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봄햇살이 좋아 자전거를 타고 거리와 들판을 돌다 왔습니다.
아이에게 자전거타기를 가르치는 아빠를 보았고, 노부부가 탠덤 바이크를 타고 경사로를 힘들게 오르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운 모습을 보았고, 일찌감치 나온 나비가 자기처럼 부지런한 짝을 만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았고, 알 수 없는 노래를 낮게 부르며 걸어가는 남자를 보았고, 윤기 나는 검은색을 덮어 쓴 콩알만한 딱정벌레가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솔개가 바람을 타며 공중에 딱 멈춰서서 먹잇감을 가늠해 보는 모습을 한참 동안 구경했고,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호숫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부자(父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솔길 한 켠에 뭇사람을 위해 놓인 작은 벤치에서 이런 글귀도 보았습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첫 번째 문구는 알베르 까뮈가 에세이 'Return to Tipasa'에서 쓴 말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문구는 두 사람의 금혼식을 그들의 가족이 기념하는 뜻으로 이 벤치를 만들어 세웠다는 뜻이 되겠지요.
이런 모습들은 제가 골목길 오솔길 자전거길을 따라 천천히 그림자를 끌며 다녔기 때문에 볼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휙휙 바삐 지나갔다면, 이 세상의 한쪽에서 그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전혀 알 수 없었겠지요. 솔개나 딱정벌레나 노부부나, 길손 누구나에게 자리를 내주는 벤치로 더 크게 다시 태어난 가족의 사랑 같은 것은 바로 옆에서 벌어지더라도 아득한 우주 너머의 일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래서, 김광규의 시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가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시속 60km, 아니 600km의 속도로 바쁘고 정신없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와 이웃에게 벌어지는 정작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게 아닐까요.
<슬로우뉴스>라는 웹 매체가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바쁜 세상, 바쁘게 달려가는 매체들을 따라가면서 놓치고 잊고 외면하고 사는 것을 되돌아보자며 만든 매체입니다. 생각 깊고 진지한 블로거와 웹 활동가들이 모여 만들었는데, 주제 넘게 저도 한 자리 끼었습니다. 초대를 받고 망설임없이 기쁘게 참여한 것은, 앞서 일을 해오신 분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네 차례나 알찬 주제로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개최하면서, 어디서 뭉터기 돈 하나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돈 없이는 아무 것도 굴러가지 않는 우리 시대의 논리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몸으로 보여준 분들입니다. 사회 논리에 반하는 존재는 그 자체로 혁명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은 찬 겨울 속에서도 마음 속에 불굴의 여름을 간직하고 사는 이라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일 잘 할 수 있게 어디서 뭉터기 돈 좀 툭툭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분들이 온라인 매체로 또 일을 벌여 새로 시작합니다. 이 작은 시작이,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도 보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도 보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도 보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자그나마 이바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에게 자전거타기를 가르치는 아빠를 보았고, 노부부가 탠덤 바이크를 타고 경사로를 힘들게 오르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운 모습을 보았고, 일찌감치 나온 나비가 자기처럼 부지런한 짝을 만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았고, 알 수 없는 노래를 낮게 부르며 걸어가는 남자를 보았고, 윤기 나는 검은색을 덮어 쓴 콩알만한 딱정벌레가 천천히 기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솔개가 바람을 타며 공중에 딱 멈춰서서 먹잇감을 가늠해 보는 모습을 한참 동안 구경했고,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호숫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부자(父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솔길 한 켠에 뭇사람을 위해 놓인 작은 벤치에서 이런 글귀도 보았습니다.

"겨울의 한 가운데 선 나는, 내 속에 불굴의 여름이 숨쉬고 있음을 문득 발견하였다." - 까뮈
엘라인과 짐의 행복한 50년 결혼 생활을 축하하며 - 사랑하는 가족이
집에 와서 찾아보니, 첫 번째 문구는 알베르 까뮈가 에세이 'Return to Tipasa'에서 쓴 말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문구는 두 사람의 금혼식을 그들의 가족이 기념하는 뜻으로 이 벤치를 만들어 세웠다는 뜻이 되겠지요.
이런 모습들은 제가 골목길 오솔길 자전거길을 따라 천천히 그림자를 끌며 다녔기 때문에 볼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휙휙 바삐 지나갔다면, 이 세상의 한쪽에서 그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전혀 알 수 없었겠지요. 솔개나 딱정벌레나 노부부나, 길손 누구나에게 자리를 내주는 벤치로 더 크게 다시 태어난 가족의 사랑 같은 것은 바로 옆에서 벌어지더라도 아득한 우주 너머의 일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래서, 김광규의 시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가 생각났습니다.
(전략)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를 보지 못하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 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구나
너의 눈은 빨라지고
너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앞으로 기름값이 또 오르고
매연이 눈앞을 가려도
너는 차를 두고
걸어다니려 하지 않을 테지
걷거나 뛰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남들이 보내는 젊은 나이를 너는
시속 60km 이상으로 지나가고 있구나
네가 차를 몰고 달려가는 것을 보면
너무 가볍게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김광규,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우리는 이렇게 시속 60km, 아니 600km의 속도로 바쁘고 정신없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와 이웃에게 벌어지는 정작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게 아닐까요.
<슬로우뉴스>라는 웹 매체가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바쁜 세상, 바쁘게 달려가는 매체들을 따라가면서 놓치고 잊고 외면하고 사는 것을 되돌아보자며 만든 매체입니다. 생각 깊고 진지한 블로거와 웹 활동가들이 모여 만들었는데, 주제 넘게 저도 한 자리 끼었습니다. 초대를 받고 망설임없이 기쁘게 참여한 것은, 앞서 일을 해오신 분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네 차례나 알찬 주제로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개최하면서, 어디서 뭉터기 돈 하나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돈 없이는 아무 것도 굴러가지 않는 우리 시대의 논리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몸으로 보여준 분들입니다. 사회 논리에 반하는 존재는 그 자체로 혁명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분들은 찬 겨울 속에서도 마음 속에 불굴의 여름을 간직하고 사는 이라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일 잘 할 수 있게 어디서 뭉터기 돈 좀 툭툭 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분들이 온라인 매체로 또 일을 벌여 새로 시작합니다. 이 작은 시작이,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도 보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도 보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도 보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자그나마 이바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글
뗏목지기™ 2012/03/27 12:02 # 삭제 답글
deulpul 2012/03/27 14:51 #
camino 2012/03/27 13:14 # 삭제 답글
deulpul 2012/03/27 14:56 #
민노씨 2012/03/27 19:45 # 삭제 답글
앞으로 작지만, 느리지만, 소박하지만 사람들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멋진 아련한 축제로서의 혁명을 함께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ㅎㅎ
deulpul 2012/03/28 09:34 #
펄 2012/03/27 21:14 # 삭제 답글
deulpul 2012/03/28 09:35 #
이정환 2012/03/27 21:16 # 삭제 답글
deulpul 2012/03/28 09:35 #
mahabanya 2012/03/27 22:23 # 삭제 답글
deulpul 2012/03/28 09:36 #
위에량 2012/03/28 01:14 # 삭제 답글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시는 들풀님의 글 고맙습니다.
<슬로우뉴스>도 애독자가 되겠습니다. 응원합니다.
deulpul 2012/03/28 09:40 #
자그니 2012/03/28 14:18 # 답글
deulpul 2012/03/31 13:54 #
민노씨 2013/03/29 15:27 # 삭제 답글
특히 목 통증이 너무 심하네요. 침을 삼키는 게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창간기념 행사장에 나가서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습니다.
deulpul님께서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deulpul 2013/03/29 17:46 #
민노씨 2013/03/30 02:01 # 삭제 답글
저는 지금 막 집에 왔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소수정예 멤버들은 3차로 실내포차에서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하고 있겠네요.
저는 이제는 가만히 있어서 목이 고통스러운 지경이라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왔네요.
오늘 제 오프닝에 deulpul님의 이 '슬로우 솔로우' 중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이제 그만 더이상 목통증이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자얄 것 같습니다.
멀리 계셔서 가까이에서만 나눌 수 있는 정을 나누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건강 특히 유의하시고요....
deulpul 2013/04/02 1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