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 섞일雜 끓일湯 (Others)




동료가 소개해 준 노래를 듣자니 내 과거 속 여수 밤바다가 불쑥 찾아온다.

대학 4학년 때다. 5월 중순, 지리산으로 졸업여행을 갔다. 선배들(그리고 아마도 후배들)은 뻑적지근하게 갔는데, 우리는 소박하게 갔다. 피아골로 들어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임걸령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다음 일정은 광주. 5.18 즈음이었는데, 망월동에 들렀다. 우리 모두가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아니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졸업여행이라니까. 우리 중에는 대학원 입학 공부를 하는 친구,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 연애나 열심히 하는 친구, 그야말로 운동권으로서 사회 운동으로 나가려는 친구 등이 모두 섞여 있었다. 참... 지금 생각해 보니, 많지도 않은 숫자에 일부러 짜맞춰도 그렇게 두루두루 구색 갖추기는 쉽지 않겠다.

그리고 여수로 내려갔다. 행선지를 거칠 때마다 일부가 떠나고, 이곳까지 남은 친구는 예닐곱 명이었다.

오동도 건너편에 방을 잡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엘 들어갔다. 바다 앞이라서, 식당들은 대개 횟집이라는 옥호를 쓰고 있었다. 그 중 한 집이었는데, '서울횟집' 같은 이름이었지만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평일 저녁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다. 외지에서 온 젊은 놈들이 우르르 모여, 머릿수 치고는 빈약하게 주문을 해서 먹는 모양을 보고 주인 아주머니가 말을 붙였다. 우리가 명색 대학생이라는 걸 알고는, 중학생 아이 공부 시킬 걱정을 하셨다. 개중에는 과외 교사를 하던 친구들이 있어, 조언이랄까를 몇 마디 해 주었다. 산낙지 두 접시가 덤으로 나왔다. 인심 좋았다.

밥을 먹고 나와 보니, 어둑어둑해지는 세상 속에서 하늘과 바다가 합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둘셋씩, 농담도 해 가며 장난도 쳐 가며 제방을 걸어 오동도로 건너갔다. 섬을 다 둘러보지는 못했다. 계단을 밟아 바닷가로 내려가 물냄새를 맡아보고 코닥 1회용 카메라로 사진도 좀 찍었다.

돌아오는 길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젊은 놈 예닐곱이 그 제방길을 걸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주 웅대하거나 아주 소박한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그 중간의 것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나이였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며 지나는 옆으로, 물이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출렁거렸다. 여수 밤바다.

그로부터 5, 6년 뒤에 나는 같은 곳을 다시 찾아갔다. 이번엔 일로 갔다. 혼자서 출장을 가는 일은 별로 없는데, 그 때 여수는 드물게도 혼자 가게 됐다. 시내에서 볼 일을 마치고 오동도 쪽으로 나왔다. 달리 아는 데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대학 때 잤던 곳 비슷한 숙소를 잡았다. 또 대학 때 밥을 먹었던 식당을 찾아갔다. 역시 평일이라서 손님은 많지 않았다.

혼자서 찌개에 소주 한 병을 먹다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예전에 찾아왔던 곳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을 하시는 것이었다. 사실 대학 때 나의 친구들은 그 몰골의 누추함과 그 눈빛의 형형함으로 인해 누구나 쉽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놈들이긴 했다. 중학생이었던 아이는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산낙지 한 접시가 공짜로 또 나왔다. 인심은 여전히 좋았다.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 하늘과 바다가 합쳐져 있었다. 물은 더 출렁였는데, 물 탓이 아니라 술 탓인지도 몰랐다. 같은 양도 혼자 마시면 더 빨리 오른다.

오동도를 건너가지는 않았다. 혼자 가기는 좀 청승인 것 같았다. 제방에 앉아서 어두운 밤바다를 한참 구경했다. 담배를 피우던 때였는데, 대여섯 개피를 천천히 태웠다. 여수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동도 인근의 바다를 상급으로 치지 않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여수 바다는 바로 오동도 바다였다. 거기에는 친구들과 나누었던 소박한 꿈들이 언제나 출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자라고 철들고 적당히 낡고 무거워졌지만, 소금물에 절여져 물결 켜켜로 들어간 꿈들은 지금도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넘실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여수 밤바다.

노래에 나오는 인물도 혼자인 것 같다. 나는 그처럼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너와 함께 걷기를 염원하는데, 나는 혼자라도 다시 그 길을 걸어보고 싶고, 그 밤바다에서 비릿한 꿈의 냄새를 맡아보고 싶다. 혹은 예전의 그 친구들이라도, 또 그 누구라도 같이 있어도 좋겠지만.

 

덧글

  • 2012/06/09 16:0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6/29 03:18 #

    저보다 훨씬 진한, 제대로 된 추억을 갖고 계시는군요. 그에 비하면 저는 반쪽짜리 과거라고 할까요... 과거의 일들이지만, 모두 정서적 자양분이 되어 오늘날의 풍부함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료한 오늘날이 또 아쉽고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겠지요.
  • 2012/06/09 16:3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irtyone 2012/06/11 13:14 # 삭제 답글

    글이 참 좋습니다..
  • 2012/06/11 14: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6/29 03:23 #

    그러게 말이에요. 여수에서 거기로 가는 배도 있습니다. 아마 저 위의 시기쯤에 그 배도 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제 꼭 한번 모시고 갔으면 좋겠네요, 정말.
  • mesafalcon 2012/06/11 17:03 # 삭제 답글

    그거 아시나요? 여수밤바다 노래는 모텔촌의 불빛을 보며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재미있지 않나요? ㅎㅎ
  • deulpul 2012/06/29 03:29 #

    그, 그랬습니까...? 가사가 "여수 밤바다 /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 전화를 걸어 뭐 하고 있냐고 /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로 진행되는데... 그니까 친구 자식에게 전화해서 염장지르겠다, 뭐 이런...? 하하-
  • 찬샘 2019/11/03 23:59 # 삭제 답글

    이 글을 읽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다른 표현이 있을 텐데, 이 비문 외에 더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네요. 들풀님 글은 다 좋지만, 이 글은 특히 더 좋아요. 그래서 글이 올라오지 않는 요즘도 종종 이 글을 읽으러 블로그에 찾아 오게 되네요.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