낼 때나 필요한 것이지, 그 크기를 측정하는 변수로서는 경상도에서나 전라도에서나 영 신뢰도가 떨어지는 물건인 것이다. 크기를 정확하게 알아 내려면 아무래도 벗기고 직접 확인하는 것말고는 수가 없는 듯하다.

한편, 코만 컸지 별볼일은 없는 형부 쪽에서 생각해 보자. 몸에 뭔가 껍데기를 두르기로 작정한 선조들을 찬양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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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을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아직 추운데? 사람들은 제 스스로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진다. 걸그룹? 나체촌? Size는 matter하나니, 듬직하고 우람한 사람들이 벗나? 아니다. 야구방망이에서부터 몽당연필까지 모조리 앞다투어 벗는다.

몸을 가린 옷감을 벗겨내고 원초적 살덩이를 드러내는 일이 신체의 옷을 벗는 것이라면, 정신을 감싼 포장지를 벗겨내고 원초적 사고를 드러내는 일은 정신의 옷을 벗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정신의 옷을 벗어던지는 일을 갈수록 자주 보게 된다. 트위터 같은 SNS에서 말이다.

무슨무슨 논객이나 무슨무슨 작가나 무슨무슨 이름난 기자들이 SNS에서 홀랑홀랑 벗으며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그 왜소한 물건들의 허접함이 안스럽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다. 그동안 이 말의 대물들, 생각의 대물들의 겉껍데기 사이즈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끼어 있었나를 자연스레 돌아보게 된다.

트위터의 특성을 여기서 다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노출증과 관련한 부분만 간단히 말하자면, 짧고 빈번하고 즉흥적이다. 짧기 때문에 엑기스고, 빈번하기 때문에 노출'증'이 되고, 즉흥적이기 때문에 보여줄 것 안 보여줄 것 다 보여준다. 하지만, 환자들이 으레 그렇듯, 본인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르거나 부정한다.

털이 북숭한 개를 목욕시켜 본 적이 있는가. 몸집을 풍성하게 만드는 털이 모두 물에 젖어 쫙 달라붙은 털개는 그 꼴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왜소하다. 허우대를 만드는, 공기 잔뜩 들어간 털뭉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숫사자의 위용을 상징하는 갈기도 물에 적시거나 잘라버리면 비슷한 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부 논객이며 작가며 기자들이 트위터 같은 SNS에서 보여주는 꼴이 딱 이 모양이다. 말을 하면 할수록 제 털을 깎고 보잘 것 없는 제 면모를 드러낸다. 그동안 보아 왔던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이없고 경박하며 등신스럽다.

그런 점에서 SNS은 사회적 목욕탕이다. 사람들은 이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옷을 홀랑홀랑 벗는다. 또 뜨거운 욕조를 들락달락하는 동안 풍성한 털은 바짝 달라붙어서 골격만 보이게 된다. SNS 목욕탕은 허세 가득했던 생각의 대물들, 목소리만 높았던 말의 대물들의 무덤이다.

저명한 사람이라도 우리와 똑같이 벗고 싶어하고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고 치자. 노출하려면 이름에 걸맞게 뭔가 좀 보여줄 수 있는 걸 가져야 그래도 양심이 있다고 할 게 아닌가. 아무리 대물주의가 환상일 뿐이고 사이즈보다 테크닉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보여주기로 하자면 뭔가 약간의 양감이 있어야 그나마 좀 봐 줄 수 있을 게 아닌가.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걸 탈랑거리며 천지가 흔들리도록 큰소리나 친다면, 태산명동 존슨일필,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고 그 인간의 덜떨어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자고등학교 옆 골목에 수시로 출현하는 바바리맨을 퇴치하는 좋은 수가 있다고 한다. 바바리를 확 펼칠 때, "에게게... 그게 뭐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거의 유일한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바바리맨은 상당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고 한다. 도착증 환자도 그런 양심은 있다. SNS의 도착증 환자들은 그런 양심조차 없다. 보잘것 없는 물건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에게게... 그게 뭐야!' 하면 도리어 보는 사람의 눈이 삐었다고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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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사랑과 연애의 종착점 같은 역할을 하지만, 애틋한 연애 감정을 만들어 냈던 환상이 깨어지기 시작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예식장에서 웨딩마치를 들을 때 정점에 오른 환상은, 그 다음부터는 좋든 싫든, 또 많든 적든, 또 빠르든 느리든, 하나씩 깨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코가 커서 언니는 좋겠네 해쌓는 소리 들으며 결혼했는데, 첫날밤 치르고 보니 완전 별볼일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물릴 수도 없고. 그래도 살다보면 정도 생기고 애도 생기고 해서, 살기는 산다.

그런데 벗겨놓고 보니 고자인 논객이며 작가며 기자들과는 축의금 받으며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함께 애 낳는 사이도 아니고, 정으로 사는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누가 봐도 등신이랄 수밖에 없는 짓들을 하는데 이를 참고 감당하면서 예쁘게 봐줄 이유가 없다. 같은 편들은 봐줄 것 같은가? 등신 짓을 하면 귀싸대기는 같은 편에서 먼저 날아간다. 등신들 때문에 나까지 도매금이 되기 때문에. 호빠에서 영업을 하려고 떡대 좋은 애를 하나 데려왔는데, 일단 선불 좀 주고 옷 입혀서 들여보내려고 했더니 고자인 거야. 기가 막히지 않나. 귀싸대기 패서 쫓아내야지, 아니면 호빠 망한다.

보여줄 게 없으면, 조댕이 간질간질한 것은 좀 참고 적당히 가리며 사는 것이 자신한테도 좋고 남 보기에도 좋지 않은가. 그러면서 보여줄 걸 좀 만들든지, 아니면 본업이나 열심히 하든지 말이다. 이 눈부신 나의 보잘것 없는 나체와 경박한 조댕이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나르시시즘적이고 등신스러운 용기는 높이 사지만, 보는 사람 생각도 좀 해줘야 하지 않겠나. 홀랑 벗으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신념에 앞서, 창피한 꼴을 드러내면 창피하게 느낄 줄 아는 염치부터 갖는 인간들이 좀 되었으면 좋겠다.


※ 이미지: Паллиатив. 캐논의 러시아 광고인데, 원래 함께 붙은 카피는 'Size does not matter'다.

 

덧글

  • 타츠야 2012/03/26 14:56 # 삭제 답글

    정말 시원하면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블로그를 알게 된게 몇 달 되지 않았는데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정신이 맑아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 deulpul 2012/03/27 04:51 #

    정말 시원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사진이... 눈에 띄지요...
  • 새알밭 2012/03/27 00:54 # 삭제 답글

    "SNS은 사회적 목욕탕이다. 사람들은 이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옷을 홀랑홀랑 벗는다. 또 뜨거운 욕조를 들락달락하는 동안 풍성한 털은 바짝 달라붙어서 골격만 보이게 된다. SNS 목욕탕은 허세 가득했던 생각의 대물들, 목소리만 높았던 말의 대물들의 무덤이다." SNS를 사회적 목욕탕에 비유한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사회적으로 행세하는 모든 이들을 트위터로 불러들여 한두 달만 트윗을 날리게 하면 그 깊이를 여실히 드러낼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인물 검증이 되겠지요. 유 아무개 전문화부 장관처럼 몇달은 고사하고 몇 개의 트윗만으로 본인의 바닥을 확연히 드러내보이고 만 경우도 있으니까, 분명 좋은 방안일 것 같습니다. 하하.
  • deulpul 2012/03/27 05:02 #

    네, 많은 분이 그 한계와 위험성을 잘 알고 조심하여 쓰시는데, 자기 말을 남에게 보여주기 바쁜 사람들은 그런 필터를 갖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작가가 사회적으로 내놓는 메시지에 맞춤법 띄어쓰기 다 틀리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출판사 편집진을 칭찬해야 하나... 모바일 같은 작성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자기 메시지의 임팩트를 생각하면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유인촌은 잘 했어요. 그 뒤에 바로 접었으니까, 하하.
  • 몽상가 2012/03/27 01:24 # 답글

    재밌네요 도입부터 확 끌어당기네요 ㅎ
  • deulpul 2012/03/27 05:05 #

    연이은 섹드립... 다음에 무쉰신문에서 나올 기사: '두 얼굴의 블로그.. "낮엔 시사토론 밤엔 섹드립 할래요?"'
  • 까치 2012/04/03 14:50 # 삭제 답글

    SNS를 목욕탕에 비유하시는 기발함은 어디서 나오나요?
  • deulpul 2012/04/03 19:46 #

    목욕탕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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