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적인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 갈硏 궁구할究 (Study)

전에 나는 '남자, 집안일을 해야 행복해진다?'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좀 다른 이야기. 실증적인 학술 연구는 과학적 방법을 통한 검증을 거치며 객관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그 결과는 다른 학자가 다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방식을 거쳐 나와야 한다. 하지만 연구 자체가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회과학적) 연구는 연구자 자신의 규범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이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어떤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무런 주관과 가치가 없는 '영혼이 없는' 사회과학자를 상상할 수 있는가. 대단히 실증주의적인 학술 작업도 연구자 자신의 치밀한 규범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연구 주제가 설정되는 단계에서부터, E. H. 카 식으로 말하자면 다른 주제를 누락하고 어떤 주제를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주관성이 개입하는 것이다.

다양한 주관과 규범성은 지식의 세계를 다양한 방향에서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단, 이러한 가치와 규범이 연구의 과정과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연구 방법의 엄밀성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연구에서 방법론은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와 똑같다. 누가 해도 그것으로 지구를 움직일 수 있으며, 그렇게 움직이는 지구에 대해 마초주의자도 페미니스트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사회과학 분야를 어설프게나마 맛본 데서 나온 말이다. 이 두 단락에서 나는 1) 사회과학은 본질상 규범적이다, 하지만 2) 그 연구 방법은 객관적이고 엄밀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회과학에 대한 이런 일반적 개념과는 좀 다른 시각을 가진 접근을 소개하고 싶다. 최근에 읽은 존 휴어(Jon Huer)의 <사회과학의 오류: 자연과학적 모델로 사회를 분석하는 데 대한 비판(The Fallacies of Social Science: A Critique of the Natural Science Model of Social Analysis)>이다. 이 책은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며 '과학인 척 하고 있는' 사회과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UCLA 출신 사회학자인 휴어는 군부가 주도한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책 <행군 명령(The Marching Order)>을 쓰기도 했고, 2009년에는 한국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스>에 한국 사회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가 한국과 어떤 인연으로 엮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존 휴어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도 있다), 현재도 매릴랜드 대학(UMUC) 해외 캠퍼스 교수로 한국(주한미군 내)에 주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그의 책 일부를 옮겨 오면 다음과 같다(강조는 내가).


이 얇은 책에서 나는 (사회과학이 진정한 '과학'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대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아니오, 사회과학은 과학이 아니며, 사회과학을 자연과학이라는 틀에 맞춰서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과학의 오류일 뿐이오."

자연과학적 모델이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 있다. 첫째, 자연 현상이든 사회 현상이든, 현상을 관찰하고 이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한다. 둘째, 데이터를 분석할 때 지키도록 되어 있는 규정을 따르며 분석한다. 셋째,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잠정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며, 다른 과학자가 똑같은 연구를 반복하며 추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이 누적되어 과학적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중략)

이들(사회과학자들)은 시간이 지나고 연구가 거듭됨에 따라 사회과학이 자연과학 수준의 정밀성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와 인간의 행동에 대한 과학적 지식의 '데이터 베이스'가 꾸준히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 연구는 이처럼 각각의 연구가 데이터 베이스를 형성하는 조각이라고 생각하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에 의해 수행된다. (중략)

사회 속의 인간 행동을 '연구'하려는 모든 노력에는 자기 비판이라는 과정이 내재되어 있다. 관찰하는 사람과 관찰되는 사람이 모두 같은 사회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사회화가 연구의 성격과 대상에 이처럼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사회과학 말고는) 없다. 부주의하거나 잘못된 가정에서 나온 전제가 이처럼 전 분야의 타당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분야도 없다. 더 나아가, 이처럼 '연구' 결과가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대중의 비웃음, 경멸, 혹은 기껏해야 무관심을 받는 분야도 없다. 단지 과학에 비유한다고 해서 이러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위험을 무시하며 방법론의 '과학적임'을 고집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중략)

내 주장의 출발점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타협될 수 없는 차이이다. 대상과 방법론 모두에서 이들은 서로 배타적인 분석 차원을 가지는 독립 분야이다. 자연과학은 인간 조직과 환경 사이의 '물질적'(자연적) 관계를 다룬다. 사회과학은 한 사회 구성원 간의 '정치적'(사회적) 관계를 다룬다. 자연과학은 물질 현상 사이의 논리적인 연관을 발견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은 사회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사회과학은 사회 현상 사이의 규범적인 연관을 발견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은 사회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은 그 연구 대상과 연구 환경이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을 모방하며 스스로를 과학적 엄밀화가 가능한 영역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 중간에 '사회과학이 자연과학을 모방한 부분'에 대한 비판, 즉 수리 모형, 통계, 표본, 서베이, 이론의 설명과 예측 능력 등에 대한 비판은 많은 허점을 갖고 있어서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가 이렇게 자연과학적인 사회과학을 비판하며 제시하는 대안은 '3차원적 사회과학', 즉 세 차원에서 분석을 하는 사회과학이다. 세 차원이란 1) 높이: 더 큰 범주로의 분석(emergent), 2) 넓이: 비교 분석(comparative), 그리고 3) 깊이: 역사적 맥락에 따른 분석(historical)이다. 앞의 두 차원은 지금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뒤의 한 차원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해 준다는 것이다(설명과 예측은 이론의 목표다). 사회과학은 과학적 엄밀성을 추구하기보다, 이 같은 접근을 통해 사회적 타당성(관련성, relevance)을 높여야 한다는 것.

이런 주장과 방법에 따르면 아마 이렇게 될 것 같다. 예컨대 저소득층 고용 여성들의 위상을 주제로 연구를 한다면, '자연과학적 방법'에서는 이 여성들에서 표본을 추출하여 설문을 돌리고 그 대답을 분석하여 모델을 그리며 설문에 나온 변수들, 이를테면 소득과 자녀 수 사이에 관계를 규명하는 식이 될 것이다. '3차원적 방법'에서는 1) 저소득층 여성에서 범위를 넓혀 여성 일반, 혹은 저소득층 일반의 상황을 들여다보며 연구 대상(저소득층 여성)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2) 고소득층 여성이나 저소득층 남성, 고용되지 않은 여성 등과 비교해 보거나, 혹은 다른 나라의 비슷한 그룹과 비교해 보며, 3) 연구 대상이 과거에는 어떠한 위상이었는지를 살펴보는 식이 되겠다. 구체적으로 이런 방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맥락과 배경 읽기가 언제나 중요하다는 점은 틀림없다. '자연과학적인 사회과학'에서도 분석된 결과를 해석할 때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은 수학과 통계를 기반으로 하는 실증주의적 사회과학 전통과는 다른 접근의 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기록해 둔다. 휴어가 이 책을 쓴 것은 1990년인데, 20년이 지나도록 큰 반향은 얻지 못한 것 같다. '자연과학적인 사회과학'이 적어도 미국의 사회과학에서 여전히 주류로 요지부동인 것은 거의 '자연과학적인' 사실인 듯하다.

여담이지만, 그가 <코리아 타임스>에 쓴 칼럼은 모두 55차례 실렸다. 그중 일부는 마치 <산케이 신문>의 혐한론자 구로다 가쓰히로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휴어는 연재가 끝난 뒤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연재가 중단된 것은 그의 칼럼이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코리아 타임스>가 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비판이 문제였다기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문제이지 않았나 싶다. 비판도 상대를 알고 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외부의 시각' 같은 취지를 가졌다 하더라도, 해당 사회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기반하지 못한 의견을 계속 실어줄 신문은 한국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별로 없을 것이다. 사회과학에 대한 위의 논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덧글

  • 부릉부릉 2012/08/01 13:32 # 답글

    사회과학을 공부;;사람으로서 항상 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았는데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 deulpul 2012/08/02 06:47 #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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