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마가 되는 과학: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 사례 갈硏 궁구할究 (Study)

과학은 객관성과 엄밀함을 지향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과학을 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따옴표로 친 부분은 과학 저널 <네이처> 2005년 5월5일자의 북 리뷰 기사에서 한 과학자가 한 말이다. 이어지는 말은 "그렇기 때문에 과학 논쟁은 인간이 소통 과정에서 저지르는 어리석음, 편견, 객관성 결여라는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것이다. 연구 대상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신중한 과학자라면 이러한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자연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우리 인식의 지평이 넓어져 온 것은 과학의 덕분이다. 하지만 과학사를 돌이켜 보면, 과학과 그 결과로 획득된 지식이 해당 시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오늘 많은 과학자가 옳다고 믿는 것이 내일 부정될 수도 있고, 오늘 과학자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이론이 내일 과학적 사실로 입증될 수도 있다. 과학 지식은 영원하거나 무한한 진리가 아니라 그 시대까지 축적해 온 성과에 바탕한 '현재적 지식'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생각하면, 오늘날의 앎으로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의 자세는 겸허한 것이라야 마땅하다고 본다.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과학적 성과를 무오류의 절대지로 설정하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과학은 새로운 맹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일견 매우 과학적으로 보이는 과학지상주의는 실상은 과학의 존재 방식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종교적 태도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불행히도 과학을 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오만과 편견,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각종 잡스러운 위계와 권위가 과학의 영역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그 결과 새로운 발견을 억압하기도 한다.

자연과 사회와 인간을 놓고 지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씨름해 온 과학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 같은 사례를 숱하게 찾아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지식의 체계를 전복하고 기성 지성계의 탄압을 받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성립시킨 가장 대표적인 예는 지동설이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지금도 미국인 10명 중 2명은 해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믿는다. 과학 해봐야 무지스러운 믿음 앞에서는 소용없다.) 판게아 이론도 그 같은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세계의 대륙이 원래는 모두 붙어서 커다란 초대륙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판게아 이론과 대륙 이동설을 정립한 사람은 독일 학자 알프레트 베게너(위 사진)다. 그에 앞서서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남미의 동해안과 아프리카의 서해안은 희한하게도 그 짝이 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학설로 정리해 발표한 사람은 없었다. (또 여담이지만, 역시 publish or perish.) 1910년 크리스마스 무렵, 베게너는 친구가 새로 얻은 세계 지도를 살펴보다가, 두 대륙이 원래 붙어 있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의 나이 30세 때였다.

베게너는 1912년에 대륙 이동 가설이 담긴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서양 양쪽의 대륙 해안이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음을 보였다. 1915년에는 <대륙과 해양의 기원>을 펴내, 지구 위의 대륙들이 원래는 하나로 합쳐진 거대한 대륙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거대 대륙에는 판게아(Pangaea)라는 이름을 붙였다. (베게너가 사용한 원래 명칭은 독일어 '우어콘티넨트(Urkontinent)'인데 그 뜻은 마찬가지다. 그리스어 어원인 pan은 '모두'의 뜻이고 독일어에서 ur는 '원초적인, 원시의'의 뜻이다.)

"비전문가의 정신 나간 헛소리"

이러한 출판물에서 그가 자기 주장의 근거로 든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었다. 첫째, 퍼즐 맞추기. 세계 지도에서 대륙들을 잘라내어 이어붙이면 서로의 경계가 잘 맞는 거대한 대륙이 된다. 둘째, 서로 붙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해안 지역에서 발견되는 동식물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존재한다. 호주와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되는 유대류는 서로 비슷할 뿐만 아니라 그에 기생하는 기생충까지 흡사하다. 이러한 사실은 비슷한 화석들이 발견되는 점으로도 뒷받침된다. 셋째, 양쪽 해안의 지질학적 특성에서 연속성이 발견된다. 베게너는 출판을 거듭하면서 대륙 이동설과 판게아론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증거들을 계속 추가하고 미흡한 점을 수정했다.




문제는 베게너가 그런 주장을 하더라도 귀담아 들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지질학자가 아니라 기상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그는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긴 했지만, 정식 교수로 임명된 상태가 아니었고 보수도 받지 않았다. 박봉을 받는 한국의 시간강사와 비슷한 신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베게너의 스승이며 나중에 장인이 되는 기상학자 블라디미르 쾨펜은, 이론을 세우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제자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베게너는 "왜 낡은 시각을 던져버리기를 주저해야 합니까?" 하고 반문했다.

1912년 초에 베게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지질학회 행사에서 대륙이 이동하였다는 주장을 발표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같은 해 4월에 이런 주장을 논문으로 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베게너는 보병 장교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었다. 부상에서 회복된 뒤 그는 <대륙과 해양의 기원>을 발표했다. 기존 학계의 무시는 여전했다. 그러나 이 책의 영문판이 미국에서 1922년에 출판되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과는 달리 뜨거운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그 반응이 부정적인 것 일색이라는 점은 불행이었다.

전쟁 직후 유럽과 미국을 휩쓴 반독일 정서가 베게너의 이론을 폄하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지만, 독일의 동료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베게너의 주장을 놓고 '지각움직임병과 극지이동병에 걸린 자의 정신 나간 헛소리'라고 조롱했다. 영국 학자들은 그가 대륙 이동의 메커니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기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대륙들을 억지로 짜맞춘다고 비난했다.

베게너 이론을 가장 열심히 비웃은 것은 미국 학계였다. 한 고생물학자는 베게너의 주장을 '독일식 사이비 과학'이라고 부르며, 그가 증거를 갖고 놀다가 자아도취 상태에 빠졌다고 조롱했다. 물론 베게너가 지질학 분야에 몸담고 있지 않다는 점도 단골 비난거리였다. 한 지질학자는 스스로 지도를 잘라 붙여보이며 대륙들이 잘 들어맞는다는 베게너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외부인이 자신도 잘 모르는 전문적인 사실들을 갖고 일반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26년에 베게너는 뉴욕에서 열린 미국 석유지질학회 회의에서 대륙 이동설을 발표했으나, 회의를 주재하던 회장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한 지질학자는 "만일 베게너의 이론이 맞다면 우리는 과거 70년 동안 배워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출발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조롱이었지만, 나중에 그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학계 냉대 속에 고군분투하다 요절

그 뒤 오랫동안 베게너의 이론은 무시되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그의 이론은 동화 같은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학계를 틀어쥔 원로 교수들은 젊은 학자에게, 대륙 이동설과 같은 사이비 이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인다면 이 바닥에 제대로 발 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1960년대 중반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늙고 완고한 학자들은 죽고, 젊은 학자들이 새로이 발견되는 증거들을 폭넓게 검토하면서, 베게너의 가설은 새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고지자기학(古地磁氣學, Paleomagnetism)적 연구 성과와 해저 지형의 연구 결과들이 베게너의 이론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하여, 베게너가 정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대륙 이동의 메커니즘은 판 구조론의 형태로 규명되게 되었다. 오늘날 지질학에서 판게아와 대륙 이동, 판 구조론은 지구 표면의 형성을 설명하는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5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불우한 과학자나 예술가가 흔히 그렇듯, 베게너 자신은 이러한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온 세상이 그의 이론을 폄하하고 비난했으며 기성 학계는 가치 있는 가설로 검토하는 것조차 거부했으나, 그는 자기 이론을 철회하지 않았다. 쾨펜과 함께 기상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동시에 <대륙과 해양의 기원>에 대한 각종 비판을 반영하고 증거들을 보완하며 4판(1929년)까지 냈다. 하지만 냉혹한 기성 학계의 학문적 비난은 이겨냈으나 북국의 혹한과 눈보라는 이겨내지 못했다. 1930년에 그는 팀원들과 함께 그린란드 탐험에 나섰다가 섭씨 영하 60도의 혹한 속에 조난했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조난당해 죽기 직전인 1930년 11월에 찍은 사진. 왼쪽이 베게너,
오른쪽이 후배이자 동료 빌럼센이다.


그의 시신은 6개월 뒤에 발견되었다. 베게너와 함께 조난한 동료 빌럼센이 그를 눈 속에 묻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빌럼센은 베게너를 묻은 뒤 그의 유품을 갖고 캠프를 향해 계속 나아간 것으로 보였지만 그 뒤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빌럼센의 시신과 베게너의 유품은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성 과학계 전체로부터 '비전문가의 헛소리'라는 비난을 받았던 베게너의 이론은 그의 때이른 죽음을 넘어, 오늘날 지질학의 주요한 이론으로 우뚝 서 있다.


※ 이미지: 모두 Wiki.

 

덧글

  • Silverwood 2012/10/25 17:17 # 답글

    1억년 후에 대륙이 하나로 다시 합쳐지고 인류는 생존할 수 없어 지구가 망한다는 기사를 작년쯤인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진짜로 지구가 멸망할까요? 아인슈타인은 지구에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망한다던데..
  • deulpul 2012/10/26 14:56 #

    꿀벌보다는, 지구에 개념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망합니다... 태어난 모든 것은 언젠가 멸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인류나 더 나아가 지구도 한시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앞으로 1억 년, 혹은 1천만 년, 혹은 1만 년 까지만 가도 진정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를 인위적으로 멸망시키지 않도록 하는 개념 있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 같아서요.
  • 2012/10/25 21: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0/26 15: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0/27 01:4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lue303 2012/10/26 15:52 # 답글

    미국의 일반인(들이라고 쓰고 무식한 인간들이라고 읽는 부류)들의 과학적 무지, 개신교 신앙의 맹종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죠. 현대 과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볼 때 어리둥절할 정도로 둘 사이의 갭이 크죠.
  • deulpul 2012/10/31 15:27 #

    네, 그런데 사실 영국에서 한 조사에서 나온 결과도 비슷합니다. 영국과 미국이 비슷한 문화권이라서 그런지, 한국에서 조사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궁금해지는군요.
  • 박민수 2012/10/27 03:14 # 삭제 답글

    베게너도 훌륭하지만, 왠지 빌럼센 같은 사람들도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진을 보니 럼주 한잔이 생각납니다. Cheers-
  • deulpul 2012/10/31 15:33 #

    그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는데, 정말 동의합니다. 베게너의 눈 무덤이 아주 공들여 만들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베게너는 50세이고 빌럼센은 20대로 나오는데, 아마 후배이자 제자 같은 위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탐험에서는 남극점을 놓고 아문센과 경쟁한 스캇의 비극에서 벌어진 일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썰매를 끄는 개의 먹이가 없어서 개를 차례로 죽여 먹이며 전진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요약만 보아도 아주 극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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