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에 빠진 조평통의 억지 때時 일事 (Issues)

올해 2월2일 북한은 한국 정부에 아홉 가지 공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남북 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었는데,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것처럼 내세웠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명의로 나온 이 질문장은 '리명박 역적패당은 우리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한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아홉 개 질문 중 첫 번째는 '지난해 12월의 대국상 때 한국 정부가 저지른 죄악'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1. 우리 민족의 대국상 앞에 저지른 대역죄를 뼈저리게 통감하고 사죄할 결심이 되여있는가. 우리 군대와 인민은 지난해 12월 민족이 당한 대국상앞에 저지른 리명박역적패당의 죄악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그때 역적패당은 온 겨레와 인류가 전대미문의 비애에 잠겨 피눈물을 쏟으며 상실의 아픔을 함께 나눌 때 유독 앞장에 서서 우리의 아픈 가슴에 못을 박고 쓰린 상처에 칼질을 하는 란동을 부리였다. 우리가 남조선당국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는 원칙적립장을 천명한것도 구경은 역적패당의 천인공노할 악행때문이였다.

'대국상 앞에 저지른 대역죄'란 김정일 사망 당시 한국 정부가 조문을 표하지 않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일각에 있었던 추모 시도를 처벌하려 한 것을 말한다. 당시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명하거나 조문을 보내지 않았으며, 논란 끝에 이희호(김대중 부인)와 현정은(현대그룹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북한에 들어가 조문하는 일을 답방이라는 형태로 허락했다. 또 당시 대검찰청은 인터넷에서 김정일에 대한 조의나 애도를 표하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할 경우 단속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대응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예컨대 1월 초에 일본 총련 도쿄본부 위원장이 낸 담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조선민족은 커녕 인간으로 살기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를 잃은 상실의 아픔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는 동족의 가슴에 칼을 박고 민족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며 대국상의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남녘동포들을 무지막지하게 탄압할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 정도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여름에 비하면 나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한 것은 김영삼-김일성의 역사적인 정상 회담을 불과 보름 앞둔 시점이었다. 정상 회담이 성사되었더라면 김영삼은 평양에서 김일성과 악수하거나 포옹하며 덕담을 나눴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조문단 파견이나 조의 표명은 일절 하지 않았으며, 민간 차원의 조문도 모두 금지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조의를 표하고 미국 정부가 북한에 조문을 보낸 데 대해서도 항의했다. 야당 의원 몇몇이 국회에서 정부에 대해 조문 여부를 질문한 것이 문제가 되어 극심한 갈등이 벌어졌으며 이른바 '조문 정국'이 형성되었다.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되었으며, 한국은 이후 벌어진 한반도 관련 협상에서 거의 완전히 배제되다시피 했다.

나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조의를 표했어야 옳다고 본다. 북한이 예뻐서, 혹은 김부자가 조문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한국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한반도에서 대결 국면을 완화하고 평화를 지향하며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에서다. 심지어, 한국 내부에서 공공연한 추모 움직임을 금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 차원에서는 다르게 대응했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한다. 북한은 봉건적이고 정의(情誼)적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문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최근의 종북 논란과 관련하여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6월11일에 내놓았다는 또다른 공개질문장 때문이다. 여기서 북한은 최근 정치권의 종북 논란을 '괴뢰보수패당의 전례없는 '종북세력척결' 대광란극'이라고 규정하며, '남조선 통일애국 세력과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추악하고 비열한 정치 테러이며 북한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라고 말했다.

질문장은 '종북' 혹은 '종북 세력'이라는 말에 강하게 반발하며, 그렇다면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과 접촉한 정부 관계자 등도 모두 종북이냐고 묻는다. 관련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리와 접촉하고 통일론의를 한 사람들이 다 '종북'이라면 지난 시기 비밀특사를 평양에 보내여 우리와 내적접촉을 하였으며 우리의 혁명성지들을 돌아보고 진상품까지 바친 력대 통치배들은 '종북'이 아닌가. ... 그렇다면 남조선의 이전 유신 독재자가 중앙정보부장 리후락을 평양에 밀사로 파견하여 우리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다 받아들이고 7.4공동성명에 도장을 찍은 것은 '종북'이 아닌가.

전두환과 로태우 군사정권 역시 안전기획부장이였던 장세동과 서동권 등을 평양에 비밀특사로 파견하여 우리 최고수뇌부의 접견을 받고 진상품을 바치였다. 동아일보사는 보천보전투소식을 전한 당시의 보도기사원판을 만들어가지고 우리를 찾아왔는가 하면 《KBS》, 《SBS》, 《중앙일보》 등 언론사 사장들은 대규모 대표단을 무어 평양을 방문하여 우리 최고수뇌부의 접견을 받고 축배잔까지 들었으며 주체사상탑, 백두산밀영, 삼지연대기념비, 국제친선전람관 등을 돌아보고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래 이들은 '종북빨갱이'가 아닌가.

현 청와대와 행정부, 새누리당 안에도 우리와 내적으로 련계를 가진 인물들이 수두룩한데 '종북'을 떠들 체면이 있는가. 박근혜만 보아도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접견을 받고 주체사상탑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비롯한 평양시의 여러곳을 참관하면서 '친북발언'을 적지 않게 하였으며 북남관계문제는 물론 남조선내부문제와 관련해서도 심도있는 론의들을 하였다. 정몽준, 김문수 등이 우리에게 와서 한 말들을 모두 공개하면 온 남조선 사람들이 까무라치게 될 것이다. 이들도 '종북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북을 말하기로 하자면 너희들도 우리와 접촉했으니 종북 아니냐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만일 한국 정부가 1994년이나 2011년에 북한이 원했던 대로 정부 대표를 파견하여 북한의 상가에서 머리를 숙였다면 김영삼이나 이명박은 통째로 종북 정권의 수괴가 되었을 판이다. 한국이 화해 노력의 일환으로 이유로 이러한 행동을 취한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셈이다.

이는 문제를 호도하는 자가당착적인 논리라고 하겠다. 북한이 말하고 있는 사람들은 북한 사회의 지향이나 논리, 사상적 경향성이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을 지지하고 공유하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보인 게 아니다. 이후락이 김일성을 흠모하였던가? 장세동과 서동권이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북한의 지령대로 움직였던가? 박근혜와 정몽준과 김문수가 북한을 다녀온 뒤 한국에서 친북한 세력을 확산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던가? 언론사 사장들이 북한의 선전을 그대로 읊으며 북한의 논리를 한국 사회에 유포하였던가? 이들이 북한과 접촉한 것은, 상이 났을 때 조문을 갔어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남북한 관계 개선을 위한 의전적이고 전략적인 대북 접촉으로 볼 수 있다. 이들도 종북이 아니냐고 묻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종북'이라는 말이 갖는 일정한 의미를 희석하기 위한 유치한 물타기일 뿐이다.

이와 관련한 각종 보도는 박근혜 등 대선 주자들이 거론된 것과 관련해, 북한이 한국의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정부 여당을 중심으로 하여 종북 논란을 활용하며 반북 정서를 확산하는 데 대해 즉자적으로 나온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한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일이 그들의 의도대로 된 적은 별로 없어서, 많은 사람은 오히려 북한과 남쪽의 보수 세력이 적대적 공존 관계를 모색하여 온 것으로 의심까지 하는 지경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쪽의 '역적 패당'을 쫓아내기를 원한다면,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크게 도와주는 것임은 누구나 다 안다.

내가 걱정하는 바는 다른 데 있다. 조평통의 이러한 자가당착적인 주장은, 앞으로 과거와 비슷한 조문 상황이 벌어질 때, 한국에서 이성적인 주장이 나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보수층조차 용인하는 대북한 접촉을 북한 스스로가 '종북' 물타기의 근거로 들고 나온다면, 앞으로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접촉하려는 사람은 더욱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한 의전적인 발언과 행동을, 북한 집권 세력과 그 논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동일하게 섞어넣고, 더 나아가 그런 발언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한다면, 앞으로 누가 북한을 찾아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며 포옹하고 악수하겠는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가까운 미래에도 그렇겠지만, 한국에서 북한은 뜨거운 감자다. 일부러 뜨거운 감자를 쥐려고 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김일성 사망 때는 정부가 조문을 검토해야 하지 않느냐고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질문한 것만 가지고도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12년 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나온 여론조사에서는 정부가 공식으로 애도를 표명해야 한다는 데 우리 국민 절반 정도(49.6%)가 찬성했다. 남북 문제에 관한 한, 한국 국민의 인식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징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북한이 저런 애먼 소리나 하고 있다면, '종북'이 아니라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평화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한국 국민조차 등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조평통의 질문장이 주는 한 가지 교훈이 있긴 있다. 한국 사회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과 대화하려는 노력조차 깡그리 부정한다면, 이는 결국 종북과 전략적 대응을 뒤섞으려는 북한의 논리와 같은 꼴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논리가 지배하게 된다면, 남쪽의 대북관은 추종 아니면 멸살이라는 흑백론만 남게 될 것이며, 본질적으로 전쟁이 잠시 중단된 상태에 사는 국민들은 위험한 두 사상 사이에서 불안에 떨어야 할 것이다.

 

덧글

  • mesafalcon 2012/06/21 11:02 # 삭제 답글

    국가적 차원에서 조문은 정부의 명분에 치명타를 줍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키고, 천안함 침몰사태를 일으킨 북한정부의 수장을 상대로 조문을 하는것은 자가당착이 아닐까요? 저는 정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또한 독재주의자가 죽었을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부가 조문을 가야할까요?
  • deulpul 2012/06/29 03:09 #

    연평도나 천안함 사건이 없었다면 가도 괜찮았을까요?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었던 김일성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거긴 또 한국전쟁이 걸려있겠지요? 보내지 않아야 할 명분을 찾기로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한 일이 될 겁니다. 그런 상황을 기정사실로 놓고, 그 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게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 중에서 긴장도 고조시키지 않고 우리의 명분도 무너뜨리지 않는 길도 있을 것이고요. 그런 방법 찾으라고 국민이 월급 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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