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도 어색하지 않도록 섞일雜 끓일湯 (Others)

간밤 꿈에 소설가 김훈이 나왔다. 무슨 일인지, 여러 언론사에서 온 기자들이 잔뜩 진을 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치 의원회관에서 이석기 등원을 기다리는 장면 같았다. 자리에 나타난 김훈은 뭔가를 해명하고 설득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꿈을 깨고 나서도 생생히 남은 말이 있다. 자신이 나이 들어서도 어색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무엇을 미리 해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 ** --- ** ---


예전, 회사 다닐 때는 서류가방을 들면 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GRE 학원을 다니자니 들것이 마땅치 않았다. 백팩을 메면 되는데, 이게 무지하게 어색한 것이다. 가방을 사 두고도 처음에는 거의 쓰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배낭을 메는 데 두어 달 족히 걸린 것 같다. 학원의 동료 수강생들과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데도, 몇 해 동안의 회사 생활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북미의 대학에서 가장 널리 볼 수 있는 보따리는 백팩일 것이다. 메신저백도 잘 이용되고, 여학생들의 경우는 좀더 다양한 변주가 등장하지만, 대세는 백팩인 듯하다. 많이 들어가고 균형 잡히고 두 손이 자유로운 들것이라서, 아주 실용적이기도 하다. 학생뿐 아니라 교수들도 백팩을 잘 멘다. 역시 실용적이어서일 것이다. 나의 지도교수도 그랬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그에게는 백팩이 가장 편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백팩에서 자주 나오던 것은 사과나 오렌지였다.

공교육 시스템에 진입한 예닐곱 살 아이들도 학교 갈 때 배낭을 멘다. 제 몸보다 훨씬 커서, 가방을 메면 아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거북이 등짝 같은 모습이다. 이를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오면서도, 심훈의 <상록수>에서 배움에 목말라 교실 창밖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람 열매처럼, 그렇게 열심히 배우러 다닌다는 교육의 상징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미국 캠퍼스 분위기가 이래서 자연스럽게 배낭을 메게 되었다. 분위기가 이렇다는 것은 대세라는 뜻도 있지만, 남의 행색에 별로 관심 두지 않고 이쪽도 남 눈치 보며 행장을 꾸미는 일은 많지 않다는 뜻도 있다. 한국에서 삼복에 털스웨터 입고 나오면 미친놈 소리를 듣겠지만, 오뉴월에도 저 춥다고 느끼면 바리바리 껴입을 수 있고, 그래도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 않는다. 남 눈 의식해 겉을 꾸미는 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얼마나 편한 일인지 모른다. 덕분에, 한국 가면 언제나 어머니로부터 잔소리를 듣지만 말이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미국 대학에 공부하러 온, 선배뻘 되는 이가 있었다. 그는 007 가방을 들고 학교를 다녔다. 본인만 그럴 뿐 아니라, 나보고도 종종 뭐라고 했다. 애들처럼 배낭을 메고 다니냐는 것이었다. 아마 그 학교에서 007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학생은 그가 유일했을 것이다. 그 역시, 남의 행색에 별로 관심 두지 않는 미국 캠퍼스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믿는다.


--- ** --- ** ---


얼마 전에 서울시가 소속 공무원에게 반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좋다고 허용했다는 기사를 봤다. 복장과 근무 환경 모두에서 진일보한 방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도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을 것이다. 지금쯤은 자연스러워졌으리라 믿는다. 해 보면 다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 딸린 사진을 보면서 나는 좀 걱정이 되었다. 출근하는 직원들이 모조리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상의 필요 때문에 반바지를 입은 직원들을 따로 모아서 찍었거나,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온 장면을 골랐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나는 서울시 직원들의 반바지 출근이 규율상으로나 분위기로나 또 하나의 강제나 압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반바지를 원하지 않거나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장 문화에서의 진보란 허용의 폭이 넓어져 가는 것이지, 무엇이 무엇으로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수장이 에너지 절약한답시고 타이를 매지 않거나 반소매 셔츠를 입으면 휘하 직원들이 모조리 따라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지 않은가. 더위 안 타는 사람도 있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넥타이 매는 게 좋은 사람도 있지 않겠나 말이다. 하지만 내 개성대로 했다가는 반골이나 조직 부적응자로 찍혀 승진 심사에서 탈락하게 되는 게 비극적인 현실이다.


--- ** --- ** ---


최근 지역 신문에, 공공 부문에 종사하다 은퇴한 이들의 연금 관련 기사가 났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공무원하다 정년 퇴직한 이들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겠다. 기사에는 큼지막한 전면 사진이 딸려 있었는데, 두 노인이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정년 퇴직하고 벤치에 앉아서 나라와 세계와 우주를 걱정하는 토론으로 소일하는 노인들은 한국에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사에 나온 미국 할배들은 그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둘 다 밝은 색 면바지를 입었고, 윗도리는 폴로형 원색 티셔츠를 입었다. 한 사람은 선글라스를 썼다. 이런 외양에서는, 탑골 공원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음습하고도 어두운 느낌이 나지 않았다.

단지 외양만 갖고 한국의 선배 세대를 폄하하는 것은 아주 불공정한 일일 것이다. 미국 노인들은 대다수가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을 정도의 연금을 받고 산다. 한국은 폐지를 모아야 한다. 그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몸과 마음, 더 나아가 외모에서의 여유를 결정해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도 안 해본 짓은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잘 안 될 것이다. 밝은 색 면바지나 원색 티셔츠가 미국 노인네에게 잘 어울리는 것은, 그렇게 입는 데 익숙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꿈 속의 김훈이 나이 들어서 하면 어색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럴 일은 많을 듯싶다. 빨갛고 노란 티셔츠를 입는 일도 그렇고, 무엇을 새로 배워보는 일도 그럴 것이다. 김훈처럼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천천히 걸어서라도 전국 일주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많아진 시간을 활용해 자원봉사를 해도 좋을 것이고, 노인들이 플래시몹을 해도 아주 멋지지 않겠는가. 군복 입고 하는 플래시몹 말고 말이다.

나중에 하고 싶어질 게 틀림없지만, 나이 때문에 어색해 할 일, 그래서 지금부터 익숙하게 해 놓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좀 생각해 봐야겠다. 그 전에, 그처럼 소박한 여유를 부려도 좋을 만큼 노후에 대비한 개인적, 사회적 대안이 있어야 할테고, 무엇보다 그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덧글

  • 새알밭 2012/06/30 07:01 # 삭제 답글

    김훈이 제 꿈속에 나온 적은 없습니다만 - ㅎㅎ - 며칠전 그의 신작 소설 <흑산>을 읽었습니다. 소설 곳곳에서, 그의 징글징글하고 치열한 노동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칼의 노래> 이후에 정색을 하고 읽은 것이니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옛날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일 때부터 팬이었고, 시사저널에서 상사로 모시는 횡재(?)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좀더 개기고 술도 더 자주 얻어먹고 재미있게 지내지 못했을까 후회와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과 글에 더 애정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흑산>의 예스24 페이지에 가보니 그의 인터뷰 비디오가 있었는데, 다행히 아직도 젊고 활기차게 사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의 특유의 말투와 표정도 새삼 반가웠구요. 한 번 가보세요. 다음에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꼭 찾아뵈어야겠습니다. 이제는 워낙 유명인사가 되셔서 만나줄지가 문제긴 하지만요. 들풀님도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조만간 다시 뵐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제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게 아닌가 싶어 아쉽고 안타까울 때가 많은 요즘입니다. 여름에 건강 조심하세요.
  • deulpul 2012/07/09 07:12 #

    이 글을 쓴 뒤 보니, 바로 얼마 전에 <흑산>을 읽으신 느낌을 쓰셨네요. 참 희한한 우연이라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꼭 뵙고 싶은 분들 중 하나입니다. 리영희 선생도 뵙고 싶었는데 영영 어렵게 되었지요. 이런 분들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기자가 되든지 아니면 주례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거 모르몬교로 개종할 수도 없고...
  • 히요 2012/06/30 10:38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대략 5~10년씩마다, 이런 차림, 이런 놀이, 이런 말을 써야 안 어색하고, 달리 하면 어색하다는 식의 기준들이 있지요. 안 따르는 사람에겐 태클과 무안을 줘가면서 따르게 만드는. 그때그때 주변의 암묵적/노골적 압력에 치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익숙해지며 살아야 평소에도 좋아하는 대로 입고 들고 다니고, 노년이 되어도 내가 원하는 색의 옷을 산뜻하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deulpul 2012/07/09 07:31 #

    맞아요. 아직은 세대나 동료에서 오는 압력을 이겨내는 일이 큰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저는 항상, 2003년에 유시민이 보궐선거 당선해서 국회 첫 등원하면서 타이를 매지 않고 흰색 바지를 입고 나갔다가 물의를 일으킨 일이 떠오릅니다. "탁구 치러 왔냐" "국회가 나이트클럽이냐" 하는 소리를 듣고, 심지어 국회의원 20여 명이 퇴장까지 했다는데, 아주 코믹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시민도 다음날부터 다시 옷을 바꿔 입어야 했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렇다 치고, 일상에서도 이러한 압력이 작용한다는 것은 아주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나잇값은 옷차림 따위에서 나오는 건 아닐 텐데요...
  • rock bogard 2012/06/30 12:36 # 답글

    좋은 글 읽었습니다.
  • deulpul 2012/07/09 07:31 #

    고맙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