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과 '더 심슨즈'의 마이클 잭슨 중매媒 몸體 (Media)

인터넷실명제 헌재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

당연한 결정이라, 환영한다는 말 말고는 별로 보탤 것도 없다. 일부에서 인터넷 세계의 철칙인 것처럼 여기는 실명제란, 사실은 애초부터 존재했던 게 아니라 불과 5년 전에 여론을 업고 입법화된 아주 한국적인 법안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 ** --- ** ---


미국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더 심슨즈>에는 유명 연예인이 종종 등장한다. 지난 5월에 방영된 시즌 23의 마지막 편에서는 레이디 가가가 등장하여,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고민하던 심슨네 딸네미 리자를 도와주었다.

1991년 9월에 방영된 시즌 3의 첫 번째 편에는 마이클 잭슨이 나온다. 호머가 분홍색 물이 든 셔츠를 입고 출근했다가 '빨갱이' 미치광이로 찍혀 정신병원에 수용되는데, 그 안에서 잭슨을 만난다. 실제 잭슨은 아니고, 덩치가 아주 큰 백인이다. 자신이 마이클 잭슨이라고 믿고 있어서 정신병원으로 왔다.

그런데 하는 짓이나 목소리나 노래가 마이클 잭슨보다 더 잭슨 같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너훈아가 나훈아보다 더 나훈아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림은 그리면 되지만,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노래도 나오는데 말이다. 에피소드가 끝난 뒤 휙휙 지나가는 자막을 눈여겨 보면 'Special Guest Voice'라는 항목 아래 'John Jay Smith'라는 인명이 나온다. 해당회에 특별 출연자는 이 한 사람 뿐이니까, 그가 마이클 잭슨 목소리를 연기한 듯하다.




'마이클 잭슨'이 나오는 부분 일부(편집)와 마지막 특별 출연자 자막.


그런데 존 제이 스미스라니, 이름이 너무나 흔해빠지고 심심한 게 아닌가. 그런 이름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무작위 불특정 인물을 지칭할 때 쓰는 John Doe, 한국으로 치면 은행 견본 서류에 흔히 등장하는 홍길동 같은 냄새가 난다.

이 에피소드 제작과 관련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마이클 잭슨 목소리를 연기한 사람은 존 제이 스미스가 맞다.
2. 그러나 존 제이 스미스라는 사람은 없다.
3. 실제로 잭슨의 목소리를 연기한 사람은 마이클 잭슨 자신이다.
4. 즉 존 제이 스미스는 마이클 잭슨의 가명.

왜 잭슨은 자신이 마이크 앞에서 직접 녹음을 하였음에도, 특별 출연자로 이름을 올리지 않고 가명을 썼을까. 이것은 그가 다른 전속 회사와의 계약 관계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나 목소리 등은 모두 이 회사의 허락을 얻지 않으면 상업 매체에 사용할 수 없도록 계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해당 에피소드는 애초부터 마이클 잭슨이 출연하기로 하고 제작된 것이다. <더 심슨즈>의 팬이기도 한 잭슨은 애니메이션 제작자에게 전화를 걸어, 적당한 내용이 있으면 자신이 출연하겠다고 제안했다. 그에 따라 잭슨을 위한 각본이 만들어지고 에피소드가 구상되었다.

제작진이 가져온 대본을 읽어 본 잭슨은 두 가지 조건 아래 출연하겠다고 했다. 첫째는 자신의 출연 사실이 자막에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노래하는 부분은 대역, 즉 '너훈아'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시킨 것은 얼마나 자신의 목소리와 비슷한지, 자기 동료들이 대역 사실을 알아채는지 보려는 장난스러운 의도였다고 한다.

이런 준비와 실제 제작은 베일 속에서 이루어졌다. 마이클 잭슨이 <더 심슨즈>에 출연한다(혹은 출연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잭슨과 제작진 모두 공식적으로 이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이 공식화된 것은 2003년에 시즌 3 DVD가 나오면서 여기 포함된 제작자의 코멘터리에 관련 언급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실명을 써야 했다면 이 에피소드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잭슨의 계약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창작 작업에 참여하는 일을 가로막는 계약을 잭슨은 가명을 쓰는 방법으로 회피했고, 그 때문에 이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

2009년 6월에 잭슨이 세상을 떠났을 때, <더 심슨즈> 제작진은 18년 전에 방영했던 이 에피소드를 재방송하는 것으로 추모의 뜻을 표했다. 재방송 때에도 마지막 자막에 등장한 특별 출연자 이름은 여전히 '존 제이 스미스'였다.

※ '레이디 가가' 편을 링크로 달아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여기서도 실명제와 관련한 내용이 앞부분에 잠깐 나오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학생으로 뽑힌 리자는 크게 실망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학교 게시판에 리자를 칭찬하는 익명의 포스팅들이 등장한다. 엄마는 "익명으로 좋은 이야기를 쓰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할 거야"라고 말하지만,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은... 익명성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짤막한 장면이라고 할까.

 

덧글

  • 자그니 2012/08/26 18:35 # 답글

    에헤....;;; 여기서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듣다니 왠지 감개무량해요-
  • deulpul 2012/08/27 18:16 #

    웬걸요, 가끔 하는 일인 걸요. 저는 이 글과 관련해 짤막한 조사를 하다가, 마이클 잭슨이 '빌리 진'을 부르는 공연 장면(http://www.youtube.com/watch?v=Y8KjO1BsGb0)을 보고 감개무량했습니다. 잭슨도 잭슨이지만 관객들의 표정과 몸짓이, 그와 그의 음악이 얼마나 사랑을 받았나를 생생히 말해주고 있어서 새삼 코가 찡해졌네요.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