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맥을 못추는 박빙의 소환 선거 미국美 나라國 (USA)

예나 지금이나 공직 선거에 나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선거공영제를 채택하고 선거 운동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관리하고 있으므로, 선거를 돈만으로 치를 수 없고 자금력이 비교적 약한 사람도 출마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돈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없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최소한 기탁금이 있어야 하고, 선거 조직을 운영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금권 선거가 일상적이었던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대입 수험생의 생활 수칙처럼 된 4당5락이라는 말도, 5억 쓰면 당선되고 4억이면 낙선한다는 5당4락에서 나온 말이다. 선거 때면 돈이 풀렸고, 그래서 선거 호황이라는 말도 흔히 쓰였다. 1997년에 언론사 사주가 재벌의 돈심부름을 하며 대선 후보측에 거액을 건넨 사건, 2002년 대선 후보가 재벌 기업들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 등이 모두 선거에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옛날 이야기인 것만도 아니다. 올해 초에도 정당의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에게 돈봉투가 뿌려졌다는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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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치르려면 거액이 필요한 나라로 미국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만 해도 선거 관련법에 따라 정치 광고와 선거 운동을 규제하는데, 미국은 그런 게 없다. 돈을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고, 쓸 수 있는 만큼 쓴다. 공식적으로는 연방선거운동법에서 정치 자금의 규모를 제한하고 있지만(이른바 hard money), 후원자들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지원하고 집행하는 선거 운동 자금(이른바 soft money)에 대한 규제는 없다. 이 부분은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을 보장하는 측면으로 본다. (이것은 미국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인데, 나는 표현의 자유라기보다 (안 그래도 너무나 잘 보장되고 있는) 돈의 자유를 인정한 것으로 보아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제도와 몇 가지 다른 요인 때문에, 미국의 선거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4년 전인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존 맥케인은 2억3천900만 달러를 모금했고 8천400만 달러를 공공 자금에서 지원받았다. 합치면 3억2천300만 달러(3천800억 원)이다. 버락 오바마는 공공 자금 없이 7억5천만 달러(9천억 원) 정도를 모금했다. 올해 벌어질 오바마-롬니 대통령 선거는 선거 자금 기록을 새로 경신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오바마 진영은 재선을 위한 선거 자금으로 10억 달러(1.2조 원)를 조성할 계획인데, 이는 미국 정치 역사상 신기록이 된다. 가진 자들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반영되는 금권 정치의 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부지하세월이다.

후보자 처지에서 볼 때, 미국의 이런 고비용 선거는 효율적인가? 다시 말해, '돈빨'은 제대로 먹히는가? 혹은 돈을 많이 쓸수록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이와 관련해 2008년의 한 분석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이 분석에 따르면, 1992~2006년 기간에 벌어진 미국 의원 선거를 조사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1) 선거에 이기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금을 써야 한다(70만~100만 달러).
2) 일단 이 수준을 넘으면, 돈을 더 쓴다고 해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현직 의원에 도전하는 후보자들(그림 1)은 일정한 정도까지는 돈을 쓰는 만큼 지지율이 높아졌지만, 그 이후로는 큰 변화가 없었고 너무 많이 쓰면 오히려 지지율이 미세하게나마 낮아졌다. 또 현직이 출마하지 않고 새 후보자끼리 맞붙는 상황(그림 2)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그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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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위스콘신에서 공화당 주지사 스캇 워커를 소환하기 위한 선거가 2주 뒤로 다가왔다. 5월8일의 예비선거 결과, 주지사에 도전하는 민주당 후보도 결정되었다. 2년 전에 현 주지사와 맞붙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한 번 싸워 진 패장이 같은 사람을 상대로 하여 다시 나온다는 것은 당선 가능성의 측면에서 부적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만큼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사람이 드물고(예비 선거에서 58% 지지를 받았다), 주지사의 실정 때문에 2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소환 선거로 주지사를 축출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주지사를 비판하고 혐오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강고하기 때문이다. 유래 없이 성공적인 소환 서명 운동이 끝난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발표된 여론 조사를 보면, 두 사람은 근소한 차이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모두 9차례의 조사에서 현 주지사는 7번 우세하게 나타났다. 그 중에는 차이가 오차 범위보다 작은 경우도 있다. 민주당 후보가 확정된 이후로도 현 주지사는 5% 정도의 차이로 계속 앞서는 것으로 나와, 소환 운동을 추진했던 이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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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 벌어질 이 소환 선거는 그 배경뿐 아니라 선거 자체로도 여러 점에서 흥미롭다. 그 중 하나는 현 주지사에 대한 지지측과 반대측 모두 피가 끓어 넘친다는 것이다. 여론 조사 담당자들은 소환 선거 조사를 할 때마다 놀라는데, 응답자들의 95% 가까이가 투표를 하겠다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주지사 선거의 투표율은 52% 정도였다.

또 부동표가 거의 없다는 점도 특이한 현상 중 하나다.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대답은 여론 조사를 통틀어 5% 이하였다(평균은 3.8%). 유권자들, 특히 소환 선거에 투표를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거의 모두는 이미 자신이 표를 던질 후보자를 정해두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이번 소환 선거와 관련하여 유권자의 95%가 투표하겠다고 대답했고, 또 그들의 95% 이상이 이미 결정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현재의 선거 운동이 새로 지지자를 늘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후보별 지지율 차이가 근소하게 나오는 바람에, 양당 후보와 지지자 진영은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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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필요도 없이 재정적 자원은 현 주지사 쪽이 훨씬 풍부하다. 주지사는 주지사 선거 지원 자금으로는 기록에 가까운 2천500만 달러를 모금했으며,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기 전까지 이미 2천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총탄을 다 써가며 전력을 다할 것이다.

주지사의 선거 자금 중 60%가 주 밖의 개인과 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전국 규모의 대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티 파티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고 있다. 깅리치나 샌토룸 등 공화당 대통령 주자를 지원했던 거대 기업들은 그들을 위해 돈을 갹출하는 김에, 위스콘신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보태기 위한 돈도 함께 출연했다. 현 주지사는 석 달 동안 이들로부터 1천300만 달러를 모았는데, 같은 기간에 깅리치가 조성한 후원금보다 많았다. 미국 보수파가 위스콘신 선거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비하면 민주당은 6분의 1 정도 자금을 갖고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은 예비 선거에 이미 400만~700만 달러를 소진했다. 지난 겨울 소환 서명 운동을 벌일 때도 돈이 모자라 쩔쩔 맸다. 위스콘신 민주당은 5월 초에 민주당 중앙당인 민주당전국위원회(DNC)에 50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민주당보다 공화당 쪽에서 더 잘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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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서 선거 비용 이야기를 한 것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선거는 돈이 있어야 치를 수 있으며, 자금력은 현 주지사가 계속 압도적인 우위를 점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돈빨이 별로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표가 거의 없다. 선거 자금의 대부분은 정치 광고(특히 텔레비전 광고)에 소모되는데, 주민 대부분이 이미 표를 결정하고 있는 현재 소환 선거의 구도로 볼 때, 정치 광고가 별다른 힘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4% 안팎인 부동표를 완전히 잡으면 승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너무 미세하고,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런 상황이라, 주 민주당은 자금력에서 열세에 있고 중앙당이 잘 챙겨주지도 않는데도 전의(戰意)가 줄지 않는다. 현 주지사가 이미 광고에 2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쏟아 부었는데도, 지지율 변화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이들을 크게 고무시킨다. 글쎄, 이런 자금은 그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기존 미디어의 상업 광고 수주가 점점 줄듯, 텔레비전을 포함한 기존 미디어를 통한 정치 광고 역시 점점 하락길에 접어들지 모른다. 예컨대 한국에서 벌어진 작년 10월의 서울시장 선거나 올 4월의 총선에서는 SNS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거나 그럴 것으로 기대하는 분석이 많았다. 어떤 점에서 SNS는 여론과 소통의 장이 아니라, 선거 광고와 홍보가 이루어지는 채널의 기능을 수행할 뿐이라고 보는 편이 더 합당할 듯하다. 실제 선거 결과가 SNS에서 벌어진 논의의 분위기와 달랐다는 사후 분석들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선거 광고에서 주장하고 논의되는 바대로 선거가 결판난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투표일을 코 앞에 둔 위스콘신 소환 선거에서는 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보다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변수가 하나 있다. 바로 투표율이다. 전체 투표율은 중요하지 않다. 지지가 거의 절반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각 후보자(진영)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실제 투표에 얼마나 참가하는가가 결정적 변수가 된다. 이 지점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다. 역시, 역사는 직접 나서서 손과 발을 움직이는 수고를 통해 창조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거리에서 항의를 표하는 행위든 기표소에서 붓대를 누르는 행위든 말이다.

 

덧글

  • 2012/05/23 17:1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5/24 07:10 #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관련 내용은 메일로 드릴께요.
  • 써머즈 2012/05/23 18:10 # 삭제 답글

    유권자의 95%가 투표하고, 그들의 95% 이상이 이미 결정을 한 상황이라니...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소환 선거에서라니요.
  • deulpul 2012/05/24 07:20 #

    물론 실제 선거에서 투표율은 그보다는 훨 낮아지겠지만, 어쨌든 다른 선거에서보다는 꽤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거의 모두 결정을 해 두었다는 것은, 지지할 후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라서 부러운 점이 틀림없네요. 공직 선거 후보자들이 일단 함량 미달 기준, 이를테면 범죄자라든가 파렴치한이라든가 비윤리적 행위를 저질러 온 사람들을 걸러내는 기준을 통과하기 때문에, 유권자 처지에서는 정견에 따라 선택하기가 좀더 수월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r 2012/05/24 00:33 # 삭제 답글

    6월5일이 기대되네요 항상좋은글 감사드려요
  • deulpul 2012/05/24 07:20 #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저도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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