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메시지가 낳는 오해들 중매媒 몸體 (Media)

앞 글더 오래 된 글에서 풍자로 표현되는 메시지의 숙명적 중층 구조와 여기에서 발생하는 오해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어 가지 사례를 더 들여다 보고자 한다.



위 그림은 주간지 <뉴요커>의 2008년 7월21일자 커버다.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킨 표지다. 아마, 1925년에 시작한 이 잡지의 표지 중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몇 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림에서 오바마는 전통적인 이슬람 복장을 입었고, 미셸 오바마는 AK 소총을 메고 탄띠를 두르고 있다. 둘은 미국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에 서서 흐믓하게 주먹 인사(fist bump)를 나누는 중이다. 벽에는 오사마 빈 라덴으로 추정되는 테러 지도자 초상화가 걸려 있고, 벽난로에서는 미국 국기가 불탄다.

그림은 두 사람을 이슬람 테러 지도자나 조직원처럼 묘사하고 있다. 2008년 7월이라면 민주당 오바마와 공화당 맥케인 사이에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다.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을까를 놓고 온갖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있던 시기다. 이 민감한 정치 상황에서 명망 있는 주간지가 대선 후보를, 일반 미국인이 철천지 원수로 여기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풍자에 설명이 달리면 의미가 없어진다"

잡지가 나가고 나서 엄청난 양의 항의 전화와 이메일이 <뉴요커>로 쏟아져 들어왔다. 편집장 데이빗 렘닉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대부분이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서 나온 것이었다. 가뜩이나 오바마를 싫어하고 경계하는 우파 유권자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그를 이슬람 테러리스트처럼 묘사함으로써 이러한 부정적인 인상을 더욱 강하게 주었다는 것이다. 한국식 셈법으로 하면 '표가 20만 표 이상 떨어졌다'는 식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뉴요커>의 이 표지가 대선 후보 오바마를 풍자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표지 그림이 타겟으로 잡았던 것은 오바마가 아니라, 오바마에 대해 근거 없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상당수 우파 유권자들이었던 것이다. 대선 정국에서 오바마에 대해 이슬람교도, 테러 옹호자, 반미주의자 등 각종 음해 선전이 나오고 있었고, 실제로 이런 거짓말과 소문은 보수적 분위기가 강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따라서, <뉴요커>는 이러한 부조리한 인식과 현상을 희화화하고 풍자하기 위해 오바마 부부를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꾸며 내보낸 것이다. "너희들은 어이없게도 이렇게 본단 말이지?"라는 뜻인 셈이다.

하지만 이 풍자 그림을 보는 사람 대다수가 '오바마가 테러리스트로 묘사되었다'라는 점에만 주목했다. 심지어, 풍자의 의도를 아는 사람들조차, 이 그림이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염려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말했던, 풍자의 중층 구조에 담겨 있는 숙명적인 오해의 가능성이다.

카툰 작가 배리 블릿이 그린 <뉴요커>의 이 표지는 아무런 텍스트를 동반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오해를 더욱 부채질했다. 책 속의 목차 페이지에서는 이 표지 그림에 '공포의 정치(The Politics of Fear)'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정도만 해도 풍자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가 아니라, 그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활용하려는 정치의 부조리함을 지적한 것임을 밝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요커>는 표지에 이러한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편집장 데이빗 렘닉은 이에 대해 "풍자는 설명을 동반하지 않는다. 풍자 그림에 이해를 돕기 위한 각종 설명이 붙어 있다면 풍자의 의미가 없어진다"라고 말했다.

풍자를 풍자하는 만평

또 다른 사례는 주간 신문 <더 어니언>에 실리는 카툰이다. 이 신문은 (문화 섹션을 빼면) 그 전체가 풍자로 이루어지는 매체다. 카툰도 예외는 아니다.

<더 어니언>의 풍자 문법에 익숙하지 못했던 때, 나는 이 신문의 만평을 볼 때마다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기사와는 격이 맞지 않게 보수적이고 편협한 풍자가 거의 매회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미국 학교에서 땅콩이 든 식품의 급식을 경계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묘사한 그림이다. 만평에서는 나치 복장을 한 교장이 불쌍한 어린이에게서 땅콩잼을 압수하고 있고, 알러지를 가진 아이와 부모가 낄낄거리며 이 장면을 쳐다보고 있다. 그 밑에는 이 그림을 그린 만평가 '켈리'가 "땅콩잼을 죽이는 짓"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것은 땅콩 식품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비판성 풍자라고 하겠다.



이 그림에는 '또 다른 국경에서 벌어지는 위협'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미국 북쪽 국경에서 캐나다인들이 식칼과 하키 스틱을 들고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 손에는 캐나다 달러가 든 돈주머니를 들었는데, "미국 달러는 허약하다구. 우리는 당신네 물건을 사주기 위해 온 거야" 하고 말한다. 이들은 '나는 프랑스를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쓰인 옷을 입고, 미국 국기를 짓밟으며 국경을 넘는다. 미국의 '선량한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 한다. 늘 나오는 캐릭터 '자유의 여신상'도 놀라며 울고 있다. 만평가는 "우리는 남북 양쪽에 담벽이 필요할 듯"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남쪽에서 멕시코 불법 이민자가 밀려드는 것처럼, 강한 캐나다 달러를 뒷심으로 하여 국경을 넘어오는 캐나다 소비자 쇄도 상황을 풍자한 것으로 읽힌다.



세 번째 그림은 도로 정체 상황이다. 차량은 끝없이 밀려 있는데, 한 쪽의 자전거 도로에서는 '특권 계급'이 휘파람을 부르며 신나게 달리고 있다. 자동차 안의 아이는 "아빠, 우리 차도 '자전거 전용도로'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며 슬퍼하고, 부모도 특권층을 바라보고 부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만평가는 "위선적인 교통(체제)"라고 비난한다.

거의 매회 이런 식이다. 만평에 나오는 '선량한 미국인'은 언제나 백인이며,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 여피, 장애인, 성적 소수자, 유기농, 아웃소싱, 대체 에너지, 사회 복지 등의 공격으로 늘 시달림을 받는다. 미국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자유의 여신상은 언제나 슬퍼하며, 만평가 자신은 이런 상황에 분노하거나 냉소한다.

이 만평들은 이른바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의와 주장에 대한 신랄한 풍자인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를 지향하는 듯한 주장들이 실제로는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고 미국인의 삶을 해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올바르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볼 때, 불편하게 읽히는 만평일 수밖에 없다.

만평가의 대사조차도 풍자의 장치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이 만평들은 이중의 풍자 구조를 갖고 있다. 겉으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를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를 폄하하는 주장을 풍자하는 것이다. 이 만평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데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예컨대 땅콩 규제 만평은, 학생의 안전을 위해 가해지는 정당한 규제를 나치식 통제로 보고 있는 어이없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다. 캐나다인 쇄도 만평은, 미국 국경 보호를 강화하려는 국수주의적인 주장에 대한 풍자다. 자전거 도로 만평은 편안하게 앉아서 연료를 낭비해 가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들이 자전거용 편의 시설을 확대하는 것을 비난하는 데 대한 풍자다. 즉, 사회 문제를 이 만평처럼 보고 있는 사람에 대한 풍자인 것이다. <뉴요커>의 오바마 풍자 표지 그림과 똑같은 구조다. 따라서 2차원 카툰을 입체적으로 보지 않으면, 이 만평들은 지독하게 국수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색깔을 대변하는 그림으로 보이게 된다.

<더 어니언>의 만평이 액면 메시지로 흔히 오해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림에 직접 등장하는 만평가 켈리 때문이다. 머리가 벗겨진 이 만평가는 공화당을 지지하며 근본주의적 기독교 믿음을 가지고 있는 만화가다. 그는 언제나 자기 그림에 등장하여, '선량한 미국인'을 옹호하는 말을 한 마디씩 던진다. 이 때문에 독자는 그림의 표면적 메시지가 만평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만평을 그리는 사람은 켈리가 아니다. 실제 만평가는 워드 서튼이라는 작가다. 그는 켈리처럼 나이가 들지도 않았고, 머리가 벗겨지지도 않았다. 실제로는 멀쩡하게 생겼고, 그가 그리는 다른 만화는 <더 어니언> 만평보다 훨씬 기교가 높다. 말하자면 만평가 켈리는 자유의 여신상과 마찬가지로, 만평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인 것이다. 가짜 만평가와 투박한 스타일은 모두 풍자를 위해 동원한 장치인 셈이다.

이 만평은 이러한 장치를 통해 보수주의나 우파의 주장, 또는 그런 주장을 담은 보수 매체의 풍자를 풍자한다. 하지만 이런 중층 구조는 흔히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며, 따라서 늘 논란거리가 된다. <더 어니언>의 편집자들에 따르면, 켈리의 카툰은 항상 독자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고 한다. 나도 메시지를 오해해서 불편한 느낌을 가졌다고 했지만, 편집자들과 인터뷰한 위키뉴스의 질문자 역시 이러한 질문을 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이 만평은 나를 혼동시켜 왔다. 아마 이런 것도 만평이 노리는 유머 중 하나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만평가가 실제로 존재하는 우파 시온주의자 만화가이고, <더 어니언>은 단지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위해 그의 만평을 싣는 줄 알았다."

풍자를 이해하는 일도, 그렇게 만드는 일도 언제나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다.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려면 오해를 피할 수 있도록 꾸며야 하겠지만, <뉴요커> 편집장 말처럼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 풍자는 풍자가 아니라는 딜레마가 있다. 어쩌면 풍자의 전문가들은 독자의 오해마저 그들의 풍자가 낳는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즐기는 듯하다.

※ <뉴요커>이미지: 본문에 링크, <더 어니언> 이미지: 홈페이지 에디토리얼 카툰.

 

덧글

  • 신들묄 2012/05/15 14:52 # 답글

    펩시마시는 오바마 (https://plus.google.com/photos/110351006045593232796/albums/5658568430714277665/5741331995870373250) 에서 더어니언이 어떤 성격의 매체이기에 저렇게 묘사된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2/05/15 15:52 #

    네, <더 어니언>은 기사들이 다 가짜인 풍자 신문입니다. 개략적인 설명은 http://deulpul.net/3641207 에 간단히 해 두었습니다. 링크해 주신 오바마 펩시 사진은 아주 흥미롭네요. 처음에는 폭스와 어니언의 기사 제목이 같아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에이, 어니언 제목은 더 튀어야지...' 하는 순간, 이 유머의 펀치 라인은 폭스와 어니언의 제목이 같다는 점임을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 死海文書 2012/05/16 14:13 # 답글

    제대로 못 읽으면 바보 되기 십상이겠습니다.
  • deulpul 2012/05/18 06:53 #

    그러게 말이지요. 이런 매체에 익숙한 사람이라야 그림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잘 잡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같은 미디어(그림)라도 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상호작용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고 하겠습니다.
  • muzik4life 2012/05/22 14:27 # 삭제 답글

    와 재밌어요.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ㅣ
  • deulpul 2012/05/23 12:38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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