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할 상황인 줄 모르는 윤리적 문맹 섞일雜 끓일湯 (Others)

좀 오래 된 이야기지만, 예전에 학교에서 나와 관련한 서류를 하나 처리하면서 작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작다는 것은 실수의 내용이 작다는 뜻이지, 그 실수의 결과가 작다는 뜻은 아니다. 행정부서 교직원이 저지른 이 작은 실수의 결과, 나와 관련한 서류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잘못 기록되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는데, 서울에서 비자를 연장할 때 알게 되었다. 비자 발급 거부 처리를 당했기 때문이다. 비자 리젝! 이게 얼마나 엄청난 정신적, 물리적 데미지인지는 아시는 분들은 다 알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다시 받고 미국에 돌아왔다. 한참이 지난 뒤, 다른 일로 행정부서 담당자와 이야기하던 끝에, 내 서류에 (여전히) 잘못된 사실이 적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녀는 "어? 이게 왜 이렇게 되어있지?" 하면서 잘못 기록된 내용을 즉석에서 수정해 주었다. 수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도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내가 겪은 고초는 1년 정도의 분량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 입국이 아예 거절되었더라면, 그런 결과는 어느 정도 시간의 부피에 빗대어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가 차서, 당신의 실수 때문에 내가 다시 입국할 때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녀는 "오, 그랬냐? 헤헤헤" 했을 뿐, 미안하다는 말은 역시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 뒤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눈여겨볼 때가 있다. 이견이 있게 마련인 논쟁이나 논란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다함께 쓰는 접시를 깨뜨리는 것처럼 명백한 실수를 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큰 실수일 필요도 없다. 아주 작은 잘못들과 그 뒷처리가 사람에 대해 잘 말해 준다. 실수한 당사자들은 제각기 자기가 살아오며 배운 방식으로 뒷처리를 하고 넘어가는데, 나는 이런 것들이 그 사람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시대는 사회 구성원에게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잘못했으면 사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유치원에서 배웠어야 할 중요한 모든 것 중 하나일 텐데, 나이가 들고 머리가 제법 커지도록 그런 걸 배우지 못한 사람 부지기수다.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만 강요되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그래서 사과를 하면 자신이 지는 게 된다고 인식해서인지,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을 도통 모른다. 공공 영역일수록 더 그렇다. 애가 온천지를 휘젓고 다녀도, 이를 나무라는 사람에게 당신이 뭔데 남의 애 기죽이냐고 대드는 인간들이 키워내는 F1, F2에게 사과의 덕목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 이를테면 길에서 쌍방 과실로 자동차 접촉 사고를 내었을 때처럼, 먼저 사과하면 과실을 인정하는 셈이 되고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치자. 그런 상황이 아닌, 순수하고 투명하게 자신이 잘못하고 그로 인해 여럿에게 해를 끼친 상황에서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점,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마저 왕왕 본다. 이것은 또다른 형태의 무학이고 문맹이다. 차이가 있다면, 글을 모르면 저 혼자 답답하면 그만이지만, 이런 윤리적 문맹은 다른 사람을 답답하게 하고 오히려 저 자신은 그지없이 행복하다는 점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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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패익(稗益)'의 뜻과 용례를 찾다가, 옛날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거울을 잃어버린 2세들 - 가정/사회교육 부재의 현장'이라는 시리즈 중의 한 편인데, '사과에 인색하다'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1981년 9월9일 <경향신문>에 실린 내용이다.



웬 고리타분한 꼰대가 썼나 싶어서 봤더니, 필자는 '정의사회구현(전두환 정권의 국정 슬로건) 실천협의회장' 같은 사람이 아니라, 신문사 소속 기자다. 내가 지금 느끼는 바와 똑같은 것을 30년 전에도 느끼는 사람이 있었고, 그게 '가정/사회교육 부재의 현장'이라고 할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이것은 좀 위안이 된다. 우리 시대가 유독 두드러지게 망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말하자면 옛날부터 계속 망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시대에 저랬던 사람들이 지금 자신과 꼭같은 2세들을 키워냈다고 해야 할까. 이것을 위안이라고 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다. 사과는 남에게는 미안함의 표시요, 자신에게는 앞으로 그런 일을 경계하자는 다짐이다. 남에게 미안해할 줄도 모르고 자신을 경계하지도 않는 이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모호하거나 아리송하거나 논쟁적인 상황이 아니라 명백히 다른 사람에게, 공공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을 벌여 놓고도 히히히 하며 어물쩍 넘어가는 인간들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저 교직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수시로 만나는 다양한 윤리적 문맹들 이야기다.)

물론 사람이란 배움과 각성을 통해 열 번, 스무 번 거듭나는 존재다. 그러나 생각하면, 그렇게 바뀌는 사람도 또 참 드물다. 다 자기가 배워온 방식으로 사는 것이고, 애들이 아니라서 불행히도 이제는 누가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다행히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실수를 하고도 실수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사과를 한다. 이런 사람을 보면, 우선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말, 그 사람이 하는 일의 진정함을 총체적으로 납득하게 된다. 잘못하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상과 정반대가 된다.

30년 전에 쓰인 저 기사의 제목은 '사과에 인색하다'이다. 잘못임은 알지만 사과는 잘 안 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우선 자신이 저지른 게 잘못임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조차 드물지 않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덕목들이 경쟁의 악다구니 속에 모조리 스러져 버린 데서 나온 한 현상인 듯 해서 답답하다.

※ 이미지: 네이버 신문 아카이브

 

덧글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2/07/29 15:59 # 답글

    제경우 사과를 요구 하기보다
    왜 그런 실수가 나왔는지 물어보고
    그 실수가 나온상황을 분석해서
    어떻게 하면 다음번에는 그사람으로부터 그런실수가 다시나오지 않을수 있는 시스템을
    그에게 말해주고 그로부터 그렇게 하겠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반대의 경우 사과를 하기 보다 그럴경우 어떤식의 시스템을 마련해서
    그런 실수가 나올수 있는 경우의 수를 줄이겠다고 이야기 해주죠.

    문제는 나나 그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결과니까요^^
  • deulpul 2012/07/29 17:19 #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합리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과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한 방식으로 있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문제여서 어떤 실수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이것은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닌 셈이고, 따라서 시스템을 점검하는 것이 옳은 접근법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적용할 상황조차 되지 못하는 일이 번번해서, 시스템을 말하기 앞서 기초 윤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또, 명백히 자신이 잘못한 경우 시스템의 문제로 돌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것은 사과하고, 그 다음에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는 게 순서겠지요. 어떤 세팅에서든 감정이란 점을 경시할 수도 없고요. 더 나아가, 예컨대 저는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로까지 사용할 정도로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2/07/29 18:23 #

    그 두개가 다 되면 물론 더 좋겠죠.
  • deulpul 2012/07/29 18:58 #

    네, 사실 이런 상황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여서, 제가 묘사하거나 상정한 구체적인 상황이 사바욘의_단_울휀스님이 가상한 그것과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2/07/29 19:05 #

    네 제가 생각한 문제 해결이란 나에게 저런 상황이 다시 생기지는 않을테니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저 문제의 인물에게서 똑같은 상황을 격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것이죠.
  • deulpul 2012/07/30 11:52 #

    맞습니다. 사과라는 감정적 매듭뿐 아니라 애초에 그런 일이 발생할 여지를 줄이는 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 2012/07/29 16: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29 17: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긁적 2012/07/29 16:26 # 답글

    이는 일종의 감정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과하는 게 본인에게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요 -_-;
    개인적으로는 인식 혹은 판단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생긴다고 보는데 자세한 내용은 생략..;;
  • deulpul 2012/07/29 17:29 #

    사과하면 유쾌하지 못하니까 안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을 생각해 보면, 자신의 유불쾌를 따져 사과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인지조차 모른다면 그건 이해가 됩니다...
  • 긁적 2012/07/29 18:16 #

    아. 제 지적은 이해가 가능하거나 가능하지 않은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러하다.'라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당연히 사과하는 게 기분나쁘다고 해서 안 하는 건 옳지 못하죠 -_-;;;;;;;;;;;;;;;;;;;;;;;;;;;;;;;;;;;;;; 이와 무관하게,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과를 해야할 때 사과를 하는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감정이 감내할 수 있기 때문에 - 혹은, 사과를 하지 않을 때 더욱 불쾌할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 사과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deulpul 2012/07/29 18:56 #

    제가 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기 곤란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게 잘못되었다는 말이겠죠? 어떤 이유를 달든 말입니다. 긁적님이 하신 말씀은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중 하나)를 설명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 긁적 2012/07/29 21:36 # 삭제

    이상하게 로그인 덧글이안되네요-_-.....
    뭐랄까 저도 어렵다는 의미로 '이해'를 쓴 것은 아닙니다. 음;;; 뭐랄까. '공대생이 동역학을 이해한다'는 방식으로 이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친구의 입장을 이해해서 양보를 했다'는 방식은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처음에 약간 과도한 이야기를 하긴 했네요^^;; 이 부분은 미안합니다.
  • deulpul 2012/07/30 11:37 #

    아닙니다. 위에서 드린 말씀대로, 저는 저런 현상, 결과적 모습을 놓고 말씀드렸고, 긁적님은 저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를 지적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는 각도가 약간 달랐던 것뿐이죠.
  • 가하 2012/07/29 18:10 # 답글

    많이 고생하셨겠네요.
    사과하는 법을 모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잘못해서 제가 지적했을 때, 사람들이 보통 변명을 먼저 하더라고요. 사과 안하고 변명하니까 한참 말씨름 하다가 왜 미안하다고도 안하냐고 물어보면 '저는 했는데요.' 같은 반응을 보이는 적이 많았어요. 그런 걸 보면 말씨름으로 번지기 전에 먼저 사과부터 하라고 말하는게 좋은 것 같긴 한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안되더라고요.
    최근에는 의료소송 방지 강연도 많은데, 이료소송 대부분이 감정싸움이라고, 의사가 실수를 인정하고 '죄송합니다. 진료 과정 중에 이런 실수가 있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환자들의 마음이 확 풀어져서, 소송보다는 합의로 많이 간다고 해요.
  • deulpul 2012/07/29 18:55 #

    방법을 몰라서 제대로 못하는 것인지, 잘못을 알지만 할 마음이 없는 것인지, 해야 할 상황인 것조차 모르는 것인지... 말씀하신 첫 번째 상황도 흔하게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하튼 경우에 따라 이런 이유들이 적당히 고르게 잘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릴 때 링컨이 책 빌렸다 젖어서 사과하고 잡일까지 해주는 이야기는 다 한번씩 들으며 컸을 텐데 말입니다. 이건 그냥 독서를 열심히 해야 입시에 유리하다는 교훈인가...
  • 난난 2012/07/29 22:39 # 답글

    늘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사과에 인색한 풍조가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지적 저도 동의합니다. 본문의 내용과는 조금 상황이 다른 것 같은데, 일상적인 다툼에서 한 쪽이 먼저 사과하면 사과한 쪽이 다툼의 책임이 있었던 것처럼 일이 마무리되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대개의 다툼이라는 건 누가 혼자 잘못하는 게 아니라 양쪽 다 잘못하는 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을 텐데도요. 한 번은 다툼 끝에 제가 "이러저러한 점은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라고 먼저 사과했더니 "알면 됐어." 라는 반응이 돌아오더라고요... 그리고 그 다툼은 제가 일방적으로 잘못을 했고, 상대방은 그런 저를 "관대하게 용서해 준" 걸로 끝났습니다. 사실은 대부분의 원인은 같이 만들었고 그걸 굳이 터뜨린 건 저쪽이었는데도요! 저는, 제가 잘못한 것에 대해 인정한 후 사과를 하면 상대방도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사과해 줄 줄 알았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적인 예상을 하고 있었나봐요. 싸울 때까지도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는 잃지 않았었는데 저 말을 듣고 나니 정이 뚝 떨어져서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전과 달라 보이더라고요.
    이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 사람들이 사과에 인색한 건 전통적으로 다른 감정 표현을 비롯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직접적으로 하기 '쑥스럽다'는 정서가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그걸 꼭 말로 해야 돼?" 같은 정서요. 꼭 말로 해야 되는데 말이에요!
  • deulpul 2012/07/30 11:49 #

    "잘못한 걸 알면 됐어" 하고 돌아서는 그이의 뒷통수와 내 손이 닿아서 나는 파열음을 들어보고 싶은 상황이군요. 비록 상상이지만 말입니다. 말씀하신 경우는 실제로 흔히 벌어지기도 하지요. 사과라는 윤리재의 소멸을 초래하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가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처럼 논란이 되거나 쌍방 과실(?)이 있는 상황이면 가리고 따져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사과받을 것은 받는 것이 문제를 매듭짓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안 통하는 사람들은 되도록 상대를 하지 말고 살아야죠...
  • 히요 2012/07/30 14:10 #

    뒷통수를 한대 치고 싶다-의 들풀님식 표현 재밌습니다 (...) 보고 실실 웃는 중.
  • 히요 2012/07/29 23:02 # 답글

    저 교직원분의 생각이 궁금한데, 만약 저 상황에서 교직원에게 "당신의 아주 작은 실수 때문에 내가 이렇게 큰 고생을 했는데, 딱히 그 실수를 문책하거나 고소/추궁할 생각은 없지만, 저에게 '내 실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사과 한 마디 할 생각은 없나요?" 라고 말한다면.

    1) 인간이 하는 일에는 이정도의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human error를 내가 사과할 문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이것이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는 내게 과도한 업무 완벽성을 전제하고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부적절하다........ 라고 반응할까요, 아니면

    2)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너무 큰 피해를 끼쳤네요,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해야 할 상황임을 깨닫고 사과' 할까요.

    어느 쪽일지 궁금합니다. 어차피 그 분에게 직접 물을 게 아닌 다음에야 추론만 남을 뿐이지만.
  • deulpul 2012/07/30 17:53 #

    제 생각에는, 그럼 아주 가볍게 "그래? 미안하다. 오케이?" 하고 넘어갈 것 같습니다. 사과는 하지만 진정함은 느껴지지 않는 형태죠. 저는 옆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1)번 가정의 추론, 즉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진실에 가까운 명제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사과라는 절차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와 '사과한다'는 서로 연동될 이유가 없는 별개의 진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마트에서 뭘 산 뒤 돌아오는 차에서 계산이 잘못된 것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두 개 한 묶음인 것을 점원이 두 번 스캔을 해버린 것이죠. 15분 이상 달려왔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가서 조정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하도 성질나서 좀 심한 말을 했는데, 저를 상대했던 직원이 "미안하다, 하지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딱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것이겠지요.
  • 히요 2012/07/30 14:07 #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뒷목 잡고 쓰러지겠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수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에게 사과를 하는 것도 그 실수의 파장을 수습하는 과정 중 하나겠지요. 근데 이걸 사과할 자리에서 당당히 주장하는 꼴을 좀 봤습니다.... '인간이 완벽하길 바라냐. 너는 실수같은거 안하고 사냐' 이런 식 -_-

    사과를 기왕 할거면 진심이 느껴지게 해야 의미가 있을 텐데 두 사람 사이에 윤리적 감각이 맞아야 이뤄지겠네요. 설명해서 납득시킨대도 엎드려 절받기.
  • deulpul 2012/07/31 14:07 #

    그런 감각과 균형이 어떻게 맞춰지고 (긍정적인 쪽으로) 평준화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게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교육의 힘을 대체로 믿고 있는 저로서는, 거꾸로 비교육의 힘이랄까, 더불어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쪽으로 자꾸 생각이 미치는군요. 말씀드릴 필요도 없지만, 교육은 물론 학력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 2012/07/30 01: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30 12: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8/03 15: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eg35 2012/07/30 00:56 # 답글

    일본인이 전세계에서 이 자세는 가장 잘 교육되었지요 누군가는 타인에게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고자하는 그네들 특성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을 형식적으로 하면서 마음에도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자연스럽게 깃든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정말 마음을 담아서 사과하고 상대방을 대한다는게 느껴졌구요
    다만 이런 성향이 지나쳐서 자신의 권리, 의견을 경시하는 경향도 생기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 deulpul 2012/07/30 12:13 #

    예전에 도쿄의 북적이는 어떤 거리에서 당시로서는 정말 특이하게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쇠사슬을 쩔렁거리는, 불량해 보이는(선입관인가...) 청년과 어깨를 부딪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잠시 쫄았습니다만, 그는 굵은 목소리로 "미안해" 하고 지나가버렸습니다. 그 뒤로 저는 '일본놈들은 깡패들도 미안하다고 말한다'라는 또다른 선입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말의 진정함이야 별개의 문제겠지만, 상대와 감정을 교류하는 간단한 말들, 이른바 '고수미예'란 결국 빡빡한 사람 관계에 살짝살짝 치는 기름칠 같은 것임을 고려하면, 아주 무의미하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 2012/08/04 03:3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08/06 15:28 #

    심지어 30년 전부터 있었더군요. 아마 그보다 한참 전에도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어느 시대나 있게 마련인 끈질긴 모습이라는 걸 생각하면 다시 좀 우울해지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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