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한 여기자' <월 스트릿 저널> 사임 중매媒 몸體 (Media)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 지명자 브렛 맥거크와 <월 스트릿 저널> 기자 지나 천 사이에 몇 년 전에 오고 간 이메일 때문에 워싱턴 정가가 시끄럽다. 맥거크는 부시 행정부 아래에서 국가안보위원회 고위 관리를 지내며 이라크에 파견 근무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이라크 담당 특별 보좌관을 역임한 인물. 그는 최근 이라크 주재 대사로 지명되어 의회의 인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그가 지나 천과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섹스 스캔들로 비화하기 딱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미국 언론은 맥거크가 공직자로서 부적절하게 처신한 게 밝혀진 이상, 의회가 인준을 쉽게 내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그가 이라크 주재 대사직의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대사 임명을 밀어붙일 태세다. 오바마의 반대 진영인 공화당 역시, 맥거크의 처신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공식적으로 인준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6월7일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 출석한 맥거크 대사 지명자와 이를 바로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천 기자.


국무부 고위 관료 맥거크에 대한 것은 그렇다치고, 다른 당사자인 지나 천에 대해 좀 살펴보자. 이유는 이번 사건이 언론인이 취재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맥거크의 인준 심사 과정에서 이메일 스캔들이 불거지자 지나 천 기자는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가, 바로 오늘(12일) <월 스트릿 저널>에 사직서를 냈다. 이와 관련해 이 신문사는 다음과 같은 알림글을 내놨다.

오늘 오후 <월 스트릿 저널> 기자인 지나 천은 기자직을 사임하는 데에 동의했다. 그녀는 이라크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당시 이라크에 주재하던 미국 국가안보위원회 관료였던 브렛 맥거크와 미공개 기사를 공유함으로써 다우 존스사(<월 스트릿 저널> 발행회사)의 행동 강령을 위반하였음을 인정하였다.

천씨는 2008년에 맥거크씨와 개인적인 관계를 시작했으며, 이러한 사실을 그녀의 편집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현재 <월 스트릿 저널>은, 그녀가 맥거크씨와 맺은 관계로 인해 그녀의 보도가 오염되었다는(tainted)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디트로이트 출신인 천씨는 2005년에 <월 스트릿 저널>에 입사했으며, 2007~09년 기간에 이라크 특파원으로서 바그다드에서 일했다. 또 그녀는 2010년의 아이티 지진 때 현지에 파견되어 보도했으며, 2010년 4월 이후에는 뉴욕에서 금융투자 분야 매수/합병 담당 기자로 일해왔다.

이러한 사실을 보도한 <월 스트릿 저널> 자신의 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이 2008년에 주고받은 이메일들에는 두 사람의 관계와 더불어 보도 대상 사건들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공익과 관련된 일을 하는 기혼자들의 섹스 스캔들이라는 흥미거리로 비치지만, 그 실상은 좀더 심각하다. 이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골자는 간명하다. 언론 종사자와 정부 고위 관리가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며 각자가 갖고 있는 내부 자료를 공유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상관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을 넘어서, 양자의 직업 윤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해야 옳다.

"보도된 오염보다 보도되지 않은 오염이 더 문제"

<월 스트릿 저널>은 지나 천 기자가 아직 공개하지 않은 내부 기사를 애인 맥거크에게 제공하였음을 인정했다. 그녀를 사직케 한 대표적인 이유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다. 이라크와 관련한 보도에서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 맥거크를 통하여 천의 기사에 그대로 들어갔을 가능성이다. 신문은 천과 맥거크와 관계가 그녀의 기사를 오염시켰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으나, 이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신문사는 드러난 기사만을 검토했겠지만, 그로써는 밝힐 수 없는 일도 있을 수도 있다. 천이 쓴 기사에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맥거크와의 관계 때문에 '천이 쓰지 않은 기사'가 더 문제일 수 있다는 뜻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에릭 웸플은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월 스트릿 저널>이 발표한) 사고(社告)에 따르면, 천은 "발표되지 않은 기사를 맥거크와 공유"하는 분별 없는 행위를 저질렀으며, 그럼에도 이 신문은 이들의 관계가 그녀의 기사를 오염시켰다는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조사는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뉴스 보도에서의 오염은 실제로 보도된 부분이 아니라 보도되지 않고 빠진 부분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와 취재원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그 취재원이 정부 관계자일 때는 더욱 그렇다.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기자와 정부 관계자가 짝짜꿍이 되기 시작하면 이러한 감시와 비판의 칼날은 당연히 무뎌진다. 기자도 인간이고 관리도 인간이므로, 일을 하다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편집자에게 알려서, 기사에 개인적인 상황이 반영될 위험을 방지하는 수단을 찾아야 한다. 웸플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취재 지역에서 정부 고위 관료와 관계를 맺고도 이를 편집 책임자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은 언론인으로서의 생명을 끊는 치명적인 잘못이다. ... 만일 고위 관료와 자위 행위를 논할 상황이 되었다면, 편집자에게 뭔가 보고할 거리가 생긴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한편 맥거크가 천에게 비밀 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들의 이메일에서 맥거크는 천이 이라크 선거를 취재할 때 이를 돕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어떤 행사에 천을 잠입시키는 방안을 농담 삼아 거론한 부분도 있다. 내부 자료 유출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가 담당하던 비밀 정치 협상의 진행 과정을 은유적으로 암시한 정도다.

그러나 정부 고위 관리, 특히 보안이 일상적으로 위태로운 이라크에 파견된 국무부 관리가 은밀한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예컨대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알 카에다의 조직원, 혹은 그에 포섭된 미모의 여인이 전문직 종사자를 가장하여 미국 정부 관리와 은밀한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한다. 이 여인은 이러한 관계를 활용하여, 혹은 이러한 관계를 빌미로 이 관리를 협박하여 미국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가 참석하는 어떤 회합에 잠입한다.

@state.gov와 @wsj.com으로 오고간 이메일

이런 일은 미국 공직자들에게는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이다. 몇 달 전 오바마가 콜롬비아에 갔을 때, 경호진(Secret Service)이 현지 매춘부들을 불러 난상 파티를 벌인 일이 크게 문제가 된 것도, 단순히 윤리적인 잘못이 아니라 바로 협박(blackmail)을 받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 때문이었다. 대통령을 핵심에서 경호하는 이들이 이러한 일로 협박을 받을 경우, 그 결과는 엄청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 빅토리아 널랜드가 6월8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맥거크에 대한 국무부의 내부 조사 가능성을 캐물은 것도 이 점 때문이다. 과거에도 부적절한 애정 관계 때문에 비밀 정보 접근 자격을 잃은 국무부 관리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널랜드는 맥거크가 적절한 자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라크 주재 대사로 적임자라는 말만 반복했다.

천과 맥거크는 이러한 이메일이 오고 간 시점 이후에 결혼을 했으며, 지금은 부부다. 그러나 당시에 두 사람이 개인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음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각자가 속한 직장의 공식 이메일로 문제의 내용을 주고 받았다. 공개된 이메일을 보면, 천은 @wsj.com 이메일을, 맥거크는 @state.gov 이메일을 썼다. 이들은 뜨거운 사랑에 빠진 나머지, 법규나 사규 대부분이 공식 이메일을 점검 대상으로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것 같다.

이번 사건은 미국 언론에 그래도 최소한의 직업 윤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 하다가 정치권으로 쫓아가는 것은 둘째치고, 일간지에 칼럼 쓴 지 닷새 만에 정부 여당으로부터 국회의원 비례 공천 자리를 받고 달려가는 명색 언론 종사자의 참담한 꼴을 봐야 하는 우리 언론계에서는 되새겨 볼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이미지: Cryptom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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