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hopefully 논쟁에서 항복하다 말씀言 말씀語 (Words)

세계적인 뉴스 통신사 Associated Press(AP)는 4월17일, 작지만 중요한 발표를 하나 내 놓았다. 5월에 출간되는 2012년판 스타일북에서, 그동안 쟁점이 되어 왔던 단어 하나의 관용적인 용법을 인정하고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의 단어는 'hopefully'다. 우선 AP가 이러한 사실을 발표한 트윗은 다음과 같다.



부사 hopefully의 1) 원칙적인 뜻은 '~을 희망하면서' (in a hopeful manner) 이다. 이를테면 "It will rain soon,' he said hopefully(그는 "곧 비가 올거야" 하고 희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정도의 뜻이다. 동사를 꾸며주는 부사 일반으로서의 용법이다. 그러나 이 말은 2) 또 다른 의미로도 널리 쓰여왔다. 독립 부사처럼 되어, 어떤 문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희망컨대' '바라건대' (it is hoped, I hope, we hope)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다. 즉 "Hopefully it will rain soon(바라건대 비가 곧 올 거야)"로 사용되는 경우다. (단일 동사가 아니라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경우로서, disjuncts라고 한다. interestingly, frankly, clearly, luckily, unfortunately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동안 AP는 두 번째 용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잘못된 용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2009년판 <AP 스타일북(The Associated Press Stylebook)>에는 해당 항목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구글 북스에서 찾아본 2011년판도 똑같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제 그 원칙을 허물고 관용적인 용법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관용적으로 널리 쓰여서, 오용이라고 주장하기가 더이상 어렵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린 AP의 트윗이 새로 인정한 뜻으로 이 단어를 썼다는 점이 재미있다.

AP는 이러한 용법을 인정해오지 않았지만, hopefully가 '바라건대'의 뜻으로 쓰인 것은 역사가 깊다고 한다. 웹스터 사전은 그 연원을 18세기 초반으로 잡는다. 이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이러한 용법이 널리 확산되었으며, 그에 대한 비판도 함께 존재해 왔다고 한다. 웹스터는 그러나 이 단어를 이런 식으로 문장 전체를 한정하는 말로 쓰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사실 주요한 영어 사전 거의 모두는 이 두 번째 뜻을 이미 올려두고 있다.

한국 사전도 비슷하다. 옥스포드 영한사전을 기반으로 한 네이버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바라건대'의 용법으로 더 많이 쓰이는 상황을 반영한 듯, 그런 뜻이 1번으로 올라가 있는데, 이러한 용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친절하게 밝혔다. 그 아래 함께 나와 있는 콜린스 코빌드 영영사전도 "[ADV] You say hopefully when mentioning something that you hope will happen. Some careful speakers of English think that this use of hopefully is not correct, but it is very frequently used" 라고 비슷하게 설명했다.

금성출판사 사전을 기반으로 한 다음 사전에도 두 가지 뜻이 그대로 나와 있다.



'아무리 오래 되었고 아무리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다'라는 것이 언어를 다루는 일을 본업으로 할 뿐만 아니라 미국식 저널리즘 전체의 표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언론사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용법을 틀린 것이라고 보는 영문학자나 언어학자들은 적지 않았으며, 따라서 hopefully는 항상 뜨거운 논쟁이 되어 온 단어 중 하나였다. 댈라웨어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벤 야고다는 <형용사를 잡으면 죽여버려라(When You Catch an Adjective, Kill It)>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부사에 대해 말하자면, 아니 부사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아니 더 나아가 언어라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hopefully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따르면, 언어와 관련한 전문가들의 태도는 크게 1) 원론적인 의미에 충실하기를 주장하는 'prescriptivists'와 2) 현실적 용법을 인정하기를 주장하는 'descriptivists'로 나뉘는데(한국어를 놓고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룹 구도다), hopefully를 '바라건대'의 뜻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을 후자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본다. 그 정도로 이 단어가 논쟁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야고다 자신은 '바라건대'의 용법을 부정적으로 보며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순히 틀렸다거나 원래의 용법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1) 어원과 관련한 합리적인 논리를 찾기 어렵고 2) 주제에 대한 화자의 모호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반영하는 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단어에 대한 논쟁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hopefully의 역사와 더불어 그의 주장을 자세히 보려면 맨 밑의 이미지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어쨌든 hopefully라는 단어에 생긴 '바라건대'의 뜻은 일상에서 태동되어 사전으로 인정을 받았고, 이제 저널리즘에서도 당당한 지위를 획득한 셈이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우려하고 현실주의자들은 환호한다. 전쟁이 끝났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사람이 죽고사는 전쟁은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을 말하자면, 나는 이러한 용법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오히려 원래 용법보다 파생된 용법에 더 익숙하다고 해야 하겠다. 내가 간혹 썼을지도 모를 저 말을 보거나 들은 사람 중에 prescriptivists가 없었기를 바랄 뿐이다.


※ 참고: 야고다 책의 관련 부분(66~68쪽):





※ 이미지: AP 트윗과 웹 사전은 해당 웹사이트에서, AP와 야고다 책은 스캔 이미지.

※ 여담이지만, 여러분도 네이버 사전 내용 2번 뜻에 달린 매력적인 예문을 알아채셨기를, hopefully.


 

덧글

  • ㅎㅎ 2012/04/30 11:48 # 삭제 답글

    저도 이런 논쟁자체가 있다는사실을 님 글아니었으면 평생모르고 살뻔했네요 ,항상좋은글 감사드려요
  • deulpul 2012/04/30 12:15 #

    사실 평생 모르고 사셔도 큰 지장은 없는 내용이긴 하지요... 우리로서는 흥미거리라고 할까요. 하지만 '엄한'이 등장하면 목숨 걸어야죠, 하하.
  • 긁적 2012/04/30 13:29 # 답글

    ....;;;; 대단한 고집이군요. 우리나라의 '자장면' vs '짜장면' 논쟁하고도 비슷한 측면이 있고.;
    어차피 일반적인 사람들은 저런 문제가 있건 없건 그냥 'hopefully'라는 단어를 평소에 쓰던 대로 쓸 테고 사람들도 그 뜻을 다 이해할텐데 ㅋ
  • mooni 2012/04/30 18:56 # 삭제

    영어의 경우에는 단어의 역사를 세기 단위로 추적하는 것이 용이하니,
    이런 고집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초 남자애들에게는 핑크색 물건을, 여자애들에게는 파란색 물건을 사주는 것이었다죠.
    지금은 반대이지만...
  • deulpul 2012/05/01 07:20 #

    진짜 고집 세죠? 그런데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또 옳다고 생각하니 그런 원칙을 유지해 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오직 많은 사람이 쓴다는 이유만으로 언어의 변화를 손쉽게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편입니다.
  • 이네스 2012/04/30 17:49 # 답글

    역시 문법은 세월따라 변해가는거군요.
  • deulpul 2012/05/01 07:21 #

    강산도 휙휙 변하는데 문법쯤이야... 랄까요.
  • 새알밭 2012/05/01 04:19 # 삭제 답글

    저도 hopefully가 잘못임을 지적하는 문법 책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세간에 널리 쓰이다 보니, 과연 저런 지적이 효과나 있을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스포츠 관련 방송을 보면 선수고 코치고 입만 열면 Hopefully를 써대는데, 좀 거슬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사회가 저 단어를 I hope의 뜻으로 쓴다면 결국 AP처럼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약간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의 맞춤법 중에 '되다'의 변형을 잘못 써서 '되요'라고 쓰는 경우가 워낙 많아 괴로운데, 그것도 나중에는 인정 받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을 갖곤 합니다. ...
  • deulpul 2012/05/01 07:25 #

    아, 미리 알고 계셨군요. 사실 AP 기사를 대상으로 해 이 단어를 검색하면 상당히 나옵니다. 기자들이 쓴 건 (제가 찾아본 것 중에서는) 없고 모두 취재원들이 말한 인용문 안에 들어있는 형태로 나오는데요, 그만큼 널리 쓴다는 것이고, 이런 기사를 쓸 때마다 AP는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꽤 고심했을 듯합니다. 음... 설마 '되요'가 허용되는 일까지야 일어나겠습니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앙대욤.
  • mesafalcon 2012/05/02 12:45 # 삭제 답글

    저는 해석할때 2번째 의미로 자주 해석했는데 그것이 잘못이라는 견해가 있었다니 몰랐습니다. 언어란것이 시간이 흐르다보면 자연스럽게 의미가 추가되거나 변형되는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언론에서 사용할때에 하나하나의 의미를 정확하게 써야된다것을 다시한번 보여주는것 같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2/05/02 19:49 #

    저도 몰랐고, 저도 2번 뜻을 더 많이 보았습니다. 영어 단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차이를 외국인인 우리들이 모국어처럼 알아채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서 약간 절망이 들기도 합니다...
  • 자그니 2012/05/02 13:42 # 답글

    전 영어만 나오면 머리가 지끈둥
  • deulpul 2012/05/02 19:50 #

    앞으로 혹시 비슷한 포스팅이 있으면 진통제 사이트를 함께 링크해 두겠습니다, 하하.
  • 뉴욕에서 2012/05/03 03:53 # 삭제 답글

    이런 논쟁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더욱 부러운 것은 이 언론의 '언론다움' 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고 하는 신문들의 기사 수준이나 어휘를 보면 한숨만 나와서요... 자세부터 달라요...
  • deulpul 2012/05/04 05:58 #

    정치적인 측면에서부터 이 같은 시시콜콜한 언어에 이르기까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과, 기사에 대해서든 기자에 대해서든 내부에서 철저한 품질 관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말씀하신 '언론다움'을 만들어 내는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업적 자세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 angryinch 2012/05/03 09:51 # 삭제 답글

    재미난(?)글 고맙습니다.
    저도, 짜장면이 드디어 인정받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 마냥 좋아했지만 그래도 기껏 짜장면 하나가 공식표기로 인정받기까지 이 정도의 세월과 논의는 거치는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리고. 들풀님의 진통제 사이트를 함께 링크.. 이런 미드스러운 농담 좋아요 흐.
  • deulpul 2012/05/04 06:22 #

    그렇죠. 어떤 일이든,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자장면'은 사실 너무했습니다. 우리 외래어 표기법은 된소리에 대해 경기에 가까운 거부 반응을 보이는데,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원칙 자체가 합당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 2012/05/07 21:2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5/08 06:01 #

    관용구 같지만, 언제나 한결 같아서 좋습니다. 예전엔 바뀌는 게 그렇게 좋더니, 이제는 안 바뀌는 게 더 좋은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바뀌는 건 바람직한 것이겠죠? 말씀하신 것은 자리를 잡았다기보다 사랑받는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저도 처음에는 불편한 점을 지적했었는데, 그런 문제가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익숙해진 점도 있고요. 계절 바뀔 때마다 고생 좀 하셨는데, 이번엔 건강하게 잘 넘어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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