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 섞일雜 끓일湯 (Others)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한다. 사랑을 하니 결혼을 한다. 결혼이란 대개 두 사람의, 그리고 두 사람만의 결합이다.

하지만 한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을 하면, 무조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갑자기 십여 명 우르르 생기게 된다. 이른바 인-로(in-law)들이다. 배우자의 부모나 형제처럼, 그 전에 만나 얼굴이라도 익혀 둔 사람은 그래도 좀 괜찮다. 평생 살면서 듣도보도 못하고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 모두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것도 갑자기, 하루아침에.

배우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좋으면 사랑하고, 미우면 때려치우면 그만이다. 지지리도 싫은데 누가 결혼하라고 강요하는 일은, 아주 없지는 않더라도 이 개명 천지에는 비교적 드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에 핏줄과 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로들은 그 사귐의 여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나의 취향, 나의 선호, 나의 가치관과는 관계없이 웨딩마치 한 번 듣고나면 그냥 다짜고짜 나에게 들이밀어지는 관계다. 그렇게 들이밀어지면 무조건 받아먹어야 하는 관계다. 아주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강제 친밀관계를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남편. 나는 남편을 나의 자유 의사로 선택했다. 나와 취향, 지향, 가치관, 성격 등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남편의 형의 배우자. 나한테는 동서라는, 비교적 가까운 가족 구성원이다. 설령 멀리 살더라도,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만나서 무릎을 맞대고 조잘대야 한다. 이 낯선 여자가 나의 가족이 되는 데에 나의 자유 의사, 나의 취향이나 가치관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형제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몇 다리 건넌 인연으로 우연하면서도 강제적으로 주어진 관계일 뿐이다.

다행히 나랑 잘 맞으면 좋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운의 영역이다. 잘 맞을 가능성만큼 잘 안 맞을 가능성도 있다. 잘 맞으면 다행이지만, 안 맞더라도 계속 만나야 하고, 즐거운 척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인-로의 상대가 우악스러운 감성의 소유자라면, 쉽게 말해 상식 그게 뭔가요 우걱우걱 배려 뭐 처먹는 건가요 왼통 싸가지가 없는 여편네라면, 이쪽은 만나고 부딪칠 때마다 꾸준히 상처받고 꾸준히 괴롭게 된다. 그래도 관계를 벗어날 도리가 없다. 친구처럼 절교해 버릴 수도 없다. 배우자와의 관계를 해소하기 전까지는 살아도 가족이고 죽어도 친척이다.

또 이를테면 남편의 사촌 형제 중에 독실한 종교인이 있어서, 저 혼자 믿고 자빠지면 누가 뭐라나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제 동아리로 끌어들이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가족 행사 같은 일로 자주 만나는 처지인데, 볼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선교(포교) 테이프를 틀어댄다. 길거리에서 이런 사람 만나면 쯧쯧... 하고 혀 한 번 차고 지나갈 수 있지만, 인-로 사이가 되면 난데없이 죄인이 되고 불쌍한 중생이 되어 하릴없이 주구장창 늘어진 테이프를 들어줘야 한다.

물론 이런 강제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라서, 저쪽 처지에서도, 사촌의 여편네가 있는데 내가 저를 위해서 천국(극락) 좀 가라고 좋은 말 해주면 콧방귀나 킁킁 뀌면서 인간 대접을 하지 않는 아주 못되처먹은 싸가지가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런 관계에서는 정서적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게 되어, 무딘 인간은 가해하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예민한 인간은 의도하지 않은 가해에도 상처를 받으며, 무딘 인간은 치명타를 맞아도 두어 번 긁적이면 끝이고 예민한 인간은 살짝 베인 것에도 치명상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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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Step Brothers>에 나오는 이 어른아이들은 형제다.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라, 각기 아빠와 엄마가 재혼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형제가 되어 한 집에서 살게 된 형제다. 싫어도 형제 해야 한다. 스타일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서 사사건건 부딪치는데다, 유치한 각자의 성격까지 한 몫 하여, 허구헌 날 치고패고 싸운다. 웬수가 따로 없다.

이것은 도전이고 고통이다. 아메바도 저 싫거나 불리한 쪽은 피해서 꿈틀거리는데, 그보다 훨씬 고등한 인간이면서도 한갓 관계의 틀에 낑겨서 싫어도 꼼짝 못하게 얽힌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상호 관계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스트레스가 대개 한 쪽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는 점 역시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하겠다.

물론 인-로가 피를 나누고 살을 섞은 관계보다 더 진하고 두텁게 맺어질 수도 있다. 운의 영역이므로 이것은 행운이다. 행운까지는 바라지 않고 그저 덤덤히 살고 싶다면, 서로 기쁨을 주지 않는 대신 상처도 주지 않는 정도만 해도 괜찮다. 그러나 현실은, 잘못될 가능성이 있으면 대개 잘못된 쪽으로 간다.

무슨 수가 있나. 애초에 관계에 얽히지 않거나, 고아 출신만을 사랑하거나, 어찌 하다 얽혔더라도 만나는 일을 최소화하거나, 제사 끝나면 얼른얼른 설거지하고 신발을 거꾸로 꿰차는 한이 있더라도 부리나케 돌아오거나 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훼밀리후렌들리하지 않다고 욕은 좀 먹을지 몰라도,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메바도 그러는데.

아니면 속세를 탈탈 털고 산으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마음을 꺼내 벽에 갈고 모루에 두들겨서 웬만한 할큄쯤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미련하게 만들든가. 처음엔 마음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시퍼런 멍도 들겠지만, 세상 사는 건 언제나 아픈 일이다 생각하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도합 10년 안짝쯤은 참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이미지: Justin Smith on Movies

 

덧글

  • 2012/04/03 15: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4/03 19:49 #

    결혼 임박하여 벌어지는 큰 문제들은 주로 그 때문이죠. 심지어 이후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많고요. 한편 행운인 경우도 적지아니 있습니다만. 말씀대로 '결혼은 가족 간에 하는 거다'라는, 지혜랄지 자조랄지 하는 말이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 thyade 2012/04/04 00:36 # 답글

    이건 정말 쓸데없는 농담이 되겠지만, 어쩐지 이런 관계의 불편함은 '어음할인해주고 돈 못 받은 다방마담적 심정'에 가까운 것 같기도요. :>
  • deulpul 2012/04/04 14:46 #

    농담이라셨지만 뭔가 속깊은 비유인 것 같은데 짐작해 내기가 쉽지 않네요. 그런데 제가 지금 오프라인에서 겪고 있는 일이랑 비슷한... 자리 까셔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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