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 창간에 생각하는 두 잡지, 두 사람 중매媒 몸體 (Media)

<한겨레>에서 새 잡지를 창간했다. 제호가 <나.들>이다. 인쇄 매체가 어려움을 겪는 세상에서 새 잡지를 만들어 내놓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름의 전략과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새로 시작했으니 잘 되라고 빌어주고 싶다.



그건 그렇고, 창간호를 직접 보지 못한 때문이긴 하겠지만, 창간 취지와 소개글만을 보자니 잡지의 컨셉이 분명하게 와 닿지 않는다. '나들'은 나의 복수형이라고 한다. 편집장이 쓴 글을 보면 '나들'은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정서와 태도를 가진 이들을 일컫는 표현'이라고 했다. 그 아래 몇 가지 사례로 예시한 내용을 보면, 이 '나들'은 과거와는 다른 생활 패턴과 가치관을 갖고 사는 평범한 사람 모두를 칭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들'이라는 제호를 맨 처음 보았을 때 내가 가진 생각도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창간호 소개와 이벤트를 알리는 글을 보면 이 잡지는 '사람이 주어인 잡지'로서 "말뿐만 아니라 행동과 삶의 궤적, 주변 사람의 평가를 더해 정치인과 연예인의 화려한 이미지 너머 그들의 숨은 욕망을 드러냅니다"라고 한다. 초점이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정치인과 연예인'에 맞춰져 있는 느낌이다. 이런 인상은 창간호에 실린 기사 목록에서도 느낄 수 있다.

짐작컨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와 '정치인과 연예인' 관련 기사를 적절히 조합하여 만들고자 하는 기획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기획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평범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읽히는 기사로 상품화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나 화제와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공인을 벗겨야 장사가 된다. (<문화일보>처럼 옷을 벗겨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평범한 누구나의 삶도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안에 온갖 극적인 재미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지만, 이것은 매체와 그 종사자가 그런 일에 관심이 있을 때에만, 또 독자가 그런 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때에만 지면화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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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잡지 창간 소식과 그 컨셉을 보다 보니 두 잡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샘이깊은물>이다. 한국브리태니커에서 독립한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1984년부터 17년 동안 발행한 잡지다. 여성지인데 여성지답지 않은 획기적인 잡지였다. 표지 인물부터 '정치인과 연예인' 혹은 각종 권력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여성을, 이를테면 '나들'을 내세웠다.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일상사 아니면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돈을 쓰느냐로 가득찬 기존 여성지와는 달리, 여성들에게 세상과 사회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모습을 알려주는 좋은 기사로 채워진 잡지였다. (기사들의 흔적은 여기.)



그러나 이 잡지는 아쉽게도 2001년에 종간, 혹은 휴간을 했다. 거대 언론사에서 펴내는 다른 여성지들은 여전히 그대로 발행되고 있다. 이 잡지들, 그 뒤에 새로 등장한 더욱 현란한 여성지들을 보다 보면, <샘이깊은물>이 얼마나 좋은 잡지였나 새삼 깨닫게 된다. <나.들>이 그와 비슷한 성격을 좀 가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든다.

또 다른 잡지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피플>이다. <나.들>은 여러 모로 이 주간지를 떠올리게 한다. <나.들>이 '사람이 주어인 잡지'라고 했는데, 주간지 <타임>을 발행하던 Time, Inc에서 1974년에 <피플>을 만들 때 내세운 것이 딱 그 말이었다. 초대 편집장은 "우리의 초점은 이슈가 아니라 사람이다"라고 밝혔다. 그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이 잡지가 시사지의 성격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를 다루되 이슈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다루겠다는 뜻이다. 초기의 <피플>에는 뉴스 메이커와 더불어, 뉴스의 인물이지만 유명 인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기사도 함께 실렸다.

이후로도 이 잡지는 명목상 유명인/연예인 기사와 이른바 '인간의 관심사 기사(human-interest story)'를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갈수록 연예 전문지가 되어 왔고, 지금은 유명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잡사를 주로 보도하는 성격으로 굳어졌다. 이번주에 가판에 깔린 <피플>은 제시카 비엘과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결혼식 스토리와 화보를 엮은 커버 스토리를 필두로 하여, 책 한 권이 거의 모두 연예인 이야기다. 영화, TV, 책 관련 기사로 약간 양념을 친 정도다. 이 호에서 human-interest story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성추행을 하다 들통나 유명 인사가 된 대학 미식축구 코치로부터 추행을 당해온 한 남성 관련 기사가 거의 유일하다. 그나마 인터넷판은 이런 기사조차 빼고 100% 연예인 관련 소식으로만 구성한다.



어쨌든 <피플>은 잡지로서는 성공적이었다. Time, Inc의 여러 잡지가 부침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피플>은 흔들림없이 잘 팔리며 효자 노릇을 했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피플>은 잡지 천국인 미국에서도 가장 많은 독자가 보는 잡지로 꼽혔고, 발행부수에서도 5위를 기록했다.

<나.들>이 <피플>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책의 편집 방침에서 비슷한 점이 느껴져서 해 본 생각이다. 다만, <나.들>이 책이 팔리는 쪽으로만 촉각을 맞추고 나아가다가는, 제호와는 달리 인민이 빠진 지금의 <피플> 모양이 되거나, 아니면 내가 빠진<니들>이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방향을 지향하고 있지 않을 때에만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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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의 창간호 기사 목록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궁금한 게 두 가지 있었다. 잡지를 사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궁금증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표지 인물인 공지영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 백수 이영민이다.

공지영을 표지 인물로 올렸는지는 모르겠다. 그것도 취향이라면 취향일 것이다. 이 잡지는 그 취지를 "정치인과 연예인의 화려한 이미지 너머 그들의 숨은 욕망을 드러냅니다"라고 설명했는데, 그렇게 본다면 본업에 더해 정치인과 연예인이 가진 희극성의 교집합적인 이미지를 지닌 공지영을 창간호 표지로 내세운 것은 그럭저럭 잘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당 표지 기획은 '3차원' 인터뷰와 다른 사람이 본 인상기 같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단 하나다. 이렇게 공지영의 모든 것(적어도 사회적 존재로서)을 입체적으로 짚어본 기획에서, 그녀가 특히 트위터 등에서 흔하게 보여주는 불우하고 너절한 모습과 이에 대한 세상의 손가락질까지 제대로 밝히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점을 잘 살펴보지 못한다면 '화려한 이미지 너머 숨은 욕망을 드러낸다'는 취지는 그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지영은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시민 멘토단'으로까지 들어갔다. 아무 데나 갖다붙여져서 마치 1천 원에 다섯 장 주는 싸구려 빤스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멘토'라는 말의 비극은 둘째치고, 문재인이 공지영으로부터 배우겠다는 말인지, 시민이여 공지영으로부터 배우라는 말인지, 어느 경우나 뭘 배우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잡지의 인터뷰에는 아마도 이전에 알려진 모습과는 다른 공지영이 등장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겨레> 기사들을 통해 조금씩 나온 소식을 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한겨레> 자체 기사, 그리고 이 잡지의 공지영 인터뷰를 자세히 짚어 본 <미디어스>의 기사 등을 보고 난 느낌은, 역시 금시대 한국에서 멘토란 말은 그저 싸구려 빤스 정도의 취급밖에 받지 못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나.들>의 창간 기사와 관련한 두 번째 궁금증은 청년 백수 이영민이다. 이영민을 찾았다는 기사가 창간호 목록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영민에 대해 쓴 적이 있고, 다른 매체가 이 블로그 글을 출처로 인용해 갈 정도로 추적이 어려웠던 존재이기도 했다. 개인 이영민이 아니라 이명박을 지지한 '청년 백수 세대'의 대표 이영민은 나의 꾸준한 관심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영민을 찾았소!' 하는 기사 예고가 나오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잡지 창간 뒤 나온 관련 기사를 봤더니, 찾긴 찾았는데 본인은 접촉하지 못하고 그의 모친을 인터뷰한 것 같다. 기사 내용으로 보면, 이영민씨의 상황은 그가 지지하며 희망을 걸었던 이명박 집권 5년 동안 더욱 어렵게 된 듯하고, 그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도 그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듯하다.

지금의 결과를 놓고,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고,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냐고 말한다면 그에게 불공평할 것이다. 결과를 갖고 말하기는 쉽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 없이 감정과 환상만으로 투표를 결정하면, 자신은 물론 온 국민이 피곤해진다는 점을 깨닫는 뼈아픈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나는 그가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포함해 어떤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권리이다. 다만 이번에는 좀더 명철한 인식 위에서 나온 결정이기를 바란다. 이영민씨뿐만이 아니다. 내용 없는 환상에 빠진 채, 후보자들이 부는 피리 소리에 맞춰 12월의 절벽으로 질주하는 한국 사람 모두가 새겨야 할 점이 아닐까 싶다.


※ <나.들> 이미지: <미디어스>(위에 링크), <피플> 이미지: <피플> 홈페이지, <샘이깊은물> 이미지: fydwjddbrwja

 

덧글

  • Silverwood 2012/10/31 22:48 # 답글

    읽다가 글 마지막 문단에서 갑자기 MB의 2000년대판 뉴딜정책 생각에 울컥했네요.. 내 세금...
  • 편도 2012/11/01 23:06 # 답글

    전 공지영 소설가 사진에 덧붙인 표제에 조금 당황했어요. 엄... 표제가 참.
  • 나돌 2012/11/04 15:06 # 삭제 답글

    "표제가 참"... 공감입니다. 살짝 당황스러운 또 한 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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