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를 교육시키겠소" 섞일雜 끓일湯 (Others)

예전에 썼던 두 가지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일이 그 뒤 어떻게 됐나 간단히 덧붙인다. 이른바 'A-리스트 블로그'(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파워블로그쯤 될까)에는 모두 고담준론뿐 아니라 개인 신상과 관련한 포스팅이 실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 그보다는 이 두 사건이 내게도 좋은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 ** --- ** ---


1. 침 뱉는 사나이. 웬 인간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면서 가래침을 사방이 쩡쩡 울리게 뱉고 다닌다는 사연.

이 인간은 여전히 침을 뱉고 다녔다. 날이 따뜻해지면 좀 나아지기를 기대했는데 웬걸, 여름이 되면서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이유는 다음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첫째, 그가 동네를 왕복하며 하는 일이 나름의 운동임이 명백해졌다. 처음에 그에 관한 글을 쓸 때인 겨울에는 띄엄띄엄 나돌아다니더니, 날이 더워지고부터는 거의 매일 같은 일을 벌였다. 둘째, 날이 더우니 심야를 선택해서 그 짓을 한다. 언제나 밤 11~12시 사이다. 지가 무슨 침 뱉는 칸트인지, 아주 일정하다. 셋째, 여름 이후로 창문을 열어두는 일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침 뱉는 소음이 더욱 크게 들린다. 가래침이 바닥에 탁 떨어지는, 입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훨씬 더 구역질나는 그 소리까지 생생히 들린다. 넷째, 겨울에 신지 않던 새로운 신, 슬리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신고 뛰는데, 그 소리가 찰싹찰싹하며 또 적지아니 시끄럽다. 이것도 희한하다. 운동을 한답시고 쓰레빠를 끌고 한다.

그의 심야 행각이 연출하는 소리는 대략 아래과 같은 양상으로 벌어진다(비디오 파일이지만 실질적으로 오디오만 담겼음). 복도식 아파트에서 슬리퍼를 끌고 가래침을 뱉으며 복도를 왕복하여 뛰어다니는 장면을 연상하시면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 채 며칠을 자세히 관찰해 봤다. 그 인간이 사는 집도 확인했다. 가만히 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전혀 거리끼지 않고 침을 탁탁 뱉았다. 안하무인이거나, 아니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애초에 모르는 사람 같았다.

전에 관련한 글을 쓸 때는, 설마 침 뱉는 것을 규제하는 규정이 있으랴 했다. 혹시나 싶어 법령을 찾아보았다. 미국에서 길거리에 침을 뱉는 것을 불법화하는지의 여부는 주마다(주법), 또 도시마다(시조례) 달랐다. 그런데 내가 사는 도시는 보도(sidewalk)에 침을 뱉는 것을 경범죄로 규정하여 불법화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일로 처벌이 되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규정은 그렇게 되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입주자 간의 갈등을 처리할 수 있는 채널이 둘 있다. 첫 단계는 자신도 주민이면서 아파트 관리부서의 위임을 받아 주민들의 불편을 해결해주는 입주자 매니저다. 두 번째 단계는 아파트 사무실이다.

입주자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속에서 애들이 악다구니치는 소리가 들렸다. 밤 10시다. 이 매니저가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어쨌든 이야기를 했다. 네가 사는 지역에 속한 웬 인간이 오밤중에 쓰레빠를 철퍼덕거리면서 왔다갔다 한다. 그건 참을 수 있다. 아주 더럽게 침을 뱉는데 이건 참기 어려울 뿐더러, 아파트 커뮤니티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애들은 맨발로 돌아다니기도 하지 않냐. 1) 운동을 할 만한 데서 하거나(바로 가까운 데에 좋은 공간이 널려 있다), 2) 주택가에서 하고 싶으면 오밤중이라 차도 다니지 않는 도로에서 하거나(실제로 이 동네 뛰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 3) 침을 뱉지 않거나, 이 셋 중 하나만 지켜주게 했으면 좋겠다... 모두 주거지 옆 보도에 침을 뱉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며, 나로서는 침 뱉는 꼴을 바로 옆에서 보고 듣지 않아도 되는 방안들인 셈이다.

며칠 지나도 이렇다할 소식은 없고, 그 인간은 여전히 창 밑에서 철퍼덕 철퍼덕 카악 퉤를 밤마다 하고 있길래 다시 연락을 해 봤다. 입주자 매니저는 그 인간이 뛰어다닐 때 나가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뭐라고 했냐니까 '너가 너무 빨리 뛰어서 동네 주민이 항의를 해 왔다'고 했다고 한다. 너무 빨리 뛰어서? 침을 뱉는다고 spitting이라고 했더니, 이를 speeding이라고 알아들은 것이다. 이런 젠장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억양으로 보아) 저나 나나 다 인터내셔널이다. 내가 말을 개판으로 했을 수도 있지만, 그가 개판으로 알아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밤 10시에 악다구니를 치는 애들 때문에 전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사람이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신고를 하는 주민이 어디 있겠냐. 쓰레빠 끌고 달리는 우사인 볼트도 아니고 말이다. 생각을 해 보면 모를까. 더구나 disgusting 같은 말들을 왜 했겠냔 말이다.

어쨌든 명색 매니저는 그에게 빨리 뛰지 말라고 했다고 했고... 소리 안 나는 신발을 신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 이차저차하다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말해 보겠단다.

물론 그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문제의 인간은 여전히 침을 카악카악 뱉고 슬리퍼류를 철퍼덕거리며 심야의 안하무인 행각을 계속했다.

사무실에 이야기해봐야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심야에 벌어지는 일이니 사무실 직원이 확인할 수도 없고, 다시 입주자 매니저에게 되돌려 보내는 비생산적 순환 루트를 탈 가능성이 높았다.

며칠 뒤, 마침 밥을 먹는데 또다시 바로 옆에서 끄어억-퉤-탁이 벌어졌다.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참지 못하고 경찰서에 비긴급 회선으로 전화를 했다. 입주자 매니저에게 한 이야기를 좀더 간략하게 한 뒤에, 그런 짓이 시 법규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야에 전화를 받은 여성 경찰관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찰관: 소음이 문제냐?
신고자: 아니다. 소음도 그렇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침 뱉는 게 문제다.
경찰관: 지금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냐? 우리가 가면 현장을 확인할 수 있냐?
신고자: 그렇다. 바로 지금도 그러고 있네욤.
경찰관: 알았다. 우리가 그를 교육시키겠다(We will educate him). 그 결과를 알고 싶다면 너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라.

이렇게 되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지지 않겠냐. 그런데 그 인간이 운동이랍시고 왔다갔다 하는 구간이 좀 길어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집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경찰이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어림하여 잡은 뒤, 적당한 시간에 밖을 나가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보았다. 과연, 그 인간의 집 근처 어두컴컴한 길 가장자리에 포드 인터셉터 경찰차가 하나 서 있고, 떡대가 산만한 경찰 두 명이 그 인간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잘 교육된 듯했다. 불과 5분 남짓이었을 가두 면담 교육은 100% 효과를 냈다. 그 뒤로도 그 인간은 여전히 심야에 열심히 철퍼덕거리면서 운동인지 뭔지를 계속하고 있지만, 침 뱉는 일은 싹 사라졌다. 같은 인간 맞나 싶었다. 애초에 그의 심야 운동 자체는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으니, 나로서는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 셈이었다.


--- ** --- ** ---


2. 자동차 사고. 좁은 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의 옆을 긁은 사고를 낸 뒤, 여차저차해서 주인과 연락이 되고 보험 처리를 하였다는 사연.

보험회사의 웹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사고를 신고하고, 보험사 직원과 딱 한 번 전화를 했다고 했다. 두 달쯤 뒤에 웹페이지로 확인해 보니, 이 사건은 처리 완료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피해자인 Y씨 가족에게 얼마를 지불했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사항은 명시되지 않았다. 6월에 갱신한 나의 보험료는 변동이 없었는데, 다음 갱신 시점인 12월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사고가 났던 Y씨네 미니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내 차와 부딪쳤던 왼쪽 옆면은 새 차처럼 말끔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그 쪽에는 내가 낸 흠집 말고도 이미 크고작은 흠집이 여러 개 나 있었는데, Y씨가 전화로 '원래 그런 사고가 많이 난다'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 흠집들도 모두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내가 긁은 사고를 보험 처리로 수리하면서 원래 있던 자잘한 흠집들을 함께 손본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사실의 영역이다. 그 비용을 어떻게 처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은 추정의 영역이다. 그 추정의 영역에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1) Y씨는 내가 낸 흠집에 대한 수리 비용만 나의 보험사에 청구하고, 나머지는 이왕 손 보는 김에 함께 자비로 수리했을 수도 있다. 혹은 2) 떡 본 김에 제사지내는 격으로, 여기저기 난 흠집을 모조리 몰아서 수리하고 그 비용을 함께 보험사에 청구하였을 수도 있다. 어차피 보험사 직원이 나와서 확인하거나 정비소에 문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Y씨가 전자의 선택을 했다고 믿고 싶다. 정당한 것이든 부당한 것이든 못 찾아 먹는 놈이 바보인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에서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그것은 경미하나마 분명한 보험 사기다. 세상에는 그와 같은 부당 이득을 취하려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 더 나아가 그런 왜곡된 '생활의 지혜'를 아예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며 스스로를 가상 시험해 보려는 간질간질한 마음이 들다가, 후자의 가능성을 설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코흘리개 때부터 배워 온 상식에 얼마나 어긋나는 일인가에 생각이 미치며, 동시에 Y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전 글에 달린 댓글의 답은 나중에 한꺼번에 드리겠습니다.)

 

덧글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2/09/25 17:42 # 답글

    자동차 패널은 아주 작은 흠집이라도 복구하고 싶다면 그 외장 패널 전체를 복구하는것이 보통이고 또한 한 외장 패널을 복구 했다면 그에 인접해있는 모든 패널들을 비슷하게 그라데이션 페인팅 처리 하는것이 보통입니다 그 흠집난 부분만 복구 하는것은 까다로운 기술력을 요할뿐아니라 시간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 샵에서 대부분 거절 합니다.
  • deulpul 2012/09/25 18:37 #

    다른 패널의 덴트 같은 흠집까지 다 수리된 상태입니다.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2/09/25 18:51 #

    의심을 덜어드리는데 도움이 될까 하고 덧글을 단건데, 전혀 그렇지 못했군요;;
  • deulpul 2012/09/25 19:51 #

    아닙니다. 말씀하신 것을 듣고, 처음 글에 쓴 견적 비용(전체 2,100달러 중 부품 40달러고 나머지는 모두 시간을 곱한 인건비)이 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럼 수리 이후의 결과물에 대한 해석이 복잡해지길래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도리 2012/09/26 00:22 # 답글

    요즘 한국에서, 112로 동네 소음 같은 민원 처리를 신고하면 즉각 방문해서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follow up 으로 전화까지 해서 처리 과정이나 속도, 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물어보기까지 하더군요. 여자 혼자서 당사자에게 말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에 제복입은 공권력(?)이 개입하여 부드럽게 해결된점과 추적관찰까지 하는 건 정말 좋았던 경험입니다.

    아 그리고 소음을 발생시킨 이웃주민도 international 이었어요 .
  • deulpul 2012/09/26 05:16 #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하는 게 정답이지만, 민생 치안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게 정답이겠지요. 외국인이 그러한 일을 잘 벌이게 되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곳과 다른 문화 환경에 처했다는 점이 작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선진국에서 왔든 개발도상국에서 왔든, 재교육을 통한 현지 사회화가 필요한 것이겠죠.
  • 2012/10/14 21:5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eulpul 2012/10/26 14:18 #

    아니 그런 위험한 일을... 밤 + 쿵쿵 + 청소년 + 술... 이 정도면 요주의 기피 대상이 아닐까요... 하지만 말씀하신 상황에 처하면 저라도 빡돌아서 뭔가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긴 합니다. 전화기 보험 관련한 말씀을 들으니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조만간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Adsense

Adsense2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