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성 표절을 비판하는 근거는 여전히 정당하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문대성이 발로 차버린 기회들: 문대성의 논문 표절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정당한가?

문대성 표절을 비판하는 진중권과 언론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는 글이다. 이 글에서 한줄 요약이라고 된 부분을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문대성은 논문을 표절했는가? 그렇다.
문대성의 논문이 표절이라는 근거는 정당한가? 약간 따져볼 점이 있다.

문대성의 논문이 표절되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이 필자도 인정하므로, 이 글이 해당 이슈에 대해 기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점은 둘째 부분 '표절의 근거가 정당한가를 약간 따져보는 점'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글이 의미를 가지려면 당연히 '약간 따져봤더니 표절이라는 근거가 정당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약간 따져봤는데 역시 표절이다'라고 하면, 처음의 단정에 포섭되는 맹물같은 결론이 되어 실질적인 기여의 여지가 없으며, 이후 나오는 내용으로 보더라도 그것은 필자의 의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요약에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한줄 요약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대성은 논문을 표절했는가? 그렇다.
문대성의 논문이 표절이라는 근거는 정당한가? 약간 따져보았더니 정당하지 않(은 점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문대성의 논문이 표절되었다는 주장에서 필자가 정당하지 않다고 보았거나 의문을 제기한 근거들은 대부분은 정당하다. 다시 말해, 문대성의 논문은 '거친 잣대'로 보든 '미묘한 점까지 고려'해 보든, 표절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해당 글을 읽고 위의 요약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이유, 즉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대체로 표절에 너무 관대하며, 문제를 꺼내서 경계하기보다 덮어서 반복시키는 잘못된 태도를 갖는다. 위 글은 표절 주장의 정당성을 따진다는 명목 아래 다양한 방법으로 표절 문제를 혼동시키고, 표절을 경계하는 기본 정신을 왜곡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본다.

앞으로 보겠지만, 깔끔한 정리를 위해, 필자가 '문대성 표절 주장의 근거가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따져보는 내용을 미리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언론이 '획일화된 잣대'로 비판
2) 용인되거나 심지어 강제되는 '동일한 표현'이 있음을 간과
3) 제목의 유사성에 대한 부적절한 지적
4) 김백수의 논문이 참고논문에서 빠졌다는 사실의 간과
5) 진중권이 문대성과 김백수의 가설을 정리하며 제시한 문대성 논문의 무가치성
6) 통계 분석 방법의 '정해진 표현' 무시 (2)의 반복, 혹은 사례)
7) 방법론에서 부분적으로 변형한 사실에 대한 간과

등이다. 촘촘히 읽고 정리했으므로 빠진 부분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이 같은 내용을 들어 필자는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아주 거친 잣대로 비교했기 때문에 어떻게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 전혀 없지 않다"라고 주장한다.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 전혀 없지 않다'라는 말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말이지만, 필자의 의도는 변명할 여지가 있다고 말하려던 것이라고 가정하자.

나의 글은 필자의 주장과는 달리, 하나하나만 놓고 봐도, 필자의 말대로 '어떻게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 전혀 없지 않다', 즉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하나씩 보기로 하자. 건너뛰고 결론만 보고 싶은 사람은 이리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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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제목부터. 위 글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문대성이 발로 차버린 기회들: 문대성의 논문 표절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정당한가?

이 제목의 앞부분은 '문대성이 표절을 하여, 자신에게 온 기회(이를테면 정계 진출)를 차버렸다'라고 읽히기 쉽다. 그렇게 보면 이 제목은 빵점짜리다. :으로 이어진 윗도리와 아랫도리가 완전히 따로 논다. 앞에서는 문대성의 잘못을 말하고 뒤에서는 언론의 잘못을 말한다. 양자의 주체도 다르고 그 내용도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것은 :을 잘못 쓴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필자가 제목을 붙이는 상식적인 감각을 결하지는 않았다고 보면, 다른 해석을 해야 한다. 즉

문대성이 발로 차버린 (변명의) 기회들: 문대성의 논문 표절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정당한가?

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볼, 언론이나 진중권이 제시한 '미묘한 문제들에 한 거칠고 획일화된 비판', 혹은 '정당하지 못한 비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면피할 기회를 차버렸다는 의도다. 이렇게 본다면 위의 제목은 일단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문제는 오히려 훨씬 커진다. 왜 그런가.

2. "원론적으로 논문 표절은 언론이 따질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얼핏 보면 논문 심사는 언론이 아니라 해당 대학(구성원)이 한다는, 그야말로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필자는 논문 심사가 아니라 표절에까지 이러한 '원론'을 적용하려 한다:

하지만 논문 표절이라는 것은 여러 모로 고려해야할 미묘한 사안들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문구만 가지고 따지기는 어렵다. 언론에서 논문 표절을 따지게 된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지만 아무래도 이런 미묘한 점까지 고려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언론에서 논문 표절을 다룰 때는 획일화된 잣대를 들이대기 쉽다.

언론에서 논문 표절이 문제되는 경우란 어떤 것인가. 필자도 인정하듯이 '그럴만한 사정', 쉽게 말해 논문 심사 교수든 다른 분야 연구자든 보통 사람이든 누가 봐도 뻔한 표절이라고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이다. 이미 '미묘한 점'을 고려하거나 하는 단계가 훨씬 지나있는 상황들인 것이다. 그간 언론에서 문제가 된 사례들은 미묘하기는커녕 우악스럽고 조야하게 복사질해놓은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숱한 소소한 표절들은 이렇게 '미묘한 점'을 고려한 결과로 드러나지 않고 그냥 묻혀 있고, 문대성의 경우처럼 우악스러운 사례가 되어야 비로소 언론에 등장하고 대중에 알려지는 상황이라고 평가하는 게 더 맞다고 하겠다.

그나마 '미묘한 점' 때문에 언론의 '획일화된 잣대'를 좀 문제삼을 만한 경우는 이른바 자기 표절 사례들이다. (필자는 자신의 글에서 자기 표절 문제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과거에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고 관행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자기 표절 시비의 문제도, 언론에서 거론되는 경우는 이미 그 표절 양상이 '획일화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는 물론이고 학계에서 보아도 응당 문제가 될 정도의 통복사들이다. 미묘한 점을 고려해 면피를 해줄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 필자는 논문 표절 시비에서 학계에 있는 사람만이 고려할 수 있는 미묘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언론이 함부로 따져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런 말은 대체 어떤 경우에 성립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언론이 제기하고 세상 사람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악의적인 표절에 대한 비판이 '획일화된 잣대'라고 한다면, 획일화하지 않은 잣대란 무엇인가? 그런 명백한 표절을 상쇄(nullify)할 수 있는, 말하자면 문대성이 꺼내들어 표절을 변명할 수 있는 미묘한 점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미묘한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언론이 표절 문제를 따지기 어렵다면, 언론이 따질 문제는 언론 스스로의 문제밖에 없을 것이다. 4대강 보의 설계와 시공 문제는 미묘한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건축사나 건설사 관계자들만이 따질 수 있을 것이며, 기업의 이중장부는 미묘한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회계사나 기업 감사역 같은 사람들만이 따질 수 있을 것이며, 민간인 사찰 역시 정무 행위의 미묘한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언론이 따질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른 분야에는 적용되지 않는 무리한 기준이 왜 학문의 영역에만 특별히 적용되어야 한단 말인가.

만일 필자가 말하고자 한 것이 '근거 없이 단정하고 마녀 사냥을 하는 언론'과 같은 점이라면 그 주장의 취지 자체는 이해하나, 문대성의 경우에 이런 평가가 온전히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고, 그 이전의 표절 문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단언은 의미있는 주장이라기보다는 문제의 핵심을 혼동시키고 언론의 정당한 비판 기능을 근거없이 폄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표절 시비가 벌어지더라도 언론이 '미묘한 점' 같은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입닥치고 가만히 있는다면, '미묘한 점'을 잘 고려하는 학계 내부 사람들끼리 대충 알음알음으로 무마하고 쉬쉬하며 넘어갈 가능성이 95%라고 생각한다.

3. "과학 논문에서는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을 중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쓰더라도 비슷한 내용이면 비슷한 표현을 쓰기 쉽다. 어떤 경우에는 학술지 등에서 정해진 표현을 쓰도록 강제하는 경우마저 있다."

이것은 이를테면 필자가 말한 '미묘한 점'의 한 내용이 되는 듯하다. 이 말은 이미 정형화되고 고정화된 개념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이를테면 도표를 그리는 방식 등에 대한 진술로서는 맞다고 본다. 하지만 모호하게 이현령비현령으로 폭넓게 적용하다가는, 언젠가 표절 시비 뒤통수를 맞게 된다.

표절은 크게 1) 연구 내용 표절과 2) 표현 표절로 나누어 볼 수 있다(아이디어 표절도 중요한데 여기서는 생략). 1)은 데이터를 도용한다든가 하는 일일 텐데, 연구 윤리의 측면에서 볼 때 논란이 될 가치조차 없다. 따라서 어떤 과학 분야든 표절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2)의 경우다. 즉 남이 쓴 표현을 그대로 썼냐의 문제다. 이것이 논란이 되고 문제가 되는 이유는, 1) 연구 내용이란 결국 표현(문장과 단어와 도표)으로 제시되는 것이고 2) 생각과 발견을 표현하는 방식도 연구자의 지적 작업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이 쓴 표현을 절대 쓸 수 없나?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따옴표 치고 출전 밝히면 말이다.

이미 개인의 지적 작업의 결과라는 의미가 약해진 개념이나 용어의 경우는 이런 원칙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이 쓴 문장을 그대로 들고와서 베껴쓰는 일 같은 게 합리화될 리 없다. 그렇게 믿고 사는 대학원생이 있으면 얼른 정신차리기 바란다. 지금은 아무도 뭐라하지 않고 그냥 대충 넘어가더라도, 나중에 학위 다 통과되고 교수하면서 보직 갖고 싸우다 갑자기 머리끄덩이 잡힐 수도 있고, 20년 뒤에 혹시 어디 연구원 부원장이라도 하게 될 때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어떤 사람이 쓰더라도 비슷한 내용"이라고 말하지만, '비슷하게 쓰는 것'과 똑같이 쓰는 것은 천양지차다. 똑같이 쓸 때는 복사해 붙여넣기 말고는 아무런 지적 작업이 필요하지 않다. 비슷하게 쓰는 것에는 어떤 형태로든 쓰는 사람의 지적 프로세싱이 필요하다. 각종 논문 가이드들이 표절을 피하는 방식으로 '고쳐쓰기(paraphrase)'를 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연구 결과든 표현이든 과학적 엄밀성은 이렇게 사소한 데에서 나온다.

콜라 페트병을 따서 종이컵에 따르는 방법은 누구나 동일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뚜껑을 돌려 따서 책상 위에 있는 컵에 따랐다'라고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오른손으로 뚜껑을 따고 컵에 콜라를 부었다'라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컵을 책상 위에 놓고 콜라병을 열어 콜라를 쏟아넣었다'라고 할 수도 있다. 내용은 같으나 표현들은 분명히 다르다. 너무나 사소한 것 같고 별 의미도 없는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 다른 사람의 표현을 베끼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위 필자가 "과학 논문에서는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을 중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쓰더라도 비슷한 내용이면 비슷한 표현을 쓰기 쉽다"(강조는 내가)라고 한 것은 우연성에 대한 진술인 것처럼 보인다. 같은 짓을 하니까 비슷한 표현이 나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쓰이는 단어와 문장 구조마저 똑같은 표현이 나올 우연은 아무리 하는 짓이 같아도 그리 흔하지 않다. '비슷한'이 아니라 '똑같은'이 되면, 이건 우연이 아니라 표절의 덕분이다. 문대성의 경우가 '비슷한'인지 '똑같은'인지는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을리라 본다.

10여 단어 이상, 혹은 길든짧든 문장이 통째로 똑같은데도 이를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을 중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개인이 자신의 과거 논문에서 따오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것도 자기 표절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한 개인이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단어와 이들의 조합 방식은 대체로 일관되어 있을 것이므로,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참고: 방법론에서 자기 글을 재인용하는 것은 종종(언제나가 아니다) 인정될 수 있다(인정된다가 아니다).)

물론 남이 쓴 표현과 문장을 서로서로 다 베껴 쓰면서도 '간결하고 정확하다'는 핑계로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않는 학문이나 학자들의 영역이 있다면, 그 안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4. 양 논문의 제목의 유사성을 놓고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는 점에 대한 지적.

'제목이 비슷하니 표절이네'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내용에서 문제가 되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제목만 갖고 표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처럼 복붙의 가시적이고도 충격적인 더 큰 증거들이 널려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언론이나 세간 사람들이, 내용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오로지 논문 제목의 유사성 때문에 표절 시비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면 위 필자의 지적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 나간 용감한 비판을 하는 사람은 학문이 뭔지 모르는 사람 중에도 별로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문대성 표절 사례에서 제목이 거론된다면, 그것은 제목만 놓고 유사성을 지적하는 '획일화한 잣대' 따위가 아니라, 다른 명백한 표절 혐의를 놓고 따지다 보니 제목 부분에서조차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는 결과적인 발견과 문제제기로 보아야 맞는 말일 것이다.

5. "대부분의 언론 기사에서도 다뤄지고 있지 않지만 문대성의 논문을 보면 김백수의 논문은 참고문헌으로 들어가 있지도 않다. 문대성이 김백수의 논문을 참고한 것은 그 자신도 이미 인정했다. 그렇다면 앞서도 말한 것처럼 김백수의 논문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하고 사소하더라도 자신이 기여한 바를 밝혔다면 표현이 일부 겹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언론은 표절 여부를 따질 때 고려해야할 미묘한 사항들을 무시하고 아주 거친 잣대를 들이대었는데 문대성이 워낙 심하게 표절을 한 나머지 그런 거친 잣대조차 피할 수가 없었다. 쉽게 말해 경찰이 어설프게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았는데, 그 범인은 더 어설프게 범죄를 저질러서 부정조차 할 수 없었던 형국이랄까."


또 나왔다, '미묘한 사항'. 이번에 나오는 미묘한 사항이란 참고문헌에 해당 논문을 명시했는가의 여부를 지칭하는 것 같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언론이 미묘한 사항들을 무시하고 거친 잣대를 들이대었다는 점. 이 글의 필자가 맨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논문 표절은 언론이 따질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따질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말했듯이 '미묘한 점'이 문제가 아니라 눈에 확 띄는 개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에 주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언론이 미묘한 사항을 무시하고 아주 거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문제, 가장 드러난 문제를 보고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김백수의 논문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그 한계를 지적하고 사소하더라도 자신이 기여한 바를 밝혔다면 표현이 일부 겹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진중권의 주장이 가장 정확하고 간단하다.

자신이 인용하는 글의 저자와 출처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 특히 남의 문장을 빌려올 때는 반드시 따옴표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진중권의 주장도 아니다. 표절을 피하는 인용법의 상식이다. '출처와 따옴표'. 이거면 끝이다. '연구 한계 지적', '기여한 바 보고' 따위는 표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한계를 아무리 솔직하게 지적하고 자신이 기여한 바를 아무리 거창하게 밝힌다고 해도, 출처와 따옴표가 없으면 표절로부터 면피될 수 없다.

셋째, 뿐만 아니라 문대성의 경우에서 표절의 원본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게 "표절 여부를 따질 때 고려해야 할 미묘한 사항" 같은 것도 아니다. 필자의 말대로 '어설프게 범죄를 저지른' 결과일 수도 있고, 혹은 '완전 범죄를 꿈꾼' 결과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본문이 복사본 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는 마당에, 출전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표절 여부를 따질 때 고려해야 할 미묘한 사항' 따위가 아니라, 말하자면 기왕의 범죄에 건수가 하나 더 늘어나는 정도다. 사람을 치어 죽이고 달아난 뺑소니차를 잡았는데 잡고 보니 도난 차량이었다고 할까. 문대성이 미묘한 사항을 잘 챙겼더라도, 말하자면 참고문헌에 김백수의 논문을 명기했더라도, 본문을 복사질로 표절한 것에 대한 면피는 되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고 달아난 뺑소니는 도난 차량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뺑소니다.

원본 저자가 참고문헌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지 않으면, 범의와 범행상이 너무도 명백한 표절에 대한 비판이 '어설프게' 되는 것인가? 산으로 도주하는 살인 및 사기죄 경합범을 잡기 위해 살인범을 추적하는 데 합당한 병력으로 쫓고 있는 경찰에게, 사기죄에 합당한 병력을 동원하지 않았다고 어설프다고 할 셈인가? "경찰이 어설프게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았는데, 그 범인은 더 어설프게 범죄를 저질러서 부정조차 할 수 없었던 형국이랄까"라니, 그럼 참고문헌에 표절 원본을 명시해 두면 본문 표절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6. "우선 "더 향상될 것이다"와 "차이가 있을 것이다"는 똑같은 표현처럼 들리지만 전혀 다른 말이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는 "더 향상될 것이다"와 "덜 향상될 것이다"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전 연구가 차이 여부까지만 검증했는데 다음에 나온 다른 연구가 그 바탕 위에 향상을 검증해낸 경우였더라면, 선행 연구를 재확인하면서 더 발전된 연구를 수행한 정상적인 과학 연구에 속한다.

즉, 이미 김백수의 연구를 통해 확인된 가설이라고 해도 더 발전된 연구를 통해 재검증할 필요가 있다. 진중권은 이러한 점들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대충 말이 비슷하다는 것만 본 것이다."


여기서, "선행 연구를 재확인하면서... 필요가 있다"라는 부분은 말은 맞다. 그럼 문대성의 연구가 김백수의 연구에서 '더 발전된 연구를 통해 재검증'한 것인가. 이에 대한 평가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해야 할 부분일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언론이나 진중권이나 위의 필자나 내가 아니라 해당 논문을 심사하는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연구의 가치나 유사성과 관련해 가설과 검증 구조를 들여다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이 두 논문의 가설을 각각 '더 향상될 것이다'(문대성)와 '차이가 있을 것이다'(김백수)라고 정리하고, 이의 유사성 때문에 문대성의 연구가 독창적이지 않다고 한 데 대해, 이 글의 필자는 '더 향상될 것이다'와 '차이가 있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다르다며, 후자가 전자를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백수의 논문을 읽어보면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연구에서 차이를 가설 검증으로 밝혀 낼 때는 당연히 향상 혹은 감소라는 방향을 전제로 하고 검증한다. 이것은 검증하려고 하는 데이터의 특성에서 결정된다.

이를테면 한국인 20살 남자의 키는 평균 175cm로 알려져 있다. 어떤 폐인 오덕 그룹 회원들 중에서 20살 남자들의 키를 조사해보니 165cm로 나왔다. 그럼 이 회원들은 한국인 20살 평균보다 낮다고 할 수 있나? 다시 말해 폐인들은 보통 사람보다 키가 작은가?

이 문제를 연구가설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오덕 회원들의 키는 평균보다 작다'라는 것이고, 이것은 문대성의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오덕 회원들의 키는 전체 평균(175cm)과 차이가 있다'라는 것이고, 이것은 김백수의 방법이다. 전자는 그 자체로 차이가 의미가 있는지를 밝혀내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 넘어가고, 후자를 보자.

이 경우 영가설(귀무가설)은 '오덕 회원들의 키는 전체 평균과 차이가 없다(오덕 평균 = 175)이다'이고, 연구가설은 '그렇지 않다'이다. 검증을 하면 그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치자. 이게 무슨 말인가? 오덕들은 평균보다 키가 크다는 결론인가? 당연히 오덕 회원들 키는 평균보다 작다는 결론으로 해석하게 된다. 원래의 데이터의 성격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백수의 논문도 가설은 '차이가 있나 없나?'라는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그 결과를 해석하는 데 있어 기술 통계량(descriptive statistics)의 경향성에 근거하여 '증가하였다' '향상되었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아래 그림). 이 점을 밝혀내는 것이 자기 논문의 원래 목표인 것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연구 논문에서 분석 결과 차이가 있다고만 보고하고 그 내용을 해석하지 않는 것은, 똥 누러 가서 오줌만 싸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김백수 논문 59쪽. 문대성 논문이 아니다.)


위 필자는 "진중권은 이러한 점들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대충 말이 비슷하다는 것만 본 것이다"(강조는 내가)라고 했는데, 필자 역시 이러한 점들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대충 말이 다르다는 것만 본 셈이다.

결국 '차이가 있을 것이다'와 '더 향상될 것이다'라는 가설 차이를 근거로 하여 문대성과 김백수의 연구가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설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연구의 독창성 여부를 따지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심지어 같은 가설을 세웠더라도 모집단, 표본, 실험 방법 등이 다르면 얼마든지 의미 있는 새 연구가 될 수 있다. 가설로 유사성을 제시한 진중권도 무리가 있지만, 똑같이 가설만을 근거로 하여 진중권을 비판하고 문대성 논문의 가치를 인정하는 듯한 위 필자의 주장도 무리가 있다.

(실제로 문대성의 논문이 김백수의 그것과 연구 주제와 방법이 유사함에도 새로운 연구로서 가치가 있는가는 내가 판단할 영역을 넘어선다. 진중권은 아니라고 단정했고 위 필자는 진중권과는 반대의 방향에서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이 점은 해당 분야 관계자들이 보면 5분 안에 판단해 낼 수 있으리라고 본다.)

7. "진중권이 인용한 이 대목은 통계 분석 방법을 보고하는 부분으로서 앞서 말했던 "정해진 표현"에 해당한다. 문대성과 김백수는 분석에 사용한 컴퓨터 프로그램, 산출한 통계치, 분석방법, 유의수준, 사후검증을 순서대로 보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거의 정해진 순서여서 누가 쓴다고 해도 비슷할 수밖에 없고, 원래는 전혀 표절의 근거로 삼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문대성의 논문은 김백수의 논문과 똑같은 것 같지만 분석방법에 있어서 "3x3 반복측정 이원 변량분석"을 자신의 연구에 맞게 "2x3 반복측정 이원 변량분석"으로 바르게 쓰고 있다. 아주 무턱대고 베낀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문대성은 변명할 여지가 확실하게 있었다."


"진중권이 인용한 이 대목"이란, 무려 40여 단어가 거의 똑같게 그대로 옮겨져 있는 단락이다. 이 부분에 대해 필자는 '이것은 거의 정해진 수순이어서 누가 써도 비슷하고 원래는 표절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라고 단정한다. 이것은 어불성설이며, 공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분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솔직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분석이 이미 다른 연구에서 사용된 과정에 따라 진행되더라도, 그 과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문대성과 김백수가 함께 쓴, 한 단락이나 되는 이러한 표현 방식(분석 방식이 아니라)이 학술 논문에서 누구나 단어 하나 틀리지 않게 가져다 써도 면책되는 '정해진 표현' 방식으로 표준화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똑같이 분석하고 똑같이 통계 패키지를 돌리더라도 그 과정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저자에 따라 다르다. 혹시 선행 연구를 참고하고 그 분석 방식을 따르더라도, 비슷한 표현은 표절의 의혹을 살 수 있으니까 최대한 피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이다.

동료 학자들이 심사를 하여 게재하는 학술지에서 예컨대 다른 사람이 쓴 분석 방법을 문대성과 같이 단락째, 혹은 페이지째 통째로 베껴놓았는데 '누가 써도 마찬가지다'라는 이유로 허용되는 사례가 있어 예시해 준다면, 표절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공부가 되리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문대성의 분석 방법에서 자신의 연구에 맞게 바꾸어 쓴 부분이 (한 군데) 있으니 무턱대고 베낀 게 아니며, 따라서 변명할 여지가 '확실하게' 있었다고 주장한다. 필요에 따라 내용 일부분을 바꾼 것을 근거로 하여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그런 것조차 바꾸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라. 표절이든 아니든, 그게 명색 논문인가? 남의 글을 베끼면서 자신에게 맞도록 부분적으로 고친 게 베끼지 않은 증거가 되는가? 진중권이 '복사본'이라고 희화화한 데 대해, 복사기계로 밀어서 편집한 제록스 복사본은 아니라는 황당하고 구차한 주장의 근거 정도는 될 수 있겠다.

8.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아주 거친 잣대로 비교했기 때문에 어떻게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 전혀 없지 않다. 이런 잣대를 들이댄다면 억울하게 표절로 몰릴 정상적인 논문도 얼마든지 있을 법하다. 다만 문대성의 경우 전혀 억울할 일이 없고 그냥 무작정 베껴서 스스로 변명할 여지를 발로 차버렸을 뿐이다."

이것은 필자가 말하는 요지이거나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거친 잣대로 비교했다는 주체는 진중권, 혹은 언론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문대성 논문에 대한 진중권의 지적이 대체로 옳다고 본다. 문대성 논문의 너절한 양상을 보면, 진중권의 결론 말고 다른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진중권이 말한 '표절의 양' 부분은, 나로서는 계산해 내기 어려우므로 판단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문대성의 논문은 표절 논문 치고도 아주 악성이다.

이러한 논문에 대해, 이 글의 필자는 몇 가지 비본질적인 부분, 예컨대 1) 제목이 비슷하다고 해서 표절인 것은 아니다라거나(당연한 일 아닌가. 진중권이 그런 이야기 한 적도 없다), 2) 참고문헌을 인용하지 않은 것은 못 보았다든가(그런 점이 본문의 표절에 대해 '변명할 여지'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3) '분석 방법을 서술하는 방식은 복사해 써도 표절이 아니다라는(어이없다) 등으로 주장하면서, 정당한 비판을 '거친 잣대'라고 규정하고 '경찰이 어설프게 범인을 몰았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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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공부를 하는 사람조차도 표절에 대해 대체로 너무 관용적이다. 알지도 못하는 위 글의 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변명도 다양하다. 학문의 영역(이과 논문은 널럴하다든지), 과거의 관행(옛날엔 다 그랬다든지), 만연한 행태(누구나 다 한다든지), 표절 표현의 내용(메소드는 베껴도 된다든지) 등등 구차한 변명을 달면서 명백한 표절들을 합리화한다. 이런 합리화는 표절을 경계하는 원칙과 그것이 강조되는 정상적인 학계 풍토에서 볼 때 모두 씨알도 안 먹히는 변명들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문 표절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대개 위장전입의 경우와 비슷하다. 규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원론적으로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규제를 서로서로 강제하며 엄하게 지키지 않았으며, 특정 계층에서는 흔한 일로 이루어져 왔다. 지금은 규제가 매우 까다로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전비는 덮어두거나 이해해야 한다는 논리들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혹은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 왔다는 논리들을 들면서, 원칙을 관행으로 덮으려 시도하면서, 원칙에 준거한 외부의 비판을 차단하려고 한다.

표절 문제에서 위의 필자처럼 '미묘한' 점을 제시하는 것은, 예컨대 부산에서 서울로 위장전입을 한 것은 위장전입이 분명하고, 서울 도봉구에서 강남구로 위장전입을 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해줄 수 있다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위장전입은 위장전입일 뿐이다. 아무리 소소하고 미세해도 표절은 표절일 뿐이다.

외부자가 학술 논문에 대해 잘 모르고 무조건 표절이라고 몰아부쳐도 안 되겠지만, 그간 해오던 꼴과 드러난 시비들로 보면, 표절이란 이슈는 내부자(공부하는 사람들)들이 바깥에서 나오는 경계와 비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측면이 더 강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문대성의 거취가 어떻게 되든, 이러한 논란이 한때의 시비거리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가장 바람직하게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문대성을 질타하고 정치에서 끌어내리는 것 따위가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지는 풍토를 돌아보고 앞으로 그런 일을 벌이지 말자고 사회적으로 다짐하는 것이라고 본다(물론 문대성은 누가 끌어내리기 전에 알아서 내려가야 할 테고). 그런 점에서 '관행적으로 용인된다'와 같은 주장은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본다. 관행적으로 용인된다고 해서 했더라도 엄밀한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표절이므로, 누군가 나서서 책 잡기로 작정한다면 앞으로도 그런 시비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문제가 되는 표절 사례의 많은 것들은 과거에는 관행적으로 용인되어 온 것들이다.

내가 너무 원칙적이고 이상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다. 현실은 원칙과는 다르게 관행적으로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칙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이를 관철하는 쪽으로 자꾸 의식적 노력을 해야, 모두가 동의한 규범들이 원칙으로서 가치가 유지된다. 현실이란 타협에 취약한 존재여서, 무거운 아령을 든 팔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듯, 의식적으로 밀어올리지 않으면 자꾸 느슨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예컨대 여성 조교에게 연구용 난자를 요구하는 일 따위를 당연시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표절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동안 벌어진 각종 시비에 힘입어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과거에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져 왔던 자기 표절에 대해서도 이제는 엄밀한 기준이 만들어질 정도가 됐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진보하고 있는 데에는 언론이나 사회의 '거칠고 획일화된' 비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만 맡겨 두었다가는 부지하세월이었을 것이다. 문제의식도 없고, 그래서 문제로 터지지도 않고, 터져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쉬쉬하거나 덮고, 그냥 그렇게 넘어들 갔을 것이다. 누구나 다 그러니까. 지금 문대성 논문의 원본으로 되어 있는 김백수의 논문조차 또 어딘가에서 표절한 것이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꼴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이미지: 김백수 논문 중에서

 

덧글

  • 2012/04/04 17:1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4/05 18:58 #

    아니, 아시면서 여쭤보는 것 아닙니까? 하하... '복사해 붙이기'입니다.
  • 2012/04/04 17:5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4/05 19:00 #

    루틴의 내용이 문제겠지요. 단지 단어가 군데군데 같다고 고정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요... 아, 그리고 전 토론으로 발전할 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2012/04/04 18: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4/05 19:03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긴 하지만, 이 지경이 되면 하늘 아래 복사 안한 게 없는 세상이 되는 거지요. 이왕이면 통 크게 통째 복사하고 베스트셀러 만들어야 국회의원 같은 것도 할 수 있죠...
  • 지나가다가 2012/04/04 21:50 # 삭제 답글

    비슷한 표현과 관용구는 다릅니다. 업계 관용구는 여섯 단어든 열 단어든 그대로 쓸 수 있고, 학술 논문 같은 곳에서는 다른 이유가 없으면 오히려 관용구 그대로 쓰는 게 권장됩니다. 어느 구절이 관용 표현이고 어느 구절이 표절인 줄 알지 못 하는 외부인이 함부로 표절 판정으로 하면 안 되는 이유죠.
  • deulpul 2012/04/05 19:06 #

    '업계 관용구'의 내용이 문제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그 정도의 관용구라면 외부인이라도 그것만 들어 표절이라고 비난하는 일은 별로 못 봤습니다.
  • 2012/04/05 00:4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4/05 19:07 #

    친절한 말씀 고맙습니다.
  • 스크류바 2012/04/05 01:05 # 삭제 답글

    deulpul님께서 예를 드셨는데요. "이를테면 한국인 20살 남자의 키는 평균 175cm로 알려져 있다. 어떤 폐인 오덕 그룹 회원들 중에서 20살 남자들의 키를 조사해보니 165cm로 나왔다. 그럼 이 회원들은 한국인 20살 평균보다 낮다고 할 수 있나? 다시 말해 폐인들은 보통 사람보다 키가 작은가?"

    위와 같은 경우에 "큰가 작은가"와 마친가지로 "차이가 있을 것이다"라고 가설을 세우는 경우를 님도 아실 것입니다. 이렇게 가설들을 세우는 이유중 하나는 모든 사람을 일일이 다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 얼마를 선택하는 표폰(sample)을 통해 연구 하기 때문에 실제와 표본사이에 "에러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남자 모집단 (즉, 한국남자 전체의 키가) 175cm인데, 폐인들 중 "하나"인 오덕의 키는 어떻게 되나? 차이가 있나? 하고 (양방향)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를 "양측 검정 (two-tailed test)"라고도 합니다. 오덕의 키가 평균보다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습녀다. 이를 특정 수준 (예를 들면 0.05의 에러 확률)에서 "검정"하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왔다면, 이를 해석할 때, 결과에서 나온 숫자들을 가지고 비교하며 크더라 작더라고도 기술할 수 있습니다.

    선행 연구에서 차이가 있다라는 결론들이 많이 나왔고,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제는 오덕은 평균보다 "크다"또는 "작다"같은 (단방향)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를 겅증하는 것을 "단측 검정 (one-tailed test)라고 합니다. 양측 검정에서는 유의미 하게 나왔는데, 단측 검정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하는 의문은, 서로 다른 성질의 가설이며 타당합니다.

    문대성은 단방향 가설로 단측 검증을 한 것이고, 김백수는 양방향 가설로 양측 검증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설만을 가지고 볼 때 , 서로의 연구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님의 "결국 '차이가 있을 것이다'와 '더 향상될 것이다'라는 가설 차이를 근거로 하여 문대성과 김백수의 연구가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는 기각되어야 할 주장입니다.

    *덧: 문대성은 표절한 것이 맞습니다. 다만 가설부분을 가지고 표절이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 deulpul 2012/04/05 19:07 #

    의견 감사합니다.
  • 캬오 2012/04/11 00:25 # 삭제 답글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기존 연구에서 양측검정을 근거로 향상되었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는데 단측검정을 시행한 새로운 논문이 학문적으로 기여가 있다고 하는 예는 보질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균차이를 분석하는 데 있어 단측검정을 사용해서 권위있는 학술논문에 게재된 경우 역시 보질 못했습니다.

    또한 문대성의 논문과 표절논문처럼 t-test가 아니라 분산분석을 하는 경우 단측검정인 F-test에 의해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건 차이가 있다는 가설을 검토한 것이거나 향상되었다를 검토한 경우에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입니다. 따라서 문대성 논문의 검정방법이 표절 논문의 검정방법과 양측검정이냐 단측검정이냐는 측면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다른 검정방법이라는 주장은 할 수 없습니다.

    곁가지이긴 하나 스크류바님께서는 통계적 검정을 [검증]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통계를 제대로 배운신 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 deulpul 2012/04/16 20:02 #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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