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문의 대미 편향성과 관련한 짧은 생각 섞일雜 끓일湯 (Others)

미국만 바라보는 지식생태계, 미국만 생각하는 지식권력

이 글은 한국 학문 풍토가 인적으로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는 고질적인 상황을 다시금 짚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몇 가지 의문도 남긴다.

1. 위 글은 한국의 학문이 미국에 편중되었다는 의미로 '미국만 바라보는 지식 생태계'라는 제목을 붙이고, 통계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 같은 일반 자료를 썼다. 그러나 글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문제 양상은 모두 경제 관련 분야에 국한되어 있다. 법인세 논란 부분, 장하준이 추산한 경제학 학위자 부분, 신자유주의 부분, <경향신문> 보도 인용 부분, 장하준 임용 부분 등이 그렇다. 그럼에도 다시 결론에서 분야에 상관없이 쿼터제 같은 방안을 적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예컨대 이 글에 인용된 <경향신문>의 기사는 "정부 산하기관 경제연구소의 박사급 연구위원들의 대다수가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나친 편중성 때문에 시각의 편향, 글로벌 지역 경제에 대한 전문성 부족 등의 우려도 제기된다"라고 하여 경제 분야에 대한 것임을 명확히 했는데, 이를 인용한 위 글은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은 미국 박사가 아니면 거의 천연기념물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됐다"라고 하여 분야를 한정하지 않고 전체로 일반화시켰다. 일반화를 해도 아마 맞는 말이겠지만, 그 근거로 해당 신문 기사를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거나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

또 장하준의 서울대 임용 탈락과 관련하여 인용한 '삼류 잡지 에디터' 발언의 원출처인 정태인의 <경향신문> 칼럼 '미국인보다 더 미국스러운...' 역시 한국 경제학자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칼럼 시리즈 제목이 '경제 칼럼'임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경제학 분야의 사정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학문의 종류에 따라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보지 않고 단지 미국 출신자들이 많다는 것만으로 비판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자연과학이나 공학, 의학 분야처럼 외국에서, 또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의 장점이 두드러진 분야도 있기 때문이다.

2. 한국의 학계와 관계에는 왜 유독 미국 출신이 많은가? 미국 출신들끼리 서로서로 밀어주고 당겨준 결과일 수도 있지만, 우선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위 글도 지적했듯이, 근본적으로 전체 수가 많기 때문에 한국에서 나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선진국 여러 나라에서 공부한 사람 중 똑똑한 상위 10%만을 뽑아서 한국 관계나 학계에 앉힌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 출신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이런 현실 상황이 강제적 쿼터제와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3.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을 단일한 집단으로, 미국의 학풍을 단일한 것으로 파악한 점도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크게 보면 실증주의적, 경험주의적, 계량적 경향으로 함께 묶을 수 있겠지만, 역시 학문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분야나 미국에서 주류로 인정되는 흐름이 있지만, 그와는 접근 방법이 다른 문제 의식과 방법론 역시 존재하며, 오히려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장하준 임용 탈락을 언급한 출처로 위 글이 인용한 글 '장하준이 삼류 경제학자?'는 한국에서 부는 장하준 열기에 대한 칼럼인데, 이 칼럼은 장하준 열기를 마이클 샌델 바람과 동치시켜 함께 언급하고 있다. 다 알다시피 샌델 역시 미국 학자다.

다시 정태인의 글로 돌아가면, 정태인이 장하준의 임용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미국에서 공부했음에도 미국 사회나 경제를 전혀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과연 이들이 미국 경제를 아는 것인지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예컨대 서울대학교 경제학부가 그렇다. 연전에 뮈르달상(학자에 따라서는 노벨상보다도 권위를 더 쳐 준다)을 받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이러한 정태인의 논지는, 오로지 미국 박사가 많아서 한국 학문(경제학?)이 미국만 바라보고 미국만 생각한다는 것과는 좀 다르다. 오히려 미국에서 공부하고도 미국을 모른다는 주장이며, 더 나아가 정태인은 역시 미국 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한국 정부가 자문단장으로 모셔오지 못한 것을 통탄할 정도다.

4. 뿐만 아니라, 위 글이 말하듯 "이런(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 많은) 추세는 시기에 따라 별반 다르지 않고 일관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라면, 오랫동안 이런 연구자들에 의해 교육 받은 국내파 역시 비슷한 경향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계량과 통계 중심의 사회과학 방법이 확산되는 것도 그 한 현상일 것이다. 미국 학문의 2대, 3대들이라 할 이들은 '미국만 바라보는 지식 생태계'에서 면책되는가? 만일 이들이 문제 되지 않는다면, 위 글은 학문의 미국 편향성을 말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미국 박사가 지식 권력을 많이 갖는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셈이 된다.

5. 위 글은 "미국 유학파들이 경제관료집단과 학계에서 주류가 된 것은 한국 사회를 급격히 신자유주의 사회로 재편하는 원동력이 됐다"라고 했는데, 신자유주의 현상이 미국과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세계적 양상이라는 점은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모두 미국 유학파들이 주류가 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생적인 신자유주의자들이 태동되었기 때문인가? 학위 국가 쿼터제 같은 걸 시행했더라면 한국은, 그리고 한국만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편입되지 않았을 것인가?

6. 위 글이 제안한 쿼터제 자체에도, 그 현실성을 떠나 의문이 따른다. '특정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A)이나 특정 국가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B)이 50%를 넘으면 안 된다는 의무 규정'(A, B는 내가 삽입)에서 대학과 국가를 어떻게 병치시킬 수 있을까. B를 만족시키면 A는 저절로 충족되는데도 다시 A를 규정한 것은 한국은 예외로 하기 때문인가. 다시 말해 외국은 국가 단위로, 한국은 대학 단위로 따진다는 뜻인가. 무엇보다, 특정한 목표(글에 따르면 '서울대와 미국')를 찍어 규제하려는 의도를 가진 규정이, 역차별 논란 가능성을 딛고 공공 규정으로 성립할 수 있는 보편성을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

이러한 의문이 들면서도, 해당 글의 원래 취지인 한국 학문(경제학?)의 대미 종속성의 심각함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한다. 또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은 관료들의 꼴을 개탄한 것도 오래되었다. 입만 열면 '세계 표준'을 이야기하면서 속내를 보면 '미국 표준'을 말하고, 정태인의 지적처럼 그조차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 같은 박아무개 장관 같은 이의 한심함이 기막힌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이처럼 글의 취지와 기본 문제 의식을 이해하고 이에 동의하면서도, 모든 것을 흡인하는 블랙홀과 같은 미국 학문의 마성(魔性)에 우리 학문이 일방적으로 이끌려 가는 현상은 좀더 입체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내가 이러한 의문을 갖고 이런 글을 쓴 것은, 내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 테고,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며 읽어 주시기 바란다.

 

덧글

  • 2012/07/21 00: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29 16:0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7/29 16: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민노씨 2012/07/25 01:29 # 삭제 답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미세하고, 섬세한 결들을 예리하게 짚어주시니 많이 배웁니다.
  • deulpul 2012/07/29 16:04 #

    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망한 글이지요...
  • 자작나무 2012/08/14 08:57 # 삭제 답글

    여름휴가다 뭐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답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한참을 지나 버렸군요. 마음에 진 부담을 덜기 위해 일단 짧게나마 댓글을 달아놓습니다. 좋은 지적과 따뜻한 비판에 감사드립니다. 빠른 시일 안에 정식으로 답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드리며 이만 총총...
  • deulpul 2012/08/16 05:23 #

    아닙니다. 특별히 응답을 주십사고 바라고 쓴 게 전혀 아닌 그냥 넋두리인 데다가, 위에 쓴 답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대안을 갖지도 못한 불완전하고 짧은 생각일 뿐입니다. 뜻하지 않게 부담을 드렸다면 죄송하며, 불쾌하셨을 수도 있는데 좋게 여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okcom 2012/08/27 11:19 # 삭제 답글

    저로서는 최근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기회로 만약 새로운 경제학이 부흥한다면 그 베이스캠프 역시 자연히 미국학계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미국 경제학이 문제라고 한다면 가장 큰 문제는 실증주의적 경향보다는 개인(행위자) 중심의 합리주의적 접근(개인의 선택과 정보의 불완전성 문제)으로 경제학을 정의내린 데 있다고 진단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문제에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영국 경제학자인 Ben Fine가 주장하는 'economic imperialism'을 검색해 보시길 권해드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eulpul 2012/08/27 18:18 #

    '우울한 과학' 경제학은 인적으로, 또 정책적으로 현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 피드백된 비판에 늘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잘 모르긴 합니다만 미국 유수 대학에 진을 치고 있는 경제학자들의 모습을 보면,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이 새로운 경제학을 요구하지만, 그러한 요구를 현실화할 자원이나 동력이 역부족이라는 느낌도 좀 들고요. 말씀대로 새로운 경제학이 부흥하여, 오랫동안 주류가 되어 온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 지배 구도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책은 꼭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문천 2012/09/16 11:26 # 삭제 답글

    좋은 문제의식입니다. 잘못된 현상을 비판하는 '정의로운' 입장이라는 데 만족해서 비판 방법의 정당성이나 타당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는 태도가 글 쓰는 데도, 글 읽는 데도 흔합니다. 그래서는 비판이 투정에 그치고 비판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일이 많죠.
    한국사회의 '진영 논리'가 이런 풍조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해 왔는데, 문제를 더 넓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민지배건 독재통치건 지나치게 폭압적인 상황을 오래 겪어오면서 비판의식이 '저항' 차원을 넘어 성장하기 어려웠던 점도 생각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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